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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4일
모임이 있는 날이라서 모임에서 점심을 먹고 다대포 바다미술제를구경하러 갔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백사장에는 봉사하는 사람들과 공공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태풍이 할퀴고 간 해변에는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가 가득했으며 일부 작품들은 훼손되어 작가가 복구한다고 여념이 없었다.
일부 작품은 피신시켰는지 볼 수 없었는데 태풍 오기 전에 볼걸 하고 잠시 후회했다.
2019 바다미술제
제목 : 상심의 바다
전시장소 : 다대포해수욕장
전시날짜 : 2019.09.28 ~ 2019.10.27 까지
전시내용: 환경과 생태 훼손 문제와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을 엿 볼 수 있는 작품 21점을 선보이며, 전시는 상처의 바다, 변화의 바다, 재생의 바다 등 3개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다대포바닷가는 일몰의 명소인데 시간이 어중간해서 구경 포기하고 귀가했다
샤오-치 차이 &키미야 요시카와
샤오-치 차이: B. 1981 대만
키미야 요시카와: B, 1980 일본
모호한 부케-한쌍
2019. 네오프렌, 가변크기
<모호한 부케-한 쌍>은 다대포 해변으로 들어서는 중앙 입구의 양쪽 소나무를 설치의 기조로 하는 작품이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최전선의 두 그루 나무는 다양한 형태의 네오프렌으로 장식되어 사람들을 해변으로 안내하듯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자연의 이미지에서 파생된 이 네오프렌의 색채와 형태들은 관람객들에게 친숙함을 전달함과 새로운 발견의 여정으로 이끌어 준다. 또한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극적인 그림자는 그 자체로 조각적인 요소가 된다. 이처럼 빛과 색, 형태등에 따라 작품은 또 다른 특성을 만들어 내고, 이는 곧 작가의 지속적인 탐구 대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번 작품이 행운의 상징이자 축복을 의미한다고 전한다.
다대포 해수욕장의 입구에서 우리를 반기고 있는 이 한 쌍의 소나무는 마주한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대한 작가의 염원과 관람객들에 대한 환영의 메시지를들 담고 있다.
임협 프로젝트 #1
2019. 혼합재료, 가변크기
<임협 프로젝트 #1 >은
김문기의 <가난한 조각 (POOR PIECE)>,
윤성지의 <다대포_칠성사이다 (DADAEPO-CHILSUNG CIOER)>,
윤희수의 <에코 마린 스플래쉬! (ECHO MARINE SPLASH!)>
세 작품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의 개별 작품을 선보이는 세 작가의 협업 과정을 통해 동시대 작가들이 겪는 모순과 분열의 상황들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먼저,
<가난한 조각>은 작가가 기존에 작업해왔던 <가난한 조각> 시리즈의 종이 조각 작업의 연장선으로 이번 전시에 맞춰 기존 환경조각 작품의 내구성과는 맞지 않는 종이로 제작한 조각들을 아크릴박스에 봉하는 제작방식으로 작품을 구현해내고자 하였다.
<다대포_칠성사이다>에서 작가는 칠성사이다 트레이들을 쌓는 반복 작업을 통해 예술과 자본 (기업)과의 관계가 예술-후원에서 예술-협업으로 변화하는 지점을 연출하고자 하였다.
〈에코 마린스플래쉬!>에서 각각의 칠성사이다 박스 안에 설치된 스피커는 작가가 직접 다대포
해수욕장의 바닷속에서 측음하여 재편집한, 즉, 비가시적인 미지의 영역에 존재하는
소리들을 들려준다.
This work is a semi-permanent
installation of Sea Art Festival 2015
Young-Won KIM
<shadow of shad ow (alone)>
South Korea
2010, bronze, 800x230x216cm
이 작품은 김영원의 작품으로 2015년 바다미술제에 출품 설치된 작품이다.
머리와 어께에 침이 박혀있다.
2019. 나무, 철, 10oox8o0x160CM
홍콩의 아트 루게더는 해수면 상승에 관해 이야기 한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됨에 따라 열팽창 및 대륙빙하의 해빙으로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기후 과학자들은 "만약 인류 사회가 자신들의 에너지 소비 습관과 낭비적인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구의 해수면은 2100년까자 3미터 상승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경고하고 있다. 해수면이 크게 오르게 되면 전 세계는 179만 제곱릴로미터의 땅을 잃게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토지 손실은 중요한 식량 재배 지역에서 일어나게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 중국 상하이 등을 포함한 세계 주유 도시를 역시 토지,손실의 가능성이 있어, 결국 해수면 상승우로 인한 대규모 토지 손실은 수억 명의 집단 이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아트 투게더는 <상심의 응덩이>를 다대포 해변가의 해안선 근처에 설치한다. 1.6미터의 깊이로 파인 나무구조물은 계단 형태로 설계 되어있는데, 관람객들은 해수면보다 아래에 있는 하단부와 해수면과 수평을 이루는 상단부를 오가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변화와 상승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또한, <상심의 응덩이>안에서 진행되는 9일간의 프루그램 '모래성 워크숍', '바람에 날리는 소원' 은 그 체험의 영역을 보다확장시킨다.
'모래성 워크숍 '에서 참가자들은 나무 조형들을 이용해 썰물의 바닷가에 모래 건축물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 밀물이 들어오면 세워 놓은 모래성들이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바람에 날리는 소원' 은 형형색색의 천 조각에 바다와 자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진심 어린 소원 등을 적어 <상심의 응덩이> 근처에 위치한 스탠드에 묶는다. 이 소원들은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혼들릴 것이고, 이 안에 적힌 말들은 바람을 타고 바다를 통과해 지구 구석구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아트 투게더는 해수면 상승에 대한 경각심을 알깨우면서도, 참가자들이 적은 따뜻한 소원들이 지구에 닿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공유하고자 한다.
알프레도 &이자벨 아퀄리잔
알프레도 아퀼리잔: B. 1962 필리핀
이자별 아퀼리잔: B. 1965 필리핀
2019. 대나무, 리본, 윈드 하프, 가변크기
<바람의 이야기, 바다의 서사>는 대나무 기둥 1500여 개에 1100여 개의 흰 리본과 대나무로 제작된 400여 개의 윈드 하프를 고정시킨 설치 작품이다.
