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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답하다’에서 얻은 일상의 기쁨
- 역사학자 낙암 정구복 박사의 유익한 답변에 감동 -
윤승원 수필문학인, 前 대전수필문학회장
올사모(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카페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써왔다. 이 카페에는 한국사 관련 지식 코너뿐만 아니라 ‘창작 글 마당’도 있어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을 시와 수필 형식으로 올리기도 한다.
이 카페에 글을 올리면 좋은 점이 있다. 카페 운영자인 역사학자 낙암 정구복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따뜻한 정성이 담긴 소감이나 자상한 독후기(讀後記)를 댓글로 읽을 수 있다.
궁금증이 있으면 ‘한국사 문답’코너에 질문도 한다. 질문을 하면 신속한 답을 구할 수 있다. 답도 형식적인 답변이 아니라 깊이 있는 학문적 식견과 자료를 토대로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옛 시절, 학문을 하는 선비들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질의응답을 통해 귀한 깨달음을 얻었고, 번뜩이는 지혜와 학설도 나왔다. 질의응답 속에는 인문학의 본령인 문사철(文史哲)이 담겼다.
최근에 전문 학자에게 질의해 보고 싶은 궁금증 하나가 생겼다. 시대적 거대 담론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품게 된 사소한 의문에 대한 질의였다.
■ ‘장원(壯元)’ 한자 표기에 대한 질의[질문자: 윤승원]
최근에 유튜브에서 한학(漢學)에 능한 어느 학자풍의 선비 한 분이 우리가 현재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장원(壯元)’의 한자를 ‘장원(狀元)’으로 써야 맞고, 壯자를 쓰면 틀린다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일리(一理)가 있어 보입니다.
제가 벼슬 등용문인 ‘장원급제(壯元及第)’는 아니어도 문단에서 권위 있는 문학지의 ‘지상 백일장(誌上 白日場)’에서 과분하게도 ‘장원(壯元)’ 당선되어 큰 상과 함께 지면에 크게 소개된 적이 있어, ‘장원’이란 글자만 보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남모르게 가슴 설레게 했던 글자이기도 하지요.
▲ 문학지 誌上 백일장 <장원>당선 소감(30代 시절) - 本審 심사위원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전상국(소설가)
壯元을 狀元으로 써야 한다는 한학자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힘셀 壯’자는 장사(壯士) 씨름대회에서 1등을 뽑을 때나 어울리는 글자이지, 글을 잘 써 1등으로 뽑혔거나 퀴즈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1등을 한 사람에게 붙여주는 명칭으로는 ‘문서 狀’자를 써서 ‘狀元’이라 해야 맞는다는 것이지요.
과거 인기 TV프로그램 ‘장학퀴즈’를 처음 만든 SK(선경)그룹이 중국에 진출해서도 장학퀴즈 프로그램 <SK장원방(狀元 榜)>을 방영하여 크게 히트를 쳤다는데, 그곳에서는 프로그램 이름(간판)과 1등 장원을 ‘狀元’이라고 표기했다고 합니다.
▲ 중국 장학퀴즈 <SK장원방(狀元 榜)>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의 1등을 ‘狀元’이라고 쓰지, ‘壯元’으로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과거시험 제도 하에서 임금이 최종적으로 두루마리 형태로 된 ‘장원급제자 명단’을 펼쳐 볼 때, 종이 맨 첫머리에 <1등 아무개>가 보이게 되므로, 이를 일컬어 ‘으뜸 원(元)자’를 넣어 ‘장원(壯元)’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1】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어떤 유래로 ‘壯元’이라는 글자[용어]를 쓰게 됐는지,【2】왜 과거시험이라는 뜻에 부합하는 ‘문서 장(狀)’자를 쓰지 않고 무사(武士)나 역사(力士)의 뜻을 가진 ‘힘셀 장(壯)’자로 쓰게 됐는지,【3】꼭 그렇게 써야 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역사 기록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평생 한국사를 연구해온 낙암 정구복 박사의 답변은 신속했다. 필자가 질문을 한 지 불과 한 나절 만에 진지한 답이 올라왔다.
비록 한 나절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올라온 답이지만, 학자는 이런 깊이 있는 답을 구하기 위해 기본 지식 이외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부족한 부분은 해당 분야 권위자에게 자문도 했을 것이다.
