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명심의 '이것은 사진이다' 육명심 사진인생론, 저자 소개, 책의 구성 그리고 소감다니엘스트리트포토 2023. 5. 16. 18:23
글. 강성규 다니엘
https://www.instagram.com/danielstreetphoto9/
사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왠지 이렇게 물어보고 계실거 같은 표정이다.
육명심의 사진인생론
한번 주제를 정하면 일편단심 정해진 대상에만 집요하게 매달린다. 마치 한 여인을 사랑하면 딴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정하고도 뜨거운 사랑에 비할까. 나는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그것만, 오로지, 집중적으로, 적어도 5년 이상 계속해서 파고드는 편집광적인 데가 있다. 내가 펴낸 사진집은 그 결과물이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초판 책을 들고 찍은 모습이다. 그림이지만 선생님의 저 눈을 보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사진가 육명심
1933년 충남 대전 출생.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 졸업
1972년 서라벌예대 사진과 전임대우
1975년 신구대학 사진과 창설 교수
1981년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창설 교수
1999년 서울예술대학 정년 퇴임
1983년~2003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홍익대학교 산미대학원, 상명대학교 대학원, 숙명여자대학교 산미대학원 강사(담당과목 : 세계사진사)
1994년 '육명심 사진집' <사진예술사>
199년 '하늘아래 첫 땅 - Tibet' <장산>
2001년 '미명의 새벽'(7인 합동 사진집) <눈빛>
2007년 '문인의 초상' <열음사>
2008년 '장승' <웅진출판사>
2009년 '검은 모살뜸' <눈빛>
2011년 '백민' <한미사진미술관>
2012년 '예술가의 초상' <한미사진미술관>
1978년 '한국현대미술사' 시리즈(사진편) 공동집필 <국립현대미술관>
1987년 '세계사진가론' <열화당>
2005년 '사진으로부터의 자유' <눈빛>
사진가로서의 자존심
겸손은 위선이며 약자의 가면 : 평소에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과 잘 화합하지 못하고 부딪혀서 깨지고 속상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속으로는 끙끙 앓으면서 밖으로는 태연한 척해야만 했다.
나는 자존심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릴 때가 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중압감으로 나를 박살낼 것 같았다. 그런데 이에 전혀 끄덕도 않는 단단한 저력이 나도 모르게 도대체 어디에 숨었다 나타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술가들이 자존심 싸움을 할 때 온몽으로 겪는 일이다.
잡아먹느냐 잡아먹히느냐 : 미술사에서 중국 화공들을 완전히 잡아먹은 영광스런 승리자들도 있다. 겸재 정선이 서울 인왕산을 그린 '인왕재색도'를 보면 그렇다. 이 그림에서는 중국풍을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중국을 완전히 잡아먹은 것이다.
나는 독자들보다 단지 먼저 세상에 태어난 탓으로 앞장서서 사진의 길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이 책은 이런 가운데 몸소 겪은 경험과 닥쳐오는 문제들을 정면으로 극복해 나아간 기록이다. 과연 내가 끝까지 지키려했던 사진가로서의 자존심이 얼마나 관철되었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예술과 구원
참으로 이상하다. 어째서 기쁜데 잠이 안오고 또한 잠이 안 와서 괴로운 것일까. 사흘을 계속해서 잠을 못 자니까 나중에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서 괴롭기까지 했다. 이제껏 80년을 넘게 살아왔는데 그때의 그런 색다른 경험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새로운 가치, 영상사진
사진의 시각은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아주 다양하게 볼 수 있으며, 한걸음 나아가 우리 육안이 볼 수 없는 것까지도 뚜렷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흘리 나기가 처음으로 부르짖고 나섰다. 그리고는 육안과 '카메라 아이(Camera Eye)'를 대조적으로 비교했다.
책에 수록된 사진
낯설게 하기의 예술적인 방법을 통해서 사진과 나의 내면적인 정신세계가 접목되기 시작했다. 예술은 인간의 내면적 심충 속에 잠재하고 있는 상상력의 해방이다. 예술에서 상징성이란 구체적인 사실의 지시가 아니라 간접적인 은유나 암시다.