이는 작가가 과거 필리핀의 한 어촌마을에서 대나무 기둥에 슬리퍼와 원드하프를 설치했던 <다양 (OAING)>(2003)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타갈로그어로"OAING"은 '애도', '비가 ()' 또는 '소금에 절인 생선' 을 의미하는 중의적 단어다. 작가는 무분별한 환경파괴, 그에 대한 인간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슬픔을 흰 색 리본으로 상기시키고, 불어오는 바람에 득특한 소리를 내는 윈드 하프를 병치시켜 인간에게 전하는 자연의 비극적 메시지를 시청각적 장치를 통해 그 효과를 국대화하여 전달한다.
2019, 대나무, 황토 흙, 짚, 300x900x300CM
<바다의 절규>는 인간의 귀 형상을 비현실적으로 대형화한 작품이다. 알게 조각낸 대나무 살을 이용해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황토와 짚을 섞어 만든 반죽을 얹어제작한 이 작품은 파도와 바람을 맞으며 전시 기간 동안 차츰 그 형태가 깎이고, 결국 뼈대를 드러낸다.
높이 3미터의 커다란 귓바퀴는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밀려드는 파도 소리와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소리, 소음 등 바다에서 들리는 복합적인 소리를 담아내고, 또한 작품의 반대편으로 다가가는 관람객들에게는 그 소리들을 분명하고 웅장하게 전달한다. 작가는 다대포 해변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수많은 소리들을 바다의 '절규'로 설정하고, 오직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바다의 소리 없는 외침을 작품을 통하여 비로소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작가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순간에도 쉼 없이 버려지는 수많은 플라스틱,
이산화탄소로 인한 산성화, 유류 유출 사고, 방사능 폐기물 등으로 인해 바다가죽어가고 있음을 관람객들이 새롭게 인지하고 그 소리에 반응하기를 기대한다.
어디로 가야하는가
2019. 시멘트, 해양쓰레기, 생활쓰레기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이 작품은 인간에 의해 병들어 가는 자연과 그것을 직면하고 해결해 나아가야 할 현시대의 자연환경 문제를 다시 한번 상기 시킨다. 다대포 해변의 산책로를 따라 해변의 정중앙으로 들어서면 성인 남성의 키와 비슷한 크기의 인간 군상들이 불규칙적으로 퍼져 서 있다. 탁 트인 해변에서 이승수의 군상들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며 마치 실제의 군중이 자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주재료인 시멘트 자체가 주는 표면의 거침이 그대로 느껴지며 몇몇 군상은 해변에서 수집한 해양쓰레기들이 시멘트와 뒤섞인 채로 굳어져 있다.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 앞에서 시멘트라는 이질적인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우리에게 이 군상들은 한편으로 불편함을 안겨준다. 자연에 흡수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있는 조각상들은 마치 현시대 인간의 자화상을 보는듯해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우리 인간들이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봉사하는분이 스스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갈쿠리와 장갑을 부착해 놓고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참 재미는 분이다.ㄴ
이창진
B. 1979 한국
수통
2019. PET병, 물, 염료, 조명, 가변크기
지속적으로 수평과 색에 대해 연구해왔던 작가는 이번 2019바다미술제를 통해 한단계 더 나아간 작품을 선보인다. 물과 색은 주된 재료로 이번 전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수천여 개의 각기 다른 색을 담은 페트병들은 수평선을 배경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야기한다. 이제까지의 작업에서는 정제되고 흐트러짐 없는 수평을 맞추었다면 이번 작품 <수통 (휴)>은 해변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자유로운 형태와 색감에 집중한다. 작품의 다채로운 색채는 낮 동안의 자연적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거나 왜곡되기도 하며, 어두워지는 시간에는 조명이 더해져 더욱 강렬한 흐름을 보여준다. '한 방울의 물에서 바다의 모든 비밀이 발견된다'는 뜻을 담은 제목은 자연에 대해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모른 척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듯하다.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한 일상의 것들이 한편으로는 우리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하며 감추고 싶지만 아름답게 포장되어 자연 앞에 놓인대로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해변가에 섬이 생긴다면
2019. 폐플라스틱, 철사, 대나무, 낚싯줄,
380X300X1300CM
타이둥 다운아티스트빌리지 &토코 스튜디오는 이번 바다미술제에서, 바다라는 거대 자연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해양 오염이라는 문제에 대한 주제 의식을 각각 시각적인 조형 작업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해변가에 섬이 생긴다면>은 대나무로 구조물의 형태를 만들고 대만 동해안 지역의 해양쓰레기로 만든 '꽃'을 구조물의 상단부에 위치시킨 작품으로, 타이둥 지역의 이야기와 문화를 대표하는 '작은 섬'이 다대포 해변가에 설치된다. 한편, 타이둥 다운아티스트빌리지는 이 '섬' 안에서 진행되는 열흘간의 워크샵을 통해 시민들과
직접 교류하며 타이둥 지역의 삶을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바다가 삶의 터전인 아메이 부족은 해마다 해양 의식 (OCEAN CEREMONY)를 치르며 바다를 달래왔는데, 이 의식은 타이둥 다운아티스트빌리지에 의해 매번 진행됐다. 부산에서도 워크숍의 첫 날에 바다의 노래를 배우는 활동을 통해 오프닝 세레모니 겸 해양 의식을 치른다. 이후 폐비닐 봉지, 버려지는 천 조각, 폐플라스틱 등을 이용하여 생활소품이나 악세사리를 만드는 워크숍을 통해 쓰레기로 치부했던 물건들이 실생활에 유용한 제품으로 변화되는 것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배변의 기술
손현욱 (대한민국 )
<배변의 기술>, 2015, 철에 채색, 4 X3X 6m
작가는 <배변의 기술>을 통해 수컷들이 가지고 있는 허황된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숙명이다.
그러나 비단 수컷들 뿐 인가? 허황된 가치를 쫓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라면 그래서 <배변의 기술-Pissing Contest>이라는 제목은 심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동물들의 배설을 지켜보는 인간의 심리상태는 처음에는 우습지만 결국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이 투사된다. 손현욱의 작품을 보면 쉽게 공감하면서도 인간의 심리적 폐부를 찌르는 통찰과 촌철살인의 유머가 스며있다. 이러한 유머는 통속적인 삶에 대한 관찰과 성찰의 사유 없이는 닿을 수 없다. 작가의 작품이 가지는 형태의 단순함 못지않게 작가는 이야기를 압축하는 탁월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2015 바다미술제(2015.9. 19~ 10. 18 다대포해수욕장)에 참가한 16개국 34개 출품작품 중 관람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미술제 폐막 이후에도 관광객에게 계속 작품감상의 기회를 주기위하여 미술제 기간 동안 설치되었던 자리에서 계속 전시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푸른 산뿐이지만, 산 위에는 하얀 구름이 한가롭게 떠돌고,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천천히 음미하던 김삿갓,
(물은 흘러도 앞을 다투지 않고,
구름은 떠 있어도 서로 뒤지려고 하건만,
어째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웬 놈의 말썽이 그렇게도 많을까.)
