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신 진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는 널려 있으나 인간을 일깨우는 스승이 없다는 탄식 드높은가 하였더니 어느새 동네방네 스승 따르는 제자 넘치는 날 도래하였구나 길에서 공원에서 사제 간 동반행 줄을 잇나니 앞선 스승 받들고 따르는 제자 모습 아름답고 갸륵하도다
스승께서는 사람 위하는 일에 오른 손 하는 일 왼 손이 모르게 행하시고 양심 지키시고 소임 다하심에 목숨 아끼지 않으실 뿐 아니라 오해와 질책, 독선과 폭력이 가해질 때에도 그러냐그러냐 훈훈하게 받아 삭이시나니 인간사에 버려진 도의, 잃어버린 신의가 예서 현현타 하리라
스승의 가문은 대대손손 인간존중 실천하시었나니 일찍이 세속에서 사냥 목축 사역(使役) 등을 담당타가 인명구조 애완 반려를 거쳐 오늘에 와서는 세습 스승의 반열에 이르시었다 스스로 분수를 알아 없어도 없는 티내지 않으시고 세속의 명리 멀리 하시며 어린 제자의 주장도 귀담아 들으시고 마음자리 있는 그대로 실천궁행하시더라
오늘날 제자들은 스승의 뜻 헤아려 음식이며 잠자리며 입고 벗는 입성에까지 모시기 앞을 다투나니 나들이라도 있을 시면 안아 모시고 감싸 모시기에 망설임 없고 불가피한 출장이라도 있을 때는 호텔에다 미리 모셔 단 이틀의 이별조차 예를 갖추나니 오오 생짜로 눈에 넣어도 사랑옵고 우러러옵는 우리 스승
스승께서는 탐욕과 질시 분별과 번뇌 멀리하심은 물론 못된 행실 볼라치면 때와 장소 없이 버럭 불호령을 내려 삼이웃 일깨우심에 예로부터 민간에서 멍첨지라 받드는 바 되시었고
아파도 앓지 않으시고 남은 음식 버릴 음식 솔선하여 취하시며 빈집 빈 뜰 홀로 지키실 뿐 아니라 된바람 속내 읽고 소낙비 독경하며 정진하시다 종내에는 죽음마저 탁탁탁 꼬리 두들겨 맞으시나니 오오 제행무상 일체유심조 만인의 스승이신저 제자들은 스승의 장례를 부모 장례 넘도록 후히 치르는도다
제자들은 오늘도 집게 들고 비닐봉지 들고 스승께서 멀어질까 귀한 말씀 혹여 놓칠까 분뇨 한 방울 빠트릴까 끈으로 몸을 이어 삼천리 방방곡곡 행렬 수를 놓는구나 오늘날의 사제지정 어찌 갸륵하고 아름답다 하지 않으리 사람 축에라도 들자면 누구 한 사람 꼬리치며 반갑다고 노래 부르며 그를 따르지 아니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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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책(秘策)
신 진
태풍이 불 때는 외출을 삼가고 창과 창틀 사이를 테이프로 고정시킨다
지진이 나면 벽, 모서리, 화장실, 탁자바닥 순으로 몸을 피한다
강도를 만나면 냅다 도망치거나
가진 것 다 내놓고 목숨 하나 수습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초코바와 육포 견과류 등 가벼운 고열량 음식에 비상약품과 라디오, 라이터, 랜턴, 지도, 신분증, 집문서 등을 지참, 어떻게든 외국으로 그게 안 되면 무인도로 토낀다
사회생활에는 항시 밝고 온순한 표정으로 임한다
사랑을 함에 있어 순정을 다하되 냉철한 타산을 잊지 않는다
챙길 때는 오른손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한다
고약한 일 들키거들랑 내가 아니라거나 절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
눈꺼풀 처지고 검버섯 필 때 되면
돈과 노력 아낌없이 안면 성형, 발기부전, 안티 에이징 관리하여 체통 유지 매진한다
죽음, 어떻게 맞나?
그를 맞을 때에는 평생 기어오른 높이만큼 떨어져 부숴지느니
맞기 전에 이룬 것 쌓은 것 죄다 제자리에 갖다놓고 가장 낮은 자리에 얼른 엎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