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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굴 속의 기인 당문은 독을 묻힌 암기로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당채는 당문 의 우두머리로 암기 재간에 있어서 무척 조예가 깊었다. 그러나 혈수 천마 고명원은 손에 들고 있는 광주리를 방패로 삼고 있어서 당채가 잇달아 스물 몇가지의 암기를 잇달아 쏘아댔지만 아무 효과도 거둘 수가 없었고 오히려 열세에 몰려 있었다. 오도장은 손에 장검을 쥐고 휘두르고 있었다. 공동검법은 언제나 옆 으로 공격했고 야릇함을 위주로 하고 있었다. 고명원이 지니고 있는 사방 마교의 사문(邪門) 공부 또한 이상야릇함을 위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모든 일장은 오도장의 검로(劍路)를 미리 찾아낸 것처럼 공격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도장은 번개같이 검을 뻗쳐내고 있었으나 상대방의 장식에 부딪쳐 매번 중도에서 초식을 바꾸어야 했고 능동적 인 공격을 가할 수 없었다. 만약 고명원이 몸에 중상을 입고 있지 않 았다면 그들은 벌써 격살되고 말았을 것이다. 나엽대사는 그와 같은 광경을 똑똑히 헤아리고 호통을 내질렀다. [도형, 당황하지 마시오. 소승과 현청 도인이 왔소!] 고명원은 벌써부터 현청과 나엽대사 두 사람이 맞은편 언덕에서 달 려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당채와 오도장을 철삭교 다리 위로 물 러나도록 핍박한 후에 쇠사슬을 잘라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몸 에 중상을 입고 있었고 줄곧 운기조식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잇달 아 세가지의 무공을 펼쳐냈으나 두 사람을 철삭교 위로 물러나게 하 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현청과 나엽대사가 달려오면 혼자서 네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데 지금의 공력으로는 틀림없이 패배당하고 만다는 것을 헤아리고 있 었다. 그는 조금도 고려해보지 않고 일성을 대갈하며 맹렬히 세번 내 리찍어 두 사람을 일곱 자 밖으로 물러나게 만들고 후딱 몸을 돌려 협곡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조금 전 숲속에 있는 소로를 따라 협곡까지 이르게 되었을 적 에 당채와 오도장 두 사람이 동굴 안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었 다. 당채는 혈수천마가 달려가는 것을 보자 당문의 암기 오독침(五毒 針)을 내던지고 오도장과 쌍쌍이 고명원을 협공했던 것이다. 이 때 고명원은 퍼뜩 그 산허리 속의 동굴을 떠올렸다. 그는 등뒤의 네 사람이 소리치고 욕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고 동굴쪽으로 달려갔다. 두 모퉁이를 돌자 눈앞이 환히 넓어지면서 어느덧 골짜기의 한복판 에 이르게 되었다. 오른쪽의 깎아지른 듯한 석벽 아랫쪽에 석문(石門) 이 열려있는 동굴을 볼 수 있었다. 등뒤에서 현청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당형, 빨리 암기를 쏘시오. 그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아니 되오.] 파공성이 들려왔다. 고명원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오른쪽 커다란 소 매를 뒤로 흔들었고, 그 순간 몸은 그 석문의 조금 열려있는 틈바구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 네 사람이 뒤쫓아 오게 되었을 적에 석문은 이미 쿵! 소리와 함 께 닫혀지고 말았다. 고명원은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손을 뒤로 돌려 석문을 밀어 닫 았다. 힐끗 바라보니 오른쪽에 하나의 석관(石棺)이 놓여있어 즉시 다 가가 대나무 광주리를 내려놓고 석관을 문뒤로 밀고 가서 문을 열지 못하도록 받쳐 놓았다. 그제서야 그는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방금 몸을 날려 동굴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을 적에 그 석문의 두께가 두 척이나 되어 결코 현청같은 사람의 내공으로는 부술 수 없 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따라서 그는 석문을 석관으로 받쳐놓은 이상, 자기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는 네 사람이 결코 들어올 수 없 다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는 자조하듯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고명원아, 너도 정말 한심하구나. 저 따위 몇 명의 이류 물건들을 두 려워하다니...] 확실히 그는 일신에 신기하고 야릇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고 강호에 적수가 없었다. 