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 타로, 풍수, 작명 등을 통해 지난 30여 년간 운명상담을 하고 잇는 저자가 그가 좋아하는 다산 정약용의 '주역'을 통해 주역에 대해 새롭게 햇거한 책이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며 한반도가 낳은 천재이다. 그의 명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식견과 학문이 모두 탁월하다. 그러나 그의 삶에도 큰 시련은 있었다. 바로 18년간 이어졌던 유배 생활이었다. 1800년에 정조가 죽고 1801년에 신유사화가 일어나자 셋째 형인 정약종은 참수당하고 둘째 형인 정약전과 다산은 유배된다. 정조의 최측근이었던 다산은 정조가 죽자 중앙 정치 무대에서 배제되었다. 그때 나이가 마흔이었다. 시련의 크기로만 보면 다산은 지지리도 불운한 천재라고 볼 수도 있다. 다산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는 유배지에서의 시간 동안 불운을 극복하고 학문을 꽃피울 기회로 삼았다. 학문을 향한 애정과 흔들리지 않는 열정으로 격리의 시간조차도 의미 있게, 허투루 쓰지 않으며 굳건한 마음을 지켰다. 그렇게 불안하고 앞날을 알 수 없었던 흔들리는 시기에 세상에서 추방된 천재가 선택한 것은 "주역"이었다.
다산은 유배를 하늘의 뜻, 즉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고난의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57세까지 계속되었던 유배 생활은 본격적인 수신의 길이었다. "주역"은 그에게 오랜 세월을 견디고 무사히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고 이를 해석해 "주역사전"으로 남겼다. 그는 "주역사전"에서 “공정한 선의에서 어떤 일을 하려는 데 그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을 때 하늘의 뜻에 맞는지 헤아려 보기 위해 성인들이 지은 책이 바로 주역”이라 말하며 "주역"은 천명을 미리 알아보는 최상의 문이라 하였다. 다산은 "주역"이 개인적 길흉을 알아보는 점을 보는 책이 아니라고 말하며 이를 담은 "주역사전"이야말로 다산 학문의 정수라고 말했다.
그도 역시 처음에는 "주역"이 너무 어려워 바라보기만 해도 기가 꺾여서 탐구하고자 노력하면서도 감히 손도 대지 못한 것이 여러 번이라 고백한다. 하지만 오랜 공부를 통해 "주역"의 이치를 깨달았다.
다산은 일찍이 세상만사가 올라오면 내려오기 마련이고 가면 오기 마련이고 굽히면 펴기 마련이고 소멸하면 다시 자라나기 마련이며 한쪽이 극에 달하면 다시 반전되어 변하기 마련인 천만 가지 변화와 이동의 원리가 담긴 주역에 깊이 빠져들었다. 단순히 원리적인 측면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자신의 삶에 대입시킨 것이다. 다산은 그 과정에서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는 탐위, 유명무실한 명성에 집착하는 탐명을 가장 흉한 것으로 보고 경계했다. 그 지위를 사양하고 물러나면 참된 길로 향할 것이라고 보고 "주역"에 담긴 변화의 원리에 순응하며 처신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그는 인생을 살아갈 때 옳고 그름, 이익과 손해의 네 가지 기준을 정하고 이 중에서 옳은 일을 하면서도 이익을 얻는 것을 삶의 최고가치라 말했다. 이는 탐명으로 가득한 현대사회에 뼈아픈 일침이기도 하다.
저자는 다산이라는 매력적인 인물과 삼라만상의 뜻과 가르침을 모두 담은 "주역"을 일반인이 가장 알기 쉽도록 제시한다. 특히 64괘 중 인생의 고비에서 힘들고 지칠 때, 인생이 안 풀린다고 느낄 때,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고 싶을 때, 어제와 다른 내일을 만나고 싶을 때 보면 좋을 괘를 뽑아 총 3장으로 구성하여 다산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와 다양한 일반인의 사례를 통해 알기 쉽도록 돕는다. 또한, 부록에는 "주역사전"의 이해를 돕도록 상세한 내용을 수록하였고, 64괘의 의미와 해석을 모두 넣어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인생 상담을 받는 듯 큰 위안과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