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등반 페스티벌 | 중국 만선산 클라이밍 페스티벌] 중국 산악계에 부는 한류, 최전방 보고서를 전합니다!

[산머루산악회]

[해외 등반 페스티벌 | 중국 만선산 클라이밍 페스티벌] 중국 산악계에 부는 한류, 최전방 보고서를 전합니다!

• 글·사진 전양준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기자의 다른 포토보기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거대 암벽에서 열린 한중 국제 암벽 축제

태행산은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린다. 허난성(河南省), 허베이성(河北省), 산시성(山西省) 총 3개의 지역에 걸쳐 있을 정도로 웅장하고 거대한 산군이다. 1만 명의 신선이 살았다는 만선산은 태행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기암괴석에 동굴을 뚫어 길을 연결한 장관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만선산에 대해 잘 모르고 왔더라도 이정표가 한글로 되어 있어 한국인이 자주 찾는 명소임을 알 수 있다.

만선산은 20km에 걸쳐 높이 140~200m에 달하는 암벽루트 300여 개가 있는 국가암벽공원으로 유명하다. 개척 당시 정부에서 한 개 루트를 개척할 때마다 얼마의 비용을 개척자들에게 지불했다. 때문에 등반보다는 개척을 많이 하는 데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중국 등반 애호가들이 효율적인 등반을 위해 200개의 루트를 재정비했다.

▲ 만선산 자연암벽을 오르는 클라이머들. 중국은 클라이머들의 연령대가 젊어 미래가 밝다.

다양한 등반 벽에 다양한 볼거리 마련

9월 4일 ‘2015년 만선산 한중 국제 클라이밍 페스티벌’(이하 만선산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동안 중국에서 열린 클라이밍 페스티벌은 자국이나 외국의 유명한 클라이머를 초청해 참가한 초보자들에게 등반시범을 보이거나, 함께 등반을 하며 자연스럽게 기술을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달랐다. 볼더링 대회를 포함시켜 좀더 발전한 다른 성격의 페스티벌로 거듭난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열린 만선산 페스티벌 이후, 만선산을 찾는 관광객 수가 두 배로 증가하면서 현지인들에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2015년 페스티벌은 더욱 성대하게 열렸다. 새롭게 스피드 경기 벽과 볼더링 벽을 설치했으며, 별도로 우리나라 돈으로 5억 4,000만 원을 행사비용으로 투자했다. 1년 사이에 큰 규모의 국제 대회로 탈바꿈한 것이다.

필자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건 이유가 있다. 작년 추석 연휴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정준교와 필자, 중국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원쎈과 만선산을 등반했었는데, 이렇게 거대하고 웅장한 벽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팀의 중국 클라이머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찾은 만선산 입구에서 본 높이 15m에 달하는 국제 스피드 대회 벽과, 길이 20m가 넘는 국제 볼더링 경기장을 본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중국의 암벽등반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발전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처럼 급속도로 이뤄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볼더링 대회를 마치고 한 자리에 선 한국 선수단. 좌로부터 대한산악연맹 송원혁 감독, 이의재 사무국장, 박지환, 한스란, 김자비, 사솔, 채성준, 조해미 선수.

한국 코오롱등산학교의 원종민, 최원일, 필자 3명은 중국등산협회의 초청을 받아 9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린 만선산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중국 코오롱등산학교 마안핑 강사가 행사의 관계자였기에 어려움 없이 연결될 수 있었다. 중국등산협회에서 우리를 초청한 것은 선진 등반기술과 이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중국 클라이머들은 대부분 단 피치 하드프리와 볼더링 위주였기에, 인공등반과 멀티 피치등반의 이론과 실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더불어 등반 역사에 관한 부분까지 전수하기를 원했다. 강의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대회에 참가한 중국 선수들이었다. 페스티벌에는 우리 강사진 외에도 6명의 한국 볼더링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했다.

볼더링 대회 예선과 결승을 관전할 시간이 있었는데, 중국인들은 한국선수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선수 대기실 앞에서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동작을 취할 때마다 좇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나에게도 계속 말을 걸어왔다.

▲ 페스티벌에 참가한 중국 코오롱등산학교 강사와 학생들. 앞줄 왼쪽부터 리한, 쑨원지에, 뒷줄 왼쪽부터 류웨이 강사, 쟈오리.

“한국 여자선수들 너무 예뻐요. 왜 이렇게 예쁜 거예요?”, “왜 김자인 선수는 안 왔어요? 우리가 실력이 떨어져서 2진들만 온 것 아닌가요?”, “선수들과 같이 사진 찍고 싶은데 좀 도와주세요”.

쉴 새 없는 질문과 요청으로 당황스럽게 했다. 그들이 한국선수들을 좋아하는 것은 단지 실력이 좋아서 뿐만이 아니라 애정을 듬뿍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선수들에게 말도 못 꺼내고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 코오롱등산학교 기초반 접수 10초 만에 마감

중국등산협회가 주최한 이번 만선산 페스티벌에서는 스피드와 볼더링 경기 외에 초보자가 15m의 인공암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쉬운 암벽 루트를 설치했다. 또 60m 자연암벽 스피드 경기와 가수들의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등반 대회가 주를 이룬 행사장으로 오해할 정도의 휘황찬란한 분위기였지만, 한편에서 중국등반가들이 관심을 갖는 ‘암벽등반 개론’ 강의와 멀티피치 클라이밍과 인공등반 실기 교육이 진행되었다.

