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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배제, 폭력, 학대, 중독, 무기력, 희망…
어느 1984년생 래퍼·활동가의 아주 정직한 가난 탐구
가난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가난 사파리』.스코틀랜드 빈민지역에서 자란 래퍼이자 칼럼니스트인 대런 맥가비가 자신의 성장 경험, 아동·청소년 대상 활동과 교도소 재소자 대상 랩 워크숍 등을 하면서 만난 하층계급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난과 학대, 중독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마음풍경을 신랄하고 위트 넘치게 담아내며 좌우파 모두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은 가난의 내부자였던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 들려주는 ‘개천의 용’ 이야기이자 계급 상승의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개천을 떠나지 않은 어느 래퍼 또는 사회활동가의 작은 성공담이다. 이때, 그 성공이란 가난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늪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파괴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의 성공이다. 맥가비는 열아홉 살에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이후에 더 큰 고통과 우울증과 정신이상에 시달렸으며, 오랫동안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로 지냈다. 이 책에는 엄마를 향한 미움과 분노가, 엄마의 죽음 이후에 슬픔과 자기혐오로, 다시 엄마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개인의 자기고백이 담겨 있다. 동시에, 그는 예민한 지성과 침착한 감성으로, 자신이 경험한 가난, 학대, 폭력, 중독, 고통, 나아가 이를 둘러싼 사회 상황과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 가난과 계급을 둘러싼 추정과 편견들, 자신이 세상에 가졌던 믿음과 좌우파의 입장, ‘빈곤산업’에 이르기까지 가난을 구성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철저히 분석해내며, 현재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 저자 소개
래퍼 로키(Loki)로 알려진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활동가. 1984년에 태어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남부의 폴록에서 자랐다. 스코틀랜드경찰 폭력감소반의 첫 상주 래퍼로 일했고, 반사회적 행동과 가난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는 스코틀랜드 BBC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의 첫 책 『가난 사파리』는 2018년,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어한 조지 오웰의 뜻을 기려 그해 영국에서 가장 탁월한 정치적 글쓰기에 수여하는 오웰상을 받았다.
📜 목차
서문
들어가며
죄와 벌
폭력의 역사
야성의 부름
서부의 신사들
심판
만만찮은 도시
1984
충실성의 문제
길 위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두 도시 이야기
폭풍의 언덕
아웃사이더
비법은 계속 숨을 쉬는 것
커팅룸
위대한 유산
막다른 길의 아이들
이방인
쇼핑몰 이야기
불만
가닛힐
지금 우리가 사는 법
하우스키핑
야만인을 기다리며
털 없는 원숭이
소리와 분노
프랑켄슈타인
트레인스포팅
도덕의 풍경
변신
엿보는 자들의 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감사의 말
발문 아주 평범한 가난 _장일호(《시사IN》 기자)
옮긴이의 말 다시, 가난과 계급을 이야기하기
📖 책 속으로
엄마가 집을 나가기 얼마 전 어느 화창한 오후에, 친구 둘을 거느리고 집에 와보니 많은 세간살이가 불탄 채로 앞뜰에 널려 있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뭐라고 설명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말이다. 친구들은 이미 우리 집 형편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문제가정 아이들의 삶은 거리로 퍼져나간다. 이들은 아마도 수치심이나 창피함을 모면하려고 마침내 문제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동네 사람들이 자기 일을 알고 있고 아마도 자신을 재단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응한다. 사생활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손에 넣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치재가 된다. _93쪽.
정부는 재정 지원을 하면서 그 쓰임새에 대해 조건을 붙이고, 그러면 이 부문은 앞서 하고 있던 모든 일을 그야말로 내던지고서 가장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간다. 도움을 줘야 할 지역사회가 정말로 뭘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이런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의 한 형태로 여겨진다. 이들의 삶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조직이 자신의 역할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채굴할 데이터와 서사를 담고 있는 자본 말이다. 선의를 가진 학생, 학자, 전문가들이 줄줄이 가난 깊숙이 내려와 필요한 걸 뽑아내고는 고립된 자신들의 집단으로 물러가 가난 사파리에서 가져온 인공 유물을 검토하는 것이다. (…) 이것은 빈곤산업이다. 이 산업에서는 선량한 사람들도 사회적 박탈로부터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이 부문의 모든 사람이 경력을 유지하고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 문제가 남아 있어야 이 산업이 성공할 수 있다. 가난을 뿌리 뽑는 게 아니라 낙하산으로 와 ‘업적’을 남겨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원과 전문지식을 철수해 훌쩍 떠날 때 뚜렷한 업적이 없더라도 간단히 조작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게 이 부문의 전통이다. _148쪽~152쪽.
