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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서원의 바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 화엄법회는 3월 4월 9월 10월 12월 법회가 열리지 못하고 총 일곱 번만 열렸다. 2021년 신축년 법회도 아직 시작되지 못하다가 3월 1일, 2021년 첫 화엄법회가 열린다는 안내문자가 왔다.
뉴스로 보도되는 정부 목표에 의하면 올해 2월말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11월까지는 예방접종을 다 마쳐서 집단면역을 형성해 일상을 회복한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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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도 쌀쌀했다. 선원앞 화단에 동백꽃이 붉었다. 빗물에 젖는 초록잎들이 눈에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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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은 2시가 되기도 훨씬 전에 내려오셔서 법공양실부터 들르시고, 선원에 올라오셨다.
“오시는 스님들 체온을 잴 때 마스크 꼼꼼하게 쓰시도록 말씀드려요.”
하고 봉사자분들께 당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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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하러 오신 스님들이 큰스님께 삼배를 하셨다. 평소에는 큰스님 말씀대로 일배만 간단히 하시던 스님들도 오랜만이어서인지 삼배를 다 정성껏 올리셨다.
“모두 별일 없지요? 전쟁통이 되어놔서 모두 별일 없을까 싶어서, 무사하시니까 다행입니다.”
큰스님께서 합장하고 인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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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불사를 많이 하시는 진옥스님이 큰스님 기운을 받기 위해 오셨다고 했다.
“잘 될 겁니다. 진옥이 하는 일인데요, 일체중생교화 하는 일인데요.”
삼배와 함께 빠르게 대답까지도 다 마치셔서 큰스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합장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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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사(人佛寺) 지원스님이 인사하러 오시자 큰스님은 반갑게 맞으시며, KBB 유튜브 방송국에 대해 물으셨다.
지원스님은 큰스님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책을 기본교재로, 처음부터 순서대로 화엄경강설을 강의하고 계셨는데 종단차원에서 하는 방송국은 아니고, 대구에서 젊은 스님들이 모여서 유튜브 방송채널을 운영하신다고 했다.
“내가 스님 하는 거 몇 번 봤어. 꽤 괜찮던데.”
“스님께 누가 될까 싶어서….”
“아니야 자꾸 그렇게 해줘야 돼.”
하고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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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스님이 재무소임을 인수인계하시면서 큰스님께 선물로 볼편을 가져오셨다.
“화엄경 회향 때까지 소임을 다 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10년 했으니까요.”
맞춤으로 주문해서 큰스님 이름도 새겨 만드셨다는 볼펜은 나무로 깎은 볼펜인데 볼펜을 세워서 걸쳐놓을 수 있는 거치대도 있었다. 만든 분이 2년간 AS도 해준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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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받은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책 77권 사인지에 큰스님께서 ‘대원해(大願海)’라고 글을 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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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학스님이 인사오시자 큰스님께서 동화사 한문불전 대학원 졸업식을 유튜브 방송 木魚TV로 봤다고 하셨다.
“졸업생은 몇 명 안되는데 다과는 거창하대?”
“다과는 항상 그렇습니다.”
두 분의 대화에 주변 분들이 빙그레 웃으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오랫만에 공부를 하게 됐다.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코로나가 덮쳤는데 요즘은 또 미디어가 발달해서 뉴스를 시간시간 놓치지 않고 다 들을 수 있으니 우리 마음은 더 그런 문제에 쫓긴다. 마치 세계 3차 대전을 지나고 나서, 정말 어려운 사선을 넘어서 새롭게 우리가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도 한2년 동안 불교계에는 코로나가 별 일 없이 잘 넘어왔고, 이제 백신 접종을 하고 있으니까, 그 끝이 머지않아 보이는 듯하다.
여러분들도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자기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열심히 잘 찾아서 맞으시기 바란다.
스님들이 상당히 적게 올 줄 알았는데, 오늘은 비도 오고 지장재일인데도 생각보다 많이 오셨다. 또 알맞게 오신 것 같다. 이렇게 띄엄띄엄 책상 하나에 한 사람씩 차지하고 앉게 되니까 훨씬 더 마음이 놓인다. 만약에 전처럼 따닥따닥 앉았으면 상당히 염려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계속 늦추기만 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도 하던 공부를 계속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저는 오늘 이 대방광불화엄경강설 제77권 이 책을 나눠드렸는데, 81권까지 몇 권 안남은 책을 다 나눠드리지 못하고 우리 공부가 중단이 될까봐 자나깨나 늘 염려가 된다.
물론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일이라는 것은 몰라서 저 나름대로는, 책은 다 출판이 되었는데 한달에 800여권씩 사서 우편으로 보내고, 스님들에게 드리고, 곳곳에 전해 주는데 이것을 순조롭게 다 돌리지 못하고 중단이 된다면 정말 전쟁이나 터진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 일을 아주 조심스럽게 지금까지 이어 왔다. 무사히 3월달부터는 이렇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 예전처럼 오늘 받은 책 서문을 점안하도록 하겠다.
서문
선남자여, 선지식은 모든 착한 뿌리를 자라게 하나니
마치 설산에서 모든 약풀이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부처님 법의 그릇이니
마치 바다가 여러 강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공덕이 나는 곳이니
마치 바다에서 여러 가지 보배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보리심을 깨끗이 하나니
마치 맹렬한 불이 진금을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세간의 법에서 뛰어나나니
마치 수미산이 큰 바다에서 솟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세상의 법에 물들지 않나니
마치 연꽃에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모든 나쁜 것을 받지 않나니
마치 큰 바다가 송장을 머물러 두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청정한 법을 증장하게 하나니
마치 보름달의 광명이 원만한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법계를 밝게 비추나니
마치 밝은 해가 사천하를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식은 보살의 몸을 자라게 하나니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2017년 12월 15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선지식이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이고, 특히 화엄경에는 자주 나오는 말이다. 지금도 살아있는 말인데 일반불교나 선가(禪家)에서 선지식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나는 선지식이라고 하는 것을 이 시대는 사람을 생각하면 안되는 낱말이라고 자주 말한다. 지금부터 한 60여년 전에 내가 강원을 졸업하고 바로 선방을 한 12년 다녔는데 정말 이 선지식 저 선지식 많이 찾아다녔다.
그때만 하더라도 세상이 지금과 달라서 공부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살았지만, 그래도 사람을 선지식으로 의지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선지식 하면 무조건 ‘화엄경이 선지식이다’ 늘 그런 말씀을 드린다.
화엄경이 선지식이다. 화엄경에 의지해서 우리가 살아가면 ‘선지식은 모든 착한 뿌리를 자라게 하나니 또 선지식은 법의 그릇이니 여러 강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내용 그대로 화엄경에 의지해서 선지식이라고 생각하면 딱 적합하게 맞아떨어진다.
‘선지식은 보리심을 깨끗이 하나니 마치 맹렬한 불이 진금을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강렬한 표현인가?
