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를 넘겨서 잠자리에 들었다. 5시 반에 모닝콜이 있으니 그동안 깊이 자야 한다. 한데, 세상 모르고 자다가 한밤 중에 잠이 깨 버렸다. 기침이 너무 난다. 쉽게 그쳐지지 않아 욕실로 들어가 한참동안 기침을 하고 나왔다. 행여나 방짝 광자의 달콤한 잠을 깨게될까 염려돼서다. 감기 기침은 이번 여행 내내 나를 성가시게 한다.
어제의 여독으로 피로할 줄 알았는데 대원들에겐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고 6시 반의 이른 식사시간임에도 오늘의 체력을 위해 열심히 먹는다. 점심이 늦어질 것 같으니 중간의 간식을 약간씩 챙기라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댓잎에 싼 작은 약식 한 개, 찐빵 한 개, 삶은 달걀 한 개를 미안한 마음으로 가방에 넣었다.
구련산을 향해 버스가 달린다. 일정표를 보니 오늘 총 트레킹 소요시간이 8-9시간이다. 모든 일정을 잘 소화해야 할텐데... 간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우리를 긴장시킨 999개의 계단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수도 있다한다. 개인적으로 탈 것인가 말 것인가 말들이 오가는데 숙자한테 살짝 의향을 비추니 눈을 크게 뜬다. '이 무슨 망말?' 그 표정으로도 친구의 속뜻을 알아챌 수 있으니 과연 우리는 50년지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두 발로 오르자. 그것은 친구에게 부려본 하나의 엄살 또는 어리광이었는지 모른다. 내 작은 자존심에 흠을 남기는 일일진데 설령 타라해도 아니 탓을 것이다.
하북성 산서성 하남성에 걸쳐있는 太行山脈은 커다란 산이 줄지어 있다는 의미로 '태항산맥'이라 읽히는데 약 50억년 전에 형성되었다한다. 우리는 그 중 9개의 산봉우리가 연꽃을 닮았다는 九蓮山엘 오른다.
버스에서 내려 포장된 경사길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려운 산행에서 힘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앞장서서 걷는 것이니 잽싸게 발을 옮겨 앞장선다. 왼쪽으로 수직 낭떠러지의 협곡이 있고 그 너머에 오묘한 형상의 산봉우리들이 보이는데 그 모습을 어찌 금강산에 비유할까? 금강산의 만물상이나 우뚝우뚝 선 바위들이 물론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기는 하나 그 규모면에서 대륙의 넓은 땅을 양보없이 차지하고 앉은 이 곳의 산들과는 비교가 안 될 듯싶다. 오른쪽으로 역시 수직의 높은 바위산들의 연속이다. 아직 오전 시간인데 몹시 무덥고 게다가 그늘도 없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의 힘을 북돋아 준다. 멀리 수직의 붉은 암벽 옆으로 곧게 높이 뻗은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100m? 200m? 높이를 가늠하기 힘드는데 이런 곳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은 그네들의 발상이 경이롭다. 땡볕에 1시간 이상을 걸었을까? 몸안의 에너지의 10%를 이미 소비한 느낌이다.
엘리베이터를 외면하고 앞장서서 계단을 오른다. 하늘사다리라 불리는 이 999개의 계단길은 붉은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 수직의 암벽을 빙빙 돌아가며 오르게 만들었는데 한 계단만 더 오르면 하늘에 닿는다고하여 천제(天梯)라 한다. 지나온 아득한 길과 협곡을 내려다 보고, 또 저 멀리 기묘한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한 발 한 발 내딛으니 마치 하늘로 오르는 기분이다. 두 개의 스틱이 힘을 덜어준다. 스틱 두 개로 동시에 윗계단을 짚고 하나, 둘, 셋, 넷, 네 발작을 오른다. 이렇게 리듬을 타니 훨씬 힘이 덜 드는듯. 그래도 힘이들면 세 발작 또 두 발작씩.
