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과 소금 (마5:13~16)
마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망의 그늘에 앉아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어두움에서 밝은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의 저주에서 의의 복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보답하시고 천국의 주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3:36]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아들을 믿으면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생명의 주인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진노가 그 머리 위에 머물러 있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생명의 빛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시고 어둠의 그늘에 앉아 신음하는 백성들의 길잡이가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구원을 얻는 그날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망이 사람들을 삼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망이 십자가 앞에 항복하고 저주를 풀 때까지 예수님의 복음이 계속되어야 하기에 제자들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까요?
첫째로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여 상하고 썩는 것을 막으며 오래 동안 보관하게 하며 자신을 녹여 맛을 내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레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질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언약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또한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는 믿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흔하지만 없어서는 아니 될 귀한 특성이 있는 것처럼 성도들에게는 없어서는 아니 될 귀한 사명을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잃으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폐물이 되어 길에 버려지게 되는 것과 같이 성도가 믿음을 잃어버리면 길에 버려진 소금과 같이 된다는 말입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황금입니다.
소금은 황금보다 더 귀하지만 또한 너무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금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금은 그 사명을 가지고 자기 본분을 다할 때 빛이 나고 존귀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소금도 자신을 녹여 맛을 낼 때 존귀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녹여 자기를 믿는 성도들에게 생명의 맛을 주셨고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자신을 녹여 사명을 완수한 향기가 되셨습니다.
사명이 없는 성도, 믿음이 없는 성도, 교인의 맛을 잃어버린 성도가 되면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두 번째로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 등잔불을 켜고 살 때가 있었습니다.
심지가 커서 끄림이 나면 코가 새까맣게 되지만 기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심지를 박박 긁어 불을 최대한 작게 켜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등경 위에 올려놓고 바느질도 하며 가족과 마실꾼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마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작은 등불 하나가 온 집안 사람의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게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는 싫든 좋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닙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 혹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어 평가받게 됩니다.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고 예수님과 하나님이 욕을 먹게 됩니다.
이미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으로 교회가 욕을 먹고 하나님이 욕을 먹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세상을 비취는 생명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을 비취기 위해 세상 어두움에 순종하여 십자가 제물이 되셨습니다.
[빌2: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세상 사람들의 이치와 논리는 예수님의 계명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율법의 논리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여 사망으로 망하게 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논리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여 사망을 피하고 회개하여 생명의 빛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이 생명이 있는 사랑의 빛이 온 누리에 비취도록 우리가 반사경이 되어야 합니다.
빛은 태양이 그 중심인 것처럼 빛의 근원이요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빛을 받아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반사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했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 했고, 기생이었던 라합이 그리했고, 양치기였던 다윗이 그렇게 했습니다.
세 번째로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빛의 자녀는 어둠의 세력과 사망 앞에 당당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생명의 빛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러므로 모든 죄의 저주가 풀리고 떠나갔다” 라는 단호한 믿음의 표시가 저와 여러분 마음에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신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빛은 환하게 비취어야 하고 소금은 맛을 제대로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착한 행실과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착한 행실과 의로움과 진실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기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없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엡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라고 말씀하셨고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착한 행실은 무엇일까요?
예수님 십자가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내 뜻은 이것이 아니지만 아버지의 뜻이기에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마12:50]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라고 하셨고
[눅22: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라고 고백에서 착한 행실을 찾아야 합니다.
착한 행실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를 포기하고 주님의 뜻일 이루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없어야 진정한 착한 행실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막8: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쉬운 일입니다.
생명의 빛이 세상에 비취고 맛을 내기 위해 나를 포기하면 됩니다.
나를 포기해야 진정한 사랑이 나오고 용서가 나와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https://youtu.be/XciirNJnp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