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네 이웃의 식탁
저 자 : 구병모
출판사 : 민음사
‘공동’이라는 이름이 유난히 강조되는 그곳,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모인 네 이웃의 이야기. 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오늘의 젊은 작가」의 열아홉 번째 작품 “네 이웃의 식탁“ 은 세 자녀를 갖는 조건으로 입주가 허용되는 공동 주택에 모인 각기 다른 사정의 네 이웃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주자와 입주 조건
꿈미래실험 공동주택에 입주한 4 가정의 이야기인데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부녀회장 스타일의 홍단희와 그 남편인 신재강, 그 집 아이들인 정목과 정협 형제, 동화 일러스트 작가인 조효내와 그 남편 손상낙, 효내의 딸인 다림이 육아 SNS를 운영하는 강교원과 그 남편 고여산, 아이들인 우빈이, 세아 마지막으로 육촌 언니의 약국에서 사무보조를 하는 서요진과 그 남편 전은오, 딸 시율이.
꿈미래공동주택의 입주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세 자녀 이상 낳도록 노력할 것-생식(?)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녀가 한 명 이상이어야 하고 이후에도 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기타 증빙서류 필요, 그에 따라 부부 중 한 사람만 경제활동을 하는 외벌이 가정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고, 내 집이라는 곳에서 안락하고 편하게 살고픈 욕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일단은 들어가 보고 그때 가서 나머지 조건을 충족시키면 되는 것이니까 라고 쉽게 생각하고 그들은 덜컥 그 공동생활권으로 들어간다.
공동생활의 시작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커다란 대형 원형 식탁, 공동주택 뒤 마당에 크고 묵직하게 자리 잡은 그 원형 식탁은, 과연 이웃들 간의 소통의 창구였을까, 아니면 그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모호한 경계의 한 단면이다.
세 자녀를 갖는 조건으로 입주가 허용되는 공동 주택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기반 시설이 갖춰지기 전인 경기도 외곽 지역,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네 부부가 이웃이 된다.
공동주택에는 이제 겨우 세 가구가 입주해서 살고 있었고 네 번째 집으로 요진이네 가족이 입주를 한다. 공동주택답게 모두가 나와 요진이네 가족을 환영해주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첫인사를 나누는 그 시점부터 요진이네 사생활 영역을 넘나드는 단희. 적극적인 성격과,실행력까지 갖추고 공동주택 안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을 거의 도맡아 하는 것도 알겠는데 초면에 좀 과하다는 생각을 요진은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모두가 환영해주는데도 마냥 기쁘거나 반갑거나 하지 않다. 앞으로의 생활이 좀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공동생활의 문제점
각자 다른 속사정에도 불구하고 이웃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묶인 이들은 더 나아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라는 투박한 범주화를 통해 공동 육아를 꿈꾸며, 비슷한 위치의 직장이기에 자가용을 함께 쓰고, 공동생활이기에 생활 쓰레기 분리배출도 함께해야 한다. 그런 그들의 삶은 신축 빌라처럼 깔끔할까? 공동 식탁의 상판처럼 매끈할 수 있을까? 그렇게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를 다하려는 네 이웃의 식탁 아래에서 공동체의 허위, 돌봄 노동의 허무가 폭로된다.
그렇게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를 다하려는 그들. 그들의 삶은 신축 빌라처럼 깔끔할까? 공동 식탁의 상판처럼 매끈하고 조화롭게 생활해 나갈 수 있을까?
네 여성의 몫
출산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력은 특히 여성에게 과도하다. 주 양육자는 거의 여성의 몫이고, 부부가 모두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치 않으며 심지어 남편이 주부 노릇을 한다고 해도 그가 해내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부분을 파트너인 여성은 성실히 채워야 한다.
의자 네 자리를 차지하는 여성들도 아이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럴수록 의무와 부담의 비대칭은 더욱 가파르고 단단해질 뿐이다.
그들 또한 삶의 디테일 속에서 배려가 부족하고, 우유부단하며, 관계성이 부족한 약점을 내비친다. 이번 생에서, 엄마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전업주부의 몫은 절반 이하로 후려치기당하고, 워킹맘은 두 배의 노동을 강요받는다. 과연 공동주택에서 여성들은 이웃의 식탁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내 가족의 식탁을 부술 수 있을 것인가?
진행
너무 재미있거나 엄청나게 쏙 빠져들진 않지만, 결말이 어떻게 그려질지가 무척 궁금해하며 읽게 되고 책을 덮고 나서는 기분이 썩 좋지도 않다. 현실세계에 있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본 것 같은 씁쓸한 기분에 유쾌할 수가 없다.
책에 등장하는 네 부부 성격은 다 제각각이다.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두드러지는 캐릭터도 있고 그렇지 않은 캐릭터 등을 통하여 현실부부들의 모습을 그려진다. 네 부부를 통해 부부 사이, 그리고 이웃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상황을 경험해 보면서 자꾸 나를 이입시키게 되어 나였더라면 어떻게 했을지 매번의 상황마다 당혹스럽기도 하다가 통쾌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마무리
1. 공동주택 생활에 대한 고민
처음부터 누구 한 사람의 주도하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면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들 네 가족의 공동생활이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의 공동생활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 상황에서 나또한 이 모든 제반 사항을 잘 따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2. 그리고 여전히 생활 곳곳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젠더(여성차별과 성희롱)문제에 대한 생각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애매모호하게 경계에 걸쳐서 수작(?)을 부리는 경우에는 정색하기도 또 그냥 넘어가기도 매우 찝찝한데 그런 상황들이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게 된다.
하지만 그 반대도 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하죠. 남자를 사람으로 보지 마라. 일일이 셔켜야만 알아먹는 짐승으로 봐라. 딱딱 손가락으로 가리켜라, 시키는 건 정말 잘한다, 정확한 인풋에 칼 같은 아웃풋이 있다.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는 걸 저도 인정한다니까요.″ 73쪽
3. 다행히 결말이 통쾌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속이 시원했고 강단 있게 행동해준 요진이가 참 기특하고 멋지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큰 결단 내려준 단희도, 결국 나 자신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내들의 멋진 결단이 우선은 속이 시원하지만, 홀연히 그곳을 떠났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세상은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던지 쉬이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대해 씁쓸함을 남겨준다.
결론
남은 한 가족... 결국에 이러한 공동주택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열두집 가운데 원래는 네 집이 들어 있었으나 그중 세 가족이 퇴거하고 지금은 자기네들밖에 남지 않았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입주자들이 어째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갔는지 알 수 없다. (183쪽)
알 수 있다 :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으면서 공동생활의 편리함을 누리는 건 불가능하기에 사생활의 보장을 위하여 떠났다.
첫댓글 '네 이웃의 식탁 아래에서 공동체의 허위, 돌봄 노동의 허무'
- 허위와 위선,,,,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가는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