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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에세이] 백운산, 광교산 산행기
정치는 빵점 경제는 90점인 나라가 우리나라다. 지금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인지 못사는 나라인지 분간이 잘 안 간다. 우리나라는 금년 2011년 12월 5일을 기해 드디어 연간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다고 한다.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세계에서 단 8개 나라뿐인 '무역1조달러클럽'에 마침내 대한민국의 이름을 새롭게 올렸단다. 1948년 건국한 지 63년,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세워 수출주도 경제정책을 추진한 지 50년 만에 거둔 놀라운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삶도 나의 삶도 팍팍해지기만 하는 것은 왠 일일까. 국가가 잘 되면 서민도 잘 살게 되고 나라가 어려우면 일반 백성도 따라서 어렵게 된다. 국민은 국가라는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다. 줄기로부터 가지가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다. 나무 줄기는 무성한데 가지는 말라들어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구석이 있음에 틀림없다. 나라가 중병에 걸려 있다. "정치암 (政治癌)"이라는 악성 바이러스가 그 원인이 겠다.
어제는 겨울 속의 봄을 만끽한 화창한 하루였다. 화요산행 행선지는 서울 근교인 의왕시 백운산(白雲山)과 수원의 광교산(光敎山)이다. 11:00시까지 분당선 미금(美金)역 집결이다. 출발 전 일단 인터넷으로 지하철 노선점검부터 한다. 범계에서 출발 사당(舍堂), 양재(良才), 정자(亭子)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금역이다. 지하철은 4호선, 2호선, 신분당선, 그리고 맨 나중 분당선을 바꿔 타야 한다. 19개역(3회 환승) 소요시간은 약 58분이다.
덕산산악회 카페 산행안내에서는 "신분당선을 타고 오세요. 무척 빠르다고 하네요." 라고 산방지기님이 친절하게 일러준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개통된 신분당선이 좋다는 말을 누차 들은 터라 타보고 싶은 생각은 진작부터 있었는데 실천을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기에 오늘 산행은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될 전망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서울과 수도권의 대중교통 인프라는 단연 세계 제일이다. 새전철이 탄생할 때마다 나는 그걸 남들보다 먼저 타보고 싶어 안달하는 성미의 사람이다. 하기야 그런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그런게 바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나이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다. 무인운행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는 이 노선은 강남 양재에서 분당 정자까지 소요시간이 불과 16이라고 한다.
처음 타본 나로서는 한마디로 경이, 찬사, 놀라움 그것 외엔 할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중간에 매헌(梅軒)역이 있다. 열차 안에서 잠시 내다본 구내시설에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커다란 나뭇가지에 매화꽃이 활짝 핀 벽면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매헌은 윤봉길 의사의 호다. 윤 의사의 기념관이 근처에 있어서 붙여진 역이름이다. 언제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그 역사(驛舍)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우리나라 땅속에 이런 훌륭한 세계 최고의 최첨단 지하철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리라. 이런 시설은 도쿄에도, 뉴욕에도, 런던에도, 그리고 파리에도 없다. 우리나라는 냉장고, 스마트폰, 컴퓨터만 세계 최고가 아니라 지하철도 그렇다. 우리나라가 과연 이렇게 잘 사는 나라인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내 어깨마저 으쓱해지는 느낌이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더니 요새 며칠 동안 우리 내외는 오랜만에 손주들 덕(?)에 편하게 지내고 있다. 그들은 지난 3일 경주 외가에 내려가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다. 아마 외가가 무척이나 좋은가 보다. 하기야 꼬마들에게 외가보다 더 좋은 곳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고, 그들을 죽도록 귀여워해주는 이모도 멀지 않은 불국사역 가까이에 산단다.
내 손주들보다 더 행복한 꼬마들은 이 세상에 없지 싶다. 그들이 곧 행복천사다. 그런 그들이 있어 나도 행복하다. 그들은 어디를 가도 늘 보는 이들 모두로부터 하나같이 귀여움을 받고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번 주말에는 드디어 그들이 상경행차를 한다는 전갈이다. 열흘 남짓의 평화와 정적이 또 깨어지게 될 운명에 놓여 있다. 어쩌면 이 정적이 깨어지기를 할아비인 나 자신이 먼저 고대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사실이 그렇다. 그 동안 우리집은 그들이 없어 적막강산근백년(寂寞江山近百年)이었다. 생즉동(生卽動)이다, 정도 문제지 적막은 싫다.
