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7주일 (나해) 강론
빵 속에 든 금화 한 닢
옛날 독일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인가 그 땅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돈 많은 노인 부부가 날마다 빵을 만들어서 동네 어린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매번 빵을 한 개씩만 가지고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이들은 서로 조금이라도 더 커 보이는 빵을 차지하겠다고 난리를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한 여자아이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언제나 맨 끝에 섰습니다. 자연히 그 아이에게 돌아가는 빵은 항상 제일 작은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더 큰 빵을 차지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자기에게 빵을 나누어 준 노인 부부에게 고맙다는 말조차도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는 제일 작은 빵을 차지하면서도 언제나 깍듯하게 그 노인 부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그 여자아이에게 돌아온 빵은 유난히 더 작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노인 부부에게 빵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자아이는 빵을 먹으려고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빵 속에 금화 한 닢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옆의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너처럼 작은 것일지라도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마련한 선물이란다.” [2014년 12월 14일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대구주보 5면]
오늘 복음의 빵을 많게 한 기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행한 질문에서 주님께 대한 그들의 불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수한 병자들을 낫게 하시고 폭풍우와 바람까지 잠잠하게 하신 예수의 능력과 엄청난 권능을 제자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저 사람들을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답했던 것이다. 안드레아는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물론 맞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예수 앞에서의 그들의 이야기는 당신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자신들도 그곳에 있었더라면 제자들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을지 모른다. 주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이 기적의 이야기에서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았을 것이다. 다른 어른들은 비록 자기가 가진 것이 조금씩 있었다 할지라도 내놓지 않았는데이 단순하고 소박한, 그리고 천진난만한 어린이만이 빵과 물고기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해서 내놓는 그 마음과 사랑이 바로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을 여기서 깨달을 수 있다. 작은 것을 내놓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더욱 큰 사랑이 그 안에서 나타나기에 그것은 빵의 기적과 연결될 수 있었다.
셋째, 예수께서는 한 어린이가 가져온 빵과 물고기를 들고서 아버지를 향해 기도하신 것이다.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그냥 기도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인간의 작은 사랑과 정성을 바탕으로 아버지께 기도를 하신 것이다. 그분이 기도하신 내용을 우리는 직접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감히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는 분명 “아버지, 감사합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온 어린이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 이 마음을 당신께서는 높이 사시고 배고파 허기진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야겠다는 당신의 마음과 저의 마음이 같으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셨을 것이다. 이 기도의 순간에 빵의 기적은 일어난 것이다.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연민의 정을 느끼시는 주님의 사랑은 빵의 기적을 통해 나타났고 교회 안에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넷째, 모든 이들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는 이야기는 성체성사 안에서의 풍요로움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그분과 누릴 잔치는 아무리 먹어도 부족하지 않는 넘치는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욕심내지 않고 늘 맨 마지막에 작은 빵을 받아 간 한 어린이의 따뜻한 마음, 이것이야말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온 어린아이의 마음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거창한 구호나 큰 데에 있지 않고 이처럼 남을 위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뭔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정성된 마음에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진정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며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 돌릴 줄 아는 진실한 사람인 것이다.
신약의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은 제1독서에서 언급된 구약의 엘리사 예언자가 보리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으로 백 명을 실컷 배불리 먹인 것과는 대조되고 있지만 근본 취지는 같다. 사랑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나눌수록 커질 수 있고 이 작은 사랑으로 모든 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랑의 절정, 극치가 바로 오늘의 빵의 기적에서 나타났고 이를 위해 예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 모든 이가 십자가상에 봉헌되신 당신 몸과 피를 받아 모시도록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해주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한 주님 안에서 믿음도, 세례도 하나이며 한 하느님을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우리를 묶어주신 주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빵의 기적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거룩한 몸 안에서 하나를 이루고 그분 안에서 풍요롭게 살아가도록 하라는 그분의 사랑의 초대인 것입니다. 주님의 몸을 늘 받아 모시면서 우리 모두 주님 사랑에 깊이 맛 들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하신 조부모와 어르신의 날이라고 했으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모든 어르신들이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존엄성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하고 그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