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싸거나 선택의 폭이 좁았던 서울의 파인 주얼리 마켓이 좀더 세심하게 나뉘고 있다. 한동안 유행했던 커스텀 주얼리 대신 파인 주얼리가 대세로 떠오른 까닭이다. 캐릭터가 뚜렷한 파인 주얼러들을 소개한다.
스타일링에서 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커다란 뱅글이나 체인 같은 스타 액세서리들이 탄생하면서 주얼리의 존재감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커지는 중이다. 게다가 고감도 · 고품질을 갖춘 주얼리 브랜드와 부티크가 서울 곳곳에서 붐을 이루고 있다. 얼마 전 코오롱에서 론칭한 ‘아만다 고스트’는 액세서리 편집 매장으로 80% 이상이 주얼리 차지. 또 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피카소에서 제프 쿤스까지>전은 달리부터 제프 쿤스까지 현대미술사의 거장들이 만든 아트 주얼리는 물론, 국내 셀럽들의 주얼리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게다가 인기 패션모델 안재현이나 강수희 등도 주얼리를 론칭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시대적 감각을 지닌 파인 주얼러들이 연이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패셔너블하고 트렌디한 주얼리 라벨 ‘파나쉬’, 세련된 골드 주얼리를 선보이는 ‘타넬로’, 원석을 활용한 과감한 주얼리를 선보이는 ‘루쏘’, 에지 넘치는 실버 주얼리가 일품인 ‘다비데초이’ 등. 봄꽃처럼 개화하고 있는 서울의 파인 주얼러들을 <보그>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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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sso by Cho Young Eun
원석에 욕심 많은 디자이너 조영은의 ‘루쏘’에서는 색상과 질감을 최대한 살린 하이 주얼리들을 만날 수 있다. “파인 주얼리가 원래 트렌디하진 않아요”라고 그녀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기 색깔이 분명해야 합니다.” 알록달록한 유색 스톤이 자유롭게 믹스매치된 루쏘 주얼리들이 다른 주얼러들의 그것에 비해 고급스럽고 패셔너블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그녀가 하이 주얼리를 선보인 지는 벌써 15년째. 원석을 고른 후엔 특유의 고유한 색감과 형태가 돋보이도록 디자인하는 데 주력하지만, 때로는 과감한 커팅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웨어러블하면서도 파인 주얼리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 “항상 주얼리의 아이덴티티를 먼저 생각합니다.”
루쏘의 또 다른 특징은 ‘맞춤’이 가능하다는 것. 그러다 보니 부티크엔 같은 디자인이 거의 없다. “요즘 고객들은 남과 다른 걸 원해요. 특히 주얼리는 더더욱 ‘only one’을 원하죠.” 이를 위해선 고객과의 충분한 대화가 필요한 법.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주얼리를 착용하는 사람의 분위기, 매력, 취향을 파악해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고객들로부터 영감을 얻을 때가 많아요.” 또 파인 주얼리는 까다로운 세공 과정만큼 사연도 다양하단다. “원석마다 기운이 달라요. 최대한 컬러를 많이 보여주려다 보니 어떤 경우엔 반지 하나에 오대륙 원산지가 모두 모이는 경우도 있죠. 요즘에는 80년대 주얼리 리터칭 작업도 하는데, 경기가 좋았던 때 유통된 보석들이라 퀄리티가 아주 좋아요.”
루쏘의 고객 중에는 개성이 뚜렷한 40~50대 프랑스 여성들도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그녀의 꼼꼼한 솜씨와 작업 속도에 놀라곤 한다. “보석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상징성이죠. 물론 가격이 가치를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보석마다의 특별한 매력을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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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ello by Jung Soo Yeon
한적한 경리단 골목의 윗길에 자리잡은 주얼리 부티크 ‘타넬로’. 자연광이 풍부하게 스며드는 아이보리 톤의 넓은 매장엔 담백한 골드 주얼리와 유색 스톤 반지들, 그리고 진주가 진열되어 있다. “주얼리 매장엔 보통 자연광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디자이너 정수연이 자신의 매장을 둘러보며 설명한다. “햇빛을 완벽히 차단한 인공조명 속에서 보석이 훨씬 빛나기 때문이죠. 하지만 타넬로의 컨셉을 위해 과감히 자연광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타넬로의 컨셉은 바로 ‘자연’. “나뭇잎, 낙엽, 돌 등 자연 그 자체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아울러 금이나 천연석 그 자체의 느낌을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그녀가 디자인하는 주얼리는 작고 심플한 반지에서부터 과감한 원석 브로치까지 다양하다. 그중 베스트셀러는 역시 반지. 미묘하게 다른 톤의 유색 스톤을 장식한 골드 링은 요즘의 반지 트렌드와 상관없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모든 주얼리의 기본이 되는 골드는 본래 빛깔과 재질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매끄럽게 다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요즘 멋쟁이들은 예전만큼 로고에 연연하지 않아요. 대신 자신만의 브랜드나 스타일을 따지죠.”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선호하는 타넬로 고객들은 오더 메이드 주얼리를 즐긴다고 그녀는 귀띔한다. “주얼리 스타일링엔 리듬이 필요합니다. 길이나 크기에 강약을 주는 거죠.” 옷이나 구두에 비해 주얼리는 트렌드에 덜 민감한 편이다. 또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자세히 보세요. 10년 전 구입한 주얼리는 요즘 주얼리와도 충분히 잘 어울립니다. 영속성이야말로 주얼리의 진정한 가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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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che by Cha Sun Young