그래도 오늘은 안심하고 산행길에 나선다. 저녁 귀가시 집에 와도 "할아버지, 맛있는 거 뭐 있어요?"하고 반길 놈도 없다. 내가 먹을 잉어빵이나 몇 개 마을 버스에서 내려 사가면 된다. 요새는 천 원에 3 개다.단 팥이 싫다면서 집사람은 그런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개는 내 차지가 된다. 나는 빵을 좋아하는 편인데 특히 재래식 단 팥빵을 선호한다. 집사람은 그것도 아니다. 아예 거들 떠보지도 않는다. 일반 식성은 두 사람이 거의 같은 데, 한 평생을 함께 살아도 꼭 같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단 것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다. 매우 좋아하고 자주 먹는 편이다. 방정맞은 이야기 같지만 단것 좋아하는 것과 당뇨(糖尿 : diabetes)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전문가 의사가 이 말을 듣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까. 아직 실제로 물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물어보나마나 답은 뻔할 뻔자일 것이다.다. 내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억측이겠는가 말이다. 예외 없는 법칙 없다더니 나의 경우도 이 공식에다 갖다 맞추면 될까.
오늘 미금역에 모인 뜸부기산악회 회원은 물경(勿驚) 그 수가 32명이다. 날씨가 좋아서 인지 가는 산들이 좋아서 인지 1개 소대 병력이다. 근자에 나는 사정이 있어 산악회 산행에 불참이 많았다. 내가 참가한 날 중에는 제일 참가 인원이 많은 날이다. 참으로 보기도 좋다. 다중(多衆)의 힘을 느낄 만도 하다. 조금 기다리자 백운산 방향 수지 고기동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도착한다. 소형차라 한꺼번에는 도저히 전원이 다 탈 것 같지가 않다. 다음 차로 가겠다고 뒤에서 미적미적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채촉을 한다. 어떻게 된 셈인지 결국은 그 많은 사람이 다 탄다. 이 차는 고무버스가 아닌지 모르겠다.
산행코스가 부담스럽지 않다. 근자 비가 알맞게 내려 등산로에 먼지도 일지 않는다. 수북이 쌓인 푹신푹신한 낙엽 밟는 발의 촉감이 참으로 좋다. 등산로 정비가 아주 잘 되어 있다. 경사도도 알맞다. 최근에 완성된 듯한 새로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정상까지 어렵잖게 올랐다. 사방 전망이 탁 트인다. 북서쪽으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훤히 보인다. 멀리 그 뒤로는 희미하게 북한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의왕(義王)쪽으로 가까이 저 아래 백운호(白雲湖)도 보인다.
정상 휴게소에는 참한 정자도 하나 새로 지어져 있다. 무슨 식물성 재료로 엮어 만든 가마니때기 같은 것으로 정상 능선을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다 덮어놓았다. 보기도 좋고 밟는 감촉도 괜찮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밟는 곳이라 흙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리라. 이런 조치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뒤로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비가 많이 와도 산 정상의 흙이 유실될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12시 반이 넘었다. 점심 먹자는 대장님의 지엄한 명령이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백운산 정상 조금 못 미쳐 펑퍼짐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인원이라 여기저기 자연 몇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그래도 맛있는 건건 용케도 다들 잘도 거든다. 나는 술과는 백 촌이 넘은 사람이지만, 애주가 산꾼들은 밥보다는 술이 먼저다. 능선주, 정상주, 계곡주, 하산주 등 갖다 붙이면 그럴듯한 이름이 된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애주가들은 핑곗거리 찾는 데는 선수들이다. 청탁불문만이 아니다. 이제는 장소도 시간도 불문이다. 애주가 치고 심성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술은 사람 심성을 순화시키는 신통력도 지니고 있는가.