아직도 멀었나 싶었는데 어느덧 다 올랐다. 어제의 수유봉을 오를 때의 절반의 어려움도 없이 훨씬 수월했다. 여기서부터 별로 큰 오르막 없이 천길 낭떠러지의 협곡을 내려다보며 기나긴 트레킹이 이어진다. 단체사진 한 장 찍고, '가자! 산으로! 천하부고 오르자!'의 구호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출발--.
가끔 그늘도 드리우는 평화로운 산길이다. '에헤야 디야~~' 온종일 걸어도 힘들지 않을 길이다. 이 넓은 산속에 사람이라곤 우리 일행 뿐이다. 아찔한 협곡을 내려다 보며 사진도 찍고, 더할나위 없는 절경을 만나면 '와~' 감탄사도 내뿜으며, 염소는 보이지 않고 온통 까만 염소똥으로 덮인 길도 지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빠른 발걸음을 옮긴다. 그늘이 있는 풀밭에서 천길 협곡을 내려다보며 각자 챙겨 온 간식을 먹었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약식 한 개, 달걀 한 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또 앞으로. 무속신앙인가? 외딴 산속에 가마만한 크기의 허름한 건축물도 들여다보며 우리는 이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난의 길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즐겁게 걷고 또 걸었다. 한참만에 만난 한 민가 앞의 큰 나무그늘 아래 잠시 발길을 멈춘다. 어른은 보이지 않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의 3남매가 나와 있으니 대원들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꺼내준다 나도 베낭을 풀었다. 찐빵 한 개, 한국에서 가져간 건자두, 아끼던 홍삼양갱, 커피사탕까지 되도록 많이 주고 싶다. 이제 내겐 비상식량으로 커피사탕 몇 개만이 남아있다. 동익씨가 다리에 쥐가 났단다. 모두들 짐의 무게를 최소로 하려고 애쓰는데 유난히 큰 짐을 지고서도 묵직한 켐코더로 대원들의 모습을 잡기에 여념없으니 어찌 아니 힘들겠는가.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한 사람씩 지나갈 좁다란 오솔길도 지나고, 뽕나무 열매도 따먹으며 더러는 뒷사람을 위해 남기고.... 얼마나 왔을까? 우리의 점심식사가 준비된 주가포마을은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3시를 훌쩍 넘겼다. 뒤를 돌아보니 광자의 얼굴이 새하얗다. 힘드나보다. 정교수가 짐을 넘겨 받았다. 자신의 짐을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 성격인데 오늘 그녀의 역사를 새로 쓰고 말았다. 대원들의 긴 행렬은 쉼 없이 이어진다. 드디어 멀리 마을이 보인다. 협곡을 건너는 구름다리라도 있어 곧 도착하리란 기대는 그저 기대일 뿐이었고 1시간 이상 협곡을 빙 돌아 도착한 마을은 주가포가 아니다. 잘 다듬은 돌을 기즈런히 쌓아올려 지은 집 앞에 한 소년과 할머니가 나와 앉아있다. 소년에게 뭔가 주고 싶어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창흥씨가 선뜻 10元을 내준다. 사탕 두 개를 건네고 웃음짓는 그들을 뒤로 한다.
다시 경사진 포장도로를 오른다. 발바닥이 뜨겁다. 한 걸음 땅을 짚을 때 마다 마치 맨발로 뜨겁게 달궈진 조약돌을 밟는 듯 고통스럽다. 수 만번 걸을을 내딛을 때마다 생기는 마찰열을 튼튼한 등산화와 두터운 양말도 당해내지 못하나 보다. 신발 속으로 들어간 검불이 양말을 뚫고 발을 콕콕 찌른다. 이것을 제거하는 동안 일행은 저만치 앞서가니 기를 쓰고 쫓아간다.
먼저 도착한 선배가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왔다. 식당이 바로 코 앞인데 그래도 반갑다. 5시가 다 되어온다. 다음 일정을 위해 빨리 점심식사를 하라고 재촉인데 찬물 한 대야를 얻어 발을 담그는 여유를 부려 오늘 수고한 발에게 보답해 주었다.