수안 고을에서 만난 양상문과 박용택 사이에 벌어진 계쟁(係爭)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났다. 욕심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다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김삿갓은 풀밭에 네 활개를 쭉 펴고 누워, 욕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산과 구름, 골짜기를 지나는 물소리의 자연 그대로를 즐기고 있었다. 그대로 누운 채로 자연의 빛과 소리를 즐기던 김삿갓,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석양에 노을이 아름답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으흠!" ...
기지개를 잔뜩 킨 김삿갓, 자리에서 일어나 도포 자락을 툴툴 털어내고,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해가 더 저물기 전에 이제는 잠자리를 구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노라니, 문득 저 멀리 아득한 산 위에서 누군가 부리나케 이쪽으로 달려 내려오며, 연실 큰 소리로 외쳐댄다.
"여보시오, 삿갓 쓰신 어르신네! 나 좀 보십시다! ...”
"누가 나를 부를까?"
김삿갓은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보았다. 이윽고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사람을 보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양상문이었다. 김삿갓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아니, 노형이 여기까지 웬일이시오?"
그러자 양상문은 죽은 아버지를 만난 듯, 김삿갓의 두 손을 힘차게 움켜잡는다.
"은인을 만나 뵙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며 달려왔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 말을 듣고 보니 알겠소이다. 노형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이 먼 데까지 나를
쫒아오셨구려?"
"선생은 무슨 말씀을...
패가망신하게 된 저를 살려 주신 선생님을 뵙는데 멀고 가깝고가 어디 있사옵니까?"
"누구는 친구를 속여먹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노형은 나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셔서 여간 고맙지 않소이다... 그래, 문제의 차용 증서는 돌려 받으셨소이까?"
"아까 전에 동헌에 불려 들어가 사또 어른으로부터 차용 증서를 돌려받고 나서, 곧장 선생의 뒤를 쫒아오는 길이옵니다. 만약 선생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저희 집은 완전히 망해 버렸을 것이옵니다."
그러면서 양상문은 허리춤에서 돈 꾸러미를 꺼내면서 다시 말한다.
"사람이 은혜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선생 덕분에 천 냥이라는 돈을 번 셈이니, 이것은 몇 푼 안 되지만, 노자에 보태 쓰시옵소서."
양상문의 성의는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기까지 나를 따라와 주신 성의만으로도 보답은 충분합니다. 고마운 일이지만 이 돈은 못 받겠소이다. 노형은 천 냥이나 벌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생긴 돈은 한 푼도 없지 않소이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은혜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이 돈을 받으면 나는 박용택이 보다도 더 나쁜 놈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워낙 돈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냥 넣어 두시구려."
"그러시다면 저의 성의를 생각하셔서 절반만이라도 ....."
"절반이 아니라, 한 푼도 받을 수가 없어요."
"너무 그러시면 제가 성의를 무시당하는 것 같아 오히려 섭섭하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남의 성의를 너무 완강하게 거절하는 것도 오히려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이렇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노형의 성의를 생각해, 정표로 엽전 한 닢만 받기로 합시다."
그러면서 양상문이 내민 엽전 꾸러미에서 상평통보(常平通寶) 한 닢을 받아 들고 나머지는 도로 돌려주었다. 그러자 양상문은 아쉬워하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날도 저물었으니. 오늘밤은 우리 집에 가셔서 주무시면 어떻겠습니까?"
김삿갓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씀은 고맙소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 떠나온 길을 되돌아 갈 생각은 없소이다. 내 걱정은 말고, 노형이나 너무 늦기 전에 댁으로 돌아가시구려."
"저는 조금 늦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선생은 오늘밤을 어디서 보내려고 그러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 근방에는 인가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가가 없으면 어디 쯤에나 있는 토굴이라도 하나 찾아보지요."
"옛? 토굴에서 주무시겠다고요?"
양상문은 놀라더니 이내 무슨 생각이 나는지, 손뼉을 마주치며 말을 한다.
"아 참! 좋은 곳이 생각납니다. 여기서 오리쯤 산속으로 들어가면 움막 같은 친구 집이 있습니다. 제가 모시고 갈 테니, 선생은 오늘밤 저와 함께 그 집에서 주무시도록 하십시다."
어떤 방법이라도 김삿갓으로 부터 받은 은혜를 갚지 못해 애타는 태도가 간절한 양상문이었다.
"그러시다면, 노형의 성의를 고맙게 받고, 그 집에 가서 신세를 지기로 하겠습니다."
기뻐하는 양상문과 함께 산속으로 얼마간 들어가니, 과연 움막 같은 집이 하나 있었다. 40 가깝게 보이는 그 곳 주인의 이름은 오지환(吳志煥)이라 하는데, 산속에서 숯을 구워 팔며,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지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마음이 어찌나 착한지, 김삿갓과 양상문을 백년지기처럼 맞아 주었다.
"여보게 지환이! 밤중에 찾아와서 미안하네, 저녁을 지을 쌀은 있는가?"
양상문이 그렇게 물어보자, 그는 웃으며 대답한다.
"쌀은 없지만, 감자는 넉넉하게 있습니다, 그려."
"나에게 돈이 있으니, 어디서 쌀을 좀 구해 올 수 없을까?"
"아따, 형님도! 감자면 됐지, 꼭 쌀을 먹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소."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와서 그러네."
"이러나저러나 쌀을 구할 수가 있어야 말이죠. 상문 형님 말씀대로 귀한 손님이라면 오늘밤은 감자로 때우고, 내일 아침에는 토끼 불고기를 대접해 드립시다 그려."
"토끼는 쉽게 잡을 수 있는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토끼 굴에 가면 토끼는 얼마든지 잡아올 수 있어요."