맹렬한 불이 진금을 단련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화엄경을 선지식이라고 생각하고 자나깨나 ‘화엄경, 화엄경’ 해야한다. 그동안 우리가 받았던 화엄경이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화엄경을 화장실에도 두고, 식당에도 두고, 머리맡에도 두고, 책상 앞에는 말할 것도 없고, 곳곳에다 펼쳐놓고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들어서 읽고,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새기면 그보다 더 좋은 선지식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말세일수록 선지식을 절대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 사람에게 의지할 일이 아니다.
요즘 불교TV 등등 매체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데서 보면 은근히 자기가 선지식인냥으로 암암리에 암시하는 법문을 하는 스님들이 꽤 있다. 꼭 투명인간 같이 속이 아주 환히 들여다 보인다.
내가 절에 오래 살고, 법문을 하도 많이 들으니까, 말하는 사람 속이 환하게 들여다 보인다. 법문을 들으면 저 사람 속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심리에서 저런 표현을 한다는 것이 그냥 보인다. 그래서 속이 환히 보인다고 ‘저 투명인간 투명인간’그런다.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런데 거기에 누가 넘어가겠는가?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밝은데, 잘 안넘어간다. 그 사람 밑에 있는 몇 몇 신도들만 넘어갈 뿐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은 상대를 한 번 두 번 속여 보면 그것이 쓰윽 딸려오는 재미가 있다. 그러니까 그것이 업이 되어서 계속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다.
절대 우리 화엄행자들은, 특히 화엄학인들은 화엄경을 공부해서 눈이 밝을 대로 밝았다면, 이 ‘선지식’에 대해서 잘 이해하셔야 된다. 그리고 화엄경으로 선지식으로 삼아야 된다. 화엄경으로 선지식을 삼으면 우리 자신을 진금을 단련하듯이 단련할 수가 있다. 바다에서 송장을 물리쳐내듯이 우리들 정신 속에 불필요한 소견들을 전부 제대로 걸러 낼 수 있는 것이 화엄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니 이 화엄을 화장실에 놔둬도 괜찮다.
화엄경은 화장실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
‘경전을 어떻게 화장실에다 두느냐?’ 그런 생각이 든다면 참 모르는 소견이다. 더러운 데 두어야 더러운 곳이 정화가 된다. 그렇게 해석할 줄 알아야 된다.
화엄경을 차에도 두고, 어느 곳이나 곳곳에 두고 한 구절이라도 읽고 생각하는 기회를 자꾸 만들어서 자신을 정화하고 단련해야 한다. 여기에 선지식에 대한 표현이 참 잘 되어 있지 않은가. 그것은 내가 쓴 것도 아니고 화엄경 책 안에 놓여있는 내용을 고대로 내가 서문에 갖다놔둔 것이다.
이런 좋은 가르침을 이 시대에 쉽게 이렇게, 한글만 알면 누구라도 접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四十一
十定品 第二十七之二
四.十種大三昧
이 책 화엄경 제3권(민족사 刊)을 2020년 8월 3일날 시작해놓고는 오늘 2021년 하고도 3월달인데도 계속 3권의 앞부분을 공부한다. 그동안 도대체 몇 번을 빠졌는가?
이번에 경험한 것이 아무탈 없이 사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다. 다행한지 불행한지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온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지고 고마운 사실인가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지나간 과거는 그렇게 살았는데, 그것을 다시 새롭게 기억해서 다행한 마음을 가지려고 해봐도, 이미 지나가 버렸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늘 정말 다행하게 생각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저 나름대로 수없이 해봤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24쪽(화엄경 제3권 민족사刊) 위에서 네 번째 줄 ‘지광명장(智光明藏) 대삼매(大三昧)’ ‘지혜 광명이 꽉 차 있다’라고 하는 대목을 공부할 차례다.
십정품(十定品)이라고 하는 것이 열 가지 삼매를 이야기 하는 내용인데 그 중에 한 가지인 지혜 광명이 꽉 차 있는 지혜삼매다.
여기 보면 삼매가 목석이 아니다. 졸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멍하게 앉아서 망상이나 부리다가 시간 되면 죽비치고 일어나는 것이 삼매가 아니다.
삼매는 온 삼라만상을 환히 꿰뚫어 비추고 있는 지혜 광명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삼매니 선정이니 이런 말을 많이 해오는데, 화엄경에서 그 문제를 한껏 드러낼 수 있는 데까지 드러내 본 것이 십정품이다. 십정품에서 말하는 삼매라고 하는 것이 너무 차원이 높기 때문에 우리가 다 낱낱이 소상하게 이해는 못하지만, 이해하는 부분만 가지고 따져보더라도, 깨달음의 정신이 이르러 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서의 선정, 삼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십정품은 ‘진정으로 삼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를 갖는다’ 하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6. 智光明藏 大三昧
(1) 三昧의 作用
가. 了知一切法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智光明藏三昧오 佛子야 彼菩薩摩訶薩이 住此三昧에 能知未來一切世界와 一切劫中所有諸佛의 若已說과 若未說과 若已授記와 若未授記한 種種名號의 各各不同하나니 所謂無數名과 無量名과 無邊名과 無等名과 不可數名과 不可稱名과 不可思名과 不可量名과 不可說名과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지혜 광명 창고[智光明藏]인 삼매라 하는가. 불자여, 저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물면 오는 세상의 모든 세계 모든 겁에 나시는 모든 부처님을 알며, 이미 말하였거나 말하지 않았거나, 수기를 받았거나 수기를 받지 않았거나 가지가지 이름이 각각 같지 아니함을 아느니라.
이른바 수없는 이름과, 한량없는 이름과, 그지없는 이름과, 같을 이 없는 이름과, 셀 수 없는 이름과, 일컬을 수 없는 이름과, 생각할 수 없는 이름과, 헤아릴 수 없는 이름과, 말할 수 없는 이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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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명장 대삼매(智光明藏 大三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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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三昧)의 작용(作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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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 일체법을 다 요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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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운하위보살마하살(云何爲菩薩摩訶薩)의 :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지광명장삼매(智光明藏三昧)오 : 지광명장삼매인가.
불자(佛子)야 : 불자야
피보살마하살(彼菩薩摩訶薩)이 : 저 보살마하살이
주차삼매(住此三昧)에 : 이 삼매에 머무름에
능지미래일체세계(能知未來一切世界)와 : 능히 이러이러한 사실을 아는데 미래일체세계와
일체겁중소유제불(一切劫中所有諸佛)의 : 일체겁중 소유제불의
약이설(若已說)과 : 이미 설하셨거나
약미설(若未說)과 : 아직은 설하지 못했거나
약이수기(若已授記)와 : 이미 수기를 준 사실
약미수기(若未授記)한 : 미처 수기를 주지 못한 사실
종종명호(種種名號)의 : 그런 가지가지 명호의
각각부동(各各不同)하나니 : 각각 같지 아니한 사실들, 그런 것을 능히 환히 안다.