학자의 자상한 답변 글 행간에서 정성을 읽는다. 공력도 배어난다. 전문분야 학자로서 겸손한 인품도 담겼다. 상대의 인격을 배려하는 존중과 따뜻한 정까지 담았다.
10여 일간에 걸쳐 학자와 주고받았던 문답 과정도 생생한 공부가 되고, 문답 과정에서 등장하는 자문(諮問) 학자들의 깊이 있는 견해도 어느 한 자 빼놓을 수 없는 신선한 학문적 요소를 담고 있어, 댓글로 이루어진 전 과정을 날짜순으로 소개한다.
■ ‘장원(壯元)’ 한자 표기에 대하여 [답변자: 낙암 정구복]
저도 이제야 장원을 ‘狀元’으로 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사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당나라에서 과거제도가 실시되었는데 중국에서는 과거 급제자 1등을 狀元으로 표시했고, 중국의 한자사전에는 壯元이라는 사용 예는 보이지 않습니다.
2) 우리나라에서 고려시대의 금석문(묘지명)에 장원이라는 표현은 모두 狀元으로 썼습니다.(10건의 사례가 찾아짐)
3) 우리나라에서 과거 급제 자 1등을 壯元으로 기록한 예는 조선태조실록부터 고종 실록까지 163건이 검색됩니다.
4) 한국어 한자사전(단국대 동양문화연구소 간)에는 壯元으로 서술하고 狀元으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 중에 정약용의 아언각비를 인용하여 임금에게 과거 합격자의 명단을 올릴 때에 첫머리에 쓴 사람을 狀元으로 했다는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이희승의 국어사전에는 壯元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입니다.
6) 왜 조선 초기부터 장원을 壯元으로 썼는지는 앞으로 연구되어야할 것입니다.
5) 왜 조선 초기부터 고려시대 쓰던 狀元을 壯元으로 바꾸어 썼는지는 아직 연구된 바 없습니다.
【답변자 견해: 낙암 정구복】
1) 저의 현재의 소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壯자의 첫 번째 뜻은 ‘장사’라는 뜻 보다는 ‘크다’는 뜻의 ‘최고’라는 의미도 가집니다. 그런데 狀자의 첫 번째 뜻은 ‘형상’이라는 뜻과 ‘문장’, ‘문체’라는 뜻이 있는데, 이 경우 ‘장(狀)’이라고 읽습니다.
과거의 시험은 단순히 문장 시험만이 아니라 경전시험과 문장 시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狀元’을 문장시험을 보는 경우에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조선 시대 과거제도를 일생동안 연구한 학자에게 문의했더니 장원(壯元)을 ‘狀元’으로 표현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3) 조선 초기에 왜 실록에서 장원을 ‘壯元’으로 썼는지는 앞으로 연구해야할 과제입니다. 시험이나 선발에서 1등으로 뽑힌 사람을 ‘壯元’으로 표시한 역사는 조선 500년과 그 이후 100년의 역사를 가집니다.
감사합니다.
▲ 낙암 정구복 박사 저서 프로필
【질의자 댓글(감사의 인사): 윤승원】
학문이란 바로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오늘 정 박사님이 제게 들려주시는 자상한 해석이 담긴 답변이야말로 쉽게 얻기 어려운 ‘값진 선물’입니다.
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하여 무한 깊이가 느껴지는 고찰(考察), 분석(分析), 방대한 자료조사(資料調査)와 더불어, 구증(具證)이 더 필요로 하는 자료는 또 다른 전문 학자에게 자문하여 답변해 주시는 놀라운 학자님의 성심성의에 감동합니다.
정 박사님의 이 같은 세밀한 답변을 얻게 된 사람으로서는 모처럼 희열이 넘칩니다. 저의 질문과 정 박사님의 답변을 그대로 옮겨만 놔도 공부가 되는 한 편의 수필이 탄생할 듯합니다. 이래서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카페가 유익한 ‘학문의 장’이요, 따뜻한 정이 흐르는 ‘토론의 마당’인 것입니다. 유익한 공부가 됐습니다.
앞으로 학계에서 좀 더 연구해야 할 과제를 정 박사님이 특별히 지적하여 언급해 주신 것도 질문자인 저의 의문에 대한 값진 수확입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그 옛날 충남 청양 시골 저의 집 사랑채 마루에서 선친과 숙부님, 두 형제분이 논어(論語) 한 대목을 놓고 질의 응답 형식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시던 흥미진진한 광경이 문득 떠오릅니다.