우리는 생각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왜 저래?” 또는 “쟤들 부모는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에는 간단한 이유가 있다. 우리를 언짢게 하지 않으면서 아동학대와 방치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 살균 처리된 이미지가 이 문제의 실체를 왜곡한다. 이런 사진은 희생자가 시간 속에 얼어붙은 채 우리가 그 안으로 손을 뻗어 위험으로부터 빼내어주기를 기다리는 영원한 아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낳는다. 이들은 어린아이로서 무한한 연민과 동정을 받는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법적 과실을 저지르는 순간,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전반적인 태도가 달라진다. 우리가 인정하든 않든 방치되고 학대받은 아이, 난폭한 청소년, 노숙인, 알코올 중독자, 약물 중독자, 그리고 끔찍하고 무책임하며 폭력적인 부모가 실은 삶의 다양한 단계에 있는 동일 인물인데도 말이다. _170쪽.
나는 내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기까지는 내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기 시작하기까지는 내 인생이, 또는 실로 내가 어떤 식으로든 흥미롭다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가난 서사를 거듭 반복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하기까지는 내가 말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대본에서 벗어나면, 수수께끼같이 커튼이 닫히고, 수수께끼같이 조명이 희미해지며, 수수께끼같이 마이크가 멎었다. BBC는 내게 더 이상 어떤 일도 제의하지 않았다. 뉴스 안건은 반사회적 행동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가버렸다. 내가 다른 프로그램을 권유했으나 그들은 답장도 하지 않았다. _184~185쪽.
내 경험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인종주의자라 특징지을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거나 인종주의 방식으로 의견
을 말한다. 이는 이들이 자란 환경 때문이거나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아주 심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절한 상황에서 이들을 달리 설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인종주의자로 치부해버리는 건 이들이 구제될 수 없고 미래가 없음을 암시한다. 가망이 없음을 암시한다. 노골적인 비난은 배제의 느낌을 강화해 사람들을 극우의 품에 안겨줄 위험이 있다. _257쪽.
정체성 정치는 사회 이동성이 가장 큰 사람들, 즉 정치에 가장 잘 참여할 수 있고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을 한다. 여성과 소수집단이 대변되는 정도로 미루어볼 때 공적 생활과 담론이 좀더 포용적이고 다양해 보이는 경우에도, 지위가 오르는 건 중간계급 여성, 중간계급 성소수자, 중간계급 유색인인 경향이 있다. _271쪽.
정치·종교적 부족주의에 시달리는 세계 문화 속에서 우리가 어딘가 틀린 건 아닌지 때때로 자문하는 일은 급진적인 정치 행위가 된다. ‘좋은 사람들’인 우리가 역사에서 언제나 올바른 편에 있고 또한 역사의 올바른 편에서 일어나는 모든 논쟁에서 언제나 올바른 편에 있다는 건 다소 편리하지 않은가? 무한한 우주 속 수십억 년 동안 존재해온 행성에서 모든 것에 대해 옳을 가능성은 분명 희박하다. 안 그런가? 이건 약간의 우연의 일치인 걸까, 그렇지 않은 걸까? 실로 생각해보면 그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신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믿기 어려운 생각을 품을 수 있을까?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우리 자신의 부조리성을 떠올리게 되지 않는다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 주장할 수 없다. _294쪽.
엄마는 자기 삶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사고방식과 존재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 기회가 없었다. 엄마에게는 비교 대상이 없었다. 내가 나보다 계급이 높다고 인식한 사람들과 섞일 때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불안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는 술이나 약물에 취해 있지 않은 한,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뒷걸음질을 쳤다. 심지어 자식으로부터도. 엄마가 자신을 낮잡아 본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한때 엄마의 눈에서 증오만을 봤으나 이제 고통, 트라우마, 그리고 연결되길 갈망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깊은 절망감을 본다. 엄마의 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본다. 짧았던 엄마의 삶에서, 내가 진실을 은폐하는 세계로 돌아가고픈 유혹에 넘어갔더라면 맞이했을 나의 다른 미래를 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태어났을 때 그들 자신이 아직 아이였던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게 된다. _333쪽.