이윽고 세 사람은 삶은 감자 한 소쿠리를 방 한복판에 놓고 저녁 대신으로 먹기 시작하였다. 반찬이라곤 김치 한가지뿐이었지만, 김치와 감자의 맛의 조화가 기가 막혀서 혀까지 목구멍으로 넘어 갈 지경이었다. 워낙 시장했던 탓도 있었지만,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맛이 좋았다.
"감자 맛과 김치 맛이 어쩌면 이렇게도 기가 막히지요?"
김삿갓이 이렇게 말하자, 지환은 싱그레 웃음을 지으며,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손님은 어지간히 시장하셨던 게로군요. 그렇지 않아도 감자와 김치는 얼마든지 있으니, 양껏 잡수세요."
그러면서 눈 깜빡할 사이에 감자 한 알을 먹어 치우며,
"진수성찬이란 것이 별게 아닙니다. 일을 열심히 하고 나면 세상에 진수성찬이 아닌 것이 없더라고요."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본인은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김삿갓은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느낌이 들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매 끼니를 진수성찬으로 먹으면서도,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음식 투정을 하기가 일쑤다. 입이 사치스럽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사람들은 일은 없고, 입만 살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음…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로구나!)
- 남자가 사노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
김삿갓은 감자를 먹어 가며, 주인에게 이런 말도 물어보았다.
"이 깊은 산중에서 날마다 숯만 구우며 살아가려면 때로는 외로움도 느끼시겠구려."
지환은 당치 않은 소리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한다.
"산에는 산짐승 친구들도 많은데다, 숯을 굽기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구워 내는 숯이 많은 아낙네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이 여간 기쁘지 않은 걸요."
김삿갓은 비록 숯을 굽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즐겁게 해 나가는 지환의 생활상을 듣자, 자기 일에 아무런 사명감도 느끼지 못하고 하루 하루를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도 있는 데에 비하면 지환은 스스로 만든 천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자리 움막은 천정이 너무 낮아서 김삿갓은 무심코 일어서다가 천정에 이마를 쪼아 붙였다.
"아얏! ..."
(하늘은 한없이 높은데, 이 집 천정은 왜 이다지도 얕은고!)
김삿갓은 이마를 쓸며 자신도 모르게 익살을 부렸다. 불편한 것은 천정만이 아니었다. 콧구멍 만한 좁은 방에서 세 사람이 함께 자려니까, 아무리 가로 세로 누워도 다리를 펴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방이 워낙 비좁아 불편하시겠지만, 하룻밤 참고 지냅시다. 지내 놓고 나면 이런 일도 좋은 추억이 되실 것이오."
주인은 워낙 낙천가인지라 모든 일을 좋게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상문은 김삿갓에게 미안스러운지,
"선생을 편히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고 말을 한다.
"아무리 불편하기로 토굴보다야 낫지 않겠소이까."
김삿갓은 짐짓 익살을 부려 보였다. 주인과 양상문은 눕기가 무섭게 코를 요란스럽게 곤다. 그러나 김삿갓은 오금을 못 편 채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비몽사몽간에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다시는 잠이 오지 않았다. 김삿갓은 잠자기를 단념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때마침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뒷산에 올라오니, 조그만 정자가 하나 있었다. 정자에 올라 앉아 산 아래 어둠속의 수풀과 이를 환히 비추는 달구경을 하는데, 뱃속 창자가 주린 소리를 낸다. 김삿갓, 빙그레 미소를 머금으며 즉흥시 한 수를 읊었다.
天高萬里 不擧頭(천고만리 불거두)
하늘은 높아 만리이건만 머리를 들 수 없고
地澤千里 不宣足(지택천리 불선족)
땅은 천 리로 넓건만 다리를 펼 수 없네
五更登樓 非翫月(오경등루 비완월)
오밤중에 다락에 오른 것은 달 구경 때문은 아니오
三朝避穀 不求仙(삼조피곡 불구선)
사흘을 굶은 것은 신선이 되려 함도 아니다.
다음날 아침, 오지환은 마당에 숯불을 피워 놓고, 토끼 불고기를 구워 준다. 김삿갓이 토끼 고기를 먹어 보기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토끼 고기는 노린내가 난다는 말을 들었는데, 불에 구워 먹어 그런지 쇠고기와 다름이 없구려."
양상문은 고기를 맛있게 먹어가며,
"저 역시 토끼 고기는 처음 먹어 보는데, 맛이 괜찮습니다... 여보게, 지환이! 이런 때에는 술이 있어야 할 것인데, 어디서 술 좀 구해 올 수 없을까?"
"원, 형님두! 이런 심심산중에서 술을 어디서 구해 옵니까?"
오지환은 양상문에게 넌지시 구박을 주다가, 별안간 무엇이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친다.
"아 참! 술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납니다. 나는 워낙 술을 좋아하지 않아 술에는 관심이 없는데, 그러나 한 5년 전쯤인가? 산머루 한 항아리를 땅속에 묻어 둔 게 있어요. 지금쯤은 술이 되었을 것 같으니 갖다 먹기로 합시다."
"이 사람아! 그런 게 있으면 진작 가져올 일이지 왜 잠자코 있었는가?"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까맣게 잊고 있었지요."
김삿갓은 5년 동안이나 땅속에 묻어 두었다는 머루술이라는 말을 듣자 대뜸 입에 군침이 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오지환이 가져온 머루주의 맛은 기가 막히게 향기로웠다. 양상문도 술을 마셔 보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김삿갓에게 물어본다.
"선생! 나는 이렇게 좋은 술을 마셔 보기는 50 평생 오늘이 처음입니다. 선생 입에는 어떻습니까?"
"내 입이라고 노형의 입과 다를 것이 있겠소. 이 술을 마시니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 오는 것만 같구려."
오지환은 그 말을 듣고 어쩔 줄을 모르고 기뻐한다.
"5년 전에 장난삼아 땅속에 묻어 두었던 머루가 오늘날 두 분을 그렇게도 즐겁게 해 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본디 좋은 술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오. 그러기에 옛날부터, 마음을 너그럽게 해 주는 데는 술이 제일이요 (寬心應是酒 : 관심응시주), 사람을 흥겹게 해 주는 데는 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遺興莫過詩 : 유흥막과시) 고 했다오."
"그것 참 좋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흘이든 나흘이든 이 술이 바닥이 날 때까지 우리 집에 그냥 머물러 계십시오. 술안주는 노루 고기든 꿩 고기든 입맛대로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말만 들어도 흥이 절로 돋는 소리다.
