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은 박물관을 찾는 것도 아주 좋은 선택지 중 하나다.
연일 계속되는 장마로 인해 산행은 물론 트레킹도 어렵다.
코로나로 인한 인원 제한으로 사전에 예약을 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중앙박물관은 주차장이 넓고, 주차비가 저렴해서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경천사 십층 석탑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대리석 탑으로, 고려의 전통과 당시 중국 원(元)나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탑 아래쪽 3단의 기단부에는 현장법사와 손오공 등이 인도에서 경전을 구해오는 험난한 여정을 중심으로 나한과 사자를 새겼다. 그 위 탑신 1층에서 4층까지는 법회와 법회 이름을 새긴 현판을 , 탑 꼭대기까지는 부처를 조각하였다.
천불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이 시기를 정점으로 통일신라의 불상 조각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연꽃무늬 수막새
수막새는 목조건축의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된 둥근 형태로 만든 와당으로 ‘원와당(圓瓦當)’이라 불린다. 연꽃무늬는 불교의 영향으로 주로 새겨졌다.
청자 배모양 그릇
폭이 좁고 길어 마치 배처럼 생긴 용기로, 이 청자 그릇의 용도는 변기로 추정된다.
청자 연꽃 넝쿨 무늬 병
12세기의 청자 병으로 은은한 광택과 우아한 선이 매력적이어서, 12세기의 청자 중에서도 상품(上品)에 속한다.
고려 여성의 화장 도구
기름을 넣었던 병을 비롯하여, 청동거울, 화장 재료를 넣었던 작은 합과 큰 합, 청동거울, 빗, 귀이개, 족집게
1. 청자 잔과 잔 받침. 2. 청자 참외모양 주전자
청자 잔과 잔받침, "을유사온서"가 새겨진 매병이다.
"청녕 4년"이 새겨진 종
"청녕"은 요(遼)도종(道宗)이 사용했던 연호로, 청녕 4년은 문종 12년인 1058년이다. 이 종은 신라의 종에서 고려의 종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종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이 종은 당시 고려의 국왕인 문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
이방원과 나눈 <단심가>를 통해 충절을 노래했고, 선죽교에서 방원의 부하 조영규 등에게 격살되었다.
태조 어진
고려 말의 무신이며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조선 제 1대 왕.
근정전 어좌
달항아리
조선의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로, 둥근 달을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무늬 대접
왕실에서 사용한 화려한 청자 백자로, 헌종의 세 번째 가례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화려하고 이국적인 청화백자다. 대접 안쪽과 바깥쪽 모두를 청화 안료로 다양하게 장식하였고, 대접 안쪽 가운데에는 보상화 문양을 바깥쪽은 꽃가지가 있는 능화창을 그려 넣었다.
숙종대왕 계시
숙종이 관직을 사직하고 물러나 있던 우의정 허목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오는 과정에서 내린 글이다.
내용은
"거듭 근시를 보내어 간절하게 말하였으나 떠나려는 마음을 되돌리기 어려움이 갈수록 더욱 심하여 나의 정성을 돌아보지 않으니 더욱 나도 모르게 땀이 옷을 적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러한 뜻으로 반복해서 간곡하게 타이르고, 우선 그곳에 머물다가 함께 돌아와 헛되어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영조 초상화
노론의 택군으로 왕이 된 왕세제 영조는 1694년(숙종 20) 9월 13일에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숙종에게는 둘째 아들이고, 경종에게는 이복동생이다. 6세에 연잉군으로 봉해지고, 경종 즉위년에 왕세제에 책봉되었다가 경종 사후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조선 제 21대 왕이다.
세자시강원 전교현판
세자시강원에 걸렸던 현판 중 하나로, 영조가 강의를 자주 건너뛰는 세자를 훈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조가 지은 사도세자의 묘지
이 글을 직접 지은 영조는 아버지가 이렇게 만고에 없는 일을 하게 만든 이유는 사도세자의 그릇된 행동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흥선대원군 호송도
1894년 오토리 게이스케 공사가 대원군을 앞세워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궁내부 현판
관인
대한제국기 관부에서 사용한 도장이다.
고종황제 옥보
고종황제의 51세 생일과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며 '건행곤정영의 홍휴(乾行坤定英毅弘休)'라는 존호를 더 올리면서 제작한 옥보다.
황색 곤룡포를 입은 고종황제의 초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