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의 그 봉평
최옥길
“고향이 어디 입니까.?”
세 사람의 면접관 중에 가운데 앉아 계신 분이 물었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 입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그 봉평 말입니까.?”
“네, 그 봉평이 제 고향 입이다.”
단발머리에 운동화 코끝만 내려다보며 두 오금을 달그락 달그락 떨고 있던 나는 비로소 큰 숨 한번 속으로 삼키며 조금 여유를 찾는다.
“이효석의 생가는 그 곳에 남아 있나요.?”
“정말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지천으로 메밀꽃이 핍니까.?”
“물레방앗간은 지금도 돌아가나요.?”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 1966년도 5급(지금9급) 국가 공무원시험 1차 합격 후 2차 면접시험때의 일이었다.
고향 덕분에 면접시험은 메밀꽃 필 무렵으로 시작해서 이효석 작가에 대해서 아는대로 얘기 해 보세요로 끝이 났다.
이 시험에 떨어지면 산전 밭 두어 뙈기 팔아서라도 대학에 보내 달라고 어머니 조를 일이 깜깜 했었는데 고향은 그렇게 나를 도와주었다.
매 학기 초면 중소를 팔아야 하나, 우리 밭 중에 가장 기름진 네모반듯한 삼밭을 팔아야 하나, 다랑논 하나 팔아서는 택도 없을 텐데.........
두 오빠 학비 조달 근심에 소나무 목침 돌려 베시느라 밤새 단 잠 설치신 아버지
의 새벽 헛기침소리 다음날 대화장에 워낭 소리가 제일 쩌렁 거리든 황소가 팔려
가고 나면 소여물 함지박을 구유에 부우시며 황소 빈자리를 애써 외면하신 어머니
의 두 눈이 흔들리는 것을 나는 보아버렸다.
그 어머니의 애면글면 애쓰심을 너무 잘 아는 터라 더 이상 대학가겠다는 말을 슬
쩍 누르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 했으니.....
눈물 글썽이며 어머니는 내 등을 토닥여 주셨고 나는 속으로 효도 했구나. 그래 봉
평덕이야 그냥 웃음을 꿀꺽 삼켰다.
누군들 자기 고향의 따뜻한 추억과 애잔한 그리움이 없을까마는 내게도 봉평은 명
치 끝이 화끈거릴 만큼 애틋하고 코끝이 먹먹해 지도록 그리운 곳이다.
내 고향 봉평은 산이 많고 기름진 논밭보다 돌밭과 산전밭이 많은 척박한 산골이다.
텃밭에서 옥수수가 알알이 익고 수미감자 여물어 하얀 녹말분 내뿜으면 가난한 우
리의 양식으로 곳간을 채우는 그곳, 산전 밭에는 해마다 메밀꽃이 피었고 까만 서
리태가 알이 차면 밥밑콩으로 골라 놓고 콩알이 굵은 백태는 메주콩으로 자루에 담겨진다.
흰쌀밥보다 잡곡밥이 익숙했고, 비린생선은 언감생심, 곤드레 취나물, 다래순이 우
리를 키워 주었다.
동이와 허생원이 나귀를 앞세우고 대화장을 향해 소금을 뿌린 듯 하얀 메밀밭을 지나든 그 노루목재 밑에 내 유년의 옛집은 세월을 그대로 머리에 인 채 많이 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이순을 넘긴지 한참인 나를 아직도 나풀나풀 명주치마 날리며 고사떡 돌리 던 재집 막내딸로 기억 해 주는 고향 사람들.
지금도 아버지가 계시던 사랑방 문을 열면 삼베 노끈을 가늘게 꼬아 고드렛돌에 돌돌감아 달그락 달그락 왕골자리를 꼼꼼히 매시든 아버지의 낯익은 어깨가 보일
것만 같다.
놋재떨이에 담뱃대 두드리는 소리, 그 방에서 나든 알싸한 풍년초 담배 냄새, 안방
건너방 따뜻한 등잔불 켜져 있고, 외양간의 소 울음소리, 졸졸졸 도랑가에 얼굴 넓
적한 빨래 돌에 광목 이불 홋청 펑펑 소리내 방맹이질 해서 휘휘 그 물에 손 담그
고 싶어진다.