"선생! 이 좋은 술을 그냥 남겨 두고 떠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양상문조차 보채는 바람에 김삿갓은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좋도록 합시다, 그려. 나는 워낙 오라는 데가 없는 몸이니 뭐가 급해서 떠나겠소이까?"
김삿갓과 양상문은 오지환네 움막에서 사흘 밤을 더 묵다가,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술이 아직도 더 남아 있으니까. 아예 바닥을 내고 떠나도록 하시죠."
오지환은 헤어지기가 아쉬워 호소하듯 만류한다. 그러자 양상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사람아! 밑술을 조금 남겨 두어야 우리가 또 오게 될 게 아닌가."
김삿갓도 웃으며 말했다.
"술이 아무리 좋기로 형공(兄公)의 우정만이야 하겠소이까. 하룻밤 자고 떠나려던 노릇이 나흘이나 묵은 것은 형공의 정성이 너무도 고마웠기 때문이었소."
그것은 사실이었다. 술이 좋아 떠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였고, 사흘 동안이나 묵은 것은 지환이라는 산사람(山人)의 우정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뿌리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지환도 무언가 느껴지는 점이 있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굳이 떠나신다면 억지로 붙잡지는 않겠습니다. 오는 가을부터는 해마다 머루주를 잔뜩 담아 놓고, 두 분이 다시 찾아와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그야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운 우정이었다.
이별이란 누구에게나 슬픈 것이다. 세 사람이 삼거리에서 뿔뿔이 헤어지게 되자, 양상문은 김삿갓의 옷소매를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헤어지면, 선생을 어느 세월에나 또 만나 뵙게 되겠습니까?"
김삿갓은 가슴이 뭉클해 오는 감동이 밀려왔지만, 말만은 예사롭지 않게 답했다.
"남아하처 불상봉(男兒何處不相逢)이라는 옛말이 있지 않소. 오래 사노라면 어디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설사 못 만나는 한이 있어도, 노형이 베풀어 주신 엽전 한 닢만은 죽는 날까지 신주처럼 품에 지니고 살아가겠소이다."
"......."
양상문은 대답을 못하고, 김삿갓의 손을 움켜잡으며 눈물만 흘린다. 그리고 돌아서 멀리 사라지는 김삿갓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지환과 함께 그 자리에 말뚝처럼 서 있었다.
수안에서 구월산이 있는 은률(殷栗)로 가기 위해서는 사리원을 거쳐야한다. 사리원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던 김삿갓, 산을 하나 넘어 가니 술집이 보인다. 집은 게딱지같이 초라해 보이건만, 옥호(屋號)는 요란스럽게도 무하향(無何響)이라고 붙어 있었다. 술청에 들어서니 주모는 육십을 넘겼음직한 젊은 할머니였다.
"주모! 술 한잔 주시오."
김삿갓은 삿갓을 벗어 놓고 술청에 걸터앉으며 다시 말했다.
"게딱지 같은 집에 무하향이라는 간판은 너무도 격에 어울리지 않소이다. 주모는 무하향이라는 말의 뜻을 알기나 하고 간판으로 내 거신 것이오?"
주모는 술을 따라 주면서,
"무하향이라는 말이 어서 나온 것인지, 술장수가 그런 건 알아서 뭐 한다오? 그저, 지나가는 손님이 술 한잔 사 마시고 나서, 나무토막에 그렇게 써주기에, 내버리기가 아까워서 걸어 놓았을 뿐이라오."
김삿갓은 술 한잔을 단숨에 쭈욱 들이키고 나서,
"게딱지 같은 주막에 무하향이라는 간판은 "개 발에 편자" 격이니, 떼어 버리는 것이 낫겠소."
하고 무책임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모는 몹시 아니꼬운 듯, 술을 따르다 말고 김삿갓의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김삿갓은 약간 무안한 생각이 들어 웃어 보이며 묻는다.
"술을 따르다 말고 왜 내 얼굴만 쳐다보시오."
그러자 주모는 다시 술을 따라 주며 혼잣말로 탄식하듯 말한다.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
"기가 막히다뇨? 무엇이 기가 막히다는 말이오?"
주모는 그제서야 정색을 하면서 김삿갓에게 이렇게 나무라는 것이다.
"손님은 말끝마다 게딱지 같다는 말을 하는데, 게딱지가 어쨌단 말이오. 게가 그 말을 들으면 손님을 얼마나 나무랄 것이오. 손님 눈에는 게가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정작 게한테는 자기 딱지야말로 전우주라는 것을 알아야 하오. 그런 것쯤은 알만한 분이 왜 이렇게도 입이 점잖지 못하시오."
김삿갓은 주모의 질책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주모의 말이 절절이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 노파가 보통 노파가 아니로구나!)
김삿갓은 그런 생각이 들어,
"게딱지라고 말한 것은 내가 실언을 했소이다. 정식으로 사과할 테니, 너무 언짢게 생각지 마시오." 하고 고개를 수그려 보였다.
그러자 주모는 싱긋 웃어 보이며,
"내가 늙은 것만 믿고, 손님에게 말버릇이 지나치게 불손했던 것 같구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술 한 잔 따라 드리리다." 하며 술을 한잔 따라 주는 것이다. 이러고 보니, 말이 얼마든지 통할 수 있는 노파가 아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모는 혼자 사시는 모양인데, 자녀가 한 명도 없으신가요?" 하고 물었다.
"자식이 없기는 왜 없겠어요. 아들 딸이 자그마치 일곱 명이나 있다오."
"옛? .... 아들 딸이 일곱 명이나 있다구요? 그런데 자식들은 어디 가고 혼자만 산다는 말이오?"
"더러는 중이 되어 구월산으로 들어가 버리고, 또 제 애비를 찾아 가기도 했고, 계집애는 사내놈과 배가 맞아 도망을 쳐버리기도 했고 ... 결국 나는, 혼자 살다 죽으려나 봅니다."
주모의 말만 들어서는 처량하기 짝이 없었지만, 주모는 모든 것을 달관한 듯 태연하기만 하였다. 김삿갓은 주모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러는 애비를 찾아 갔다니요? 그렇다면 영감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딴 집에 살고 있다는 말인가요?"
주모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아니지요. 내가 팔자가 워낙 기박해, 열 아홉에 아들 형제를 남겨 받고 청상과부가 되었다오. 부득이 개가하여 이번에는 남매를 낳았는데, 두 번째 서방이 또 죽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는 시집을 안 가기로 결심을 했다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들이 없는 부잣집 영감님이 나를 찾아와서, 돈을 많이 줄 테니 아들을 하나만 낳아 달라는 거예요."
