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땅의 신선(神仙)으로 불리는 구기자(枸杞子). 이 구기자의 오묘한 맛과 선인의 정성
이 함께 빚어내는 전통술이 바로 구기주(枸杞酒)다.
구기자술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이를 구기주라 줄여 말하는 것은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 구기주로 표현한 데서 유래하고 있다.
애주가들은 구기주를 ‘불로장생주
(不老長生酒)’라 칭한다.
특유의 향과 감칠맛, 그리고 뛰어
난 강장효과 때문이다.
집안 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해 종
가 맏며느리들이 온갖 정성과 손맛
을 곁들여 빚은 이 술은 지금 충남
청양지역 하동 정씨(鄭氏) 가문에
서 6대째 이어지고 있다.
시어머니로부터 비법을 전수한 임
영순씨(69)가 1996년 ‘명인(名人)’에
지정됐고 그가 만드는 ‘둔송 구기
주’는 2000년 9월 충남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됐다.
#구기자와 하동 정씨
청양 구기주를 빚는 비법은 하동
정씨 종부의 손에 의해 대대로 전
해져 오고 있다.
구기주 명인인 임영순씨도 청양지
방 하동 정씨 종가의 종부. 임씨는
시집오면서부터 구기주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 47년째 구기주를 담
고 있다.
임씨에게 구기주 담그는 비법을 전
수한 사람은 시어머니인 경주 최씨. 최씨 또한 시어머니인 동래 정씨로부터 명주의 비법을
물려 받았다.
이렇듯 150년 넘게 종가 맏며느리에 의해 전해진 구기주 비법은 현재 임씨의 맏며느리인 최
미옥씨(45)에 의해 계승·발전되고 있다.
구기주를 얼마나 아끼는지 하동 정씨 가문에는 “(구기주를) 지고는 못다녀도 넣고는 다녀
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종부들에 의해 빚어진 구기주의 그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가히 짐작
이 간다.
#피로회복, 탁월한 강장효과
구기주는 양질의 쌀, 청양의 명물 구기자, 그리고 칠갑산 맑은 물을 주원료로 해 전래의 비
법으로 빚은 순곡주다.
구기자는 주요 강정제로 쓰이며 중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각종 약방서에 그 효과가 전해
져 올 만큼 효능이 탁월하다.
옛말에 “집 떠나 천리(千里)에 구기는 먹지 말라. 이것은 정기를 보익(補益)하고 음도(陰道)
를 강성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는 여행 중에 정기가 넘쳐서 혹시 실수할까봐 이를 경계한
뜻이 담겨 있다.
구기주는 특히 강정제와 간세포 생산촉진에 효과가 크다.
구기 열매에 베타인·비타민·아미노산 등의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피로회복·강장효과뿐만 아니라 해열·기침방지·원기회복·동맥경화·고혈압의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
특히 말린 생약재로 빚은 술은 농도가 짙기 때문에 매일 저녁식사 전이나 취침 전에 작은
잔으로 2~3잔 정도 마시는 것이 좋다.
#새콤 달착지근한 맛 일품
구기주는 구기자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는 데다 새콤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16도가량이며 뒤끝이 깨끗해 아무리 폭음을 해도 다음날 ‘술국’을 찾는 일이
거의 없다.
전통 명주 구기주를 빚기 위해서는 장인의 정성과 엄선된 청정재료가 사용된다.
우선 통밀을 깨끗이 씻어 방아에 빻은 뒤 적당한 양의 물에 섞어 누룩을 만들고 약 45∼50일
정도 띄운다.
다음에는 양질의 쌀을 2시간 정도 물에 담갔다 건져 시루에 담고 불을 지펴 만든 고두밥을
누룩과 함께 고루 섞은 후 완전히 식혀 술독에 넣는다.
구기자 잎과 열매·두충 등을 2시간 정도 삶아 술독에 넣고 적당히 물을 부은 후 섭씨 27∼29
도의 온도로 10∼15일 정도 발효시켜 용수로 걸러내면 불로장생주인 구기주가 완성된다.
#안주거리가 필요없는 술
구기주에는 어떤 안주거리가 잘 어울릴까.
구기주 명인 임씨는 “술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술이고, 둘째
는 안주거리가 필요 없는 술”이라며 “구기주는 안주가 필요 없는 술이다”라고 말한다.
구기자의 약효 성분을 함유한 약주인 데다 독특한 향과 빛깔, 맛이 일품이어서 따로 안주가
필요 없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즐겨 먹는 안주가 있을 것 아니냐”고 했더니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지만 구기자로 만든 한과와 파전은 금상첨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