2020.9.9. 윤승원 올림
[댓글 / 낙암 정구복] 2020.9.10.
제가 몰랐던 사실을 질의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질의에 대한 답변은 충분치가 않아서 질의에 대한 댓글로 올렸습니다. 이에 대한 준비가 더 되면 답글 형식으로 올리고자 합니다.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이 이런 내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답글은 내 주 중에 올리겠습니다. 국어학자들에게 자료 조사를 의뢰하였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주십시오. 윤 선생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아름다운 보자기로 감싸 알려집니다.
참으로 부지런하십니다. 인간에게 부지런함은 제1의 공덕이고 더구나 예의가 바르심은 주위 분들로부터 도타운 우정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거기에 윤 선생의 문장력이 곁들여 선생과 의견을 나눈 사람은 모두 어사화를 쓰고, 초헌을 태워주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거기에 옛 인연을 잊지 않고 계속하며, 새로운 인연을 맺으려고 노력하시는 인생관은 우리가 존경해야할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답 / 윤승원] 2020.9.10.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요소[과제]가 있다는 정 박사님의 처음 답변에 그렇잖아도 후속 답안이 이어지리라 내심 기다려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정 박사님과의 질의응답을 수필 형식으로 정리한 것은 저의 조급한 성격이라기보다 ‘글감’의 신선도와 학문적 가치로 볼 때, 그 비중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공직에 있을 때 빠른 정보보고서 작성을 위해 새벽에 출근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렇게 애써 작성한 보고서가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희열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모든 피로가 일시에 풀리지요.
언론사 기자는 특종을 보면 참을 수가 없고, 글을 쓰는 작가는 좋은 글감을 보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과분한 격려 말씀에 송구스러우면서도 힘이 납니다.
※ 정 박사님 댓글 중에 과분하게도
<…어사화를 쓰고, 초헌을 태워주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초헌’이란 말은 보통 ‘초헌(初獻)’만 알고 써왔기에 ‘초헌(軺軒)’이란 뜻은 생소하여 찾아보았더니, ‘조선 시대,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가마 형 수레’[사진 참조]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렇듯 정 박사님 댓글 한 대목에서도 새로운 지식 습득과 더불어 재미 있고 유익한 역사 공부를 하게 되니, 감사한 일입니다.
‘장원’의 한자어 표기 질의에 대한 답변
낙암 정구복
시험에서 1등을 장원이라 하는데 그 한자 표현이 ‘壯元’인가, ‘狀元’인가를 9월 7일자에 질의하신 윤승원 님의 한국사문답에 대하여 댓글로도 곧바로(9월8일) 답변을 두서없이 올리고, 정식 답변은 후에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한 글입니다. 이에는 댓글로 올렸던 일부 내용이 중복된 점이 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1) 장원이란 말은 과거제도에서 1등으로 합격한 사람을 뜻하는데 과거제도는 당나라(618~907)에서 622년부터 과거제도가 실시되었고, 이후 청나라 때까지 지속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재위949~975) 때인 958년에 경전시험과 문장시험, 잡과의 시험을 보는 과거제도가 실시됨. 중국에서는 과거 급제자 1등을 ‘狀元’으로 표시했고, 현재 중국의 한자사전에는 ‘壯元’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음. 과거제도가 실시된 중국, 조선, 월남에서 과거 합격자 1등을 ‘狀元’으로 기록했다고 한다(권중달 교수 자료 제공) 과거에서 군인을 뽑는 무과시험제도가 생긴 것은 우리나라에서 조선 초기 태조 때부터임.
2) 현재까지 중국에서 발행한 한자사전(中文大辭典, 漢語大詞典, 사해, 사통)에는 ‘狀元’이라는 단어만 나오고 ‘壯元’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음. 그런데 중국에서도 무과시험제도가 실시되었다고 하니 ‘壯元’이라는 말이 무인 중 힘센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닌 듯함.
