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답사보고서 20093872 김현정
대학에 입학하고 4학년이 되는 동안, 역사관련 수업을 접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 역사관련 수업은 너무 낯설고,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답사과제의 시작인 어딜 다녀와야 하는 가에 대한 것부터 많이 고민되었다.
최대한 쉽고 편하게 접근하자라는 마음으로 고민 끝에 다녀온 곳은, 서울 사람들이라면 쉽게 접했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텔레비전에서는 흔하게 접했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 곳, 한양의 중심이었던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 경복궁에 다녀왔다.
집을 나서면서 답사라고 생각이 들기보다 처음으로 가보는 경복궁은 서울여행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느껴지게 했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 앞에 처음으로 섰을 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고 광화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사극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웅장한 배경이 눈으로 들어왔다.
경복궁은 1395년에 창건되어 조선 왕조의 임금들이 살았던 궁궐이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그렇게 국권의 상징이 되었던 경복궁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일제에 의해 계획적으로 훼손되었고, 심지어 종선총독부 청사를 지어져 궁궐 자체를 가리는 아픔까지 겪었으나,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추진해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했으며, 2010년에는 광화문까지 원형 복원되었다.
이렇게 복원된 광화문에 들어서면, 흥례문을 지나 경복궁의 으뜸 전각인 근정전이 나온다.
근정전은 궐 안에서 가장 장엄한 중심 건물로 왕권을 상징하며,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곳이었다.
이렇듯 나라의 중대사를 행해지는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어느 궁보다 그 장엄함과 웅장함에 이 나라백성의 후손인 것이 마냥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넓게 펼쳐진 근정전의 마당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데 그 중심에 다른 곳보다 약간 위로 올라온 길이 있다.
이곳이 어도라 하여 왕만 다닐 수 있다고 TV방송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그 중심을 따라 왕이 되어 당당히 걸어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저 큰 화강암들을 직접 날라 이렇게 바닥을 만든 선조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웅장한 근정전을 지나면 국정이 행해지던, 왕의 공식적 집무실인 사정전이 나온다.
이곳에서 왕은 매일 아침 업무보고와 회의, 국정 세미나인 경연이 벌였다고 한다.
그리고 근정전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인 침전이 나온다.
임금의 강녕을 기원하기 위해 그 의미를 담은 강녕전은 임금의 침전이고, 궐 안의 사람살이를 총지휘하던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임금은 강녕전에서 독서와 휴식 등 일생생활뿐 아니라 신하들과 은밀한 정무를 보기도 했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관광객들을 위해 신발을 벗고 마루까지 들어가 방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마루를 개방하여 나 역시 마루로 올라가 방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왼쪽은 집무, 독서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오른쪽은 편히 쉴 수 있는 침실의 구조로 강녕전은 3칸씩, 교태전은 2칸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교태전은 강녕전 바로 뒤쪽에 위치해 무언가 강녕전의 보호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교태전 뒤쪽으로 아미산이라는 왕비의 후원이 있어 왕비가 그곳의 꽃과 아름다운 굴뚝을 보며 산책을 즐겼던 것 같다.
그리고 왕세자는 새로 떠오르는 해처럼 왕위를 이을 사람이라 하여 왕세자의 처소를 내전의 동쪽에 배치하고 이를 동궁전이라 불렀다.
동궁전은 서쪽에는 자선당, 동쪽에는 비현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하는 내전이고 비현각은 공부를 하며 정무도 보던 외전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시강원과 의전, 경호를 담당하던 익위사도 동궁전 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경복궁의 핵심이라 느껴지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미학의 절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경회루.
이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주재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었다.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왕실 정원으로 꾸며졌는데, 창건 당시 작은 누각이었던 경회루는 1412년 태종 때 연못을 크게 확장하고 누각도 큰 규모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
경회루의 마룻바닥은 중앙으로 갈수록 높아지는데, 중앙으로 갈수록 높은 품계 관료들의 자리였다.
아쉬웠던 점은 이런 마룻바닥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회루에 들어갈 수 없어, 멀리서 경회루의 장관만 구경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경회루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경회루를 바라보니 너무 아름답고, 당시 왕들의 풍류와 연회를 즐기기에 한 점 부족함이 없을 만큼 건축미학의 위대함이 물씬 느껴졌다.
그 외에도 고종을 위해 지은 궁 안의 궁이라는 향원정이 있는 데 그곳은 향원지라는 네모난 연못이 조성돼 있고, 그 가운데 향원정이 있다.
경회루가 웅장하고 남성적이라면 향원정은 아늑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번 답사를 하며 운 좋게도 경복궁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마침 시간대가 수문관 교대의식과 맞아 수문관 교대의식도 볼 수 있었다.
수문관은 경복궁의 문인 광화문을 지키는 정4품 무관과 그 뒤를 종사관, 그 외 병사들이 따르며 행해졌다.
북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징을치면 멈춤을 반복하며, 화려한 음악과 복색별 색깔 차이가 어우러지며 교대의식마저 예술적 공연을 보는 듯하게 느껴졌다.
수문관 교대의식은 서로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왕이 내린 증표를 확인하며 군례와 신분확인을 통해 교대가 이루어 진다.
수문장은 흥인지문, 숭례문 등 도성문과 경복궁 등 국왕이 생활하는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였다.
수문장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광화문을 여닫고 근무교대를 통하여 국가의 중심인 국왕과 왕실을 호위함으로써 나라의 안정을 기여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 교대의식이 단순한 의식에 지나지 않고, 나라의 안전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었을 것이다.
교대의식이 이루어지는 중간중간 경복궁에서 방송을 통해 이 의식에 대한 설명을 붙여줘서 이 의식을 이해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
경복궁에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점을 정말 웅장하다, 아름답다이다.
꼭 전각이 아니더라도 담장하나 바닥하나, 처마 밑 하나 등 여기저기서 선조들의 미적 우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계도 없었던 당시에 어쩜 저리 사소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아름다움으로 채울 수 있었는 지 선조들에게 새삼 존경심이 생겼다.
이렇게 경복궁을 가보면서 역사란 사라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삶에 그대로 전해져 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히 깨닫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도 역사에 대해 너무 어렵다 생각 말고, 차분히 관심을 갖으며 친숙하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답사가 나에겐 과제가 아닌, 대학교 4학년에 들어서 마지막 학년의 새로운 추억으로 남겨질 것 같다.
나처럼 지방에 사는 사람에 서울구경을 한다면 꼭 잊지 말고 경복궁에 들러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참고
경복궁 royalpalac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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