소위무수명(所謂無數名)과 : 소위 무수한 이름과
무량명(無量名)과 : 한량없는 이름과
무변명(無邊名)과 : 가없는 이름과
무등명(無等名)과 : 같을 이 없는 이름과
불가수명(不可數名)과 : 헤아릴 수 없는 이름과
불가칭명(不可稱名)과 : 일컬을 수 없는 이름과
불가사명(不可思名)과 : 생각할 수 없는 이름과
불가량명(不可量名)과 : 헤아릴 수 없는 이름과
불가설명(不可說名)이니라 : 가히 말할 수 없는 이름 등이다. 이러한 것들을 환히 꿰뚫어서 알고 있는 것이 진정한 삼매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짜 삼매는 이런 것이다, 라는 의미다.
그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는 이런 이들이 요지제불사(了知諸佛事)라.
나. 了知諸佛事
當出現於世와 當利益衆生과 當作法王과 當興佛事와 當說福利와 當讚善義와 當說白分義와 當淨治諸惡과 當安住功德과 當開示第一義諦와 當入灌頂位와 當成一切智와
“이런 이들이 마땅히 세상에 출현할 것이며, 중생을 이익되게 할 것이며, 법왕이 될 것이며, 부처님 일을 일으킬 것이며, 복과 이익을 말할 것이며, 좋은 이치를 찬탄할 것이며, 깨끗한 뜻[白分義]을 말할 것이며, 모든 나쁜 짓을 다스릴 것이며, 공덕에 편안히 머물 것이며, 으뜸가는 진리[第一義諦]를 열어 보일 것이며, 정수리에 물 붓는 지위에 들어갈 것이며, 일체 지혜를 이룰 것이니라.”
*
요지제불사(了知諸佛事)
*
모든 불사(佛事)를 다 안다
*
당출현어세(當出現於世)와 : 앞으로 세상에 출현하는 일과
당이익중생(當利益衆生)과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과
당작법왕(當作法王)과 : 법왕을 짓는 일과
당흥불사(當興佛事)와 : 앞으로 불사를 짓는 것과
당설복리(當說福利)와 : 복리를 설하는 것과
당찬선의(當讚善義)와 : 선의를 찬탄하는 것, 좋은 의미 그리고
당설백분의(當說白分義)와 : 백분의, 아주 깨끗한 뜻, 깨달은 이나 생각해낼 수 있는 이치다. 그것을 설하는 것과
당정치제악(當淨治諸惡)과 : 모든 악한 것을 깨끗하게 다스려서 없애버리는 것과
당안주공덕(當安住功德)과 : 마땅히 공덕에 안주하는 것과
당개시제일의제(當開示第一義諦)와 : 제일의제는 최고의 진리다. 그것을 열어 보이는 것과
당입관정위(當入灌頂位)와 : 관정위에 마땅히 들어가는 것과
당성일체지(當成一切智)와 : 일체 지혜를 이루는 것이니라.
다. 了知佛圓滿
彼諸如來의 修圓滿行과 發圓滿願과 入圓滿智와 有圓滿衆과 備圓滿莊嚴과 集圓滿功德과 悟圓滿法과 得圓滿果와 具圓滿相과 成圓滿覺과 彼諸如來의 名姓種族과 方便善巧와 神通變化와 成熟衆生과 入般涅槃하는 如是一切를 皆悉了知하니라
“저 모든 여래가 원만한 행을 닦고, 원만한 서원을 내고, 원만한 지혜에 들어가고, 원만한 대중을 가지고, 원만한 장엄을 갖추고, 원만한 공덕을 모으고, 원만한 법을 깨닫고, 원만한 결과를 얻고, 원만한 몸매를 구족하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룰 것이며, 저 모든 여래의 이름과 성씨와 문벌과 방편이 교묘함과 신통변화와 중생을 성숙케 하고 열반에 드시는 이와 같은 일체를 다 분명하게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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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불원만(了知佛圓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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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불사를 요지한다. 부처님의 원만성, 불원만(佛圓滿)을 요지한다. 부처님은 본래 원만성을 갖추고 있고 우리 마음도 원만성을 본래로 지니고 있다. 본성이 원만이다. 우리의 본성이 원만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만 이리저리 구름이 끼고 온갖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 번뇌로 쪼그라 들어서 원만하지 못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본성은 본래 원만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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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제여래(彼諸如來)의 : 저 모든 여래의
수원만행(修圓滿行)과 : 원만행을 닦음과
발원만원(發圓滿願)과 : 원만한 원을 발함과
입원만지(入圓滿智)와 : 원만한 지혜에 들어감과
유원만중(有圓滿衆)과 : 원만한 대중을 소유함과
비원만장엄(備圓滿莊嚴)과 : 원만장엄을 갖춤과
집원만공덕(集圓滿功德)과 : 원만한 공덕을 모음과
오원만법(悟圓滿法)과 : 원만한 법을 깨달음과
득원만과(得圓滿果)와 : 원만한 과를 얻음과
구원만상(具圓滿相)과 : 원만한 상을 갖춤과
성원만각(成圓滿覺)과 : 원만한 깨달음을 이룸과, 원만각(圓滿覺)은 정각(正覺)과 같은 표현이다. 원각(圓覺)이다. 원만각이나 원각이나 또 정각이나 그러한 것을 이룸과
피제여래(彼諸如來)의 : 저 모든 여래의
명성종족(名姓種族)과 : 이름과 성씨와 종족과
방편선교(方便善巧)와 : 방편선교와
신통변화(神通變化)와 : 신통변화와
성숙중생(成熟衆生)과 : 중생을 성숙함과
입반열반(入般涅槃)하는 : 반열반에 들어가는
여시일체(如是一切)를 : 이와 같은 일체를, 이러한 사실들을
개실요지(皆悉了知)하니라 : 다 환하게 꿰뚫어 알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의 삼매이고 진정한 선정이다.
라. 了知劫分限
此菩薩이 於一念中에 能入一劫百劫千劫百千劫百千億那由他劫하며 入閻浮提微塵數劫하며 入四天下微塵數劫하며 入小千世界微塵數劫하며 入中千世界微塵數劫하며 入大千世界微塵數劫하며 入百佛刹微塵數劫하며 入百千佛刹微塵數劫하며 入百千億那由他佛刹微塵數劫하며 入無數佛刹微塵數劫하며 入無量佛刹微塵數劫하며 入無邊佛刹微塵數劫하며 入無等佛刹微塵數劫하며 入不可數佛刹微塵數劫하며 入不可稱佛刹微塵數劫하며 入不可思佛刹微塵數劫하며 入不可量佛刹微塵數劫하며 入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며 入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야 如是未來一切世界所有劫數를 能以智慧로 皆悉了知하니라
“이 보살이 잠깐 동안에 능히 한 겁과 백겁과 천겁과 백천겁과 백천억 나유타 겁에 들어가며, 염부제(閻浮提)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사천하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소천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중천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대천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백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백천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백천억 나유타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수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느니라.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그지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같을 이 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셀 수 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일컬을 수 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생각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 작은 먼지 수의 겁에 들어가나니, 이와 같이 오는 세계에 있는 모든 겁을 능히 지혜로써 모두 다 아느니라.”
