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에서는 법치주의가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핵심 가치라고 하는 12개의 덕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강, 민주, 문명, 화해,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경업(敬業), 성신, 우선(友善). 보시다시피 법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의 법치가 자유주의 체제의 법치와 같은지 다른지에 대하여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상에서는 통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중국 법치의 원조는 법가(法家)입니다. 법가는 춘추전국시대 유가와 함께 주된 사상이었으며, 마침내 진시황제가 중원을 통일하는 데에 핵심적인 통치 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법치의 과잉으로 진나라는 곧 멸망하게 되었고, 한나라에 들어서는 유가의 덕치와 법가의 법치를 융합한 체제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여 중국 전통 통치체제의 원류가 만들어집니다.
법가에는 여러 사상가가 있지만, 한비자(韓非子)가 가장 체계적이며 풍부한 사상을 남겼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남공업대 법학원 건물 앞에도 한비자의 흉상이 있었고, 하남사범대 입구 벽에도 한비자의 흉상이 부조되어 있으며 동시에 유명한 한비자의 구절도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서 저희 인하대 팀과 하남사범대 팀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위 벽면에 쓰여진 한비자의 구절은 한비자 「유도(有度)」 편에 나오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以法治国,举措而已矣。
法不阿贵,绳不挠曲。
法之所加,智者弗能辞,勇者弗敢争。
刑过不辟大臣,赏善不遗匹夫。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법을 일관되게 시행한다는 뜻일 뿐이다.
법이 귀한 이들에게 아부하지 않음은 먹줄을 그을 때 굽은 나무에 맞추어 휘어지지 않음과 같다.
법이 시행되는 곳에서는 영리한 이들의 말재주도 소용이 없으며, 힘센 이들의 다툼도 소용이 없다.
형벌은 고관대작이라고 하여 피해가지 않으며, 포상은 필부라고 하여 외면하지 않는다.
정말 현대 사회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법치의 기본 정신을 훌륭하게 갈파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실제 그러한 법치가 성취되고 있는지는 또 다른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또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중국에서 법치를 중시한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중국 정저우 시내의 상대(商代) 유적 박물원을 가 보았는데, 그 때 특별전시관이 바로 중국 고대 법률문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초반부에 중국 법가의 사상가들이 전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 법가 사상가들 가운데 제일 윗자리에 있는 인물이 자산(子産)이었습니다. 자산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 법사상사, 중국 법제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중국 입법 및 법사상의 원조와 같은 인물로 꼽힙니다. 한비자보다도 2-3백년 앞선 인물입니다.
자산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중원에 위치한 정(鄭)나라의 명재상이었습니다. 공자보다 30년 정도 연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공자가 매우 칭송한 보기 드문 위인이었습니다. 자산의 업적은 여러 방면에서 평가되고 있으나 법치의 분야에서는 형벌 조문을 청동 솥(鼎)에 새겨 공포한 것(이른바 주형서(鑄刑書))이 가장 특별한 공적으로 얘기됩니다. 이는 로마 시대 12동판법과 비견되기도 합니다. 시기적으로는 정나라의 주형서가 로마의 12동판법보다 90년 정도 앞서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대 중국이나 로마나 법은 일종의 불문 관습법이었으며, 따라서 국가의 지배계급이 법을 독점하고 자의적으로 적용 집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부정의와 불공평을 낳았으며, 평민들의 불만과 호소는 점점 비등해졌습니다. 그러한 평민들의 요구 그리고 공동체 불안의 위험을 감당할 수 없는 지배계급은 마침내 성문법을 공개적으로 공포하여 평민들에게도 일관된 법적용을 할 것을 선언하게 됩니다. 중국 정나라에서는 자산의 결단으로 형법을 청동 솥에 새겨 모든 이들에게 공포하였으며, 로마에서는 평민들의 분리 투쟁(일종의 내전)의 결과 지배계급이 모든 민형사 등 모든 법률을 12개의 구리 판에 적어 공포하였던 것입니다.
그밖에도 자산은 당시 정 나라 정치를 비판하던 향교(鄕校)의 폐쇄 요구를 거절하고 민심을 청취하는 기관으로 보존하는 등 훌륭한 통치를 하여, 공자 또한 자산을 매우 존경하고 칭송하였습니다. 공자의 대표적 찬사는 논어 공야장(公冶長) 편에 나옵니다.
"子産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이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산에게는 군자의 도가 넷 있으니, 자신의 행실에서 공손하고, 윗사람 섬김에서 삼가함이 있으며, 백성을 보살피는 데에 은혜롭고, 백성을 사역하는 데에 의로움이 있다.
자산은 정나라의 재상이었고, 정나라는 바로 여기 정저우 지역에 위치한 국가였습니다. 그리하여 정저우에서 매우 기리는 역사 인물이 되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박물관 전시를 얘기하였지만, 시내 지하철 내부에서도 자산에 대한 소개 광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지하철에도 상업 광고가 있지만, 우리처럼 그렇게 많지는 않고, 대신 이렇게 중국 전통을 강조하는 공익광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산은 참으로 춘추시대 최고의 재상이며, 중국 법가의 훌륭한 원조와 같은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자산에 대한 연구가 많이 없습니다. 법학도 가운데 자산을 아는 이가 매우 희소한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