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의 참 모습>
2003년 3월 17일 청송군에서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행사를 가졌다. 군단위 지역에서 「청송의병의 활동과 성격」이라는 학술토론회를 가졌기 때문이며 이는 선비정신의 참 모습을 볼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士林이란 선비들 즉 지식인의 집단으로 한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추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이러한 선비들은 국가가 危難에 처했을 때는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등의 戰亂시에도 그러하였고, 조선말기 倭國의 침략세력이 國母를 弑害하고 국권을 침탈하려 할 즈음에 국난극복의 민간 저항운동을 의병활동이라 할수 있다. 특히 이러한 의병활동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의 士林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전개 되었다.
금번「靑松義兵의 活動과 性格」이라는 주제의 학술토론회는 1895년 閔妃시해사건 이후 청송지역에서 전개된 의병활동 자료가 공개되어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학술발표회를 가진 것이다.
이 행사의 의의는 국운이 기운 조선조 말기의 청송지역 지식인들의 생생한 저항활동을 통하여 지역민의 단합과 애향정신을 함양 고취하고 나라사랑하는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는데 있다고 할것이다.
금번 이 행사는 당시 의병대장이었던 小流 沈誠之의 현손인 심봉섭씨가 소장하고 있던 「赤猿日記」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적원일기란 '붉은 원숭이 일기'란 뜻인데 왜적과의 투쟁일기라 할수 있으며 '왜놈의 자식' 또는 '남쪽의 원숭이 같은 놈'이란 뜻으로 왜놈을 비하하여 쓰여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청송에 3대 姓氏을 꼽으라 하면 역시 덕천의 청송심씨, 안덕의 함안조씨, 마평의 달성서씨를 꼽을수 있다. 이 적원일기는 義營都指揮使에 徐孝源의병대장에 沈誠之, 부장에 趙性璞으로 3대성씨가 골고루 임무를 분담하고 휘하에 많은 선비들을 규합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한 내용으로 당시 서기 沈孝格의 기록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병총괄 지휘자인 石澗 徐孝源이라는 학자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석간 徐선생은 定齋선생의 문인으로 西山 金興洛 선생과 同道同門이며, 그의 아들 淸石 徐錫華는 서산의 문인으로 학봉선생의 종손인 파락호로 소문난 독립지사 金龍煥선생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손부로 맞이한 분이다.
석간과 그의 아들 청석의 학맥을 퇴계학맥도에 의거 살펴보면 퇴계 이황(1501-1570)→학봉 김성일(1538-1593)→경당 장흥효(1564-1633)→석계 이시명(1590-1674)→갈암 이현일(1627-1704)→밀암 이재(1657-1730)→대산 이상정(1711-1781)→천사 김종덕(1724-1797),손재 남한조1744-1809)→정재 유치명(1777-1861)→서산 김흥락(1827-1899),석간 서효원(1839-1897)→청석 서석화(1869-1924)로 연결되어 결국 퇴계선생으로 귀결이 되며 학봉선생과 학봉종택과는 깊은 학문적 연원과 혼맥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석간 서효원은 당시 청송의병의 총지휘자로 활약한 것을 볼때에 이 지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학자임을 알수 있다. 청송부동의 깊고 깊은 산골마을 도랑옆의 한 선비이지만 그의 학문적 기상과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은 심원한 학문의 연원을 바탕으로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는 자발적으로 난세극복에 앞장서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힘은 면면히 이어온 선현들의 소리없는 가르침에 의한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선비정신이며 이 시대에 계승해야 할 정신인 것이다.
조선말기 진정한 유교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유교로 인하여 나라가 망했다고들 하였다. 유교로 인한 폐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에 의하여 대원군이 전국 47개 서원을 남기고 모든 서원을 철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청송 산골짜기의 달성서씨 일족들은 유학의 가르침과 참다운 선비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오히려 청송지동에 부강서원(鳧江書院)을 짖고 대산 이상정, 천사 김종덕, 정재 유치명 선생의 학덕과 정신을 이어 받고자 하였다. 또한 청석 서석화 선생은 퇴계학맥의 마지막 종장이라고 하는 서산 김흥락 선생의 문인으로 퇴계, 갈암, 대산, 정재 네선생의 사서삼경 주석과 언설을 비교 편집한 「經說類篇」이라는 귀중한 책자를 편찬하여 서산의 학통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퇴계선생의 연원학맥은 높은 벼슬로 인한 권세와, 부귀로 인한 명성으로 이어 지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산골 이름없고 가난한 선비라 할지라도 오직 학문을 숭상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기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참 선비의 정신을 가문 대대로 이어갈 때만이 학맥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참 선비 정신이 살아 있었기에 청송지역에서 수 많은 의병활동과 일제 암흑기에 타 지역에서 비교할수 없는 수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하게 된것이며 이를 우리가 눈여겨 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2003. 3. 18
안동 유교문화교류협회 회장 이동수
첫댓글 의병활동의 사서관은 沈孝格이 아니고 徐孝格선생이며 赤猿日記의 해석은 丙申年의 日記라고봐야 한다.즉 天干 丙의 색의 구분은 붉음, 地支의 申은 잔나비 즉 원숭이 이다
그러면 이동수회장님이 잘못 알고 계신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