🖋 출판사 서평
장면 1. 올해 초,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영화 〈기생충〉 촬영지를 관광코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관광코스로 지목된 곳은 대부분 영화 속 기택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의 주변 풍경을 이루는 장소들로,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이에 대해 “가난의 풍경을 상품화하고 전시 거리로 삼”는 ‘가난 포르노’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장면 2.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낙후된 지역의 재래시장과 쪽방촌을 찾는 ‘서민 코스프레’를 시작한다. 소외계층과 서민들의 삶을 살피겠다고 말하며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영상을 언론에 내보내지만, 그 현장에서 감지되는 부자연스러움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듯 가난과 불평등이 피상적인 배경으로 소비되는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코틀랜드 하층계급 출신 래퍼이자 칼럼니스트인 대런 맥가비가 쓴 『가난 사파리』에는 바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이 책은 2017년에 영국 그렌펠타워에서 발생한 화재 이야기로 시작한다. 맥가비는 끔찍한 인명 손실을 불러온 이 사건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을 ‘가난 사파리’라고 부른다. 이곳에 살던 하층계급 사람들의 존재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고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지만, 이 화재를 계기로 이곳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진열창이 열렸다. 처음에 그 뜻은 고귀했을지 모르지만, “진열창 앞 안전한 거리에서 원주민을 잠시 둘러보는 사파리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그에 대해 서서히 잊어버리고 만다”(12쪽)고 맥가비는 적었다. 그러므로 ‘가난 사파리’는 ‘서민 코스프레’를 하고 잠깐 체험하는 ‘가난 포르노’의 다른 이름이다.
맥가비는 이렇게 볼거리로 전시되는 사람들의 감정과 관심사에 목소리를 부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다시 한 번 독자들을 일종의 사파리에 초대한다. 그러나 이곳엔 미학적 대상이 되어버린 가난의 풍경, 통계를 통해 추상화된 가난의 숫자, 또는 전문 정책가·연구자들이 채집한 가난의 유물이 없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분노하는지에 관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공명”하고자, 독자들을 가난이라는 경험 내부로 깊숙이 데려간다.
“조지 오웰이 살아 있다면 사랑했을 책”
가슴 시린 성장담과 신랄한 사회비평의 조합
『가난 사파리』의 저자 대런 맥가비는 래퍼 로키로 알려진 스코틀랜드의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활동가이다. 알코올 중독증이 있는 폴록의 가정에서 자라 뮤지션을 꿈꾸던 아버지, 그리고 영국에서 폭력의 대명사로 알려진 고블스의 고층 아파트에서 성장한 어머니 사이에서 1984년에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글래스고 남부의 빈곤지역 폴록에서 보냈는데,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엄마뿐만 아니라 동네와 학교의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여기서 그를 구해낸 것은 언어였다. 하지만 그 언어란 책과 그다지 관련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꾸준히 책을 읽어온 사람이 아닐뿐더러 어렸을 때는 책을 끝까지 읽지도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언어감각,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든 (상처를 비롯해) 자신의 모든 걸 토해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는 글쓰기와 힙합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지역단체와 방송국의 눈에 들어 스코틀랜드 BBC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스코틀랜드경찰 폭력감소반의 첫 상주 래퍼로서 교도소 재소자 대상 랩 워크숍 진행자,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활동가 등으로도 일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가난의 내부자였던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 들려주는 ‘개천의 용’ 이야기이자 계급 상승의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개천을 떠나지 않은 어느 래퍼 또는 사회활동가의 작은 성공담이다. 이때, 그 성공이란 가난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늪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파괴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의 성공이다. 맥가비는 열아홉 살에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이후에 더 큰 고통과 우울증과 정신이상에 시달렸으며, 오랫동안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로 지냈다. 이 책에는 엄마를 향한 미움과 분노가, 엄마의 죽음 이후에 슬픔과 자기혐오로, 다시 엄마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개인의 자기고백이 담겨 있다. 동시에, 그는 예민한 지성과 침착한 감성으로, 자신이 경험한 가난, 학대, 폭력, 중독, 고통, 나아가 이를 둘러싼 사회 상황과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 가난과 계급을 둘러싼 추정과 편견들, 자신이 세상에 가졌던 믿음과 좌우파의 입장, ‘빈곤산업’에 이르기까지 가난을 구성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철저히 분석해내며, 현재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맥가비는 자기연민, 무기력, 좌절감, 고립감을 떨쳐내고, 끝없는 자기의심이 다른 국면에 진입하는 순간, 개인의 힘을 신뢰하게 되는 순간을 때로는 통렬하게,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위트 넘치게 랩의 리듬과 속도감에 담아낸다. 32장으로 구성된 글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하나만 골라 읽어도 되게끔 각 글이 완결성을 지니고 있으며, 각 장엔 “죄와 벌”(도스토예프스키), “1984”(조지 오웰), “트레인스포팅”(어빈 웰시),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사울 D. 알린스키)처럼 관련된 책 제목이 붙었다.
