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제자들이 떼로 몰려왔네!
솔향 남상선/수필가
5월이 신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온 천지가 계절의 여왕답게 싱그러움으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부처님 오신 날 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신록의 계절에 한데 모여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보이는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인데 그리운 얼굴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가슴이 미어지게 하고 있다. 누구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하더니만 나는 5월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빛바랜 아쉬움의 것들이 가슴을 쥐어뜯는 달이기 때문이다.
앳된 여고 시절이 그리웠던지 초임지 덕산고 졸업생 정민자 제자 초년생 할머니가 전화를 했다. 5월 14일 방문할 예정이니 시간 좀 비워 달라는 거였다. 스물 하고도 넷을 더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같은 반이었던 한은순 제자로부터 두 번째 전화가 왔다. 민자 차는, 천안 사는 노문자, 김미숙, 임정수를 싣고 대청댐 5백리 길, 들마루 식당으로 바로 가고, 한은순 제 차는 서울 사는 강의식을 태우고 우리 집에 와서 나까지 싣고 들마루 식당에서 함께 만날 생각이라 했다.
기다리던 시각이 됐다. 제자라고는 하지만 할머니가 다 된 한은순이 또 다른 할머니 강의식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학생 때에는 생각도 못 했던 포옹으로 두 할머니 제자를 맞아 주었다. 장시간 운전에 목이 마른 것 같아 사과와 토마토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 갈증을 풀어 주었다. 한은순 제자가 무언가 큰 종이팩을 내놓았다. 누룽지가 건강에 좋다 해서 만들어 온 거라며 밥맛이 없을 때 끓여 먹으라고 했다.
제자가 운전하는 차는 예정된 시각 12시 30분에 들마루 식당에 무사히 도착했다.
방금 전에 도착했다던 할머니 제자 부대를 만나는 극적인 상황이었다. 노문자를 비롯한 김미숙, 임정수, 정민자 제자를 이산가족 상봉하듯 포옹으로 반겨 주었다. 같이 늙어가는 견우직녀가 들마루식당이라는 오작교에서 만나는 기분이었다.
점심은 빠가사리 매운탕에 새우매운탕 도리뱅뱅이를 맛있게 먹었다. 강바람도 쐴 겸 5백리 둘렛길을 걸으며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5백리 길 영화 촬영지까지 가는 내내 제자 할머니들의 구수하고도 웃기는 유모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무슨 계획된 일이 있었던지 청남대 가는 길목 문의에 있는 대청호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엄청나게 사람들이 많아 간신히 차 한 잔 들고 나왔다. 대청호 분수대를 감상하며 제자들이 도열하듯 늘어섰다. 노문자 제자가 가져온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제 위치를 찾았다. 동시에 떼로 몰려온 6할머니 제자들이‘스승의 은혜’를 합창으로 불렀다. 특별한 멜로디가 산기슭의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내일이‘스승의 날’이라 그걸 의식하고 부른 노래 같았다.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과 부러움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기억해 주고 찾아주는 제자들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축복이란 느낌이 들었다.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 정민자 제자가 가져온 커다란 종이팩 속의 물건을 선물이라며 주섬주섬 내놓는 거였다. 그건 바로 보리굴비 뜯어 양념으로 무친 것, 풋풋한 깻잎 장아찌, 손수 만든 정성과 사랑이 묻어나는 생강 꿀차였다. 이번도 울보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이었다. 집에 가서 펴 보라는 닥스 양말 종이 팩을 집에 와서 열어 보았다. 두 켤레 양말 위에는 용돈 명목의 흰 봉투가 숨 쉬고 있었다. 6제자 할멈들이 마음으로 주는 정성임에 틀림없었다. 스승이라기보다는 친정아버지 챙기듯이 정성을 쏟는 제자들이 고맙고 감사했다.
딸같이도 생각되는 제자들을 그냥 보내기가 서운하여 꿀 1병씩을 들려 보냈다.
살다 보니 사랑에도 시리즈가 있는 것도 같았다.
5월 10일에는 김정숙 수필가가 저녁을 산다며 전립선암에 좋다는 짭짤이 토마토 1박스에 바디로션 1병을 선물로 주고 가더니, 11일에는 카톡을 주고받다 친구가 된 대천 떡집의 명가, 예당떡집 박은순 여사께서 스승의 날을 앞두고 고급 영양떡 1박스를 보내오셨다. 인품의 향이 지란과 같은 분이어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좋은 분이 곁에 계시어 마냥 행복하다. 감사를 드린다.
13일에는 70년대 후반 대전여고 졸업생 안상호 제자가‘스승의 날’앞두고 고급 바디로션을 택배로 보내왔다. 피부 관리 잘 하며 예쁘게 하고 살라는 명령으로 생각되었다. 잠시 후에 인기척이 있어 문을 열어보니 내가 주치의라 부르는 송재영 제자가 전립선 암에 좋다는 토마토 한 박스를 또 보내왔다. 의사 자격증도 없어가며 내 건강 챙기느라 매일같이 건강 정보를 보내주는 잊을 수 없는 80년대 충고 제자이다.
14일엔 서울, 천안에 사는 76학년도 초임지 덕산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했던 제자들이 떼로 몰려왔다. 느꺼운 사랑에 감사를 표한다.
이어서 충남고 80년대 졸업생 부국건설 정지식 대표한테서 고급 화장품 세트와 그 의 딸 자매 정서은 정시은한테서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15일에는 80년대 충고시절 담임했던 배국렬 제자가 모바일 상품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왔고, 같은 15일에 충남고 재직시 담임했던 조대연(고려대학 교수) 제자가 역시 모바일 상품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왔다. 바톤 터치라도 했는지 잠시 후에는 충남고 21기 3학년 5반 일동으로 모바일 상품권과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전화가 왔다.
잠시 후 충고 졸업생 보성한의원 오용진 원장 제자로부터 점심 대접을 받았다. ‘보성한의원 오용진 원장’은 2년 전 내가 전립선암 4기 암환자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자기 병원으로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한 제자다. 지금까지 무료진료, 침으로, 한약으로, 내 병에 지극정성을 다해왔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나 말기 암환자가 정상이 되었다. 느꺼운 사랑에 감사를 표한다. 좀 있으니 한밭대 교수를 하다가 현재는‘다성 이앤디 연구소’소장으로 있는 김명수 제자가 참외 과일 박스를 들고 찾아왔다. 이 제자 역시 80년대 충고에서 담임할 때 내반 반장이었던, 가슴이 따뜻한 친구다.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제자여서 좋아하고 사랑한다.
스승의 닐 전후로 많은 걸 깨닫고 느끼고 있다.
떼로 몰려온 할머니 제자들을 비롯해서 위에 열거한 모든 분들은 내 스승으로 생각된다. 사람답게 인생 사는 법을 깨우쳐 주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세상 그 어떤 비싼 수업료로도 안 되는‘-답게’사는 법을 몸으로 가르쳐준 분들이기에 그렇다. 어떤 책에도 없는 소중한 걸 가르쳐 주는 분들이니 이 어찌 나의 스승이 아니겠는가!
나는 교직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교과서적 지식만 가르치는 경사(經師)에 불과했다. 하지만 위의 제자들은 나한테 인생사는 법을 가르치는 인사(人師)가 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같은 제자들임에 틀림없다.
‘자랑스러운 제자들이 떼로 몰려왔네!’
그것도 할머니가 되어서....
첫댓글 대단한 제자들입니다.
출이반이를 여기서 또 만나게 되네요.
우리팀은 이번에 함께하진 못 했지만
가슴으로 스승의날 축하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시한번 축하와 사랑을 보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