*
요지겁분한(了知劫分限)
*
겁의 한계를 안다, 시간의 한계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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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어일념중(於一念中)에 : 일념 가운데
능입일겁백겁천겁백천겁백천억나유타겁(能入一劫百劫千劫百千劫百千億那由他劫)하며 : 능히 일겁과 백겁과 천겁과 백천겁과 백천억 나유타겁에 능히 들어간다.
들어간다고 하는 사실은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이 법당에 일단 문밖과 문 안이 있다. 밖에 있다가 문 안에 들어오면 당당히 한 식구다. 어디가서 앉아도 되고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 이미 그런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들어온 것이다.
이 들 입(入)자가 화엄경에는 자주 나오는데, 입(入)자는 나와 이 법당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여기 들어와 있는 일이 되고, 들어올 자격이 있고 그래서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다. 입(入)자는 그런 뜻이다. 일겁 백겁 천겁 만겁 나유타 겁에 들어가고
입염부제미진수겁(入閻浮提微塵數劫)하며 : 남염부제를 갈아서 미세 먼지를 만들었을 때 그 미세먼지의 숫자와 같이 많은 겁 그런 시간성에 들어가고
입사천하미진수겁(入四天下微塵數劫)하며 : 사천하 미진수 겁에 들어가고
입소천세계미진수겁(入小千世界微塵數劫)하며 : 소천세계 미진수 겁에 들어가고
입중천세계미진수겁(入中千世界微塵數劫)하며 : 중천세계 미진수 겁에 들어가고
입대천세계미진수겁(入大千世界微塵數劫)하며 : 대천세계 미진수 겁에 들어가고
입백불찰미진수겁(入百佛刹微塵數劫)하며 : 백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고
입백천불찰미진수겁(入百千佛刹微塵數劫)하며 : 백천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고
입백천억나유타불찰미진수겁(入百千億那由他佛刹微塵數劫)하며 : 백천억 나유타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고
입무수불찰미진수겁(入無數佛刹微塵數劫)하며 :무수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무량불찰미진수겁(入無量佛刹微塵數劫)하며 : 무량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무변불찰미진수겁(入無邊佛刹微塵數劫)하며 : 무변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무등불찰미진수겁(入無等佛刹微塵數劫)하며 : 무등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불가수불찰미진수겁(入不可數佛刹微塵數劫)하며 :불가수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불가칭불찰미진수겁(入不可稱佛刹微塵數劫)하며: 불가칭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불가사불찰미진수겁(入不可思佛刹微塵數劫)하며 :불가사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불가량불찰미진수겁(入不可量佛刹微塵數劫)하며 : 불가량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불가설불찰미진수겁(入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며 : 불가설 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며
입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겁(入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야 : 불가설 불가설불찰 미진수 겁에 들어가서
여시미래일체세계소유겁수(如是未來一切世界所有劫數)를 : 이와 같은 미래 일체 세계 소유 겁수를
능이지혜(能以智慧)로 : 능히 지혜로써
개실요지(皆悉了知)하니라 : 다 안다.
삼매의 능력이 이와 같이 되는 것이다. 목석처럼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정도까지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손치더라도 부처님이 무엇을 설했는지 불교 교리는 알고 앉아 있어야 된다. 무턱대고 처음부터 중이 되면 바로 선방에 간다. 가서는 그만 끝까지 앉아 있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대로 이렇게까지는 부처님 삼매의 경지를 모른다고 해도, 누가 불교에 대해서 물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
십정품의 삼매는 부처님의 경지니까 화엄경 말고는 부처님 삼매의 경지를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설명한 데는 없다.
‘아 부처님 삼매 대단할텐데 그 어느 정도인고?’ 바로 이 화엄경이 정답이다.
그런데 선방 스님들이 이 정도는 몰라도 정말 불교의 기본 교리는 알고 있어야지, 그렇지 못하니 참 안타까운 점이 많다. 젊고 건강하고 머리 총명하고 한창 열정이 넘치고 산이라도 옮기려면 옮길 수 있는 힘과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다 사장시켜 버린다. 그러면 그런 시간들이 아무 탈없이 넘어가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그것이 업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넘어가는 세월이 업이 되어서 평생을 가고, 평생 뿐만 아니라 다음 생에까지 가는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오늘도 나는 여기 공부한다고 오전부터 미리 분위기 조성을 딱 해서 말도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제하고 선방에서 나와서 나를 방문하여 말을 거는 수좌가 있었다. 그래도 이야기가 되는 사람이라서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요즘 스님들 중에, 우리 한국불교 선종사찰에서 선사스님에게 출가를 해서 대승경전을 가르치는 강원생활을 마쳤는데도 어떻게 됐는지 저 남방불교, 소위 말하는 소승 불교에 가서 거기에 팍 떨어져 사는 사람이 되어 돌아와서는 입에 침을 튀기면서 ‘초기불교 초기불교 그것이 근본불교다. 그것이 정상적인 불교다’ 라고 막 선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 안타깝다. 그것에 대해서 내가 생각했던 바를 그 수좌에게 이야기 했다.
왜 그렇게까지 되느냐? 순전히 업이다. 습관 때문이고 업 때문이다. 업을 지으면 아무리 좋은 불교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은 업대로 간다. 그래서 그것을 그렇게 선전한다. 업을 바꾸기 전에 그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업을 잘 지어야 된다. 인연을 잘 지어야 된다. 우리가 불교 안에 들어와서 불교에 몸담고 사는 데도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많다. 오랫동안 업을 지어놓고, 인연을 지어놓으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누구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런 점이 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한참을 했다.
(2) 三昧의 利益
가. 入十種持門
以了知故로 其心이 復入十種持門하나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入佛持故로 得不可說佛刹微塵數諸佛護念하며 入法持故로 得十種陀羅尼光明無盡辯才하며 入行持故로 出生圓滿殊勝諸願하며 入力持故로 無能暎蔽하고 無能摧伏하며 入智持故로 所行佛法이 無有障礙하며 入大悲持故로 轉於不退淸淨法輪하며 入差別善巧句持故로 轉一切文字輪하야 淨一切法門地하며 入師子受生法持故로 開法關鑰하야 出欲淤泥하며 入智力持故로 修菩薩行하야 常不休息하며 入善友力持故로 令無邊衆生으로 普得淸淨하며 入無住力持故로 入不可說不可說廣大劫하며 入法力持故로 以無礙方便智로 知一切法自性淸淨이니라
“이렇게 분명하게 아는 연고로 그 마음이 다시 열 가지의 지니는 문에 들어가느니라.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부처님을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말할 수 없는 세계 작은 먼지 수같이 많은 부처님의 호념(護念)하심을 얻고, 법을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열 가지 다라니 광명의 다하지 않는 변재를 얻느니라. 행을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원만하고 수승한 서원을 내고, 힘을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가려 버릴 이가 없으며 꺾어 굴복할 이가 없고, 지혜를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불법(佛法)을 행하는데 장애가 없고, 큰 자비를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청정한 법을 굴리느니라.