3) 우리나라 국어사전의 설명에는 북한에서 나온 “조선말 대사전”에서는 壯元으로, “우리말 큰사전”, “금성국어대사전”, 이희승 편 민중서관 “국어대사전”, “17세기 국어사전”에서는 모두 ‘壯元’으로 되어 있음.(홍윤표 교수 제공)
4) 1979년 “고법전용어집”(법제처)에는 ‘狀元’ 그러나 영조대의 “속대전”에는 무과조에는 ‘壯元’, 형전 囚禁조에는 ‘狀元’으로 되어 있음(박병호 교수 제공) 따라서 법제처의 “고법전용어집”에는 부실한 것으로 판단됨
5) 단국대동양학연구소편 “한국한자어사전"에는 ‘壯元’ 이에는 정약용의 ‘아언각비’의 내용이 인용 언급됨- 과거급제자 명단을 올리는 문서에 첫머리에 써졌다고 해서 ‘狀元’이라 했다고 함
6). 표준 국어대사전 壯元 / 狀元
‘장원급제자’란 용어의 구체적 사용 예
1) 고려시대금석문에는 ‘장원’이라는 기사가 10번 나오고 있는데 모두 ‘狀元’이었음.(김용선 저 “고려묘지명집성” 참조)
2)고려시대의 역사서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검색해 본 결과 ‘狀元’이 많고, ‘壯元’은 두 번 나오는데 이는 인쇄 시 오류거나 조선 세종대의 표현이 아닐까 판단함(고려사 권74 지28 및 지21 가례조).
3) 우리나라에서 과거 급제 자 1등을 壯元으로 기록한 예는 조선태조실록부터 고종실록까지 163건이 검색된다. 국사편찬위원회 실록번역본에서 검색한 결과 62건이 ‘壯元’으로 6건이 ‘狀元’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정확하지 않다. 태조실록의 장원기사가 검색에서 누락되는 점과 ‘壯元’ 기사 전체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4)1690년에 편찬된 “역어유해 譯語類解”라는 책, 1721년 “오륜전비언해”, 1775 “역어유해보” 등의 역과 과거 시험에서도 1등을 ‘壯元’으로 표기함(홍윤표 교수 제공)
역과 시험에서 일등은 ‘壯元’, 2등은 ‘榜眼’이라고 칭했음, 3등은 탐화랑이라고 칭했다고 함
5) 근대초기의 외국어 사전(한영, 한불사전), 일제기의 박종화, 홍명희 등의 소설에도 ‘壯元’으로 표현함.(홍윤표 교수 제공)
조선시대 ‘狀元’으로 쓴 예
1588년 도산서원본의 “소학언해”. 1721년 “오륜전비언해본”에도 ‘壯元’과 ‘狀元’이 함께 사용됨(홍윤표 교수 제공)
결론
1) ‘壯’자의 뜻은 크다, 굳세다, 건강하다, 장년의 뜻이 있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은 장하다는 뜻으로 알았다고 할 수 있고, ‘狀’자는 중국에서는 음이 모두 장이고, 뜻은 1) 형상, 모습, 2) 진술, 3) 문서라는 뜻으로 중문대사전에서 설명되고, 우리나라 자전에서는 음이 상과 장이 있다고 했음. 이 글자는 뜻에 따라 두 가지로 발음했다고 생각함. 조선시대의 자전에서는 거의 ‘상’자로 알려짐.
2) 조선시대 중국의 예를 안 사람은 ‘장원’을 ‘狀元’으로 표기한 예가 있으나 조선조 이후에는 장원은 문장시험을 보는 과거든, 경전 시험을 보는 진사 시험이든, 통역관 시험이든. 의과시험이든 1등을 모두 ‘壯元’으로 써 왔다고 판단됨. 그러므로 이후 노래자랑이든 씨름이든 시합에서 1등을 장원했다는 용례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글 잘 짓는 것만을 장원으로 사용하지 않았음.
3) 왜 조선 초기부터 고려시대 쓰던 ‘狀元’을 ‘壯元’으로 바꾸어 썼는지는 아직 연구된 바 없으나 본인의 생각으로는 ‘狀’자도 음이 장자이므로 음이 같은 ‘壯’으로 대치해 쓴 것으로 판단됨. 고려시대 ‘장원’을 壯元으로 사용한 예에 대한 검토는 앞으로 더 세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나 이는 조선초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함. 조선시대에 보편적으로 ‘壯元’으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음.
4) 장원을 반드시 ‘狀元’으로 써야 옳고, ‘壯元’은 틀린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적 관행을 무시하는 중국 편향적인 견해로 생각됨. 중국에서 ‘壯元’이라고 쓴 사례는 없다고 함.(권중달 교수 제공).
