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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문구(李文求, 1941-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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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한국 |
분야 | 소설 |
해설자 | 고인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부교수) |
전통 양식의 현대적 전용
근대성은 ‘자기 자신을 넘어선 자기 자신의 원리’를 구현한다. 이는 근대성의 부정적인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함으로써 보다 나은 근대성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근대성은 오늘날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으며,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근대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문구의 소설은 이러한 근대성의 변증법적 운동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하나의 계기를 함축한다. 농경 사회의 유제(遺制)와 산업 사회의 모순이 중층적으로 얽힌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그의 소설은 근대성의 논리가 배제하고 거부했던 전근대적 요소들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근대 문명에 대한 대안적 문명의 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문구가 활발하게 활동한 1960∼1970년대는 서구 중심의 근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의 붕괴, 인구의 도시 집중 등 근대성의 부정적인 양상이 두드러지게 표출된 시기다. 또한 이 시기는 4․19를 경험한 이른바 ‘4․19세대’들에 의해 서구적 의미의 문학 양식이 본격적으로 수용․확산되던 때이기도 하다. 이문구는 서구 중심의 부정적 근대화를 강하게 비판함과 동시에, 4․19세대들의 합리주의적 세계관과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특한 문학 세계를 일구었다. 그의 소설은 서구 세계만을 배려한 보편적 근대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의 특수한 토착적 서사 양식을 발굴, 전경화함으로써 주변부 근대성의 이식과 굴절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이문구의 문학적 실천은 서구적 의미의 ‘근대성의 자기 고양 전략’을 체현하면서도 이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구의 동일성 담론이 남긴 정신적 예속화를 극복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전통/공동체/농촌’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관촌수필≫과 ≪우리 동네≫는 이러한 가치들에 대한 탐색이다. 작가는 농촌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해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전유함으로써 근대소설을 재구성하려는 야심 찬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근대 담론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여, 근대의 이분법적 인식의 틀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통해 구체화된다.
‘고향 상실의 이미지’, ‘귀향 모티프’로 대변되는 ≪관촌수필≫의 세계는 근대소설의 전형적인 주제 의식을 표출한다. 이는 근대성을 성취하는 동시에 이를 넘어서려는 기획의 일환이다. 근대성의 타자인 전근대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부정적 근대를 넘어서려는 의도인 것이다. 전통적 이야기 양식의 차용은 근대소설 양식을 타자화하려는 의도의 하나로, 과거와 현재, 농촌과 도시의 혼융․긴장을 매개로 하여 근대성에 대한 동시대적 성찰로 나아간다.
잃어버린 고향(몸)과 이를 기억(마음)으로 붙잡으려는 욕망 사이의 긴장은 ≪관촌수필≫에 나타난 화자의 기본적 태도다.
실향민. 나는 어느덧 실향민이 돼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덜어버릴 수가 없었다. 고향이랬자 무덤(墓)들밖엔 남겨둔 게 없던 터라 어차피 무심하게 여겨온 고향이긴 했지만, 막상 퇴락해 버린 고향 풍경을 대하니, 내 자신이 그토록 추렷하고 허펍하며 외로울 수가 없던 거였다. (중략)
내가 뛰놀며 성장했던 옛 터전들을 두루 살펴가며, 그 시절의 냄새와 오늘에 이르른 안부를 알고 싶은 순수한 충동을 주체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단 엉뚱하고 생소하게 변해버려 옛 냄새, 그 태깔은 찾을 길이 없달지라도 나는 어쩐지 기어코 답사하리란 마음만은 억누를 수가 없겠던 것이다. 변했으면 변한 그대로의 모양새만이라도 다시 한 번 눈여겨 둠으로써, 몸은 객지에서 떠돌아 세월한다더라도 마음만은 고향 잃은 설움을 갖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관촌수필 1−일락서산>).
‘관촌’은 인류 공통의 유토피아인 동시에 우리의 전통적 농촌 공동체의 원형이다. 그곳은 돌아가야만 하는 장소인 동시에 지금 이곳에는 없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다. 하여, ‘관촌’의 부재는 괴로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극적인 것이기도 하다. ‘관촌’의 형상은 현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며, 그것의 부재는 대상을 되찾으려는 욕망을 자극한다. 이처럼 농촌 공동체로의 복귀를 염원하는 이문구의 태도는 근대 문명에 대한 타자성1)의 발견으로 나아간다. 여기에는 현실의 부정적 형상을 넘어서려는 화해의 열망이 담겨 있다. 이러한 화해의 열망은 동일성 담론의 획일적 기획을 파괴하는 타자성(농촌, 방언, 욕설, 구어, 이야기체 등)을 내포한다.