차별하고 교묘한 글귀를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모든 문자의 바퀴를 굴리어 모든 법문을 깨끗하게 하고, 사자가 태어나는 법을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법의 자물쇠를 열어 탐욕의 진창에서 벗어 나오고, 지혜의 힘을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보살의 행을 닦아 항상 쉬지 아니하느니라.
선지식의 힘을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함을 얻게 하고, 머무름이 없는 힘을 지니는 데 들어갔으므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광대한 겁에 들어갔으므로 걸림 없는 방편과 지혜로 온갖 법의 성품이 청정함을 아느니라.”
*
삼매(三昧)의 이익(利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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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십종지문(入十種持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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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지문에 들어간다. 지문(持門) 가질 지(持)자 문 문(門)자인데 지닌다 하는 뜻이다. 지닌 문에 들어간다. 앞에 들어갈 입(入)자가 있기 때문에 더욱더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다,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持)자만 해도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니까, 완전히 철저히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이 교실에는 들어와서 그냥 이렇게 청강이나 하고 구경이나 하고 ‘누가 왔는가’‘몇이 왔는가’ 이것만 객관적으로 살피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을 전부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사람이 또 있다. 그것이 입지문(入持門)이다. 가질 지(持)자 문 문(門)자 들 입(入)자 지문에 들어가다. 그런 의미로 알고
이요지고(以了知故)로 : 앞에서 이러이러한 무수한 시간성을 다 아는, 이러한 것 때문에 그렇게 아는 것으로써
기심(其心)이 : 그 마음이
부입십종지문(復入十種持門)하나니 : 다시 십종지문에 들어가나니
하자(何者)가 : 하자가
위십(爲十)고 : 위십고
소위입불지고(所謂入佛持故)로 : 소위 불지(佛持) 부처님을 지니는 데 들어간다. 해설은 그렇게 밖에 안된다. 부처님을 지니는 데 들어가는 고로
득불가설불찰미진수제불호념(得不可說佛刹微塵數諸佛護念)하며 : 불가설 미진수 부처님, 모든 부처님이 호념함을 얻는다. 철저히 부처님 세계에 들어갔으니까 부처님이 호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 지켜주고 보호하고 감싸주고 끌고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정도의 관계가 이루어졌다, 이런 뜻이다. 호념함을 얻었다.
입법지고(入法持故)로 : 법지(法持) 법을 지니는 데 들어갔기 때문에
득십종다라니광명무진변재(得十種陀羅尼光明無盡辯才)하며 : 십종다라니 광명 무진변재를 얻으며
입행지고(入行持故)로 : 행지(行持)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지문에 들어가는 까닭에
출생원만수승제원(出生圓滿殊勝諸願)하며 : 원만하고 수승한 모든 원을 출생하며
입력지고(入力持故)로 : 힘을 지님에 들어가는 까닭에
무능영패(無能暎蔽)하고 : 도저히 그 사람을 가릴 수가 없고, 어떻게든 그 사람을 가릴 수가 없다.
무능최복(無能摧伏)하며 : 도저히 그사람을 어떻게 꺾어서 항복 받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입지지고(入智持故)로 : 지혜의 지님에 들어가는 까닭에
소행불법(所行佛法)이 : 행한 바 불법이
무유장애(無有障礙)하며 : 장애가 없으며
입대비지고(入大悲持故)로 : 대비를 지니는 데 들어가는 까닭으로
전어불퇴청정법륜(轉於不退淸淨法輪)하며 : 불퇴전 청정 법문을 굴린다. 대비지(大悲持)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불법을 제대로 알아서 ‘이것 좀 가르쳐 주고 싶다’ 그런 마음이 나야 된다. 예를 들어서 신도들을 절에서 거느리고 있다, 신도들이 절에 찾아온다 하면 “보살님” 아니면 “불자님, 이 불법에 이러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화엄경에 이러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거 한 구절 좀 듣고 가세요.” 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야 된다.
아까 법회 전에 이야기 나눴지만, 여기 공부하러 오는 지원스님이 어느 유튜브 방송국에서 화엄경강의를 해서 올리고, 또 여기 공부하러 나오는데 가끔 연락이 있는 보견스님이라고 그 스님은 화엄경을 읽어서 염화실 까페에다 또 다 올려놓았다. 발음이 조금 분명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일들이 다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올리는 것이다. 또 여기 보원이가 화엄경을 한구절씩 한구절씩 아침에 글로도 써서 올리고 소리를 내서 기껏 한 1분 30초나 2분 정도밖에 안되게 해서 올린다. 그렇게 짧게 하는 것도 또 좋다. 그 정도는 누구든지 듣는다. 자꾸 그런 것을 들려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된다.
자신은 당장에 그 내용을 실천에 못 옮긴다 하더라도, 일단 부처님 말씀은 좋으니까, 화엄경 말씀이 워낙 좋으니까, ‘이건 일단 좋지 않으냐’ ‘이거 좀 나눠 가집시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것이 대비지(大悲持)다. 대비지에 들어가는 까닭에 전(轉) 불퇴청정법륜(不退淸淨法輪), 불퇴청정법륜을 굴린다.
말이 나온 김에 강의 중에 순서가 조금 그렇기는 한데 요즘은 유튜브 방송 시대다. 여러 스님들이 잘 아실 것이다.
절마다 다 유튜브 방송을 하고 조금 숨이라도 쉬고 얼굴이라도 내고 산다는 사람들, 연예인이니 정치인이니 체육인이니 스님들도 할 것 없이 전부 유튜브 방송을 다 하고 있다.
나도 작년 9월달부터 유튜브 방송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6개월째 하고 있는데 거기서 화엄경도 올렸고, 유마경도 세 권 다 올렸다. 화엄경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지만 임제록도 일부 올렸다.
오늘 이시간도 유튜브 실시간 방송을 하는 시간이다. 월화수목 오후 2시에 유튜브 방송을 실시간으로 한다. 그동안 법문한 것들이 다 저장되어 있고, 언제든지 들어가서 들을 수가 있다. 여기 오는 스님 중에도 그 시간에 들어와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다. 아까 새로 뽑힌 재무스님이 아주 열심히 들어오고 등등 많은 스님들이 동참해서 들어오는데 거기서 스님들 이름을 보면 너무 반갑다.
여기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또 유튜브 방송에 들어와서 실시간 채팅으로 인사도 남기고 문자도 남기고 서로 의견도 교환하고 ‘내가 이렇게 동참하고 있노라’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나에게는 큰 공양이다. 눈물겨울 정도로 고맙게 공양을 받는 것이다.
스님들도 유튜브에서 <염화실 TV>에 아직 가입을 안한 분들은 들어가서 전부 구독자로 등록하고, 내일 오후 2시에 실시간 방송에 모두 들어와서 ‘우리 문수경전 연구회 누구입니다’‘스님 나도 들어왔습니다. 좀 알아 주십시오’ 하고 문자를 써서 남기시기 바란다.