가슴 시린 성장담과 신랄한 사회비평이 어우러진『가난 사파리』는 가난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가난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관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가난 서사를 비틀고 가난에 대한 관념을 쇄신하는 강렬한 글쓰기로 인해, 맥가비의 이 첫 책은 2018년,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어한 조지 오웰의 뜻을 기려 그해 영국에서 가장 탁월한 정치적 글쓰기에 수여하는 오웰상을 받았으며, 이 책에 대해 오웰상 심사위원장 앤드루 아도니스는 “조지 오웰이 상을 주고 싶어했을 바로 그 책”이라고 밝혔다.
“계급은 거대한 상처다”
다시, 가난과 불평등을 이야기하기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는 인종, 성별, 국적 등을 가리지 않고 전파된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감염자들은 사회 취약계층이 많다는 통계가 있다. 이들은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재난 상황에서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계급이 구분선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배제되는 상황은 질병뿐만 아니라 정치, 미디어, 주류문화, 예술 등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대런 맥가비는『가난 사파리』에서 “계급은 거대한 상처”라고 단호히 말한다. “의사의 충고를 맹목적으로 믿건, 교사의 평가나 훈육을 받건, 사회복지사나 아동 자문 전문가와 면담을 하건,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져 판사 앞에 나서기 전 변호사의 자문을 받건, 모두가 알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바로 계급이다.”(213쪽)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 중 하나도 가난의 ‘냄새’라는 모티브였다. 가난한 기택 가족은 몸에 밴 반지하 냄새를 숨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회운동의 중심이 정체성 정치로 옮겨가고 계급 정치가 낡은 것처럼 취급되는 시대, ‘흙수저’, ‘휴거’, ‘이백충’처럼 가난을 혐오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모욕하도록 하는 말이 떠도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다시, 가난과 불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난 사파리』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둘러싼 풍부한 이야깃거리, 나아가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신이 십대 시절부터 사회주의자였다고 밝히는 맥가비는 가난을 이야기하는 방식, 좌우파 모두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며 가난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우파는 물론, “보이지 않는 힘이나 구조, 체제 또는 모호하게 규정된 엘리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좌파에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좌파가 지적하는 것들이 문제의 일부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모든 문제가 보통 사람이 가진 정도의 전문적 식견을 넘어서는 일인 듯이 논의”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역할과 개인의 힘을 간과하며, “기층에 있는 사람들이 겪는 가난의 세세한 내용도 설명해주지 못한다”(194쪽)는 것이다. 따라서 맥가비는 문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우파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진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발문을 쓴 장일호 기자 또한 이 책의 이야기에 한국의 상황을 겹쳐 쓰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빈곤은 이런 방식으로 산업화되었다) 나에게도 있다는 걸, ‘가난한’ 우리도 이 세계의 일부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이자 시민이라는 걸, 맥가비는 자신이 경험한 ‘가난 사파리’를 우리에게 기꺼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증명한다. 나는 이 사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용기를 얻었다”(358쪽)고 적었다.
이때, 맥가비가 안내하는 사파리 여행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정직함, 그리고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관찰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자기 안으로 비판적 시선을 돌리는 태도다.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틀린 적이 많았다”(343쪽)고 밝히고, 또 지금도 자신의 어떤 생각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정체성 정치 비판을 비롯해 이 책에 표명된 여러 견해는 논쟁적이지만, 그라면 설득력 있는 비판에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것이다(가령, 「엿보는 자들의 밤」에서 맥가비는 중간계급이라는 이유로 한 여성 미술가를 공격했다가 미술가가 예상치 못한 곤경에 처하고 상처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이렇듯 맥가비는 기꺼이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 지금까지의 삶 전체를 현미경 위에 올려놓고,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과 자신의 “스트레스와 분노와 정치에 대한 예단이라는 신기루를 꿰뚫어보는 방법”을 배워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에 입각한 명철하고 분석적인 글쓰기로 인해 『가난 사파리』는 가난과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을 향한 편견과 추정과 혐오가 가득한 우리 사회에 일종의 해독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