그들 네 사람 모두 장문인이지만 일대검성 매화노인에 비한다면 너무나 뒤떨어져서 구름과 흙의 차이가 났다. 십 년 전, 그 는 혼자 매화노인에게 도전한 적도 있었건만지금은 그 무거운 석문 을 빌어서 목숨을 건지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몸에 중상을 입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혈기만 믿고 그들 네 사람과 생사결단을 할 수가 없었다. 이야말로 호랑이가 평지에 내려온 꼴이고 용이 옅은 개울에서 꼼짝 못하는 격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생각했다. (아! 이 모든 것은 검남을 위해서다. 그를 위해서라면 내 무슨 치욕인 들 견디지 못하랴?) 그는 대광주리 앞으로 다가가서 광주리를 세번 두드렸다. [남아, 나오너라!] 고검남은 광주리 뚜껑을 열어 젖히고 고개를 내밀었다. 동굴 안에 그 토록 많은 관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 여기가 어디에요? 어째서 관만 보이죠?] 고명원은 동굴 안으로 들어온 후에 아직 자세히 동굴 안의 사정을 살펴보지 않았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동굴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 동굴에는 과연 줄줄이 석관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명주 구슬이 박혀있는 석벽을 바라보았다. 거의 비슷한 크기의 진주에서는 엷은 주광(珠光)이 뿜어지고 있어 동굴 안이 별로 어둡지 않았다. (이 동굴은 혹시 무당파 역대 장문인들의 유골을 모시는 곳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토록 많은 석관이 있으며 벽에 명주가 박혀 있겠는가.) 이와 같은 생각이 뇌리에 떠오르자 그는 검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야, 두려워 말아라. 이곳은 뼈를 모시는 곳이다. 우리는 잠시 쉬었 다가 잠시 후에 나가도록 하자.] 고검남은 고개를 쳐들고 다시 물었다. [아버지, 그 나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모두 때려서 쫓아보냈나 요?] 고명원은 쓸쓸히 웃었다. [그들은 사람 수가 너무 많고 이 애비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먼저 상처를 치료해야겠다. 너는 마음놓고 이곳에서 기다려라. 내가 상처를 치료한 후에 다시 나가도록 하자.] 고검남은 부친이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고명원의 입가에 흘린 핏자국과 완손 엄지 손가락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손가락이...] 고명원은 왼손을 쳐들며 빙그레 웃었다. [손가락 하나 없어진다고 대수냐? 남아, 괴로워 말아라. 이 애비는 목 숨엔 지장이 없다.] 고검남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더욱 괴로워져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고명원의 뭉뚱해진 엄지 손가락 부위 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 자식이 불효해서 아버지로 하여금...] 고명원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째서 네 탓으로 돌리는 것이냐?] 고검남은 울먹이며 말했다. [만약에 저에게 병이 없었다면 아버지는 무당산으로 오시지 않았을 것이고, 무당산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딴 사람에게 손가락이 잘리지 않 으셨을 게 아녜요?] 그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주룩주룩 흘렸다. 고명원은 가엾다는 듯이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방 울을 훔쳤다. [얘야, 울지 말아라. 사내 대장부는 가볍게 눈물을 흘려서는 아니 되 는 것이다. 너는 이미 열네 살이다. 이제 곧 어른이 될 것이니 더욱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고검남은 울음을 멈추고 눈물을 훔치더니 굳건하게 말했다. [아버지, 다시는 울지 않겠어요. 다시는 울지 않겠어요. 제가 장성하게 된다면 반드시 무당산의 도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겠어요.] 고명원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얘야, 네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 형편이란다. 무공을 연마 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역시 감개에 젖어 수없이 한숨을 내쉬다가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남아, 나는 일신에 지니고 있는 무공의 비결을 모두 적어서 우리 집 뒤에 있는 구유통에 숨겨 놓았다. 훗날 너의 몸이 좋아진다면 이 애비 가 찾아내서 천천히 너에게 가르쳐주마. 이제...]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이곳에 앉아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라. 