내가 강의할 동안에는 강의하랴 이름보랴 그렇게 하기가 불편해서 채팅창에 쓴 글들을 다 보지 못한다. 그러나 거기에 남겨놓은 글들을, 내가 보려면 나중에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볼 수가 있다. 스님들이 채팅창에 문자를 남겨놓으면 그것을 그대로 다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너무 반가와서 그것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확인도 하니까 많이들 들어오시기 바란다.
지금은 시대가 이 코로나 덕택에 유튜브 방송이 기하급수적으로 세상에 늘어났다. 그래서 나같이 늙은 사람도 하는 것이다. 신기한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스님들은 그것을 빨리 아셔서 거기에 적응해야 된다.
저기 우리 카메라 기사, BBS 방송국 PD도 나한테 와서 내가 실시간 방송을 하는 것을 봤다.
“스님 이거 방송국에서 하는 건데 스님이 막 하시네요”
하면서 놀래고 갔다. 별거 아니다. 그 기술을 전부 구글이라는 회사에서 다 만들어서 무상으로, 그 기술 값이 수천억 값인데 무상으로 다 보시를 했다. 10원도 안 받고 무상으로 이용하게 하고 오히려 돈을 준다. 광고가 수입이 들어오니까 돈을 주는 그런 시대다.
여하한 일이 있어도 그거는 스님들이 해야 된다.
절을 가지고 있는 스님들은 절에서 소식 전할 것도 많고, 요즘 기도하는 데도 다 카메라를 걸어놓고 실시간 방송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 그러면 거기에 신도들이 몇 십명씩 들어와서 동참을 한다.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모른다.
스님들은 만사 제쳐놓고 그것부터 해야 된다. 스님들이 전부 유튜브 방송 하나씩은 해야 된다. 첫째 염화실TV 방송에 먼저 들어와서 참관하여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스님도 다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여기 전(轉) 불퇴청정법륜(不退淸淨法輪)이라. 한마디라도 들은 것을 일러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대비심이다.
그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을 보면 ‘이 말도 모르고 사람이 살다가 죽는가?’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는 것이다.
대비가 뭔가, 안타까운 마음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런 방송국을 차려놓고 부처님 법을 맘껏 전하시기 바란다.
카메라 하나 사는데 요즘 이삼만원짜리도 있고, 오만원짜리면 실컷 쓰고도 남는다. 그런 카메라 한 대 딱 걸면 끝이다. 그렇게 쉬운 일이다.
만든 사람도 있는데 활용도 못하겠는가?
중 승(僧)자는 사람 인(人)변에 일찍 증(曾)자다.
보통 세상 사람보다 한걸음 앞에 나가는 사람이 중이다. 스님들은 한걸음 앞서 가는 사람이다.
입차별선교구지고(入差別善巧句持故)로 : 차별하고 그리고 아주 훌륭한 구절의 지님에 들어가는 까닭에, 지(持)자와 입(入)자 이것이 이중으로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앞에서 설명했다.
여기에 교실에 들어왔다. 그러면 이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을 내가 몸을 다 던져서 전부 나의 살림살이로 하고 있는 사실, 이것이 지(持)자와 입(入)자의 의미다.
전일체문자륜(轉一切文字輪)하야 : 일체 문자륜을 굴려서
정일체법문지(淨一切法門地)하며 : 일체 법문의 지위를 청정하게 하며
입사자수생법지고(入獅子受生法持故)로 : 사자가 생을 받는 법의 지님에 들어가는 까닭에
개법관약(開法關鑰)하야 : 법의 자물쇠를 열어제쳐서
출욕어니(出欲淤泥)하며 : 욕망과 탐욕의 진흙탕에서 벗어나며, 탐욕의 진창에서 벗어난다. 앞에 뭐라고 했는가? 법의 자물쇠를 열어제쳐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탐욕의 진창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입지력지고(入智力持故)로 : 지혜의 힘을 지님에 들어가는 까닭에
수보살행(修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닦아서
상불휴식(常不休息)하며 : 항상 휴식하지 아니한다. 보살행을 닦아서 항상 휴식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될 일이다.
입선우력지고(入善友力持故)로 : 선우의 힘을 지니는 데 들어가는 까닭에
영무변중생(令無邊衆生)으로 : 무변중생으로 하여금
보득청정(普得淸淨)하며 : 널리 청정함을 얻게 하며
입무주력지고(入無住力持故)로 : 머무름이 없는 힘을 지니는 데 들어가는 까닭에
입불가설불가설광대겁(入不可說不可說廣大劫)하며 : 불가설 불가설 광대 겁에 들어가며
입법력지고(入法力持故)로: 법력을 지니는 데 들어가는 까닭으로
이무애방편지(以無礙方便智)로 : 무애방편지로써
지일체법자성청정(知一切法自性淸淨)이니라 : 일체법 자성 청정을 아느니라.
나. 善巧了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住此三昧已에 善巧住不可說不可說劫하며 善巧住不可說不可說刹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種種衆生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衆生異相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同異業報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精進諸根과 習氣相續差別諸行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無量染淨種種思惟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法種種義와 無量文字演說言辭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種種佛出現에 種族時節과 現相說法과 施爲佛事와 入般涅槃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無邊智慧門하며 善巧知不可說不可說一切神通無量變現하나니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물고는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에 잘[善巧] 머물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에 잘 머물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갖가지 중생을 잘 알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중생의 다른 모습을 잘 아느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같고 다른 업보를 잘 알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정진하는 근기와 버릇이 계속됨과 차별한 여러 행을 잘 알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무량한 물든 생각과 깨끗한 생각을 잘 알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과 갖가지 뜻과 한량없는 문자와 연설하는 말을 잘 아느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가지가지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일과, 문벌[種族]과 시절과 형상을 나타내어 법을 말함과, 불사를 지음과 열반에 드심을 잘 알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그지없는 지혜의 문을 잘 알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일체 신통과 한량없는 변화를 잘 아느니라.”
