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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리 채플린 각본,제작,감독,주연의 영화 <라임라이트>의 메인테마인 "테리의 테마"가 흘러 나옵니다.
이 주제가는 채플린이 직접 작곡했습니다. 맨 아래에는 이 영화의 동영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라임라이트란(Limelight)?
옛날 극장에서 사용된 무대조명. 특히 주요 인물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로 쓰인 강한 백색광(白色光)을 말하며 19세기 후반에 유럽과 미국의 극장에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뜻이 변하여 ‘세상의 주목을 받는 입장’, 즉 명성이나 평판의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하지요.
[영화 <라임 라이트> 소개]
人生은 누구에게나 전성기라는 게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한번 지나간 전성기는 영영 다시 오지 않는 것일까요?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그리고, 또다시 한 번을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인생의 황혼기에 재기를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해보는 이 영화 속의 칼베로(찰리 채플린)에게 그러나 그 화려하였던 전성기는 끝내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찰스라는 이름보다는 왠지 찰리라는 이름이 더 정겨운 찰리 채플린 (1889-1977, 국).20세기 초에 영화라는 획기적인 문명과 문화가 만들어낸 초특급 인기 연예인이었던 그에게도 환갑의 나이가 지난 1950년대는 영화 속의 칼베로와 같이 이미 전성기가 지나간 시절 이었을까요?
1914년의 첫 출연,그리고 1916년의 첫 제작으로부터 벌써 50년째. 건강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활동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1950년대에 그는 이 영화와 단 두 편에만 출연하였습니다.
전작인 <살인광 시대(1947)>이후, 무려 5년 만에 시끄러웠던 주위 환경(이른바 매카시 선풍으로 일컬어지는 좌익 사상 논쟁 등)을 극복하고 1950년대에 들어 처음 만든 작품이 바로 이 <Limelight (1952)>였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직접 기획을 하여 만들어낸 이 영화의 주인공, 칼베로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채플린 자신의 자전적인 성격을 띤 이야기라고도 할 수가 있죠. 5년 만에 만든 장편 영화답게 채플린은 이 작품을 위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포함한 모든 것을 전부 올인 한듯합니다.
원작에서부터 제작을 비롯하여 각본, 감독, 출연, 그리고 심지어 주제곡 작곡까지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한군데도 없을 정도의 화려한 그의 원맨쇼였던 거죠. 물론 네 번째 부인,우나 오닐을 포함한 가족들도 총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채플린으로서는 노장은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 하듯,또 마치 구시대의 유물인 Limelight(당시 조명등)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Spotlight 시대에 인생의 제2의 전성기를 다시 맞이한 듯, 전 세계적인 극찬과 좋은 평가들을 받게 됩니다.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라고 할 수 있는 그 동안의 풍자 희극 스타일과는 엄청나게 차별이 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입니다.
우선 전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감성적인 분위기에서 우리는 이런 스타일의 작품도 잘 만들 수 있다는 채플린의 인간적인 원숙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가지일들로 괴로웠던 미국에서의 시간들(좌익으로 몰렸던 일)이 그를 개인적으로도 확실히 성숙시킨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메리칸 필름으로서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작품인 이 영화가 계기가 되어 채플린은 이 1952년도에 그동안 미운 정 고운정이 다 들었던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서 영주를 시작합니다.
어쨌든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여러 면에서 인생이란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제 음악 "테리의 테마,Terry's Theme"]
이 영화의 메인 타이틀인 "테리의 테마"는 이곡을 직접 만들고 편곡까지 한 채플린의 예술적인 천재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이 곡은 20세기의 위대한 영화음악 10곡 가운데 한곡으로 선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음악적으로도 어쩌면 그렇게 극중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잘 표현하였을까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되는데, 주로 현악기 위주로 연주를 하여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곡은 21세기인 요즈음에 다시 들어봐도 전혀 시대에 뒤지지 않는 감각으로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죠.
극중에서는 테리의 오디션 때부터 그녀의 발레를 위한 반주자 격인 네빌 (채플린의 아들,시드니 채플린이 이역을 맡고 있습니다)의 창작품으로 등장을 하지만... 칼베로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을 포함한 여러 장면에서 이 곡에 맞춰 테리가 아름다운 발레 댄스를 춥니다.