‘파나쉬’는 요즘 국내 보석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청담동에 프라이빗한 매장을 갖고 있는 데다, 파인 주얼리지만 패션과 밀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비교적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고객층을 위해 개성 넘치는 커스텀 주얼리 라인도 갖추고 있다. 촬영을 위해 스타일링한 강렬한 입술 모티브의 목걸이도 디자이너 차선영이 디자인한 것이다. “마릴린 먼로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레진이라는 소재를 처음 써봤는데 꽤 흥미롭더군요. 구불구불한 스트랩은 먼로의 어록을 표현한 겁니다.”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의 <피카소에서 제프 쿤스까지> 전에 전시 중인 국내 셀럽들(클라라, 이천희, 타이거 JK 등)의주얼리 역시 차선영과 공동 작업한 것들이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에서 주얼리를 전공한 그녀는 앳된 외모와 달리 조나단 선더스의 패션쇼 주얼리 제작, 스와로브스키 공모전 수상, 대영박물관 전시 등 다채로운 이력을 자랑한다. 파나쉬는 중세 투구에 장식한 깃털을 지칭하는데, 차선영은 갑옷 조각이나 방패 디테일, 갑옷이 열리고 닫히는 메커니즘 등 중세나 비잔틴 시대에서 흥미를 느낀다고 전한다. “보석이 흥미로운 건 보석마다 지닌 스토리 덕분이죠. 사랑의 증표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기쁘게 하니까요. 모두가 다른 매력을 지녔듯, 보석 역시 매력이 다릅니다. 또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전한 보석 역시 없죠. 디자이너가 어떤 스토리를 주입하고 누가 착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거든요.”
그녀가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는 건 바로 판타지의 구현이다. “내러티브가 있는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그런데 내러티브는 스타일링만으로도 가능합니다. 가령 옷과 반대되는 주얼리를 연출하는 식이죠. 청바지나 티셔츠에 다이아몬드 귀고리를 차거나 포멀한 수트 차림에 형광 팔찌를 곁들이거나. 파인 주얼리라고 늘 진지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요즘 그녀는 배우 한지혜가 주얼리 디자이너로 등장할 KBS2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촬영에 쓰일 주얼리 작업으로 분주하다. 또 세컨드 브랜드 ‘P 바이 파나쉬’도 규모를 키울 예정이다. 앤티크한 동시에 로맨틱한 개성 만점의 파나쉬 주얼리는 엄마의 오래된 루비 목걸이가 싫은 20~30대 여성들에게 적절한 솔루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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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echoi by Choi Kyung Me
“실버가 기본 소재예요. 여기에 오닉스와 다이아몬드를 함께 쓰고 있죠. 그것뿐입니다!” 요즘 경향을 볼 때 주얼리는 ‘빅 앤 볼드’에서 ‘스몰 앤 심플’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다비데초이’의 주얼리는 두 가지 모두를 보여준다. 게다가 은근한 유머까지. 예를 들면 링에 올린 커다랗고 매끈한 실버 원반 위에 나란히 놓인 오닉스 구슬과 은구슬은 탱고를 추는 커플을 표현한 것. 또 뾰족한 삼각 모티브의 주얼리들은 영화 <블랙 스완>의 차갑고 날카로운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단순히 크고 화려한 장식이 전부가 아닌, 일종의 텍스트를 갖고 있는 셈이다. 로마와 밀라노에서 주얼리를 공부한 뒤 디올 옴므 디자이너를 포기하고 자신의 주얼리 브랜드를 론칭한 최경미는 주얼러로서 이렇듯 흥미롭고 인상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론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주위에서 먼저 알고 찾아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특히 영국과 일본에서 반응이 좋아요. 해외에 쇼룸을 마련하는 일이 급해요.”
주얼리를 예술적 시선으로 접근하는 그녀는 평소 다양한 영상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렇게 탄생한 건축적 형태의 주얼리들은 흑백 대비를 통해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띤다. “실버 소재지만 가격은 비싼 편이에요. 하지만 제 고객들은 상관하지 않아요. 아이디어부터 3D 디자인 작업까지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해 보여주기도 하는데 무척 흥미로워 하죠.” 물론 디자인만 강조하는 건 아니다. “반지가 꽤 큰 편이라 착용감에 가장 신경을 씁니다. 또 이미지가 다소 강하다 보니 부드러운 소재를 같이 쓰면 어떨지 고민 중이죠. 다이아몬드, 마노 외에 다비데초이와 어울릴 소재를 찾고 있어요.” 그녀는 여러 세대가 공감할 만한 디자인도 개발 중이라고 덧붙인다. “너무 많은 아이디어로 잠이 안 올 지경이에요. 하하!”
출처 : 보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