≪관촌수필≫에서 이문구가 추구해 온 농촌 현실의 복원은 근대의 문제를 우리의 근원적 공간에서 제기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있어 근대 극복의 과제는 농촌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 천착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농촌 공동체의 삶은 서구 중심의 근대화의 보완물이자 타자로서 여전히 유효한 삶의 양식인 셈이다. 경직되어 있는 것은 원형적인 농촌 공동체 그 자체가 아니라 봉건적 관습에 얽매인 억압적인 유교 전통이다.
≪관촌수필≫이 과거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바탕한다면, ≪우리 동네≫에서의 작가적 관심은 공동체적 세계관을 축출하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유지하려는 근대의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 동네≫는 ‘관촌’이 가졌던 서사시적 총체성이 해체되고, 외면적 인간과 내면적 인간 사이의 분열이 가시화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관촌수필≫에서 드러났던 잊혀져 가는 과거는 ≪우리 동네≫에서 현재적으로 부활한다. 서구 문화의 타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던 농민은 역사의 주체로 복귀하기 위해 지식인의 시선을 밀어낸다. 이러한 설정은 지식인의 모습을 농민들의 삶을 통해 성찰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로의 여행(귀향)이 동시대 농촌의 일상적 삶으로 정착한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농민은 철저히 모순적인 존재다. 그들은 왜곡된 산업화의 희생양이기도 하지만 산업화에 저항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산업화의 논리는 농민들에게 근대의 제도나 문화를 내면화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은 그것을 변형시키거나 재구성한다. 이러한 변형과 재구성은 근대화의 논리를 불안정하게 하는 저항의 의미를 함축한다.
≪우리 동네≫에서 전통문화와 서구 문화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성격을 유지하면서 대화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대화적 관계는 자신의 정체성만을 고집하려는 주체, 특히 의식과 육체, 이론과 삶 등을 독백적 이미지로 봉합하려는 근대 언어의 이분법적 구조를 전복시키고 억눌렸던 다양한 목소리를 회복시킨다. 이는 이질적인 언어와 사고를 지닌 농민들의 담론이 근대 담론과 충돌하면서 서로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근대의 규율을 강요하는 공식적 언어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공적 언어의 위력에 저항하는 소설 언어(사적 언어)의 원심력이 드러난다.
“그런디 교육에 들어가기 전에 지가 특별히 부탁을 드리겠읍니다. 제발 퇴비 좀 부지런히 해달라 이겝니다. 워떤 동네를 가볼래두 장터만 벗어낫다 허면, 질바닥에 풀이 걸려 댕길 수가 웂는 실정이더라 이 얘깁니다. 아마 여러분들두 느끼셨을 중 알구 있읍니다마는, 풀에 갬겨서 자즌거가 안 나가구 오도바이가 뒤루 가는 헹편이더라 이겝니다. 풀 벼서 남 줘유? 퇴비허면 누구 농사가 잘 되느냐 이 얘깁니다. 식전 저녁으루 두 짐썩만 벼유. 그런디 저기, 저 구석은 뭣 때미 일어났다 앉었다 허메 방정 떠는 겨? 왜 왔다리 갔다리 허구 떠드는 겨? 꼭 젊은 사람들이 말을 안 탄단 말여. 야− 저런 싸가지 웂는 늠으 색긔… 야늠아, 말이 말 같잖여? 너만 덥네? 저늠으 색긔… 즤 애비는 저기 즘잖게 앉어 있는디 자식은 저 지랄을 혀. 이 중에는 동기간이나 당내간은 물론이구 한집에서두 둣씩 싯씩 부자지간이 교육을 받으러 나오신 분이 즉잖은 줄로 알구 있읍니다마는, 원제구 볼 것 같으면 아버지나 윗으른은 즘잖게 시키는 대루 들어시는디, 그 자제들은 당최 말을 안 타구 속을 쎅이더라 이겝니다. 교육 중에 자리 이사 댕기구, 간첩모냥 쑥떡거리구… 야늠아, 너 시방 워디서 담배 피는 겨? 너는 또 워디 가네? 저늠으 새끼들… 그래두 안 꺼? 건방진 늠 같으니라구. 너 깨금말 양시환 씨 아들이지? 올봄에 고등핵교 졸업헌 늠 아녀? 너지? 싹바가지 귀 떨어진 늠 같으니라구.”(<우리 동네 김씨>)