특히 암벽등반 이론 강의에 임하는 중국 등반 애호가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예상 밖의 호응으로 이론 강의를 주도한 원종민 강사도 의아해했지만, 중국의 등반 흐름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각종 등반대회가 성행해 이미 세계적인 선수들도 많고, 국제 루트세터, 국제 심판 등 경기 부분에  준비를 해온 지 오래다.

과거 페스티벌의 성격도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세계적인 등반가를 초빙해 선수들을 양성해 왔다. 당연히 훌륭한 선수들을 배양해 왔을 것이다. 다만 등반대회에 있어서 주목을 받는 선수는 남녀 통틀어 불과 몇 명일 뿐이다. 1등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만약 등반이 축구나 야구처럼 국가를 대표하여 대리만족으로 쾌감을 얻기에 충분하다면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등반은 다르다. 자신이 직접 등반함으로써 더 큰 쾌감과 감탄을 얻는다. 물론 세계적인 등반가가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 될 수도 있다.

▲ 1 만선산 한중 국제 클라이밍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볼더링대회 여자부 결승전에서 마지막 문제를 해결 중인 한스란 선수. 2 ‘등반 개론’을 강의 중인 원종민 강사. 3 페스티벌에 참가한 중국 꿈나무 클라이머들 .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신기해하며 계속 질문을 한다.

하지만 페스티벌에 참가한 경험 많은 등반가와 초보자들의 생각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중국에서도 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등반할 때 자신에게 알맞은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며, 그 배운 지식을 다른 중국 클라이머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 나는 한국선수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중국 친구들을 보면서 단지 한류의 영향이 여기까지 미친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산악계에서 고산 거벽보다 스포츠클라이밍이 각광 받는 것은 만선산에 개척한 루트를 보더라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우선 길이가 20km나 되고 높이가 150m 정도인 거대한 벽에서 정상까지 도달하는 루트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정상은 인수봉처럼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라 마을이 있을 정도다.

왜 바위 끝까지 개척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들은 “뭐 하러?”라고 되묻는다. 굳이 끝까지 오르지 않아도 좌우에 오를 암벽이 이렇게 많은데 하는 표정이다. 바위는 많지만 인수봉 같은 독립봉이 없기에 당연히 정상에 대한 환상도 없다. 그러니 목표도 없다. 좀더 어려운 난이도만이 그들의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중국 시샤팡마가 가장 마지막으로 초등된 8,000m대 봉우리라는 것과, 시샤팡마를 외국 등반가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초등한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정말이냐?”며 웃으며 반문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할 정도로 중국은 알피니즘이나 등산 역사에 관한 교육이 거의 없다.

원종민 강사는 “코오롱등산학교를 30년 동안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좀더 나은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 목표가 중심이 되어 흔들리지 않고 30년 역사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종민 강사의 ‘암벽등반 개론’ 강의가 끝나고, 중국인들의 반응이 왜 이처럼 뜨거웠는지 알게 되었다.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산을 오르는지”에 대한 중국인들의 뭔지 모를 목마름이 있었던 것이다. 알프스에서 시작된 산악정신과 왜 산을 오르는 것인지, 더욱 어려운 정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개발된 장비들과 기술이 변천되는 과정, 지금의 결과로 이어진 사실과 그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공감했다. 자신들의 등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그 순간 그들에게도 목표가 생기고 그들만의 안나푸르나가 생긴 것이었다.

다음날 실기교육을 진행하며 우리에게는 익숙한 교육이 그들에게는 생소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교육임을 알게 되었다. 한 피치를 오르는 등반에서는 볼 수 없는 확보기술과 하강기술, 거기에 따른 탈출, 구조 장비 사용법 등을 숙지하는 동안 초보자는 신기해하고, 경험자는 강사가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사실을 중국 코오롱등산학교 기초반 2기 모집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1기 모집 때 교무를 맡았던 류웨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학생 모집보다 강사 모집이었다. 북경 이외의 지역 강사는 멀어서 오기 힘들고, 북경 거주 강사 또한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타 지역강사와 마찬가지의 상황이라 비용과 시간문제로 큰 어려움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페스티벌에 찾아 온 각 지역의 유명 등반가들이 류웨이 교무에게 “만일 강사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을 전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9월 5일 밤 12시에 2기 접수를 시작했는데 접수 개시 10초 만에 정원이 마감된 것이다. 다음날 접수 못 한 사람들이 중국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들에게 등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냐는 문의가 폭주해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국 강사인 나에게도 청탁(?)이 들어 온 것을 보면 그들이 어느 정도 간절했는지 알 수 있었다. 중국에서의 뜨거운 관심과 인기를 느낀 것은 물론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로 우리가 배워야 할 점 또한 많다는 것을 느꼈다.

▲ 중국 산악인 아간의 크랙등반. 등반사진을 즐겨 찍는 클라이머이며, 만선산 페스티벌에서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맡았다.

비바람 없이 무지개를 볼 수 있으랴

중국이 비록 우리나라보다 등반 수준이 뒤졌다고는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대회를 진행하거나 교육하는 부분에 있어서 한국의 행사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고 매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등반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고 해서 결코 상대적으로 더 깊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중국에서는 다같이 잘 살자는 말이 있다. 그런 생각이 있기에 이런 큰 행사를 매끄럽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원동력은 바로 희생과 배려이다. 한국의 등반이 세계적인 수준임에는 틀림없으나 중국처럼 크고 매끄러운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모진 비바람을 더 맞아야 한다. 아직은 그 무지개를 위한 안개가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