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맡기라(수 9:25)
여리고성에 이어서 아이성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의 소식이 가나안 땅을 뒤엎었습니다. 낯선 히브리인들의 거침없는 행보에 가나안 원주민들은 놀랐습니다. 이스라엘과 대적하기 위하여 연합하여 싸움을 준비하는 왕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잔꾀를 내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낡은 전대와 옷과 신 그리고 마르고 곰팡이 난 빵과 찢어진 가죽 부대를 준비하여 여호수아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먼 나라에서부터 이스라엘과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과 평화의 조약을 맺으러 왔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만나기 위하여 오랜 시간 여행했다는 증거로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며 진실성을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14절), 여호수아는 그들과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그들의 거짓말을 깨닫게 되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삼일 길을 걷자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에 이르게 되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들과의 조약 때문에 건드리지도 못하고 살려주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뒤늦게 깨닫고 그들을 불러서 어찌하여 거짓으로 평화 조약을 맺었는가 추궁을 했습니다(22절). 이스라엘과 가깝게 거주하면서도 어찌하여 먼 곳에서 왔다고 속였느냐고 추궁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그리고 모든 주민들을 멸할 것이라는 하신 말씀을 두려워하여 이같이 행하였다고 불가피하게 이스라엘을 속였다고 대답했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인간으로 살면서 아무리 비천하고 괴로워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미입니다. 기브온은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으면서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이 되었습니다(27절).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성막이 기브온에 있었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과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과 평화 조약을 맺었음에도 하나님은 기브온을 위한 선한 일로 삼으셨습니다.
기브온이 여호수아를 두려워하며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라(25절)고 말을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로 한껏 의기양양하던 순간, 생명을 위해 먼저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었던 기브온에게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스스로 은혜를 내어주었습니다.
우리 나라를 비롯한 미국 등 많은 나라들이 지도자의 거짓과 무지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지도자의 통찰력과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잊은채 여리고와 아이에서 승리한 자신에게 도취되어 기브온의 속임에 쉽게 넘어갔습니다. 지도자의 통찰력과 지혜는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절대적인 영향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각각 자신의 소신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삿 21:25). 기브온과의 조약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행하였던 결과였습니다. 기브온의 종교적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종으로 삼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은 가나안 원주민과의 공존해야 하는 긴장이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과학과 기술은 하늘에 이르려 쌓아 올린 바벨탑이 되어 스스로 신이 되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이 더이상 우리를 인도할 수 없고, 우리는 우리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며 그가 이루시리라(시 37:5)’고 고백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옳은 대로 행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묻고, 그에게 맡기고, 의지하여 그가 이루시는 것으로 감사하는 바다교회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