*
선교요지(善巧了知)
*
잘 요지한다. 선교는 그렇게만 이해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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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주차삼매이(住此三昧已)에 : 이 삼매에 머무름에
선교주불가설불가설겁(善巧住不可說不可說劫)하며 : 선교주, 잘 머무른다. 어디에 잘 머무는가? 불가설 불가설 겁에 잘 머무르며
선교주불가설불가설찰(善巧住不可說不可說刹)하며 : 불가설 불가설 세계에 잘 머무르며
선교지불가설불가설종종중생(善巧知不可說不可說種種衆生)하며 : 불가설 불가설 종종 중생을 잘 알며
선교지불가설불가설중생이상(善巧知不可說不可說衆生異相)하며 : 불가설 불가설 중생의 다른 모습들을 잘 알며
선교지불설불가설동이업보(善巧知不可說不可說同異業報)하며 : 불가설 불가설 같고 다른 업보를 잘 알며
선교지불가설불가설정진제근(善巧知不可說不可說精進諸根)과
: 불가설 불가설 정진제근과
습기상속차별제행(習氣相續差別諸行)하며 : 습기상속 차별 제행을 잘 알며
선교지불가설불가설무량염정종종사유(善巧知不可說不可說無量染淨種種思惟)하며 : 불가설 불가설 무량염정 종종사유 그것을 또 잘 알며
선교지불가설불가설법종종의(善巧知不可說不可說法種種義)와 : 불가설 불가설 법의 가지가지 의미 그것과
무량문자연설언사(無量文字演說言辭)하며 : 무량문자와 연설언사를 잘 알며
선교지불가설불가설종종불출현(善巧知不可說不可說種種佛出現)에 : 불가설 불가설 종종불 출현에
종족시절(種族時節)과 : 종족과 시절과, 어떤 석가족에서 태어났는지 무슨 바라문족에서 태어났는지 그런 종족과 시절과
현상설법(現相說法)과 : 현상과 모습을 나타냄과 설법과
시위불사(施爲佛事)와 : 시위불사와 그리고
입반열반(入般涅槃)하며 : 반열반에 들어가는, 이러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사실들을 잘 알며
선교지불가설불가설무변지혜문(善巧知不可說不可說無邊智慧門)하며 : 불가설 불가설 무변지혜의 문을 잘 알며
선교지불가설불가설일체신통무량변현(善巧知不可說不可說一切神通無量變現)하나니 : 불가설 불가설 일체 신통무량 변화로 나타내는 것을 잘 아느니라.
다. 日出의 譬喩
佛子야 譬如日出에 世間所有村營城邑과 宮殿屋宅과 山澤鳥獸와 樹林華果의 如是一切種種諸物을 有目之人이 悉得明見하나니 佛子야 日光이 平等하야 無有分別호대 而能令目으로 見種種相인달하야 此大三昧도 亦復如是하야 體性이 平等하야 無有分別호대 能令菩薩로 知不可說不可說百千億那由他差別之相이니라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해가 뜨면 세간에 있는 마을과 도시와 궁전과 가옥과 산과 못과 새와 짐승과 나무와 숲과 꽃과 과실 등의 가지가지 물건을 눈이 있는 사람은 모두 보는 것과 같으니라.
불자여, 햇빛은 평등하여 분별이 없지마는 능히 눈으로 하여금 가지가지 모양을 보게 하듯이, 이 큰 삼매도 또한 다시 그와 같아서 체성이 평등하여 분별이 없지마는 능히 보살들로 하여금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차별한 형상을 알게 하느니라.”
*
일출(日出)의 비유(譬喩)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일출(譬如日出)에 : 비유컨대 태양이 솟아남에
세간소유촌영성읍(世間所有村營城邑)과 : 세간에 있는 촌영, 성읍과
궁전옥택(宮殿屋宅)과 : 궁전, 옥택
산택조수(山澤鳥獸)와 : 산과 못 그리고 새와 짐승과
수림화과(樹林華果)의 : 수림과 화과의
여시일체종종제물(如是一切種種諸物)을 : 여시 일체 종종 모든 사물들을
유목지인(有目之人)이 : 눈이 있는 사람이
실득명견(悉得明見)하나니 : 다 밝게 보는 것과 같으니라. 태양이 뜨면 태양을 통해서 태양부터 본다. 태양을 통해서 태양을 보고 그것 뿐만 아니라 그 외 여기 나온 사실들을 모두가 다 안다.
불자(佛子)야 :불자야
일광(日光)이 : 일광이
평등(平等)하야 : 평등하야
무유분별(無有分別)호대 : 분별이 없으되
이능영목(而能令目)으로 : 그러나 능히 눈으로 하여금
견종종상(見種種相)인달하야 : 종종 상을 보듯이
차대삼매(此大三昧)도 : 이 큰 삼매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체성(體性)이 : 체성이
평등(平等)하야 : 평등하야
무유분별(無有分別)호대 : 분별함이 없으되
능령보살(能令菩薩)로 : 능히 보살로 하여금
지불가설불가설백천억나유타차별지상(知不可說不可說百千億那由他差別之相)이니라 : 불가설 불가설 백천억 나유타 차별상을 능히 아느니라. 그런 뜻이다.
여기에서 무궁무진한 의미와 그것의 맛, 그 맛은 각자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읽고 또 읽고, 이렇게 생각해 보고 저렇게 생각해 보고, 음미해 보고, 가능하다면 한 번쯤 써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속에서 우러나는 맛을 봐야 된다.
이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 밖에 안된다. 이 속에 담겨 있는 무궁무진한 맛은 각자가 그렇게 맛보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맛봐야 된다.
라. 十種不空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如是了知時에 令諸衆生으로 得十種不空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一者는 見不空이니 令諸衆生으로 生善根故며 二者는 聞不空이니 令諸衆生으로 得成熟故며 三者는 同住不空이니 令諸衆生으로 心調伏故며 四者는 發起不空이니 令諸衆生으로 如言而作하야 通達一切諸法義故며 五者는 行不空이니 令無邊世界로 皆淸淨故며 六者는 親近不空이니 於不可說不可說佛刹諸如來所에 斷不可說不可說衆生疑故며 七者는 願不空이니 隨所念衆生하야 令作勝供養하야 成就諸願故며 八者는 善巧法不空이니 皆令得住無礙解脫淸淨智故며 九者는 雨法雨不空이니 於不可說不可說諸根衆生中에 方便開示一切智行하야 令住佛道故며 十者는 出現不空이니 現無邊相하야 令一切衆生으로 皆蒙照故니라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알 때에 중생들로 하여금 열 가지의 헛되지 않음을 얻게 하느니라.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보는 것이 헛되지 않으니 중생들로 하여금 착한 뿌리를 내게 함이요, 둘은 들음이 헛되지 않으니 중생들을 성숙하게 함이요, 셋은 함께 머무름이 헛되지 않으니 중생들의 마음을 조복하게 함이요, 넷은 발기(發起)함이 헛되지 않으니 중생들로 하여금 말한 대로 행하게 하여 온갖 법과 뜻을 통달하게 함이요, 다섯은 행이 헛되지 않으니 그지없는 세계를 다 청정케 함이니라.
여섯은 친근함이 헛되지 않으니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부처님 계신 데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중생의 의심을 끊게 함이요, 일곱은 서원이 헛되지 않으니 생각하는 중생들을 따라서 훌륭한 공양을 짓게 하여 원을 성취하게 함이요, 여덟은 교묘한 법이 헛되지 않으니 모두 걸림 없는 해탈과 청정한 지혜에 머물게 함이요, 아홉은 법의 비를 내림이 헛되지 않으니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근성을 가진 중생들에게 온갖 지혜의 행을 방편으로 열어 보여서 부처님의 도(道)에 머물게 함이요, 열은 나타남이 헛되지 않으니 그지없는 몸매를 나타내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비춤을 얻게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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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불공(十種不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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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은 헛되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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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이 : 이 보살마하살이
여시요지시(如是了知時)에 :이와 같이 환하게 알 때에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득십종불공(得十種不空)하나니 : 열 가지 헛되지 아니함을 얻게 된다.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인가
일자(一者)는 : 일자는
견불공(見不空)이니 : 견이 불공이다. 보는 것이 헛되지 않다.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생선근고(生善根故)며 : 선근을 내게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보면 거기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따라서 좋은 것을 봤으니까 선근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자꾸 좋은 것을 봐야 된다. 나는 머리 식힌다고 TV를 한 번씩 볼 때가 있는데 그전에는 좋게 보던 것을 지금은 안보는 것들이 있다. 옛날에는 권투나 격투기 이런 싸움하는 것을 보기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업이 된다고 절대로 안본다. 한 번 스치고 지나 간 것도 업이 된다.