"소실로 데려 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아들만 낳아 달라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아이가 넷씩이나 달려 있는 과부를 누가 소실로 데려 가겠어요. 나 역시도 죽으면 죽었지, 남의 집 소실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면 돈을 받고 아들을 낳는 기계 노릇만 해달라는 말이군요."
"이를테면 그런 셈이지요. 그렇게 아들을 낳아 두 돌 만에 곱게 돌려주었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영감님이 찾아와서 아들딸 간에 하나만 낳아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누구의 부탁은 들어주고 누구의 부탁은 거절하기가 안 되어, 결국은 그런 식으로 남의 아이를 셋이나 낳아 주었다오."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를 주모는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이 담담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물론 자식을 넷이나 키우며 혼자 살아가기가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남의 아이를 셋 씩이나 낳아 주었을 것인가. 이렇듯 남의 아이를 낳아, 두 돌이 될 때까지 정성스럽게 키워서 꼬박꼬박 돌려주었다는 것은 부처님 같은 자비심을 가지지 않은 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김삿갓은 주모를 대하기에 마치, 생불을 보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숙연해 오기까지 하였다.
"아니, 그러면 세 사람이 모두 자식만 낳아 가지고 가고, 같이 살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오!"
"그런 사람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나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첩살이는 하고 싶지 않아 모두 거절해 버렸다오."
주모는 팔자를 고칠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아온 것을 보면, 본바탕이 음탕한 여자가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면 두 남편 몸에서 낳은 네 남매는 어디로 가고 지금은 혼자만 살고 계시오?"
"아들 셋 중에서 둘은 스님을 따라 구월산에 들어가 중이 되어 버렸고, 한 아이는 호랑이한테 물려 갔는지 집을 나간 채 영영 종적을 모르겠고, 하나밖에 없는 계집아이는 어떤 놈팽이와 배가 맞아 도망을 갔다오. 지금은 평양에서 기생질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사실여부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김삿갓은 ‘기생’이라는 소리에 흥미가 느껴져서,
"평양에서 기생 노릇을 한다고요? 나도 평양으로 가는 길인데 한번 찾아 보리다. 그런데 따님의 이름은 뭐라고 하지요?" 하고 물어보았다. 주모는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는지, 심드렁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한다.
"집을 나간 지 하도 오래 되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가실(可實)이라고 불렀지만, 기생이 되고 나서는 이름을 뭐라고 바꿨는지는 모르지요."
김삿갓은 쓴웃음을 웃으며,
"모녀간의 정리(情理)가 그럴 수가 있어요. 지금도 가끔 보고 싶기는 하겠지요?"
"솔직이 말해 별로 보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품 안을 떠나 버리면 자식도 남과 다를 것이 없는 걸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구별하게 되면 걱정도 생기고 번뇌도 일어난다면서요?"
주모의 말을 경청하던 김삿갓은 마음속에 담긴 말을 주모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생활 신념이 그렇게 뚜렷한 것을 보니, 보통 분이 아니오 ... 자, 그런 의미에서 기분 좋게 한잔 마십시다."
김삿갓은 주모에게도 술을 한 잔 따라 주고, 술잔을 주모의 눈 높이로 치켜 들었다.
김삿갓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데, 문득 문이 벌컥 열리며 40세 가량 되어 보이는 사내가 들어오더니, 대청마루에 털썩 걸터앉으며 푸념조의 말을 한다.
"아주머니! 나 술 한잔 주소... 제~길헐... 계집년들 등쌀에 사람이 살 수 있어야 말이지."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주모가 얼른 술을 따라 주며 묻는다.
"계집년들이 뭐가 어쨌다고 혼자 화를 내시오?"
김삿갓은 그 기회에 사나이의 용모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나이는 사십이 되었을까 넘었을까, 몸이 우람하고 상투가 큼지막한 데다가 이마에는 일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아울러 사내의 눈꼬리가 찢어져 올라 간 것으로 보아, 결코 순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나이는 술 한잔을 쭈욱 들이키고 술잔을 술상위에 탁 내려놓으며,
"계집년 얘기는 말도 마시오. 그 년들 때문에 이제는 내가 신물이 날 지경이라오."
그리고 나서 김삿갓의 얼굴을 잠시나마 멀거니 바라보더니 별안간 깜짝 놀라 보이며,
"아니 이거, 자네는 천마산에 사는 이 서방 아닌가? 여보게, 이거 얼마 만인가?"
하고 외치며 김삿갓에게 다가와서 대뜸 손을 움켜잡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노형이 사람을 잘못 보셨소이다. 나는 이 서방이 아니고 김 서방이오."
그러나 상대방은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예끼 이 친구야! 옛날 친분을 생각해서도 자네가 나를 모른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백종원(白鐘元)일쎄, 자네가 성까지 바꿔 가면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생면 부지의 사나이가 얼토당토 않은 고집을 부리자 김삿갓은 매우 난처한 심정이었다. 김삿갓은 백종원이라는 사내에게 빙그레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아마 이 서방이라는 친구가 나하고 어지간히 닮은 모양이구료. 그러나 나는 이 서방이 아니고 틀림없는 김서방입니다. 얼굴이 비슷해서 착각을 일으킨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다른 데가 있을 것이오. 내 얼굴을 자세히 보시오.“
그러면서 김삿갓은 얼굴을 일부러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백종원이라는 사내는 김삿갓의 얼굴을 면구스러울 정도로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문득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말한다.
"내가 노형에게 큰 실수를 했소이다. 내 친구는 왼쪽 뺨에 커다란 점이 있는데, 노형의 뺨에는 검은 점이 없군요. 내가 실수를 했으니 용서하시오. 그러나 저러나 노형은 어쩌면 내 친구와 얼굴이 그렇게도 닮으셨소. 그래서 그런지, 노형은 처음 만나는 사람 같지가 않구려. 그런 의미에서 한잔 합시다."
어쩐지 행실이 수상하다 싶었지만, 김삿갓은 백종원이 내민 술잔을 물리 칠 생각은 없었다.
"좋소이다. 나는 비록 이 서방은 아니지만, 친구가 별 게 있겠소. 함께 어울리면 친구지..."
"옳으신 말씀이오. 김서방이나 이서방이나 모두가 사람이기는 매일반일 것이오. 하하하."