덥고 허기지고 지쳤을 땐 냉수에 밥 말아 짭짤한 반찬이 제격이다. 입맛 없어하는 친구를 독려해 가며 준비해간 고추장그릇에 젓가락이 분주하게 드나든다.
포장된 급경사길을 15분간 좌로 돌고 우로 꺾으며 돌고 돌아 도착한 1655m의 왕망령(王莽嶺) 정상은 마치 광장같이 넓고 평평하게 포장해 놓았다. 지나친 개발이라 생각된다. 약간 실망스럽다. 바람이 세고 서늘하다. 내려다 보이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모습은 역시 아름답고 멀리 우리가 지나온 길이 까마득하다.
차를 타고 하산한다. 한참을 내려오다 굴을 지나는데 한 곳을 빠져나오면 이내 또다른 굴 속으로 들어가기를 헤아릴 수 없이 반복하다가 다시 긴 굴 안으로 들어가는데 큰차 두 대가 비켜가기 힘들 정도의 좁은 굴 안에 조명시설도 없고 단단한 바위산을 뚫어 만든 바닥은 그대로 울퉁불퉁한데 물론 차선도 없는 것이 어찌 경사는 이리도 심할까? 게다가 90도 가까운 커브가 자주 나타나는데 운전사는 그래도 이 낡은 차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커브에서만 짧은 경고음과 라이트를 켰다 껐다 한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먹을 쥐고 차의 앞길을 응시한다. 휴---, 굴을 빠져나와 지나온 산을 올려다보니 수직의 바위산에 구멍이 뚫려있다. 저 구멍이 어두운 굴안에 창문 역할을 한 것이다.
누구일까? 이런 험한 산에 수많은 계단길을 만들고 굴을 뚫고 포장도로를 만들어 차를 달리게 할 생각을 해낸 사람이. 이 힘든 작업을 하는데 수 천명이 희생되었다 하며 지금도 이 일은 계속되고있다한다. 이것이 중국의 저력인가? 앞으로 이 방대한 자연경관을 보기 위하여 무수한 세계인들이 몰려 올 것이다. 후대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오늘의 세대는 묵묵히 피땀을 흘리고 있다.
10시가 넘어서 호텔에 도착했다. 내일 귀국을 앞두고 만찬이라고 할까, 특별히 양고기가 나오고 케잌도 준비됐다. 금년에 칠순을 맞은 우리 동기 3명과 회갑을 맞은 후배들이 차례로 촛불을 끄고 축배를 드니 모두가 해냈다는 즐거움과 뿌듯함으로 상기되어 있다. 아마도 오늘은 이 방 저 방 모여 밤새 맥주파티가 벌어질 것이다.
"천하부고 산악회여 영원하리라!!"
첫댓글 엄숙자 의 '사진 작품' 과 어우러진 너의 '훌륭한 글'
나 또한 모든 일정 너와 함께
아름답고 멋있는 추억
한아름 안고
무사히
다녀 온 기분 이네 !!!!!
좋은 글 고마워 !
오늘 하루도 행복 하기를 ...
준선씨 이 곳에서 자주 만날 수 있으니 고마워. 항상 즐거운 날만 이어지길...
자상하고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샌행기 !!함께 하지못한 동문들도 함께 다녀온 기분일꺼야
정말 수고했어
숙자씨 매번 적절하게 사진을 올려줘서 고마워
적절한 사진에...자세한 기행문..안가도 갔다온기분이내..기침은 이제 다나았나.?.7월 1박2일도 같이 해주셨으면...
로댐 요즘 우리 홈피 '시끌벅적' 너무 좋다.
1박2일? 옆지기한테 염치없고 미안치만 걍 총무한테 문자 날렸네. 왈 "참석". 그날 봅시다.
작은거인 수고많으셨습니다. 생동감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내가 진작에 '글쟁이' 안 된것, 천만다행이라고 이번에 절실히 느꼈구먼요. 그저 '솥뚜껑운전기사'가 그래도 제일 만만하네유.
너 다시 봤다 어쩌면 그렇게 자세히 표현해고 잘 썻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 건강하고 담에 만나 이야기 하자
대경이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