인용 대목은 부면장 ‘신을종’이 민방위 교육 시간에 농민을 상대로 퇴비 쌓기를 강요하는 장면이다. 부면장의 연설은 공적 언어(존칭)와 사적 언어(비속어)가 뒤섞여 있다. 공적 언어는 농민들에게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사적 언어는 스스로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데 사용된다. 존칭은 퇴비 쌓기를 강요하는 대목에서 사용되고, 욕설이 섞인 반말은 자신의 연설에 집중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꾸짖는 장면에서 사용된다. 이러한 공적 담화와 사적 담화가 교차하는 곳에서 ‘신을종’의 모순된 성격이 폭로된다. 부면장은 교육 전에 부탁을 드린다는 말을 통해 퇴비 강요가 민방위 교육이라는 상황 논리와 무관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퇴비 쌓기 강요는 교육과는 무관한 사적인 담화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부면장은 “가만히 앉어서 자리 흐틀지 말구 담배들이나 피서유”라고 말함으로써 민방위 교육이 ‘시간 때우기’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한다. 부면장의 연설은 공식적인 담화와 사적인 담화 사이에서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부면장의 어투 변화는 정부 농경 정책의 대변자인 자신의 허구성을 스스로 폭로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평’, ‘말가웃지기’와 ‘헥타르(ha)’의 대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전근대적인 토지 측정 단위인 ‘평’, ‘말가웃지기’는 근대의 이름으로 거부된다. 그러나 “이 바닥에 핵타르를 기본단위루 말헐 만치 땅 너른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이게유”라고 대드는 김씨의 반발에 부면장은 할 말을 잃고 “미안헙니다”라고 사과한다. 이는 부면장 스스로가 공적 언어를 강요하는 근대화 정책의 허울을 시인하는 꼴이다.
이후 쏟아지는 박수는 부면장과 농민들 사이의 화해를 암시한다. 이 화해는 부면장 또한 농민의 편에 서서 농경 정책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면장의 말에는 청자로서의 농민의 반응이 굴절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변형되는 말의 억양을 통해 부면장과 농민들은 대화적으로 연결된다.
≪관촌수필≫과 ≪우리 동네≫를 지나면서 이문구 소설의 무게중심은 일상(삶)에서 문화(언어/텍스트)로 이동한다. 그의 관심이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에서 언어/문화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탈근대 담론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존속은 거대 담론의 위축을 가져왔고, 이는 문화(텍스트/글쓰기)와 욕망에 대한 미시 담론의 확산을 야기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이문구의 소설은 ‘저항에서 전용’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특히 ≪산 너머 남촌≫과 <유자소전>에서는 엄중한 현실 비판이 주축이 되었던 지금까지의 소설과는 달리 언어/문화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한자문화, 한글문화 그리고 서구 문화 등의 다양한 담론이 서로 경합하면서 ‘패권 다툼의 장’을 형성한다. 이러한 담론 충돌의 장은 사회적 지배가 유지되는 영역임과 동시에 이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산 너머 남촌≫의 ‘문정’은 ‘비판적인 인사이더(critical insider)’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사회적 전통 안에 존재하되 비판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보수주의적 성향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보수주의는 기존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전용하고 현재적으로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진보적 보수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산 너머 남촌≫의 ‘문정’에게는 중용의 정신으로 재생된다. 비록 현재는 ‘슬레트 플라스틱 비닐’ 등에 밀려 쓸모없는 ‘지푸라기’로 보일지라도, 곡식이 있는 한, 부엌이 있는 한, 사람이 태어나는 한, 농업이 있는 한, ‘지푸라기’는 ‘한 줌의 퇴비로 땅을 가꾸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다만 자본의 논리가 강요하는 효용의 가치에 가려졌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유자 소전>의 ‘유자’ 또한 이러한 ‘지푸라기’다.
이기되 양심적으로 이겨야 하고 정서적으로 이겨야만 하였다.
그가 인간적으로, 양심적으로, 정서적으로 이기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필귀정의 원칙과 진실에 대한 신뢰에 흔들림이 없는 이상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유자 소전>).
