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그런데 이 글은 요즘 쓴 것이 아니라 2013년 여름쯤 안식년 동안 써서 새로 나온 제 책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요즘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해서 이슈를 만들어 내고 사회 전반이 다 미쳐 날뛰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막상 이런 일이 셍기고 나니 이 글을 한번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견지명이었던지 아니면 요즘 내가 약간 신기(神氣)가 있는 것인지, 쪽집게처럼 짚어냈던 것 같은...^^ )
초기 암을 발견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나라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내 주전공은 갑상선암이다. 원래 갑상선암은 그리 빈도가 높은 질환은 아니었다. 여성에서는 비교적 많이 발생하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는 5~6위 정도의 빈도를 가지는 암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1999년부터 10년 동안 650%가량 증가했고, 내가 속한 연세대학의 통계로도 2003년 이후부터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정 질환이 이렇게 증가하는 것은 놀라운 현상이다. 특별한 재난이나 자연,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기관이나 학계에서는 이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고자 다각도의 노력을 했으나 딱히 원인이랄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갑상선암의 발생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검사 기법의 발달과 초음파의 기능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많이 발견해낸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손쉽게 초음파나 그 외 검사들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첫째 이유다. 또한 한국의 의사들이 특히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아서 의심스러운 모양의 종양을 잘 발견해내고 외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3mm 정도로 작은 암에 대해서도 세포검사를 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 의료 환경이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외국의 경우에도 갑상선암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을 예로 들면, 1차 진료에서 초음파검사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설령 1차 의료를 한 의사에 의해 진료 의뢰된 영상의학과에서 검사를 하고자 해도 4주 이상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또한 진료비가 1만 달러(10,000USD) 가까이 나오기 때문에 웬만해선 검사하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갑상선암의 증가는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한 속도와 빈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 의학계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검사 방법의 발달에 기인한 결과이지만 이 증가 추세엔 또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원인은 알 수 없다”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렇게 특정 질환이 급격히 증가하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적인 공포심이 야기되고, 이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이 부족해지며, 의료기관에 업무가 과중되고, 또 결정적으로 사회자본의 소비가 급증한다.
현재 한국의 정부는 갑상선암의 급증에 대해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정부의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공중의 보건과 안녕을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하고 국민을 위험에서 구제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할 가장 옳은 일이다.
나는 이런 움직임을 보고 ‘드디어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갈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복지는 어땠는지 다 접어두고, 이젠 정말 자랑스럽기까지 하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학회(대한갑상선학회,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 학회)를 통해 정부와 소통하면서 알게 된 내용은 ‘역시나’에 해당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이다.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준비했던 내용은 질환의 급증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한다거나, 환자들이 급격히 발생하면서 의료 수급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긍정적인 사고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정부에 대해 ‘갑상선질환에 대한 연구를 지원해서 한국의 갑상선학 수준이 세계 최고가 되도록 이끈다’는 계획을 발표할 것을 기대할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를 알게 된 순간 조금이나마 남았던 미련도 깨끗이 정리할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정부가 먼저 나서서 국민의 고충을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세포적’이었던 것 같다.
아직은 정부의 목소리로 이런 내용이 ‘노골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러 채널을 통해 끊임없이 연기를 피우고 있다. 최근에는 모 정부기관에서 우리 학회 쪽에 “초음파 검사가 불합리한 검사라는 결론을 인정하라”는 압력이 들어오고 있단다. 현재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미 정부의 결론은 확고하다.
●갑상선암에서 초음파 검사로 ‘가치가 없는 작은 암’을 발견하는 것은 갑상선암 생존율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갑상선암을 건강검진에 포함시킬 이유가 없음에도 다 이 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어서 전 국민의 의료비가 상승하고 의료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이론이 어떠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럴듯한가?
나는 이에 대해 조목조목 분석을 하려 한다(내가 너무 흥분해서 산통을 뒤엎지 않기만 바란다).
우선 “갑상선암에서 초음파 검사로 ‘가치가 없는 작은 암’을 발견하는 것은 갑상선암 생존율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말에 대해 생각하자.
이 얼마나 교묘한 말인가? 갑상선암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듣는다면 초음파 검사를 통한 조기 진단이 마치 과잉진료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묘하게 분위기를 잡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언제라도 가능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된 말이다. 역시 인재들이 많은 조직이라… 이런 ‘절묘함’에는 정말 탄복을 금할 길이 없다. 갑상선암의 거의 대부분은 직경 1cm보다 작은 암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암 자체가 증가한 것보다 많이 발견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이제 초기 암의 비율이 거의 70%를 상회하고 있다. 과거 겨우 30%에 머물던 초기 암의 비율이 70%를 상회하면 생존율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상선암의 생존율은 정부의 말처럼 개선되고 있지 않다. 일본에서 위암을 초기에 진단하면서 생존율이 획기적으로 좋아진 것에 비교하면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반대로 생각해서 이렇게 초기발견을 하지 않고 방치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장 단순한 산술적 계산만 하더라도 생존율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 “초기 암을 이렇게 많이 발견하고 신속한 치료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생존율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뭔가 적극적인 연구나 치료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교묘하게 몰아서 생각을 흐리려 하지 말고 말이다.
다음은 진료비 상승 문제를 생각해보자.
정부는 쓸데없는 검사를 많이 해서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불순한 의도’ 때문에 나라의 재정이 파탄 난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물론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는 하겠지. 하지만 업어치나 메어치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가진 생각은 이렇다. 나라의 재정이 어렵다는 것은 알겠다. 검사비가 많이 나오면 더 어려워지겠지. 단순계산으로도 말이다. 그런데 다른 면을 생각해보자. 이미 갑상선암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이걸 초기에 발견하지 않고 놔두면 나중에 치료가 더 어려워질 것은 뻔한 일이고, 그러면 비용의 증가는 더 뻔한 일일 것인데, 검사를 하지 않고 방치해두면 비용이 어떻게 절감된다는 것인가?
고위 공직자의 이번 임기 내에는 갑상선암으로 인한 비용이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무사히 업적도 쌓고 칭찬도 들으면서 명예로운 퇴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해 보인다. 그럼 다음 사람은, 혹은 그 다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암에 걸린 당사자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가족들을 생각해보자. 작은 혹은 무조건 검사하지 말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의심스러운 것일지라도 그저 지켜봐야 하고, 혹시 자신의 비용으로 받고자 해도 그런 검사가 불법이 되어 버린다면 이게 과연 국민을 위한 조치라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암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크기 얼마 이하를 수술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법이 생긴다면, (물론 이것은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 예를 든 것이다.) 그게 정말 무엇을 위한 법일까?
우리나라는 소위 OECD 국가다. 선진국이 가지는 많은 특징을 이미 성취한 국제사회의 신예다. 많은 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고, 학문적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의 열등생은 정치와 관료사회다.
30년도 넘은 나의 대학 초년병 시절 보았던 한심한 수준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발전이 안 되는 것일까? 그 조직에 들어가면 뭔가 시각이나 인지에 장애가 생겨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걸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을 한 가지 하자면, 국민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교묘한 말의 구성으로 진실을 흐리기보다 오히려 솔직한 말이 더 받아들이기 좋을 것이니.
첫댓글 제목에 병명 갑상선암 이 들어가도록 수정 바랍니다.
운영자
네..알겠습니다.
좋은 정보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정보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이미생긴 암덩어리를 그냥 두면 어쩌자는건지 ....
갑상선암 명의다운 칼럼입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요즘 이상한 논리로 자꾸 환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