권중달 교수님의 견해에 의하면 ‘狀’자와 ‘壯’자는 글자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잘못 쓴 것이라는 견해를 표했지만 음도 같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만 대치해 쓴 것으로 판단됨. 조선 시대의 사관들이 실록에서 두 글자를 구별 못해서 이런 착각을 가져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음.
본 원고 작성에 도움을 주신 여러 교수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문제는 앞으로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좋은 질문을 해주신 윤승원 선생에게 감사를 드린다.
2020. 9.16. 정구복 올림
‘글자 하나’ 가벼운 질문에 대해 정구복 교수님은 단순히 넘기지 않습니다. 깊이 있는 학술적 옥고 답을 주셔서 질문자가 크게 감동합니다.
방대한 자료조사와 함께 전문 학자의 고견까지 두루 담아 전해 주시니, 단순히 수필 한 대목으로 언급하기엔 학문적 깊이와 가치가 크게 느껴집니다.
“壯元은 狀元으로 써야 맞는다.”라고 강조하면서 당초 이 문제를 언급한 저명한 한문학자는 “그토록 고쳐야 한다고 누누이 지적했음에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라고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정구복 박사님이 국내 석학이신 국문학자 견해와 역사학자 견해를 종합하여 고찰해 주신 옥고 답을 살펴보건대, 역사적 사실과 그런 글자를 써온 내력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실로 이러한 공부야말로 존경하는 역사학자이신 정구복 교수님의 자상함이 아니고는 듣기 어려운 귀한 답변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울러 바쁘신 가운데도 훌륭한 학문적 고견과 가르침을 주신 권중달 교수님, 홍윤표 교수님, 박병호 교수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귀한 공부가 됐습니다.
2020.9.16. 윤승원 올림
■ 이어진 답글
낙암 정구복 2020.9.17.
한문학 박사 유풍연 교수님에게도 자문했습니다. 그 분도 처음 알게 되었다면서 일본의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 張三植의 " 대한한사전"에는 壯元을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임을 밝힌 '國'자라고 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윤표 교수님은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한글학회의 처사를 맹비난하였습니다. 그 분은 조선시대 우리 문헌에 나오는 한자 표기를 일생동안 연구하신 분입니다. 이 분도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한자의 기초교육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답] 윤승원
정 박사님 자문에 귀한 답을 주신 한문학 박사 유풍연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한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신 홍윤표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결론적으로 한자 기초교육의 중요성을 댓글 옥고로 다시금 일깨워주신 정구복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본 올사모 카페에서 정구복 교수님과 나눈 일련의 질의응답 내용은 앞으로 학계는 물론이고,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학문적인 자료로 귀하게 쓰일 것입니다.
※ 끝으로 <한문을 잘 알려 드립니다[한잘알]> 타이틀로 온 국민을 대상으로 유익한 영상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계신 한문학자 김언종 박사님(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명예교수, 대만국립사범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전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께도 처음 인사드리면서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 2020.9.17 윤승원 올림
= 댓글 추가 =
[의견] parkkyungouk 20.09.19 09:43
참으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짧은 연구지만 개별 용어의 개념에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낙암 선생님께서의 이 연구는 더욱 돋보입니다. 어제 저녁에도 양안의 연구들을 다시 보면서 이제까지의 소유주로 판단한 ‘주’를 ‘경작자’로 대치에 보니 너무나 연구의 허실이 다시금 크게 보였습니다. 연구자들이 법전 해석마저 제대로 못한 사례가 허다하니 말입니다. 우리 학문의 수준일가요. 아니면 대충 처리하는 개인들의 연구 태도일가요. 그러나 장원을 짚어 볼 수 있는 학자가 계시고 이를 연구하는 낙암 선생님이 계시는 한 더욱 발전하리라 보니다. 역과 시험에서 일등 장원, 2등은 榜眼, 3등은 探花郎이라 했으나, 단국대의 ‘한국한자어사전’에는 문과일 경우 모두 사용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 ‘榜眼’이 ‘放眼’ 으로, 또한 亞元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네요.
[답] 낙암 정구복 20.09.19 21:57
윤선생과 박 선생님 감사합니다. 2등을 방안, 3등을 탐화랑으로 하는 표현도 원래 대과급제의 경우에 사용된 용어인데 홍윤표 교수님이 제공해주신 ‘역어유해’라는 책에 역과 출신자에게도 그 용어가 사용되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과거급제자에 대한 용어는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할 것입니다. 아원은 물론 차석장원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를 조선 시대 전공자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사철 인문학자들의 소견을 우선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언종 교수에게 전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 분 덕에 중국에서와 한국에서의 사용한 실례를 알게 된 점 감사드립니다.
