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생물학자가 옛날에는 암컷(여자 포함)의 성 행동을 묘사할 때 “coy”라는 단어를 쓸 때가 많았다. “coy”는 “부끄러워하는”, “수줍어하는”, “내숭 떠는” 등을 뜻한다.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그런 단어를 쓰는 것을 비판했다. 암컷을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 과학적 관찰의 결과라기보다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파생되었다는 식의 비판 등이 있었다.
이제는 진화 생물학자들이 암컷의 성 행동을
묘사할 때 “choosy”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choosy”는
“까다로운”, “가리는” 등을 뜻한다. “coy”보다는 “choosy”가 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왜 암컷이 대체로 성교를 할 때 수컷에
비해 상대를 까다롭게 선택하려고 할까?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Robert
Trivers의 부모 투자 이론을 끌어들여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암컷이 수컷에 비해 자식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한다. 특히 포유류의 경우 암컷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임신을 하고 수유를 한다.
수컷이 아무 암컷하고나 닥치는 대로 성교를
하면 많은 암컷들을 임신시킬 수 있으며 이것은 커다란 번식 이득으로 이어진다. 반면 암컷이 한달 동안
아무리 많은 수컷들과 성교를 해도 자신이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는 한 수컷과 성교를 했을 때와 비교해서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그 한 수컷이 불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볼 때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라는 측면에서 약간의 이득을
얻을 뿐이다.
암컷의 경우에는 닥치는 대로 성교를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좋은 유전자(good gene)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수컷을 까다롭게 골라서 성교를 하는 암컷이 아무 수컷들하고나 성교를 하는 암컷에 비해 더 우수한 자식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설명에 대응하는 단어는 “coy”가 아니라 “choosy”다.
암컷이 수컷을 까다롭게 고르기는 하지만 전혀 수줍어하지 않고 먼저 수컷에게 성교를 제안할 수도 있다.
또한 암컷이 아무 수컷하고다 닥치는 대로 성교를 하지만 늘 수줍어하면서 성교에 응할 수도 있다. “coy”와
“choosy”는 엄연히 서로 다른 개념이다. 암컷이 수컷을
까다롭게 고르는 현상을 기술할 때에는 “choosy”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choosy”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coy”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과학적으로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passive(수동적인)”라는 단어를 써서도 안 된다. 수동적이라 함은 남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이야기다. 까다롭게 고른다는
이야기는 어떤 수컷이 성교를 제안했을 때에는 거부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즉 때에 따라서는 남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대체로 수컷의 경우에는 닥치는 대로 많은
암컷들과 성교를 하는 것이 유리한 반면 암컷의 경우에는 우월한 수컷을 골라서 성교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식의 설명은 왜 암컷이 까다롭게 상대를
선택하는지를 설명해 주지만 왜 암컷이 소극적이거나 수줍어하는지는 설명해주지 못한다. 암컷이 소극적이거나
수줍어하는 종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설명이 필요하다.
인간의 경우에는 그럴 듯한 설명이 하나
있긴 하다. 인간은 결혼을 한다. 남편은 아내와 자식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 만약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은 심각한 번식 손해를 본다. 왜냐하면 남의 유전적 자식을 키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는 바람을 잘 피우지 않을 것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다면 여자는 바람을 잘 피우지 않을 것 같아 보여야 결혼
시장에서 더 성공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선택압 때문에 여자의 내숭이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내숭 떠는 여자는 그렇지 않은 여자에 비해
자신이 먼저 성교를 하자고 제안할 가능성이 작다. 또한 마음에 드는 남자가 성교를 제안할 때에도 어느
정도는 성교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coy”는 이럴 때 어울리는 단어다. 자신이 아주 싫어하는 남자가 추파를 던질 때 거부하는 것은 그냥 거부다. 반면
자신이 호감을 느끼고 있는 남자가 추파를 던질 때 살짝 빼는 것이 바로 “coy”다. “coy”는 호감과 (일시적) 거부가
혼합된 상태를 말한다.
나는 바로 위에서 제시한 설명이 상당히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종에서도 암컷이 수줍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대부분의 종에서 성교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쪽은 수컷인 것 같다. 그리고 암컷은 그 수컷을 성교 상대로 선택하는 경우에도 수줍어하면서 잠시라도
거부의 몸짓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직까지 이런 현상을 그럴 듯하게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암컷의 “choosy”에 대해서는
아주 훌륭한 설명이 제시되었지만 암컷의 “coy”에 대해서는 아직 그만큼 훌륭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나만 모르고 있거나.
이덕하
201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