처서 무렵에 비가 잦은 해는 머슴 할아버지가 뒷산 솔 밭에서 종다래끼 가득 송이
버섯을 담아 안채 부뚜막에 생색도 없이 놓고 나가신다.
반가운 어머니는 뒷 집에 서너송이 옆집에 서너송이 울 너머로 넘겨주시고 외양간 지붕에 한가로이 익어가는 박 중에 바가지가 될성싶지 않은 여린박 두어개 속을
파내고 굵게 채썰어 송이와 볶아 놓으면 달작지근하며 향기롭던 그 맛. 어쩌다 가을에 송이를 만나면 그 맛이 먼저 입안에 찾아온다.
고즈넉한 겨울이 내려앉은 이맘때쯤 객지에 사는 고단한 자식들의 한해 무사를 기원하며 비손이 하시며 새알심 빚어 동지 팔죽을 쑤시는 굵은 손마디의 어머니가
계시던 곳.
십리길 학교 길에 점심도 거른 채 동동거리며 안방 문을 열면 질화로에 불씨를 인두로 꼭꼭 눌러 삼발이에 올려놓은 자글자글 시레기 된장국이 추위와 배고픔을 슬그머니 채워주면 따뜻한 아랫목에 발 묻으며 잠들어 편안하든 그 곳.
입성이 변변찮아 발가락이 얼었는가 근질거려 밤새 뒤척이면 콩자루를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 두발을 감싸 주시는 어머니가 계시던 곳.
감자 송편을 빚어도 호박죽을 쑤어도 울 너머로 바가지 채 넘어오던 따뜻한 인심이 살갑던 뒷집 할머니가 계시던 곳.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물동이에 바가지 엎어 둥당 둥당 장단을 맞추어 시름 섞어 풀어내시던 순이할머니의 소리가 있어 정답던 그 곳.
오래 된 삶의 풍경은 자연을 그대로 닮아 존경스럽고 되바라지지 않은 수수한 얼굴에 주름으로 담고 살붙이 같은 이웃들이 살아가는 그 곳.
시끌한 속내를 드러내도 하나 부끄럽지 않은 그 곳. 봉평에 내 마음 하나를 묻어 두고 온다.
첫댓글 황장진 회장님 일일이 타자로 아니시면 ...좋은 글 감상 할 수 있게 해 주셔셔 감사드립니다. 최옥길 선생님 춘주수필 되신 것 환영합니다.다시 한번 등단 드립니다.
최작가께 송고를 부탁해서 올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의 최옥길선생님 모습을 생각하며 그때 명주치마 나풀나풀거리며 다니시던 소녀적 선생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얼마나 귀여우셨을까도요^^. 선생님글을 너무나 서정적이라 읽고있노라면 선생님 고향집 그 풍경이 그대로 그려지는것 같아요. 다시 한번 등단 축하드리고요. 예쁜 글 많이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늘 건강 하시고요.
거리는 멀어도 이렇게 아주 가까이 있는 것같이 마음으로 서로 이야기 할수 있다는게 너무 소중한것 같아요. 늘 아낌없는 사랑에 감사 감사 해요. 늘상 건강조심하고요.
고맙습니다. 저도 카페를 통해 여러분들과 소통을 하니 나날이 카페가 소중하고 감사해요. 새 봄...늘 활기차고 신명나는 하루하루 되시길...
최옥길 문우님이 누구신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그만 주옥같은 문우님의 수필을 읽어버렸읍니다. 그리곤 멍하니 고향 하늘을 바라봅니다.
봉평은 이름만으로 이미 '고향'같은 곳인가 봅니다.
현역 시인 등 작가님들 중에도 봉평 출신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교직에도 몇 분 계시고 - 아마 '메밀꽃...'이후 봉평은 문인을 키워내는 어머니의 품이 되었는가 봅니다.
최옥길님 글을 읽으며 저도 유년의 시절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세월 겹쳐지면서 더욱 그리움으로 담겨 옵니다.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