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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사찰자료실 스크랩 옆드려서 천년을... 경주 남산 열암골의 마애불상
소윤당 추천 0 조회 67 14.01.01 20: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옆드려서 천년을... 경주 남산 열암골의 마애불상

 

백운암 가는 길에서 본 열암곡

 

 

열암곡은 경주 남산 남단의 고위봉(해발 494m)과 봉화대봉(해발 476m), 천왕지봉(해발 433m)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들에 의해 형성된 여러 골짜기 중의 하나이다. 백운계의 백운암으로 올라가는 길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계곡으로  옛날에는‘열암곡(列巖谷)’으로 불리워졌으나  요즈음은 산 사이의 계곡라는 의미로 새갓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열암곡의 석조여래좌상과 열암곡마애불상이 위치한 곳은 열암곡 제3사지로 바위들이 여러 층으로 늘어서서 천연의 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며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민간 신앙의 중심지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불교의 성행과 더불어 대규모의 불상을 조성한 곳으로 짐작된다.

마애불상과 더불어 반장육(半丈六)의 석조여래좌상이 조성되어 있으므로 이곳에 있었던 사찰은 작은 암자가 아니라 남산에서도 비교적 큰 규모의 가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열암곡석조여래좌상

 

열암곡(列巖谷)석조여래좌상으로 알려진 이 불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8~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돼 조선시대 전기까지 유지돼 온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 정비하기 전의 석불좌상 정면

 

 보수 정비하기 전의 석불좌상

 

보수 정비하기 전의 석불좌상 대좌편

 

 

본래 상?중?하대를 갖춘 3단 대좌 위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나  인위적인 파손으로 인해 불상이 넘어지거나 무너져 머리부분은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광배부분은 몸통에서 분리돼 깨아졌으며 여기저기 부재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이었다.
머리를 잃은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신체표현은 풍만하다. 통견의 법의 아래 사선의 내의를 입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와 가슴을 감싸고 내려온 법의는 허리부분에서 안으로 살짝 끼워져 있다. 불상 뒷면에도 법의 표현이 자세한데 왼쪽 어깨 뒤로 중첩된 옷자락을 표현하였다.

대좌는 중대석을 결실하였고 하대석은 파손되었으나 원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상대석은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부드러운 연잎이 삼중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2단의 각형 괴임 받침이 팔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광배는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으며, 화염문과 당초문으로 조식된 흔적 일부가 확인되었다.

 

 

2005년 발견 당시의 불두

 

2005년 10월 23일 남산연구소의 회원 임희숙이 열암곡석불좌상 일대를 답사하던 중 석불좌상이 놓인 구릉 약 40m 아래의 계곡에서 불두(佛頭) 한 점을 발견하였다. 이후 발견된 불두와 목이 잘린 열암곡석불좌상을 서로 맞추어 본 결과, 발견된 불두는 석불좌상의 것으로 확인되어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가 주관해 정비사업이 시작됐다.

 

 

 

 복원 정비된 열암곡 석불좌상

 

2년여간 정비사업을 벌인 끝에 2009년 1월 29일 복원된 석불상은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정비된 열암곡석불좌상은 당당하고 풍만한 몸체에 광배와 대좌를 제대로 갖추고 높이 4m의 장대한 모습으로 남향(南向)하여 정좌한 모습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며, 몸체의 양감과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진 법의(法衣) 차림새 및 조각수법 등 통일신라시대 전성기 양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팔각의 중대석은 결실되어 정비작업 중 새로 복원하였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과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등은 석굴암 본존불상(851년경)과 같이 통일신라시대 전성기(8세기 전반~중엽) 조각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무릎이나 어깨에 흐르는 도식화된 옷주름과 다소 경직된 인상 등은 석굴암 본존불상과는 차이가 있어 그 조성시기는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열암곡마애불상

 

열암곡마애불상 얼굴 부분

 

 

 

열암곡마애불상은 2007년 5월 22일 열암곡석불좌상에서 남동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이곳에는 열암곡석불좌상과 그 주변 사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진행 중이었다. 사역 안에는 광배와 대좌를 갖춘 열암곡석불좌상의 구성부재가 흩어져 있었으며, 석불좌상의 보수ㆍ정비를 위해 유실된 부재 여부와 사역 배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주변지역까지 세심히 조사하던 연구원(박소희, 채무기)에 의해 발견되었다

 

 

