사람의 향기: 세계 최초 중증 지체장애 치과의사 분당서울대병원 이규환 교수
“용기 내 첫 발짝을 내딛길 바라요”
치과의사를 목표로 삼은 청년이 있었다. 수면에 호쾌하게 뛰어드는 다이빙을 좋아한 성정답게 자신의 꿈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치의과 전공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목표를 향한 걸음을 떼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다이빙을 즐기던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운동기능에 관련된 5번, 6번 경추 손상으로 중증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꿈이 물보라처럼 흩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가며 환자 앞에 당당한 치과의사로 거듭낫다.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 소속된 이규환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 4월 장애를 훌륭히 극복한 이에게 수여되는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Q.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A. 감사합니다. 현실을 버티며 지금의 자리를 지켜온 시간이 생각나 감회가 남다르네요. 예상치도 못한 사고로 전신에 걸친 장애를 갖게 됐을 때 대부분 포기하라고 했고, 저 스스로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체념했다면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근무하는 오늘의 제 모습은 없었겠죠. 언제나 제 곁에서 묵묵하게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저와 함께 손발을 맞춰준 동료들이 고맙고, 무엇보다 편견을 내려놓고 절 신뢰해준 환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건강증진센터는 개인별 건강위험 요인에 따른 맞춤형 건강검진 및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비만, 스트레스 관리, 위․대장질환 등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의료진이 환자를 맞이하고 있어요. 저는 치과를 맡아 턱관절 질환, 치아우식 등 종합 구강건강 검진 및 상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일반 환자뿐 아니라 뇌병변장애 및 시각장애인 환자분도 내원해 진료를 받습니다. 저희 센터는 장애인 화장실, 점자로 된 진료 유인물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 진료 시 보호자 동석을 필수로 정하고 장애인 환자분들을 지원할 인력도 상시 대기하고 있어요.
Q. 치과의사의 꿈을 갖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
A. 사실 크게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공부에 흥미도 있었고, 성적도 곧잘 나와서 의학 분야로 진로를 정했어요. 의사 가운이 멋져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었고, 사람을 살리고 건강을 지키는 직업이 큰 울림을 주기도 했거든요. 그중 치의과를 택한 건 ‘이(치아)가 건강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제1의 소화기관이 입과 치아거든요. 건강하려면 잘 먹어야 하고, 그러려면 치아가 튼튼해야 하죠. 잘 씹어야 소화도 잘 되고요.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의사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와 함께 건강의 기본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과의가 되자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어요. 주로 관심을 갖은 건 통합 구강건강과 예방 과목이었죠.
Q. 다이빙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셨습니다.
A. 졸업을 1년 앞둔 때였어요. 아차 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시의 기억은 어렴풋합니다. 수술 후 일주일쯤 지나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느낀 충격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의식을 차렸을 때는 목만 겨우 가눌 수 있었죠. 하루아침에 달라진 처지가 믿을 수 없어서, 부정하고 싶어서 웃었어요. 다음 순간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나 몸부림을 치고 싶을 만큼 화가 났는데 움직일 수 없는 몸에 울컥했죠. 시간이 지나서는 목표로 했던 치과의는 어떻게 하나 절망감에 울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끝에서 제게 찾아온 지체장애를 수용하는 데 성공했죠.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힘들었지만 말입니다.
Q. 다시 미래를 꿈꾸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A. 중환자실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니 비관적인 생각만 들어 간호사분들께 “아무 책이라도 좋으니 1시간이라도 읽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때 접했던 장애 극복 에세이나 자서전, 위로를 전하는 자기계발서가 ‘나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다가왔죠. 마음을 다잡고 나자 신체 컨디션도 조금 회복되어 1년이 지나 복학했어요. 하체를 움직일 수 없고, 의료 기구를 쥐어야 할 손가락도 쓸 수 없는 몸으로 치과의사가 되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었죠. 교수님은 선례가 없기에 차라리 법학 전과를 권하시기도 했고, 장시간 앉아 있다 고열과 욕창을 크게 앓은 적도 있었어요. 이런 난관마다 ‘장애가 있다고 왜 안 된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어요. 그게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휠체어가 계단에 가로막힐 때면 동기와 선후배들이 다가와 번쩍 들어 옮겨주었어요. 꿈과 삶, 그 전부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조차 제 곁에는 ‘희망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Q. 진료를 위한 도구를 직접 개발하셨다고요.
