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초 / 이영희(이서연) 2024. 6.
시금치를 다듬고 있다. 노지에서 자란 시금치는 짧고 굵으며 붉은 뿌리에는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녹색의 잎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붉은 뿌리에 짙은 녹색 잎은 영양분이 듬뿍 담겨있다는 걸 알려준다.
시금치 밑둥 뿌리를 다듬고 있는데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기울이니 주방 옆 작은 방에서 들려오는 노래다.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걸어도 돌아서지 않는 것은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이 대중가요는 1970년대 말, 어른들은 살기 어렵고 나는 꿈에 부풀어 있던 시절 유행했던 노래다. 이 노래를 올해 93세인 시어머니가 음정,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부르고 있다.
시어머니는 포항 토박이다. 순경이었던 시아버지의 전근에 따라 감포와 경주에서 잠깐 살았던 외에는 70년 세월을 포항시 연일읍 유강리에서 본가를 지켰다. 친정집 부지에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친정 부모님과 형제들은 모두 부산으로 이주를 했지만 어머님은 혼자 시부모 공양을 하면서 포항에 남았다.
시댁은 집 앞 국도변 아래 형산강이 흐르는 시골에 터를 잡았다.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선 마을에 자리한 시댁의 밭은 제법 넓었다. 대문을 나서면 담벼락을 낀 150평 규모의 넓은 채소밭이었다. 그곳에 계절마다 각종 채소를 심느라 어머님의 손톱에는 새까만 흙 때가 지워지지 않았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한 번도 밭을 일구어 본 적이 없다. 이랑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무언가를 수확한다는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 흙냄새를 맡을 기회가 마침내 왔다. 신혼 시절 초봄 밭에는 시금치가 온통 널려 있었다. 어머님은 나를 밭으로 데려가 먹을 만큼 시금치를 캐서 가져가라고 하셨다. 일러주는 대로 쪼그리고 앉아 흙 밑으로 칼을 집어넣고 시금치 뿌리를 잡아서 캤다.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재미가 있어 계속 시금치를 뜯었다. 어느새 포대에 담긴 시금치는 두 식구 먹기에 너무 많았다. 어머님은 가져가서 이웃에도 나누어 주라고 했다. 미처 다 캐지 못한 것은 갈아엎었다. 감자나 상추를 심어야 했으므로. 마을은 인심이 좋았고 어머님도 젊고 활기찼던 시절이었다.
나는 결혼 후에도 어떤 시금치가 맛있는지 몰랐다. 깨끗하고 날씬한 모양새로 잎에서 윤기가 흐르면 좋은 것으로 알았다. 살짝 데쳐야 비타민C의 손실이 적고 소금을 조금 넣으면 푸른색이 짙어져 더 싱싱해 보인다는 것만 알았다. 그런 가운데 신경 써서 무쳐도 시가媤家에서의 단맛이 나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포항에서 재배한 시금치를 포항초라고 한다. 바닷가 근처 노지의 사토沙土에 씨를 뿌리면 가을부터 겨우내 맑은 햇빛과 소금기 묻은 해풍을 먹고 자란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한월寒月 빛을 맞으며 인고의 세월을 버틴 까닭인지 포항초는 달고 부드럽고 맛이 있다. 당도도 높아 음식 솜씨가 없는 사람이 무쳐도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포항 시금치는 고진감래의 채소다. 쓴 것이 다하면 다디단 세월이 오듯 해가 짧고 날 추운 계절을 이겨낸 포항초의 단맛도 어쩌면 당연한 결실일지 모른다. 시댁에 가면 어머님은 항상 포항초를 한껏 뜯어가라 하고 직접 짠 참기름을 듬뿍 넣고 무쳐 주었던 이유는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도 견뎌 보면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는 걸 가르쳐 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한겨울 노지 시금치를 캐 보라는 것도 어머님의 힘들었던 시절을 포항초 맛으로 알려주려 했던 건 아닐까.
요즈음 시어머니가 당신이 가꾼 시금치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남의 궂은일에는 두 팔 걷어붙이는 성품이지만 정작 본인의 슬픔과 괴로움은 티 한번 내지 않았다. 추진력과 결단력이 물 찬 제비처럼 빨라 여느 남정네도 손을 내저을 정도로 강단이 있었다. 호밋자루 쥐어 본 적 없는 지아비를 대신해 힘든 농사일에서는 남자들 몫까지 척척 해냈다. 무엇보다 힘들고 서러운 일이 있어도 자식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으시는 분, 게다가 며느리도 사위도 백년손님이라며 허드렛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런 시어머니가 40여 년 전에 유행했던 가요를 내 집 방안에 누워 부르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슨 추억이 어머님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한 걸까. 그것도 사랑의 노래를.
나도 이젠 어머님표 시금치 무침 맛을 조금은 낼 수 있는 것 같다. 어찌 손맛이 익어서 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 속에는 모진 세월 묵묵히 살아온 어머님에게 말하지 못한 내 속마음도 담겨있다. 여인은 어디 살든, 언제 살든 어머니의 길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나이를 먹고 보니 비로소 포항초의 이름값인 고진감래의 비의悲意를 알게 된다. 지난날 시어머니의 그 시절 그때를 진정 난 몰랐다.
냄비에서 물이 자글자글 끓는다. 소금 한 꼬집 넣고 시금치를 듬뿍 넣고 살짝 데친다. 척박한 땅에서 햇빛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자라난 노지 포항초의 생명력은 어머님을 닮았다. 겨울 달빛 속 포항초 같은 어머님처럼 나도 은근한 맛이 배어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시금치를 무쳐내는 동안 방안에서 연이어 노래가 들려온다. “가슴에 이 가슴에 심어준 그 사랑이 이다지도 깊은 줄은 난 정말 몰랐었네···.” 나도 덩달아 불러본다.
첫댓글 이영희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카페에서도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신인상 축하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이영희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축하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이영희 선생님.
등단 작품, 「포항초」 잘 읽었습니다.
등단을 축하드리고 건필을 기원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답글 인사가 늦었습니다.^^
포항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