머리를 아래로 엎어진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고, 조성 당시의 상호를 온전히 지니고 있으며, 또한 불상의 높이가 약 4.6m의 대규모 마애불상이라는 점에서 관계 전문가뿐 아니라 전국민의 주목을 끌었다.
발견 이후 열암곡마애불상을 세우기 위한 계획도 있었지만 안전 문제 등의 어려움 때문에 현재는 불상의 주변을 정비하여 손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마애불상의 상호와 불신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 있지 않은 상태이지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3D스캔 기술을 활용하여 작성한 도면이 있으므로 연구의 단서는 제공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열암곡마애불상은 아직도 넘어져 있는 상태여서, 전모를 확인할 수 없으나 스캔자료의 분석 이 불상의 높이는 약 4.6m, 연화좌의 높이는 약 1.0m에 이르는 대규모의 불상으로, 장육상(丈六像)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사지내의 열암곡석조여래좌상 또한 남산에서는 손꼽힐 정도의 대형 불상이므로 이 불상의 조성배경 그리고 열암곡사지가 남산에서 지니는 의미는 매우 중요할 것으로 짐작된다.
먼저, 이 불상은 머리가 몸, 특히 하반신에 비하여 매우 크기 때문에 약 4등신 정도의 신체 비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머리와 상반신은 부조가 높고 하반신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지고 있는데, 이와 같은 표현은 남산 삼릉계 마애여래좌상 등 많은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마애불상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머리 부분을 살펴보면, 타원형에 가까운 상호(相好), 높은 육계와 민머리, 길고 날카로운 눈매와 오똑한 코, 두툼한 입술, 발제선(髮際線)에서 어깨에 닿을 정도로 크면서도 간략하고 평면적인 귀, 그리고 목에 2줄로 새겨진 삼도 등은 주목할 만하다.
상반신은 어깨의 선이 목에서부터 좌우 측면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가슴은 넓게 펴고 있기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모습이며, 허리부분이 잘록하여 인체의 양감을 표현하고 있으나 하반신은 밋밋하게 표현되었으므로 상반신과는 대조적이다.

 

 

 

불상의 오른손은 손등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여 엄지를 몸의 안쪽으로 넣고 나머지 손가락은 가지런히 펴서 아랫배에 대고 있으며, 왼손도 역시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가슴에 대고 있다. 이와 같은 수인은 경주 황룡곡 출토 석조여래입상 등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지만 뚜렷한 경전적인 근거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양발은 발끝을 몸의 좌우 측면으로 완전히 벌리고 있어서 매우 부자연스러울 정도이다. 예배대상으로서의 불상은 일반적으로 발끝을 앞쪽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있으며, 이처럼 발끝을 벌리는 예는 보살상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열암곡마애불상의 발 모습은 주의할 만하다.

 

착의법은 편단우견이고, 대의의 옷주름선은 오른쪽 옆구리에서 왼쪽 어깨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고, 하반신에서는 U자형으로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입상들의 대부분은 통견 착의법이고, 편단우견 착의는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에 많이 보이기 때문에, 열암곡마애불상의 편단우견착의법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열암곡마애불상의 특징은, 장육의 입상이며 얼굴과 상반신이 고부조인 점, 독특한 수인과 좌우로 벌린 발, 편단우견의 착의법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특징들은 석굴암본존상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성행하였던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이나 감산사석조아미타여래입상에서 볼 수 있는 다리 부분의 양감을 중시한 통견의 여래입상과는 양상을 달리하기 때문에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엎드린채 누워있는 열암곡마애불

 

3D스캔으로 본 마애불                                        예상도

 

또한, 열암곡마애불상이 입상이며, 양발을 좌우로 완전히 벌리고 있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양발을 좌우로 완전히 벌리고 있는 불상은 양발 끝을 앞쪽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불상에 비하여 그 예가 매우 적으므로 이 역시 눈에 쉽게 띄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발끝을 가지런히 모아 서있는 불상이 비교적 정적인 인상이라면, 열암곡마애불상처럼 양발을 벌리는 경우는 동적인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은 움직이는 부처로서의 성격을 한층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열암곡마애불상은 부조이지만, 머리의 높이가 가장 높고 하반신으로 내려갈수록 점차 부조의 높이가 낮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마치 부처가 머리와 상반신, 그리고 하반신의 순서로 바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장면, 즉 용현(涌現)의 과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경주국립문화재연구소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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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우단이란?

 

 

불상의 착의법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통견과 편단우견이 있으며, 이 2종류의 착의법은 인도에서 비롯되어 불교의 동점(東漸)과 함께 중국과 한국, 일본까지 전래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통견이 주류를 이루고, 편단우견은 남북조시대의 이른 시기나 초당 시대에 일부 유행하였으며, 황룡곡석조여래입상의 예처럼 오른쪽 어깨에 대의(大衣)의 일부를 살짝 걸친 형식도 있다.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는 비구들이 어떤 때에 통견과 편단우견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편단우견은 부처를 뵈올 때나 스승에게 질문할 때, 잠자리를 갤 때, 땅을 쓸 때, 자리를 권할 때, 꽃을 심는 등 각종 공양에 이용되었다. 한편 국왕과 더불어 먹거나 마을에서 걸식을 할 때, 좌선하여 경을 읽을 때, 나무 밑을 순행하는 등 승려로서 단엄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에는 통견의 착의를 하도록 하였다.

즉 편단우견은 부처나 스승에게 경의를 나타내거나 작법에 사용되는 착의법인 것이다.

 

또한 『대보적경(大寶積經)』 등 각종 경전에는 부처에 대하여 승려나 권속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편단
우견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편단우견 착의법이 부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작법이라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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