이 애비는 금도회신마 (金刀會神魔)라는 가장 빠른 방법을 써서 상처를 치료하겠다. 명심할 것은 이 애비의 어떤 모습을보더라도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다. 알겠느냐?] 고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안심하세요.] 고명원은 흐뭇하게 웃고 실내를 한차례 둘러보고 다시 석문 옆의 원 래 자리로 돌아와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품속에서 납작하고 긴 상자를 꺼내 열어 젖혔다. 그리고 그 안 에서 아홉 자루의 종이장처럼 얇고 길이가 다섯 치밖에 되지 않는 금 빛의 작은 칼을 꺼내 왼쪽 손바닥 위에 놓았다. 그는 깊이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온몸 뼈마디에서 우두둑, 우두둑, 하는 소리가 한 차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오른손을 번개같이 움직여 한 자루의 금도 (金刀)를 집어 단전에 꽂았다. 고검남은 그와 같이 놀라운 거동을 보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 다. 그러나 부친의 분부를 상기하고 재빨리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고명원은 잇달아 한자루 한자루, 아홉 자루의 금도를 일제히 몸에 꽂 았다. 금도가 꽂힌 부위는 모두 사람의 몸에 있는 생명을 앗아가는 대 혈(大穴)이었다. 고명원은 몸에 아홉 자루의 금도를 꽂고도 얼굴에는 전혀 고통스러 운 빛 없이 오히려 유쾌한 빛을 띄우고 있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가볍게 눈을 감더니 두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반원을 그리듯 휘둘렀다. 점차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져 나중에는 팔이 움직이 는 방향을 볼 수 없고 수백수천의 팔그림자만 어른거렸다. 그의 모습 은 그야말로 천수관음(千手觀音)을 연상시켰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 러내렸고 얼굴은 본래 창백했는데 점점 불그레해졌다. 그러다 끝내 불 타는 것처럼 붉은 색으로 변했는데 그가 몸에 입고 있는 붉은 장포와 같은 빛깔이 되었다. 고검남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눈 한번 깜짝거리지 않고 두 손으 로 입을 틀어막은 채 그 해괴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아홉 자루의 칼을 꽂고도 피를 흘리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을 상 상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자기의 아버지가 무공을 연마하는 것을 보았 지만 이와 같이 괴이한 금도회신마의 기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속으로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한편 호기심을 느꼈다. 이 와 같은 금도회신마의 재간은 마교의 가장 위험한 비법 가운데 하나 였으며 내상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가장 유효하고 신속한 방법이었다. 이는 의술에 있어서 금침과혈(金針過穴)의 수법과 비슷했으며 주된 목 적은 경맥(經脈)을 유통시키고 기혈의 운행을 빨리해서 잃었던 원기를 보충하고 상실한 내공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비법은 가장 놀랍고 위험하여 조금이라도 외부의 방해가 있다면 즉시 이 술법을 펼치는 사람이 주화입마(走火入魔)되어 일신의 공력이 모조리 흩어지는 것이었다. 고명원은 운중자와 겨룰 때 상대방의 그 선천진기의 무서움에 대항 하기 위해 전신의 정혈(精血)을 끌어모아 건곤일척의 혈지도(血指刀)를 펼쳐 자기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사용했다. 그러느라고 온몸의 원기가 많이 상해 있었다. 이제 위험을 무릅쓰고 금도회신마의 비법으로 치료 하지 않는다면 그의 내공은 사성(四成)이나 감퇴되어 있어서 그는 더 더욱 뚫고 나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별 수 없이 그는 이제 모험을 각오하고 금도회신마의 비법으로 상처를 치료한 것 이었다. 대략 한 잔의 차를 마실 시간이 흐르자 그가 휘두르던 팔은 점점 느 릿해지게 되었고 안색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다시 잠시 시간이 흐르 자 그의 몸에 꽂힌 아홉 자루의 금도가 천천히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그는 후다닥 몸을 일으키고 세번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넘었다. 그러자 아홉 자루의 금도는 완전히 그의 몸에서 빠져나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 두 손으로 단전을 한번 부볐다. 