식후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다음 목표는 백운산에서 통신대를 지나 광교산까지다. 알맞은 간격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내리막의 묘미가 그만이다. 일행 모두의 표정이 오늘 따라 더욱 밝고 명랑하다. 화창한 날씨가 큰 부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저런 이야기로 웃음 꽃을 피우면서 힘들이지 않고 어느새 광교산(582m) 정상에 이른다. 날씨는 여전히 맑고 화창하다. 바람 한 점 없다. 정상에 서 있어도 춥지가 않다. 맛있는 간식에다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면서 사방팔방 전경을 마음껏 즐긴다.
광교산으로 말하면 그 산은 나와는 인연이 있는 산이다. 대구 사람인 내가 서울로 오게 되면서 맨 처음 자리를 잡게 된 곳이 용인 수지(水枝)였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제일 먼저 손짓을 한 산이 바로 이 광교산이었다. 산의 손짓에는 무뚝뚝한 사람 나도 약하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 하는 법. 보기와는 달리 나도 속은 여리고 눈물이 많은 감상적(感傷的)인 얄궂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풍덕천2동 아파트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지근거리다. 5, 6분이면 충분하다. 수지성당 옆, 골프 레인지에서 등산길이 시작된다. 정상까지는 내 걸음으로 2 시간, 왕복 4 시간 안팎이다. 거기서 살던 2010년 3월까지 나는 아마 적어도 스므 번 이상은 광교산 정상을 올랐을 것이다. 나는 이른 아침 식전 산행을 좋아한다. 나이 든 사람이 산행하기에는 코스가 매우 이상적이다. 광교산은 수도권 일원의 등산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명산이다. 하산은 수지 신봉동 방향이다. 2년 전까지 내가 즐겨 다니던 길이라 느낌이 남다르다. 최신식 첨단 아파트들이 일 년이 멀다하고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그야말로 상전이 벽해로 바뀌는 현장을 목격한다. 여기뿐이 아니다. 이런 광경은 수도권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대구 토박이 나 같은 늙은이도 이 대열에 끼어들었으니 말이다.
신봉동에서 마을버스로 아침 출발했던 곳 미금역으로 간다. 귀갓길은 역순이다. 산행을 끝낸 발걸음이 가볍다. 많이 걸은 하루였음에도 피로를 모르겠다. 그러나 식후 책상 앞에 앉아 있자니 이내 눈이 감긴다. 쾌면은 낮에 이미 보장을 받아놓은 상태다. 내 생애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하루와 달콤한 꿈속에서 작별을 고한다.
산이 좋아 산을 오르고
산사람들이 좋아 산을 찾는다
산을 벗삼아 인생을 노래한다
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
평탄한 길, 험한 길
곧은 길, 꼬부라진 길
넓은 길, 좁은 길
인생길 닮은 파노라마가 좋아 산을 찾는다.
"산에서 사는 작은 새여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2011. 12. 13.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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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 인사 드렸던 산방지기입니다. 어떤 분일까 궁금 했었습니다. 단 것을 좋아하신다 하니 다음 산행땐 초코렛을 가져 가겠습니다. 항상 이곳에 들르셔서 좋은 글을 남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금방 올렸는데 벌써 읽어보셨구려. 1등입니다. 솔직히 글 올리는 사람으로는 글을 가급적 일찍 읽어주면 그게 제일 좋아요.
예쁘신 산방지기님을 알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 같은 노인네도 다 끼워주는 덕산산악회가 그래서도 좋습니다. 젊은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어제 평화누릿길 걷기도 참으로 좋았지요. 산방지기님 거듭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더군다나 1등이라니요....ㅎㅎ 학창시절에도 못해 본 1등 입니다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정이 씨, 별로 재미도 없는 글일텐데 다 앍으셨다니 고맙습니다.
못 쓰는 글이라도 이렇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자꾸 쓸 용기가 솟아나지요.
제글은 남에게 보이는 데 목적이 있는 건 결코 아님니다. 그저 흐트러진 마음
다스리기 위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해보는 정도입니다.
아무튼 여러 모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