스님들은 절대 그런 것을 보지 마시기 바란다.
또 애착이 가는 팀이 중요한 승부에 관계되는 게임이 있다면 그것도 안봐야 된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니까 그런 것도 안봐야 되는 것이다.
이자(二者)는 : 이자는
문불공(聞不空)이니: 듣는 것이 헛되지 않는다.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득성숙고(得成熟故)며 :득성숙고며, 자꾸 듣다 보면 성숙해진다. 스님들이 여기 와서 잠깐 이렇게 공부하고 가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익어지고 성숙해진다. 자꾸 익어간다. 한 시간 여기 와서 공부하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다. 불공(不空)이다. 헛된 것이 아니다. 문불공(聞不空)이라고 했잖은가. 듣는 것이 헛되지 않는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는 연고다.
삼자(三者)는 : 삼자는
동주불공(同住不空)이니 : 함께 머무는 것이 헛되지 않으니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심조복고(心調伏故)며 : 마음이 조복된다.
여기 오면 전부 마스크 다 써야 되고, 스님들은 대중생활에 익숙해서 낱낱이 말을 안해도 질서정연하게 사관학교 출신 이상으로 착착 착착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간다. 일반인들이 와서 보면 신기할 것이다.
그전에 내가 통도사 강주로 있을 때 신도들이 무슨 일이 있어서 왔는데 새벽예불이 보고 싶다고 일부러 하룻밤을 자고 가겠다고 하였다.
자고 나서 모두들 새벽예불에 참석을 했는데 수십 명 스님이 그때 설법전이 없을 때라서 대웅전에 들어와서 질서정연하게 제자리에 착착 착착 와서는 절 다하고, 수십 명 스님들이 들락날락 하는 데 소리 하나 안나고 한 번 가다가 부딪칠만도 한데 부딪치지도 않고, 어쩌면 그렇게 물흐르듯이 질서정연하게 행동거지가 되느냐고, 신도분들이 예불하고 내 방에 와서 감탄을 했다.
누가 가르쳐서 그런가? 자연스럽게 동주불공이다. 동주불공 (同住不空) 기가 막힌 말 아닌가? 그래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심조복(心調伏)이다.
마음은 이미 다 조복이 되어 있다. 그것을 어떻게 낱낱이 가르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강원생활은 꼭 글을 배우는 것, 경전을 배운 것이 문제가 아니다. 행위를 배우는 것, 행위를 익히는 것이 사실 중요한 목적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도 잘 모르고 안타까운 점이 많다.
함께 머무는 것이 헛되지 않으니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 조복이 딱 되어 있으며
사자(四者)는 : 사자는
발기불공(發起不空)이니 : 거기서 자기가 어떤 마음을 일으키는 것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영제중생으로
여언이작(如言而作)하야 : 말과 같이 어떤 일을 지어서
통달일체제법의고(通達一切諸法義故)며 : 일체 제법의 이치를 통달한다. 공부를 하면 가르치게 되고, 또 그것을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고 이러한 사실들이다.
오자(五者)는 : 오자는
행불공(行不空)이니 : 행이 헛되지 아니하니
영무변세계(令無邊世界)로 : 무변세계로 하여금
개청정고(皆淸淨故)며 : 다 청정하게 하는 연고며
육자(六者)는 : 육자는
친근불공(親近不空)이니 : 친근이 불공이니
어불가설불가설불찰제여래소(於不可說不可說佛刹諸如來所)에 : 불가설 불가설불찰 모든 여래소에
단불가설불가설중생의고(斷不可說不可說衆生疑故)며 : 불가설 불가설 중생의 의심, 의혹을 끊게 하는 연고며
칠자(七者)는 : 칠자는
원불공(願不空)이니 : 원이 헛되지 아니함이니
수소념중생(隨所念衆生)하야 : 생각하는 바 중생을 따라서
영작승공양(令作勝供養)하야 : 수승한 공양을 지어서
성취제원고(成就諸願故)며 : 모든 원을 성취하는 연고며
팔자(八者)는 : 팔자는
선교법불공(善巧法不空)이니 : 훌륭한 법이 불공이니
개령득주무애해탈청정지고(皆令得住無礙解脫淸淨智故)며 : 다 하여금 걸림없는 해탈이 청정한 지혜에 안주함을 얻게 하는 연고며
구자(九者)는 : 구자는
우법우불공(雨法雨不空)이니 : 법의 비를 쏟아붓는 것이 헛되지 아니함이니
어불가설불가설제근중생중(於不可說不可說諸根衆生中)에 : 불가설 불가설 그 많고 많은 중생 가운데서
방편개시일체지행(方便開示一切智行)하야 : 방편 가운데 일체 지행을 개시해서
영주불도고(令住佛道故)며 : 불도에 머무르게 하는 연고다. 우법우(雨法雨)는 법의 비를 사정없이 쏟아붓는 것이다. ‘아 이거 뭐 알아듣겠나? 우이독경인데, 저 신도에게 내가 비싸게 주고 배운 화엄경 공부 가르친들 쇠귀에 경 읽기지, 뭐 되겠나?’ 절대 그런 생각하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업을 짓는 것이다.
중생은 근본적으로 부처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중생은 불종(佛種)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 종자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인연을 만나면 그것이 싹이 터서 훨씬 더 앞서가고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절대 그런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 스님들이 공부하면 얼마나 했다고 조금 공부한 것을 가지고 신도들을 또 그렇게 보는 경우가 있다. ‘아 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 아무리 말해도 안듣는 것’ 이런 소리 와서 하는 사람들을 내가 몇 번 봤다. ‘말을 안들어 먹는데 가르치면 뭐합니까?’ 이렇게도 말하는데, 절대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
법의 비를 그냥 폭우를 쏟아붓듯이,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지행(一切智行)을 방편으로 개시해서 불도에 머물게 한다.
십자(十者)는 : 십자는
출현불공(出現不空)이니 : 출현에 헛되지 아니함이니
현무변상(現無邊相)하야 : 가없는 모습을 나타내어서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개몽조고(皆蒙照故)니라 : 그 비춤을 있게 하는 까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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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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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불이 진금을 단련하는 것과 같다...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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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 화엄경
복습하는 재미가 보통 재미가 아닙니다
혜명화님, 녹취록 고맙습니다
부처님의 대삼매 경지
읽기만 해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