그리고나서 눈을 뜨더니 땅바닥에 떨어진 아홉 자루의 금도를 집어 장포자락에 닦고 다시 곽 안에 넣었다. 고검남이 멍하니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나직히 웃었 다. [하! 하! 하! 얘야, 왜 그러느냐?] 고검남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다만 이상하게 생각했을 뿐이에요.] 고명원은 그 조그마한 곽을 품속에 갈무리하고 웃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고검남은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 한번 만져볼게요.] 그는 고명원이 금도를 꽂았던 살갗을 더듬어보더니, 약간 어리둥절해 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괴상하네요. 칼이 꽂혔는데 상처 자국이 없군요.] 고명원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 하! 하! 바보같은 녀석, 원래 그 일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자, 이 애비가 너에게 알려주마. 무공이 뛰어난 사람은 근육이 자동으로 수축 될 수 있다. 그 아홉 자루의 금도는 근육과 근육사이의 좁은 공간을 파고들었던 것이란다.] 고검남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몸의 근육과 살은 다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요?]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네가 나중에 무공을 익히게 되면 자연 히 알게 될 게다.] 고검남은 웃었다. [무공을 연마하는 것은 정말 좋군요. 아버지, 지금 당장 가르쳐 주시 는게 좋겠는데요.] 고명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얘야. 너는 네 생명이 일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구 나. 하반신의 혈맥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무공을 연마한다는 것이 냐?) 그러나 그는 억지로 웃어보였다. [좋아! 나는 너를 치료한 다음 반드시 너에게 가르쳐주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명원은 자기 아들에게 자기의 무공을 과연 가 르쳐야 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정사(正邪) 두 갈래의 무공은 길은 다르 면서도 하나로 귀결되며, 양쪽 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강호의 소문에 의하면, 백년 전의 천령상인(天靈上人)은 사 도(邪道)에 입문했지만 나중에 정사(正邪)의 경지를 넘어서서 천하제일 인이 되었다고 했다. 물론 그가 죽은 이후 그 누구도 그 비법을 알지 못했지만 정사는 하나로 융합되는 법이었다. 사문(邪門)의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공력이 구중지 지(九重之地)에 깊이 도달하면 마치 강철 담벼락이 앞을 가로막고 있 는 듯 더 이상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정파의 내공이 시일이 흐르면 흐를수록 공력이 더욱 깊어지고 내공이 누적되는 것과 달랐다. 거기다가 사문의 사람들은 종종 주화입마의 위기를 맞았다. 설사 주화 입마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해도 죽을 때는 역시 산공(散功:내공이 흩 어짐)이 되는 무서운 위협을 당했다. 정종의 내공은 불문과 도가를 막 론하고 죽을 때 차분하고 즐거운 듯 죽게 되는데 마치 안락한 고향으 로 되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무 수한 사파 인사들은 모두 죽기 전에 산공을 피할 수 있는 비법을 구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오직 백 년 전 천하제일고수라는 천령 상인 혼자 해결 방법을 찾았던 것이었다. 그는 사도에 입문했으며 한 평생 천하의 고수들을 상대로 싸워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천령상인은 백 세가 넘게 살다가 병 없이 임종을 맞았다고 하는데, 병 없이 임종을 맞았다는 그 말 한마디는 그가 숫제 사파 인사가 겪 는 산공의 고통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므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주의 를 끌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천령상인에게는 자녀가 없었 고 한평생 어떤 제자도 거둔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죽고나자 그 일신의 무공과 그가 동해 해적들에게서 빼앗은 보물들은 행방이 묘연 해진 것이었다. 