[답] 윤승원 2020.9.20. 07:09
김언종 교수님께도 이메일로 전해 드렸으나 아직 답은 없습니다. 참으로 알기 쉽고 재미있게 한자를 강의하시는 한문학의 대가이십니다.
[답]낙암 정구복 2020.9.20.10:59
‘壯’자와 ‘狀’자는 조선 초기 어린이에게 한자음과 뜻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훈몽자회’라는 책과 천자문에 나오지 않는 글자라는 점도 새로이 확인했습니다.
‘狀’자의 중국 발음은 ‘장’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뜻에 따라 ‘상’과 ‘장’으로 읽었는데 이런 구분은 15세기경부터 그랬다고 합니다. 홍윤표 교수님의 교시입니다. 이는 한자를 우리식으로 표현한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문학의 대가 김언종 교수님과 나눈 이메일 대화
- 보낸사람: 김언종[교수 / 한문학과]
- 받는사람: 윤승원
- 날짜: 20.09.20 20:56
■ 메일내용 :
저는 * 볼일 없는 사람이고 어물거리다 맞은 정년 후에 하도 할일이 없고 심심해서 한잘알이란 괴이한 이름으로 유튜버 질을 하고 있습니다
壯元이라 쓰면 안 된다는 것도 정약용 선생의 雅言覺非에서 본 것일 뿐입니다.
제가 한문학의 대가가 맞기는 한데 ‘돌’자와 ‘리’자를 대가의 앞과 뒤에 배치해야 정확한 말이 됩니다.
연세도 적지 않으실 듯 한데 공부를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不知老之將至라고 했던 분과 많이 닮은 분들이시군요...
活到老, 學到老. 生命不止, 學習不止...
[답 / 윤승원]
귀한 답장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장에서도 한문학의 대가 명성에 합당한 겸허한 인품을 읽습니다.
재치, 재미, 유익, 제가 좋아하는 요소가 강의에도 들어 있고
짧은 답장에도 ★처럼 박혀 있어 읽는 즐거움을 줍니다.
고맙습니다.
2020.9.20.
윤승원 올림.
첫댓글 제가 몰랐던 사실을 질의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질의에 대한 답변은 충분치가 않아서 질의에 대한 댓글로 올렸습니다. 이에 대한 준비가 더 되면 답글 형식으로 올리고자 합니다.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이 이런 내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답글은 내 주 중에 올리겠습니다. 국어학자들에게 자료 조사를 의뢰하였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주십시오. 장천선생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아름다운 보재기로 감싸 알려집니다.
참으로 부지런하십니다. 인간에게 부지런함은 제1의 공덕이고 더구나 예의가 바르심은 주위 분들로부터 도타운 우정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거기에 장천선생의 문장력이 겯들여 선생과 의견을 나눈 사람은 모두
어사화를 쓰고, 초헌을 태워주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거기에 옛 인연을 잊지 않고 계속하며, 새로운 인연을 맺으려고 노력하시는 인생관은 우리가 존경해야할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요소[과제]가 있다는 정 박사님의 처음 답변에 그렇잖아도 후속 답안이 이어지리라 내심 기다려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정 박사님과의 질의응답을 수필 형식으로 정리한 것은 저의 조급한 성격이라기보다 ‘글감’의 신선도와 학문적 가치로 볼 때, 그 비중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공직에 있을 때 빠른 정보보고서 작성을 위해 새벽에 출근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렇게 애써 작성한 보고서가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희열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모든 피로가 일시에 풀리지요.
언론사 기자는 특종을 보면 참을 수가 없고, 글을 쓰는 작가는 좋은 글감을 보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과분한 격려 말씀에 송구스러우면서도 힘이 납니다.
@윤승원 ※ 정 박사님 댓글 중에 과분하게도
<…어사화를 쓰고, 초헌을 태워주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초헌’이란 말은 보통 ‘초헌(初獻)’만 알고 써왔기에 ‘초헌(軺軒)’이란 뜻은 생소하여 찾아보았더니, ‘조선 시대,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가마 형 수레’[사진 참조]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렇듯 정 박사님 댓글 한 대목에서도 새로운 지식 습득과 더불어 재미 있고 유익한 역사 공부를 하게 되니,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