‘사필귀정의 원칙과 진실에 대한 신뢰에 흔들림이 없는 이상’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사회에서 ‘유자’의 삶은 보수적 진보성을 획득한다. ‘유자’는 이를 바탕으로 ‘양심적’ ‘정서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직업의식을 발휘한다. 그는 ‘인간미가 넘치는 든든한 해결사’인 것이다. 이는 ‘선비적인 덕량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자본의 논리가 세부적 일상은 물론 무의식의 영역까지 장악하고 있는 근대사회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는 현실 도피적인 태도에 다름 아니다. 이에 ‘전통적 가치관과 서구적 의미의 담론을 동시에 해체․전용하려는’ ‘문정’과 ‘유자’의 행위는 산업사회의 모순을 넘어서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이문구가 보여준 작품 세계의 다양한 모습이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작품이다. <장평리 찔레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곡리 고욤나무> 등은 농촌 세태에 대한 풍자 정신과 농민의 주체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동네≫의 연장선에 있고, <장석리 화살나무>는 과거를 회상하는 기억의 서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관촌수필≫과 유사하며, <장척리 으름나무>의 ‘이상만 옹’은 마을의 ‘터주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 너머 남촌≫의 ‘문정’과 동궤에 놓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의 작품과는 이질적인 모습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관촌수필≫에서 보이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옅어져 있으며, ≪우리 동네≫에서 두드러졌던 풍자의 정신이 한풀 꺾여 있다. 노년층이 중심인물을 형성하고 있는 점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작품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장동리 싸리나무>와 <더더대를 찾아서>가 그것인데, 이 두 작품은 자아와 세계의 팽팽한 긴장을 바탕으로 존재의 내면을 응시하는 화자를 제시함으로써 농촌과 도시 혹은 전통과 서구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장동리 싸리나무>는 ‘하석귀’라는 퇴직 공무원이 낙향하여 자연과 소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압권은 아름다운 달밤의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의 섬세한 내면 사이의 소통이 빚어내는 황홀한 ‘아우라’다. 이러한 분위기는 주체와 객체, 그림(재현)과 실물, 내면과 풍경, 설화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미학적 이미지를 창출한다.
아래의 글에서는 이문구 소설이 보여준 장황한 사설, 언어를 통한 논쟁, 언어유희 등이 내면과의 대화로 수렴되고 있다.
해가 있는 날은 으레 점심나절이 거울어질 만해서부터 바람결과 함께 물이 설레이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채(水彩)가 되살아나고 뒤미처서 파란(波瀾)이 일기 시작하면, 물결마다 타는 듯이 이글대며 반짝이는 서슬에 누구도 저 먼저 실눈을 뜨지 않고는 물녘을 바라다볼 수가 없었다.
물결마다 그렇게 눈이 부실 수가 없이 햇빛에 타고 있을 적에는 꼭 해가 어리중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심(水心)에 들어앉아 날이 저뭇하도록 들썽거릴 것만 같아 은연중에 마음까지 어수선해지던 것이 그다음 순서였다.
나 역시 저냥 저랬던겨. 저냥 물에 뜨는 물마냥 살아온겨. 못나게. 지지리도 못나게.
하석귀(河石龜)는 하루에 한바탕씩 파란이 일어 요란스럽게 반짝거려대는 집 앞의 저수지가 내다보일 적마다 누구 하나 들어주는 이 없는 넋두리로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장동리 싸리나무>)
화자의 내면과 호수의 풍경이 교직되며 연출하는 장면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하석귀’는 호수의 물결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기도 하며, 자연의 메시지를 내면화해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기도 한다. 늘 제외되고 소외되었지만 원초적 생명력으로 꿋꿋하게 살아온 비주류 민중들의 삶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서 느끼는 이러한 황홀경은 망아(忘我)나 몰아(沒我)의 자기도취와는 달리 삶에 대한 관조와 달관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관조와 달관의 자연관 속에 전제된 ‘자연’은 근대 이전의 인류가 지녔던 숭엄과 경외의 대상으로서의 ‘자연’도 아니고, 근대인들이 지녔던 개척과 노동의 대상으로서의 ‘자연’도 아니다. 이 자연은 두 가지를 다 감싸 안으면서도 그 너머에 있다. 자연은 사람의 이웃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이 지닌 쓸모(사용가치)로 그 존재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빛나는 것이라는 자연관이다.2)
이러한 ‘하석귀’의 성찰적 태도는 ‘말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대화적으로 연결하며 ‘주체의 자기 긍정’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자기 긍정을 향한 발걸음은 근대화 기획의 중심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주변적인 주체들의 삶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며, 이들의 삶을 거울삼아 동시대의 삶을 성찰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확장하려는 의도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