후세의 사람들은 비급을 위해서 또 숨어있는 보물을 위해서 천령상 인이 남겼다는 보도(寶圖)를 찾으려고 줄곧 한 갑자나 걸리도록 법석 을 떨다가 가까스로 강호는 잠잠해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 문에 오늘날까지 천령상인의 무공이 어떻게 산공의 관문을 돌파할 수 있었는지 무림에서는 여전히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고명원은 삽시간에 무척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가 강호에 출두하여 떠돌아다닌지 삼년 후에 아이금산(阿爾金山)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적 에 마침 사부 아극도(阿克圖) 대활불(大活佛)이 임종을 맞게 되었다. 그는 몸소 사부가 산공을 하게 되었을 때의 고통스러운 정경을 목격 하게 되었고 한 평생 고달프고도 힘들게 무공을 쌓았다가 죽기 전에 는 억지로 빼앗기다시피 흩어져 무공을 상실하게 되는 것에 비애를 느꼈었다. 이 때 고명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쪼록 내가 그와 같은 장애를 해소하여 그토록 고통스럽게 죽게 되기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검남은 부친이 잠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길게 한숨을 내 쉬는 것을 보고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아버지, 왜 한숨을 쉬나요?] 고명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별 것 아니다. 자, 우리 나가자!] 고검남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동굴 안에서 기다란 한숨소 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 들어보세요!] 고명원 역시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그 느릿한 긴 한숨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안색이 약간 변해서 호통을 쳤다. [사람이냐! 귀신이냐! 썩 나서지 못할까!] 고명원은 잇따라 호통을 쳤으나 석실 안에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 올 뿐 다른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조금 전 내가 운공을 하기 전에 한번 뒤져 보았으나 어떤 사람도 이 곳에 없었다. 혹시 이 석실에는 다른 길이 있어 밖으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 그 한숨소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린지도 모르겠구나...) 순간 그는 속으로 다행스럽게 여겼다. 만약 그 침울한 한숨소리가 조 금 전에 들려왔다면 고검남은 틀림없이 귀신의 장난으로 여기고 놀라 소리쳤을 것이고 갑작스럽게 놀라 소리치는 소리가 자기 귀에 들렸더 라면 그의 심령은 충격을 받고 틀림없이 끌어 올렸던 기혈이 흩어지 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자신의 공력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손에 땀을 쥐지 않을 수 없었고 나직히 고검남에게 당부했다. [남아, 너는 잠깐 기다려라. 내 다시 한 번 살펴보마.] 고검남은 부친의 옷자락을 잡고 그 석문을 받쳐둔 거대한 돌로 된 관을 손가락질했다. [아버지, 한숨소리는 바로 저 관속에서 나온 것이에요. 가 보세요.] 고명원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냐? 네가 잘못 듣지 않았느냐?] 고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어요. 확실히 관속에서 흘러나온 것이에요. 믿을 수 없다면 가서 보시면 알 수 있을 거에요.] 고명원은 그 거대한 돌로 된 관속에서 어떻게 아직도 산 사람이 있 으며 관속에서 갇혀 있으면서도 소리를 낼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성큼성큼 돌로 만들어진 관 앞으로 다가가서 정신을 가다듬고 는 관뚜껑을 잡고 와락 쳐들었다. 지난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관뚜껑을 쳐들었을 때는 오 른손으로는 가슴팍을 보호하고 있었고 온 몸의 공력을 육성이나 끌어 올려 관속의 사람으로부터 암습당할 것에 대비하고 있었다. 관뚜껑이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엄청난 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고명 원은 관속을 들여다보고 자기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질렀다. 그가 본 것은 놀랍게도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던 무당 장문인인 현 천도장이었다. 현천도장은 두 눈을 살며시 감고 평온하게 관속에 누워 있었으며 입 고 있는 옷은 오개월 전에 입었던 그 도포였다. 하지만 머리의 도관 (道冠)은 이미 제거되었고 성성한 백발도 비쩍 마른 뺨 옆으로 흩어져 있어 얼핏 볼 때에는 퍽 끔찍해 보였다. [아버지!] 등 뒤에서 고검남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보셨나요?] 고명원은 대답하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고 현천도장의 왼손 손가락에 반지를 끼었던 자국이 있는지를 살폈다. 