[영화 줄거리]
20세기 초 런던. 왕년에 명성을 날렸던 코미디언 칼베로(찰리 채플린)는 런던의 뒷골목에서 가스 자살을 기도한 젊은 발레리나 테리를 구하게 됩니다. 테리는 류머티즘 때문에 발레리나의 꿈이 좌절되어 절망한 나머지 삶의 의욕을 잃었던 것이죠.
“뭐가 그리 급한가?” 퇴락한 과거의 코미디 스타 칼베로는, 자살을 기도한 이웃 처녀인 테리의 목숨을 살려준 뒤 이렇게 묻습니다.
칼베로는 헌신적인 간호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데, 차비를 마련하려고 그가 가장 아끼던 바이올린을 저당 잡히기도 하고 자신의 이름을 속여 3류 무대에 서기도 합니다. 이런 칼베로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는 테리가 다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테리는 칼베로의 바이올린 반주에 맞춰 발레 공연을 가져 대단한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테리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테리는 발레리나로서 명성을 떨칠 꿈을 안고 젊은 작곡가와 사랑에 빠지자, 칼베로는 그녀의 곁을 떠납니다. 세월은 흐르고, 테리를 잃은 칼베로는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술에 빠져 폐인이 되다시피 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테리는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 내어 은인을 위한 화려한 재기 무대를 꾸밀 계획을 갖습니다. 이윽고 '위대한 코미디언 칼베로'의 재기 무대의 막이 오르고, 칼베로는 포복절도할 열연을 펼쳐 장내는 웃음 바다가 됩니다.
그러나 칼베로는 너무나 열연한 나머지 무대에서 오케스트라 박스로 굴러 떨어지면서 척추를 다치고 맙니다. 다음 순서는 테리의 발레, 라임라이트(照明登 )속에서 테리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칼베로는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 20세기 최고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의 인생 ]
한평생 남을 웃기면서 살아간 20세기 최고의 희극배우 이름이 찰리 채플린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는 남을 잘 웃기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스꽝스런 몸짓에는 슬픔이 숨어 있었고, 어색한 웃음에는 애수가 담겨 있었습니다.
채플린은 남을 웃기고 돌아서서 혼자 울었던 사람입니다. 우나 오닐과 결혼하기 전까지 명성과 돈이 따라다니긴 했지만 그 실상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연극배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채플린은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잃습니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술고래인 아버지와 일찍 헤어졌기 때문입니다. 채플린을 키울 능력이 없던 어머니는 두 자식을 빈민구호소에 맡겨 연명케 하는데, 자신은 곧 정신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하다 영양실조와 정신병 악화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채플린은 배우가 되려는 형을 좇아 미국으로 가면서 단역배우로 무대에 서게 되는데... 채플린은 연극배우로 성공하면서 동시에 단편영화에도 출연해 차츰 인기를 얻게 됩니다.
* <살인광>에서
이후 스스로 영화사를 설립하면서 장편영화 <키드>,<모던 타임즈>,<독재자>,<황금광 시대>, <시티 라이트> 등의 의 연이은 성공은 그를 세계 최고의 희극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희극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영화계에서는 성공했으나 사생활은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채플린은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여배우 세 사람과 결혼했으나 모두 얼마 못 살고 헤어지고 맙니다.
화려한 생활을 추구할 뿐 가정의 화목은 뒷전에 두는 여배우들의 인생관을 채플린이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혼할 때마다 엄청난 위자료를 주어야 했고,언론은 입방아를 찧어대고... 배우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은 계속 꼬이기만 했습니다.
* <모던 타임즈>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우가 되겠다고 찾아온 조안 배리라는 여인에게 친절하게 대했던 채플린은 끔찍한 일을 겪습니다. 내가 당신 애를 가졌으니 위자료를 내놓으라고 연일 협박전화를 하던 그 여인은 채플린이 들어주지 않자 친자확인소송을 낸 것이죠.
신문에는 ‘아이를 배게 한 채플린, 경찰을 불러 여자를 집에서 내쫓다’, ‘채플린, 여자 돈을 다 빼앗고 내버리다’는 등 연일 악의적인 기사가 실리게 됩니다.