책에 수록된 사진
너와 나의 소통, 예술가의 초상
1967년 대학교 은사인 시인 박두진교수님이 시집 '하얀 날개'를 펴냈다. 그때 책 장정을 변종하 화백이 맡고 내가 사진을 찍었다. 시집에 실린 사진이 다행히 괜찮다는 평을 받았다. 제일 먼저 수필가인 김소운 선생이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박목월 시인도 사진이 좋다는 말을 사석에서 했다고 한다.
그렇게 육명심의 사진에서 예술가들이 등장하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사진에서만 펼쳐내고 있다.
시인 박두진은 원고 쓸 때면 항상 이렇게 먼저 기도를 했다.
우리 시대 마지막 토박이들, 백민
백민은 70년대 말에 시작했다. 처음으로 세계사진계 속의 한국사진이라는 의식에서 시작한 일련의 작업이다. 서라벌예대에서 세계사진사를 강의한 지 5년쯤 지나서였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사진사를 전체적으로 파악을 못해서 단편적이었고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5년쯤 지나면서 세계사진의 역사적 흐름이 대충 한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흐름의 맥이 차츰 나름대로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내게 있어 세계사진의 역사를 구체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는 초기라 하겠다.
옛날 노인들은 좋았다. 슬하에 자식들이 곧 든든한 울타리였다. 과연 문명의 발달이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여름철 한때, 검은 모살뜸
제주도에서는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려 바닷가 검은 모래들이 한껏 뜨겁게 달아오르는 여름철 한때, 그 속에 몸을 파묻고 찜질을 한다. 검은 모래찜질은 제주도 사투리로 '검은 모살뜸'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적 민간요법이다.
뭔가 건강한 그런 모살뜸으로 보여진다. 모두가 몸과 마음으로 내려놓고 찜에 집중한다.
인간적인 매력, 장승
지난날 장승은 이 나라 어디를 가나 흔히 눈에 띄는 것이었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마을 입구에 장승 한 쌍이 나란히 서 있었다. 절에 가면 또 절 입구에도 장승들이 서 있었다. 이밖에 사람들이 많이 출입하는 천안삼거리나 지금 양재동 말죽거리 같은 번화한 곳에도 장승들이 서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한 풍경인 이것들이 이제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오히려 지키지 못하고 사라지는 문화는 세상의 발전과 달린 소수의 이해관계나 사상,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외견시 되는 일들이 많다. 우리의 문화를 바로 봐야하는 다양한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전남 영광에서 제자 이철수의 어깨에 목마를 타고 키 큰 장승을 찍는 모습이다. 가는 길에 버스에서 만난 사람이 동행하여 우리를 찍어서 보내주었다. 1996년
우리는 우리 눈으로 우리나라를 보라
사진가로서 그동안의 작업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면서 처음 사진에 입문했던 당시를 새삼스럽게 뒤돌아본다. 사진 초년생으로서 첫 번째 만남이 모홀리 나기였고 두 번째가 카르티에 브레송이었다.
모홀리 나기의 '신시각'에 잔뜩 빠져 있던 어느 날 한 사진계 선배의 사무실에 갔다가 책상 위에 있던 사진집 한 권을 발견했다. 사진집이니까 자연히 한 번 보고 다시 반복해서 보았다. 사진이 밋밋하고 평범해서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선배는 그 사진집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이라고 했다.
당장 그 책을 빌려다가 몇 달 동안 시간이 나는 대로 봤다. 이 책이 세계적인 사진의 대가가 찍은 사진들이라는데 사진을 보는 내 눈이 이다지도 까막눈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보고 또 보았다. 꼭 석달이 지난 어느 날 마침내 브레송 사진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담담하나 오묘하고 깊은 맛이었다. 그것은 여느 인공 음료수하고는 비길 수 없는 깊은 물맛 같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 문화를 가슴으로 사랑하고 깊은 이해를 갖추지 않으면 이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눈으로 우리를 찍어야 한다는 것은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의 눈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나라를 바로 이런 수준의 눈으로 보고 있었고 우리도 또한 당연히 우리를 그렇게 그 수준의 눈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눈으로 우리나라를 보라는 말은 그리 단순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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