명주 구슬 빛 아래 그의 새끼 손가락에는 과연 반지를 뽑아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명원은 더 의심하지 않고 몸을 굽혀 현천도장의 앞가슴을 더듬어 보았다. 그의 심장이 아직도 미미하게 뛰고 있었으나 끊어질 듯 말듯 한 상태였다. 그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현천도장을 안아서 관 밖으로 끌어냈다. 고검남은 현천도장을 보자 놀라 소리쳤다. [아버지, 그 분은...] 고명원은 눈을 부릅뜨고 살펴본 이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분은 바로 진짜 현천도장이시다. 지금 경맥이 어떤 사람에 의해 잘 리워져서 곧 세상을 떠나게 될 형편이구나.] 고검남은 급히 말했다. [아버지, 방법을 강구해서 그 분을 구해주세요.] 고명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현천도장은 한평생 의술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고 무수한 사람 들을 구했는데, 뜻밖에도 이제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없게 되었으니 정 말 하늘도 무심하구나...] 그는 고개를 돌리고 고검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얘야, 넌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라. 이 애비는 반드시 모든 능력을 다해 현천도장을 살리도록 하마.] 그는 현천도장이 이 때 겨우 한가닥 진기로 심맥을 보호하여 그 심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절세의 영약이 없다면 실로 그의 원기를 회복시킬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이 연마한 내공과 현천도장의 정종 도가내공은 숫제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진기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그의 내력을 증강시킬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현천도장이 일찍 눈을 감도록 만드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고명원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검남아, 너는 현천도장께서 살아나시기를 바라느냐?] 고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물론 원하지요. 아버지, 빨리 손을 쓰세요.] 고명원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현천도장은 경맥이 이미 열 가운데 일곱 여덟 개나 끊어져, 절세적인 영약이 없으면 이 분을 살릴 수가 없다. 너는 기꺼 이 그 천년설련을 도장에게 양보할 수 있겠느냐?] 고검남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저는 기꺼이 그럴 수 있습니다.] 고명원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 설련이 네 병을 다스리는 것이고, 이후에 어쩌면 다시는 취득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고검남은 의연히 그 말을 받았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한평생 병신으로 보내야 한다고 운명 에 정해져 있다면 나는 달리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현천도 장께서는 그 나쁜 사람들에게 이토록 처참하게 해꼬지를 당했으니 아 버님이 반드시 그를 치료해드려야 합니다.] 고명원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속으로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기뻐하는 것은 자기에게 이토록 본성이 선량하고 조 금도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는 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서글 픈 것은 만약 일년 안으로 천년설련을 찾지 못한다면 아들은 경맥이 폐쇄되어 죽게 될 것이고 결코 열다섯 살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었다. 천년설련을 다시 찾을 수 없을 때 아들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니... 그는 이빨을 깨물었다. [좋다. 네가 원하는데 내가 아까워할 것이 무엇이냐? 얘야, 그 옥합(玉 盒)을 꺼내도록 해라.]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고검남은 옥합을 그에게 내밀었다. 고명원은 그윽한 눈길로 아들을 한번 바라본 후 옥합을 열고 그 안 에서 비둘기 알만한 크기의 분홍색을 설련을 꺼냈다. 한 줄기의 청아한 향기가 삽시간에 석실 안에 가득차는 것 같았다. 고명원은 조금도 고려해보지 않고 현천도장의 머리를 받쳐 들고 입술 을 벌리고 설련을 그 입속에 넣어 주었다. 