그가 이렇게 언론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맞은 이유는 사실 딴 데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출세한 채플린이 영국 국적을 고수하는 것이 못마땅한 탓도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 <황금광 시대>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략을 받은 러시아를 원조해 주자고 연설을 몇 번 하자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샀던 것입니다. 게다가 세무서에서는 미납세금을 납부하라고 난리였고, 정치가들은 채플린이 국가 전복을 기도하는 단체와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다 아이 아버지가 당신이니까 책임을 지라며 배리라는 여인이 소송을 냈으니...
이때 채플린 앞에 나타나 말벗이 된 처녀가 있었으니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이었습니다. 연령을 초월한 사랑이 무르익자 채플린이 청혼을 하고, 오닐이 ‘예스’라고 답합니다. 오닐은 18세의 처녀요, 초혼이었지만 채플린은 네 번째 결혼이었습니다.
이 결혼에 세상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시의 사회 관습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고... 극작가 유진 오닐은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린 딸이 늙은 희극배우와 결혼하자 딸과 의절해 버리기까지 합니다.
* <모던 타임즈>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린 채플린은 당시 그가 제작한 <살인광>이라는 영화가 용공적이라며 미국 재향군인회에서 들고일어나 더욱 더 고초를 겪게 됩니다. 미국 정부는 영국으로 여행을 떠난 채플린 일가에게 귀국 금지령을 내립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채플린은 1953년에야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여 비로소 안식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 사이에 훗날 영화배우가 되는 딸 재럴딘과 아들 마이클 존이 태어납니다.
* <모던 타임즈>에서
미국이 채플린을 인정해 준 것은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지나서였습니다. “영화를 20세기의 예술로 만든,세계적인 천재 배우 채플린에게 특별상을 드립니다.” 1972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서 채플린은 특별상을 수상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채플린은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니다. 늘 빈틈없고 헌신적인 아내, 우나 오닐 덕분이었죠.
그는 희극 속에서 인간의 비극을 이야기했고,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돈과 기계에 종속되는 세상이 아닌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이 되기를 그는 원했던 겁니다. 그의 작품들이 5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은 그가 당시 보았던 세상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 <황금광 시대>에서
진정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이자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찰리 채플린. 그가 활동했던 이후 오랜 시간동안 그를 뛰어넘는 코미디배우가 아직도 없는 것을 보면 진정 얼마나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망과 근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철학이나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세기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한 말입니다. 헐렁한 바지에 슬프도록 큰 낡은 구두를 신고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자박자박 걸어가는 짧은 콧수염의 찰리. 그의 희망은 오직 웃음이었습니다. 머리에 겨우 얹힌 중산모처럼 언제 어떻게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시간들을 그는 유머로 건너갔지요.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심정으로……. 그리고 그는 다시 말합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래서 채플린은 모두에게 위대했습니다. 멀리 보면 다 희극이라는 그의 말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생명이 되었습니다.
"내가 맛 보았던 불행, 불운이 무엇이었든,원래가 인간의 행운, 불운은 저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 같아서,결국은 바람따라 달라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까,나는 불행에도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았으며,행운에는 오히려 순수하게 놀라는게 보통이었다.
나에게는 인생의 설계도 없으며, 철학도 없다. 현명한 사람이든,어리석은 사람이든,인간이란, 모두 괴로워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찰리 채플린의 자서전 중에서 -
* 영화의 동영상(한글자막이 준비되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
첫댓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아주 낡고도 지나치게 큰 구두에 뒤뚱뒤뚱 걸어가는 콧수염의 유명한 희극배무로만 알았었는데....
그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배우활동을 훌륭히 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의 자서전에 씌인 말이 많이 도움이 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저렇게 떼죽음을 하고 아직도 물속에 잠겨 있는데 한가로이 영화음악 올리는게
부끄러워 그저께 올린 글(가시나무새)을 지워버렸습니다."세상에 도대체 이런 일이" 하면서 요즘
지내고 있습니다.류대감 댓글에 한마디 덧붙이려고 들어왔습니다.찰리 채플린은 매카시 광품에 휩
쓸려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1977년 크리스마스에 눈을 감았는데,그전에 72년에는 할리우드에
서 특별상을,같은해 베니스영화제에서는 황금사자상을,75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나이트
작위를 받았다고 합니다.영화음악 이야기는 연휴가 끝나면 재개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