백종원은 호탕하게 웃어 보이고 나서, 문득 주모를 쳐다보며 수작을 부린다.
"주모는 성을 뭐라고 하오? 설마 성이 주가는 아니겠지?"
주모는 백종원에게 가볍게 나무라는 어조로,
"여보세요, 성을 갈면 개자식이라는 말도 모르시오? 누구를 개자식으로 만들려고 그런 농담을 하시우."
"주가가 아니란 말이구려. 그러면 진짜 성은 뭐라고 하오?"
"내 성은 천씨(千氏)라오. 본관은 영양(潁陽)이구요."
그 말을 듣자 김삿갓이 중간에 끼어들며 말한다.
"천씨...라면, 임진왜란 당시에 많은 전공을 올린 사암(思庵) 천만리(千萬里)의 후손인가 보구려?"
주모는 그 말에 크게 기뻐하며,
"어머나! 손님은 우리 가문의 내력을 잘도 아시네요."
그러나 백종원은 뭐가 못마땅한지 입을 씰룩거리면서 대뜸 시비조로 나온다.
"주모는 왜 그렇게도 건방지지?"
"성이 무어냐고 묻길래 사실대로 대답했을 뿐인데, 뭐가 건방지다는 거예요?"
"왜 건방지다는 것인지 몰라서 묻나? 내 성이 백가인데, 주모의 성은 내 성보다 더 열 갑절이나 높은 천가라고 하니, 그런 건방진 성이 어디 있어. 오늘부터는 ‘千’ 자의 대가리를 툭 쳐버리고 ‘十哥’ 라고 해요. 그래야만 격에 어울릴 거야. 내 말 알아듣겠지!"
이렇게 백종원이라는 사내가 주모의 성을 가지고 생트집을 잡는 바람에 김삿갓은 배를 움켜잡고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백종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이라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도 없이 피동적으로 타고나는 것인데, 남의 성을 가지고 나무라면 어떡하오. 천가면 어떻고 백가면 어떻소. 사람은 다 마찬가지인 걸.... 나는 그보다도 노형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이다."
백종원은 술을 한잔 들이켜고 나서 반문한다.
"뭐가 궁금하다는 말씀이오?"
"노형은 아까 이 집에 들어설 때에 계집년들 등쌀에 신물이 난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소? 어떤 연유로 그런 말로 화를 냈는지, 그 이야기 좀 들어 봅시다."
"그 얘기 말인가요? 그 얘기라면 창피스러워서 말도 하고 싶지 않소이다."
"말을 할 수 없다니까 더욱 듣고 싶구려. 오가다 만난 우리 사이에 창피스러울 것이 뭐 있겠소. 이왕이면 기탄없이 들려주시구려."
그러자 백종원은 문득 생각이 달라졌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기는 사내들이란 너 나 없이 모두가 똑같은 동물이니까, 노형도 내 이야기를 들어 두면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니, 잘 들어 보시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백종원은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를 한집에 데리고 살기 때문에, 두 여인들 간에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 일쑤였다. 오늘도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가 서로 머리채를 움켜잡고, 이년 저년 하며 대판 싸우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두 마누라가 서로 싸우는 꼴을 본 백종원은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느 편을 나무라고 다른 편을 두둔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백종원은 생각다 못해 작은 마누라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건너 방으로 끌고 가며 이렇게 호통 쳤다.
"이 년아! 너 같은 계집년은 숫제 죽여 버려야 하겠다."
작은마누라를 야단치며 끌고 가야만, 대의 명문이 설 것 같아서 였다. 그러나 정작 작은마누라를 건넌방으로 끌고 건너왔을 때, 젊은 계집이 탐스러운 젓통을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을 보자 백종원은 별안간 욕정이 솟구쳐 올라 견딜 수 없었다. 그런 탓에 작은 마누라를 모두 벗겨 놓고 낫거리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방문이 홱 열리더니 큰마누라가 비호같이 덤벼들어 백종원의 등덜미를 움켜잡고 끌어당기며, 다음과 같이 호통을 치더라는 것이다.
"이 잡놈아! 저년을 이런 식으로 죽여주려거든 왜 나를 먼저 죽여주지 않고 저년부터 죽여주느냐! ..."
(이, 오라를 칠 놈아 ...)
김삿갓과 주모는 그 말을 듣자 배꼽을 움켜잡고 웃었다.
"하하하, 두 마누라를 한 집에서 거느린다는 것은 보통 예삿일이 아닌가 보구려."
주모도 웃어가며 덩달아 말한다.
"호호호, 이왕이면 공평무사하게 큰마누라도 죽여주지 그랬어요?"
"에이 여보시오, 내가 물개인 줄 아시오?"
그 소리에 방안에는 또다시 웃음판이 벌어졌다.
김삿갓이 백종원에게 물었다.
"그래, 작은 마누라 배 위에 엎어져 있던 노형의 뒷덜미를 낚아 채, 자기 먼저 죽여 달라는 큰마누라는 어찌 하셨소?"
그러자 백종원은 손을 휘휘 내 저으며 대답한다.
"다 늙어 빠진 마누라를 무슨 재미로 죽여 주오. 큰마누라한테 도대체 흥미가 없어, 부득이 작은마누라를 얻어오게 된 걸요."
그러자 주모가 정색을 하며 백종원을 나무란다.
"그건 너무 하시우. 작은마누라만 죽여주고 큰마누라는 돌아보지도 않게 되면, 큰마누라가 얼마나 원통하겠어요?"
"워낙 많이 써먹어서 온통 닳고 닳아 못 쓰게 되어 버린 걸 어떡하냐는 말이오."
주모가 화를 내며 말한다.
"모르는 소리 그만 하시오. 여자는 화로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화로는 평소에는 냉랭하지만 숯불을 활짝 피워 주기만 하면 언제든지 뜨겁게 달아오르는 법이에요."
김삿갓은 주모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하하하, 주모! 남자가 화로와 같다는 소리는 들어 보았으나, 여자가 화로 같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오."
그러자 주모와 백종원이 거의 동시에 김삿갓에게 물었다.
"남자를 어떻게 화로에 비교한다는 말이오?"
김삿갓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내가 남자의 성정(性情)을 연령(年齡)별로, 불에 비유해 볼 테니 잘 들어 보시오.“
그러면서 김삿갓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대 남자는 ‘장작불’ ... 경험이 많지 않아, 빨리 타고 쉽게 꺼진다.