A. 궁여지책이었어요. 손가락은 움직일 수 없지만 팔의 동작은 어느 정도 가능했기에 의료 도구를 손에 고정할 방법을 고안했어요. 교수님 등 주변분들의 소개로 개발업체를 추천받아 제게 맞는 의료 도구의 제작을 부탁했습니다. 손에 상처를 얻어가며 인체 모형을 통해 셀 수 없이 연습해 숙달했어요. 그러나 수십 번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죠. 분당서울대병원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이번에도 안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다 기회도 가져보지 못하는 게 억울해 과장님과 교수님 등 병원 관계자분들을 찾아가 “단 한 번만 치료 과정을 선보일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어요. 설득 끝에 기회가 주어졌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노력이 헛되지 않아 치과의사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증 지체장애인 치과의사 채용은 그 자체로 큰 모험인데, 기회를 준 분당서울대병원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Q. 장애인 구강 건강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신데요.
A. 환자가 건강해진 이를 보이며 웃을 때가 가장 보람된 순간입니다. 장애인 구강 건강에 집중한 것도 다르지 않은 맥락이죠. 초반에는 휠체어를 보시고 환자분 열에 일곱은 진료받기를 거부하셨고, 막말을 던지고 나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도 세 분 정도는 망설이면서도 진료를 맡겨주셨고 저는 그때마다 “장애로 인해 느리지만 대신 세계에서 제일 꼼꼼하게 봐드리겠다”는 진심을 전했어요. 노력이 알음알음 알려져서 오늘에 이르렀죠. 하지만 환자들 가운데는, 특히 장애인 환자들 중에는 병원 내방을 어려워하거나 제때 치과를 찾지 못해 구강 및 치아질환이 악화되는 사례도 종종 있어요. 신체 동작이 어려워 양치가 원활하지 않아서, 또는 자신의 치아와 맞지 않는 칫솔이나 구강 청결제 등을 사용해서, 혹은 치료의 경제적 부담 탓에 질환을 키우는 경우죠. 구강․치아질환의 90%는 예방과 관리만으로도 치료․유지가 가능한데, 환경이나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큰 병’이 되는 양상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저도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치과의사로서뿐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로서도 공감이 되었죠. 힘닿는 대로 장애인복지관이나 장애인협회 등에 구강 건강을 위한 지속적인 물품 지원 및 진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비해 장애인치과도 증가했고, 치료 시 지원 범위도 늘었지만, 아직도 중증장애인분들은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진료를 고민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원정책이 좀 더 광범위하게 보완되었으면 좋겠어요.
Q. 장애인 치과의를 목표로 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A. 니체는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게 많은 힘을 준 문장이에요. 선례가 없거나, 그 사례가 몇 되지 않아서 시작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여러분에게 ‘일단 첫발을 떼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 발짝 옮기기만 하면 누군가는 꼭 손을 잡아주기 마련이거든요. ‘중증 장애인 치과의’가 최초다 보니 혼자 개척하며 걸어왔지만, 제 다음에 올 후배들은 덜 힘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멘토 역할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저와 다른, 그러면서도 같은 휠체어 탄 치과의사 후배들과 연락할 때마다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는 기분에 설렙니다. 저의 사례 하나로 중증 장애인 치과의의 ‘마침표’가 찍히지 않길, 계속 제2, 제3의 중증 장애인 치과의가 늘어나길 희망합니다.
신혜령 기자
* 본 기사는 6월호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64호에 쓰일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며, 가필첨삭을 하지 않은 원본이기 때문에 실제 간행물에 실린 내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