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표 교수 '니까야로 읽는 반야심경' /bbs] (8,9회)
행(行): 상카라(조작하다) -- 오온을 자아라고 취해 가지고 사는 삶
무명을 연해서 행(내가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 그래서 분별(識)이 일어난다
자기가 알고 있는 분별의 의식을 투영해서 밖에 개념과 형태(名色)로서 세계를 보게 된다
그 명색을 대상으로 해서 보고 듣는다.. 육입(六入)
(명색이 없으면 육입이 작용하지 않는다)
(이름 없는 것을 보면 내가 보았다는 생각을 못 일으킨다)
-->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아'라는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삼사라 -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실천하여 '자아'라고 생각해왔던 몸, 감정, 이성, 의지, 의식 등이
모두 인연에 따라서 순간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생각일 뿐,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이러한 '자아'로 인해서 생겨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 여기이다.
지금 여기 이 자리를 정확하게 잘 보는 사람은, 이 자리는 결코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 자리가 즐거움도 되고 괴로움도 되는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바로 공(空)이다 (모든 것들과의 관계 속에 있다)
그래서 과거나 미래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 여기에 충실해야 한다
이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곧 열반인데 우리는 자꾸 뭔가 좋은 걸 얻으려고만 한다
"사리자여! 형색을 지닌 몸(色)은 공성(空性)이고, 공성이 실로 형색을 지닌 몸이다.
형색을 지닌 몸은 공성과 다르지 않고, 공성은 형색을 지닌 몸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형색을 지닌 몸은 공성이고, 공성이 형색을 지닌 몸이다.
느끼는 마음(受), 생각하는 마음(想), 조작하는 마음(行), 분별하는 마음(識)도 실로 이와 같다."
세간의 실상 즉 나와 세계의 참모습은 공성(空性, sunyata)이다.
계속 통찰하는 것(이것이 반야), 반야로써 계속 관조할 때 나타나는 것이 공(空)
그래서 반야사상과 공사상은 항상 맞물려 있다
최후에 가면 모든 관념은 없다, 산야가 다 멸한다
(산자나띠를 완전히 벗어남) ('모든 상을 떠남' /금강경)
보는 현상, 듣는 현상은 있지만 '보는 놈'은 없다..
우리는 살고 있지만, 우리 몸 속에 '살고 있는 놈'은 없다..
우리는 '업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작자'(명사적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업설을 말씀하시면서 작자가 아닌 업보만 말씀하심
(우리는 명사적 존재 아닌 동사적 존재)
'삭신이 쑤신다'라고 할 때 삭신=색신(色身)
존재의 실상은 동사인데 그것을 명사로 표현하니까
마치 명사가 동작하는 것처럼 착각하여 ('비'가 온다?)
마치 자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 공성
공(空)은 '명사적으로 보지 말고 동사적으로 보라'는 것인데
이것을 자꾸 '없다'고 보니까 자꾸 허무주의라는 오해가 생긴다
※12연기에서 식(識의식): 빨리어 원전을 보면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식' (누적된 식) <도일스님 /bbs>
첫댓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