30대 남자는 ‘연탄불’ ... 경험도 적당히 쌓여서 제법 오래 탄다.
40대 남자는 ‘담뱃불’ ... 불은 불인데, ‘쪽쪽’ 빨아 줘야 겨우 불 같이 보인다.
50대 남자는 ‘화롯불’ ... 속을 헤쳐서 찾아보아야 겨우 불을 발견할 수 있다.
60대 남자는 ‘번갯불’ ... 불은 불인데 쓸 수 없는 불이다.
70대 남자는 ‘반딧불’ ... 불도 아닌 것이 불인 척 한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김삿갓의 말이 끝나자, 백종원은 대굴대굴 구르며 배를 움켜잡았다. 주모 역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리를 굽혀 배꼽을 잡았다.
"노형도 대단하시오! ... 자! 내 술 한 잔 받으시오."
백종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김삿갓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이렇게 잡담을 한없이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잠자리가 걱정된 김삿갓이 주모에게 부탁을 했다.
"주모! 나 오늘밤 이 집에서 좀 자고 갈 수 없겠소?"
그러자 주모가 대답한다.
"방은 하나밖에 없어서 안 되겠고, 술청이라도 괜찮다면 자고 가시구료."
김삿갓은 좋은 방 나쁜 방을 가릴 형편이 못된다.
"술청이라도 좋으니 재워 주기만 하시오 ... 그런데 술값은 얼마죠? 우선 술값부터 치르고 봅시다."
김삿갓은 주모의 말대로 전대 속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백종원은 김삿갓의 전대 속에 돈이 두둑이 들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눈빛이 이상하게 희번덕거렸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런 눈치를 채지 못하고 백종원에게 말을 건넨다.
"노형도 집에 돌아가 보았자 어느 마누라도 환영해 줄 것 같지 않으니, 오늘밤은 차라리 여기서 나하고 같이 자는 것이 어떻겠소?"
백종원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뒤로 훌렁 자빠져 버린다.
"아닌 게 아니라, 마누라 등쌀에 나도 갈 데가 없는 몸이오."
"마누라가 둘씩이나 있으면서 갈 데가 없다니, 그야말로 졸지에 처량한 신세가 되었구료."
"그러니까 나도 여기서 자고 가야 되겠소."
"잘 생각하셨소. 서방 귀한 줄을 알게 하려면 가끔 외박도 필요한 것이라오."
김삿갓은 그런 농담까지 해가며 등잔을 끄고 누워 버렸다. 새벽 어스름한 시각에 김삿갓은 웬지 몸이 서늘해 오는 기분이 들어 눈을 떠보니, 옆에서 자고 있던 백종원이 보이지 않았다.
"응? 이 사람이 어딜 갔을까?"
이상한 예감이 들어 허리를 만져 보니, 간밤에 분명히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가 없어졌다.
(앗! 이 사람이 돈을 훔쳐 가지고 달아났단 말인가?)
그러나 김삿갓은 백종원이라는 친구가 전대를 훔쳐 갔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술까지 나눠 먹은 그 친구가 설마 돈을 훔쳐 가기야 했을라구!)
김삿갓은 그런 생각이 들어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전대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전대는 보이지 않았다. 더우기 의심스러운 것은 백종원이 새벽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아주 몹쓸 사람이구나.)
혼잣말로 투덜거리고 있노라니, 주모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묻는다.
"손님은 아까부터 무엇을 찾고 있어요? 무언가 없어진 게 있어요?"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가 간밤에 감쪽같이 없어졌군요."
그 소리에 주모는 깜짝 놀라며,
"에구머니! 전대가 없어지다뇨?"
그리고 사방을 두루 둘러보다가,
"같이 자던 백씨라는 사람은 어디 갔어요?" 하고 묻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졌군요."
"엣? 그렇다면 전대는 그 사람이 훔쳐 간 것이 분명해요. 어쩐지 인상이 좋지 않은데다, 큰마누라가 어쩌니 작은마누라가 어쩌니 하면서 씨가 먹히지 않는 허풍을 떠는 것이 수상하다 싶더니, 역시 그 놈이 도둑놈이었군요. 그런 놈을 내 집에서 재웠으니, 아이 무서워라." 하면서 주모는 몸서리조차 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러나 저러나 돈을 몽땅 도둑맞았으니 어떡하죠?" 하고 걱정의 말을 한다.
"돈 좀 없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본디 사람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일 진데, 그 친구가 그런 것을 모르고 인정머리 없이 도둑질을 했으니, 나는 잃어버린 돈이 아쉽다기보다도 인정을 배반한 그 친구의 소행이 슬프기만 할 뿐이오."
"손님은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나서도 부처님 같은 소리만 하고 계시네요. 빨리 관가에 가서 고발을 하세요. 그런 놈은 당장에 잡아다가 물고를 내야 해요."
"고발을 한다고 그 친구가 쉽게 잡히리오? 또, 잡아서 물고를 내게 한들 뭐 하겠소?"
그러자 주모가 한마디 더하는데,
"관가에 고발도 안 하겠다. 돈은 한 푼도 없겠다 ... 앞으로 어떡하실 생각이에요?"
"어떡하긴 무얼 어떡하오. 그 돈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그 친구였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가져가 버린 것이 아니겠어요?"
"이 양반 듣자 하니, 계속 부처님 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주모가 은근히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한다. 김삿갓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부처님이고 보살님이고 간에 주모에게 부탁이 하나 있소이다."
"무슨 부탁인데요? "
"내가 돈은 없어도 길을 떠나기 전에 아침을 먹어야 하겠소. 도와주는 셈치고 아침이나 한 그릇 공짜로 먹여 주시오."
"손님은 참말로 딱한 양반이시네. 내 집에서 자고 난 손님을 설마 굶겨서 보낼까 봐 걱정이세요? 곧 아침을 지어 올 테니 편히 앉아 기다리세요."
이렇게 아침을 얻어먹은 김삿갓이 다시 길을 떠나게 되자, 주모가 얼마간의 돈을 내밀며 말한다.
"이거 몇 푼 되지 않지만 가지고 떠나세요. 길을 떠나려면 돈이 전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김삿갓은 주모의 인정에 눈시울이 후끈 달아올랐다. 남의 돈을 훔쳐간 친구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인정인가? 김삿갓은 감격 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을 하였다.
"돈은 못
받겠고, 보살같은 아주머니의 인정만은 고맙게 받아 가지고 떠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