역시 천년설련의 약효는 비상해서 잠시후 현천도장의 뱃속에서 꾸르 륵, 하는 음향이 들리고 그 잿빛의 어두웠던 얼굴에 어느덧 미미하나 마 붉은 빛이 감돌았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멍한 눈길을 돌리다가 그는 고명원의 그 구렛나루가 무성한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군다 나 지대한 관심과 염려의 빛이 가득한 눈빛을 보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살짝 움직여 이빨 사이로 한마디 내뱉 었다. [당신은...] 고명원은 웃었다. [현천도장, 불최 고명원입니다.] 현천도장은 눈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게... 이게 혹시 꿈이 아니오?] 고명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약속에 따라 무당으로 달려왔다가 도장께서...] 현천도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얼굴에 서글픈 빛을 띄우고 나직 히 말했다. [무당의 불행으로 이와 같은 추악한 일이 일어났구려. 아! 고노제, 내 가 고노제의 부탁을 져버리게 되었으니...] 그는 심신이 크게 격동되는 것을 느끼고 고명원의 오른손을 잡고 끊 임없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왁, 하고 한 모금의 새까만 핏물을 토해냈다. 고명원은 아연해졌다. [도장...] 현천도장은 쓸쓸이 웃었다. [빈도는 그들에게 비파골을 끊기고 여덟 가닥의 경맥이 잘라지게 된 후 다시 독침으로 혈도를 찌르는 형벌을 받았소. 내가 수십 년 동안 고되게 닦은 한가닥의 진기가 아니었다면 벌써 숨을 거두어 노제와 마지막 상면을 하지 못했을 것이오...] 고명원은 그만 모골이 송연해서 욕을 했다. [악독한 놈들 같으니!] 그는 두 눈에 흉칙한 안광을 품어내며 노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 다. [내가 산채로 그 빌어먹을 자식들의 근을 뽑고 가죽을 벗겨내지 않는 다면 사람도 아니오.] 현천도장은 쓸쓸이 웃었다. [정말 무당의 불행이오. 내가 덕과 능력이 없었던 탓이오. 이래 가지 고서야 어떻게 본문의 역대조사들을 대할 수 있겠소...] 고명원은 위로의 말을 했다. [도장, 괴로워 마시오. 불초는 이미 천년설련을 도장에게 복용시켰소. 심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할 수만 있다면 도장의 능력으로 독을 몰아 내고 상처를 치료하여 다시 경맥을 잇게 할 수 있을 것이니, 그 때...] 현천도장은 전신을 흠칫하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뭐라고? 아우님이 천년설련을 나에게 복용시켰단 말이오? 어째서 그 런 일을 했소?] 고명원은 웃었다. [도장께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까짓 설련이야 대수로울 게 있 겠습니까?] 현천도장은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우님도 정말 멍청하구려. 빈도는 심맥이 마디마디 잘라져서 어 떤 영약으로도 구할 수 없소. 천년설련으로 말하면 인연이 없으면 구 할 수 없는 영약인데 허비한 것이 아니오? 검남 그 애는...] 고검남이 그 말을 받았다. [백부님, 저는 이곳에 있습니다.] 현천도장은 바둥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검남을 바라보며 고통 스럽게 말했다. [얘야. 빈도가 너를 위해 단약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뜻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너의 목숨을 잇고 병을 치료할 천년설련을 먹 어 버렸으니, 나는 정말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겠구나...] 고검남은 웃었다. [백부님, 상관 없어요. 어르신께서 몸이 좋아지시기만 한다면 이후 다 시 천산으로 가서 설련을 찾을 수 있어요!] 현천도장은 고뇌스러운 듯 말했다. [아! 너는 천년설련이 얼마든지 있는 줄 아는구나. 빈도가 죽기 전에 이토록 무거운 빚을 지게 되다니. 아! 내 마음이 어떻게 편해질 수가 있겠는가!] 고명원은 위로의 말을 했다. [도장, 너무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불초가 그렇게 한 것은 검남의 동 의를 얻은 것으로...] 현천도장은 자책하듯 말했다. [그러나 내가 천년설련을 먹었다 하더라도 몇 시진 정도 밖에 더 살 지 못하게 될 뿐이고 검남에게 있어서는 한평생을 좌우하는 일인데 내가...] 고명원은 얼른 그 말을 가로챘다.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두시지요. 도장께서는 낙담하지 마시고 먼저 운기행공해서 체내의 독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그런 후에 다시 경맥 을 잇는 방법을 강구해서...] 현천도장을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 스스로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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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