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을 보고 싶다
하희경
방학이라 잠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물 만난 고기처럼 책에 빠져 지낸다. 눈이 시원찮아 읽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지만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마음이 바쁘다. 책 읽다가 눈을 감다가 그마저도 힘들면 밖으로 나간다. 어슬렁거리며 동네 한 바퀴 돈다. 핸드폰으로 참새를 찍고, 꽃집 앞에서 뽐내는 꽃도 찍으면서 걷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오늘은 시장을 지나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갔다.
초등학교도 방학이라 그런지 조용하다.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국민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 다니던 우신국민학교는 신길동에 있었는데, 아이들이 바글바글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쩐지 애벌레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학생들은 근처 판자촌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근처라고 하기엔 무리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만 해도 집이 있는 신림동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30분을 가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버스비가 없는 날은 결석을 밥 먹듯이 하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멀리까지 학교를 다녀야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신길동에서 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신림동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관악산 밑자락에 판자로 지은 집이나마 내 집을 갖고 싶었던 걸까? 그건 아니다. 이사는 개인의 의사보다는 도시를 정화하려는 목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킨 당시의 정책이 더 큰 이유였다. 물론 이건 나중에 내가 성인이 되고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이다.
이사한 곳에는 학교가 없었다. 내가 아는 부모님 성정이라면 그 시점에서 학교를 그만 두었어야 했다. 다행히 그때는 부모님이 조금이나마 정상적인 사고를 했는지, 아니면 그마저도 귀찮았는지 입학한 학교에 그냥 다니게 했다. 차비가 없거나 아버지가 술 취해 온밤을 뒤집은 날이 아니면 학교에 갔다. 학교 가는 날은 즐거웠다. 버스 타고 가는 동안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집에서 몇 시간이라도 탈출할 수 있어 좋았다.
그 무렵 우신국민학교가 있는 신길동도 그다지 부자동네는 아니었다. 아니, 원래는 그곳 역시 도시 빈민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이었다. 재개발 붐을 타고 대대적으로 정비한 후에 부촌이 되었지만, 내가 다닐 무렵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가난한 아이들 가운데서도 더 가난한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건 대단한 행운이었지 싶다. 만약 그마저도 다니지 못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 생각하니 머리끝이 쭈뼛 곤두선다.
내가 아는 세상은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경계가 있다. 배운 사람은 부의 길에 들어서기 쉽고 못 배운 사람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 바쁘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번듯한 직장 하나 갖지 못하고 자식들 역시 제대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결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급은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문득, 배운 사람들 역시 그들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어려움이 먹고 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고민으로 보인다는 걸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하긴 너나없이 제 고민이 제일 커 보이는 게 세상 이치인데 이마저 쓸데없는 생각일지 모른다.
어쨌든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차이야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요즘 나의 관심사는 못 배운 사람들에게 있다. 못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특히 글자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관심 대상이다. 그건 늦게나마 살아가는 데 있어 글자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또 다른 경계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이 다르듯이, 글자를 아는 것과 모르는 사람의 삶은 다르게 전개되는 게 세상이라는 걸 말이다.
며칠 전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다. 책방에서 책들의 유혹에 빠졌다가 화장실에 가려던 중이었다. 생면부지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자네는 좋겠네. 글씨를 알아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 사람은 건물을 청소하는 분이었다. 급한 볼 일도 잊고 우뚝 섰다. 그분은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였다.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처음 보는 분이라 그냥 웃음으로 답했다. 웃음이 용기를 북돋았는지 말문이 터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글을 몰라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쏟아져 나온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낯선 나를 붙들고 이야기보따리를 풀까. 그 마음이 안타까워 한참을 들어주었다.
화장실 입구에서 길게 이야기를 이어가시던 분이 갑자기 사과를 하신다. 자신은 책방을 매일 보면서도 책 한 권 못 읽는데, 내가 이 책 저 책 들여다보는 게 부러워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하셔서 괜찮다고 했다. 덧붙여 원하신다면 힘들었던 걸 지금이라도 덜어내고 싶다면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이런저런 방법들을 알려드리고 시간 내기 어려우면 짬짬이 나라도 힘이 되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고개를 흔들었다.
일상에 치여 휘청거리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어린 내가 있었다. 슬플 땐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기쁠 땐 행여 좋은 순간을 놓칠까 봐 두려워하면서 글자라고 생긴 건 다 읽었다. 국민학교 졸업식도 못하고 일만 하는 처지가 억울하고, 공부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열심히 일해도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약이 올라서 죽을힘을 다해 책을 파고들었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 더 안간힘을 썼는지도 모른다. 책 읽기는 내게 있어 일종의 도피처였던 것이다. 매순간 글자들은 내게 스며들었다. 작은 글자들이 콩나물시루에서 나를 자라나게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늦은 나이에 무슨 공부를 하는지, 왜 하는지. 난 공부하고 싶어 안달하던, 사람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지난날을 잊지 못한다. 좀 더 나은 삶을 꿈꾸지 못하게,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던 가난과 무지의 시간은 깊고 어두운 동굴 같았다. 그 동굴 속에서 까맣게 일렁이던 시간을 변화시키고 싶다. 나만이 아니라, 배우지 못해 입 다물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암울했던 날들에 작은 햇살이 되어주고 싶다. 알려주고 싶다. 책 속에 숨겨진 금은보화를 캐내는 방법을, 글자 하나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한순간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들의 눈빛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