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성
중국 부동산발 위기론이 확산하면서 우리 정부가 관계 부처 긴급 간담회를 열고 모니터링 수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최근 글로벌 변동성 확대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상황 전개를 예의주시하며 필요시 시장안정조치를 신속하게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차이나 리스크’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저하고(상반기에 저점을 찍고 하반기 반등)’ 기조에 변수가 생겼다는 관측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과 함께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갖고 최근 글로벌 경제·금융 주요 현안과 그에 따른 영향을 집중 점검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주재, 최근 글로벌 경제.금융 주요 현안과 그에 따른 영향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추 부총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기재부 제공© 제공: 세계일보
참석자들은 중국 부동산 부문의 어려움, 미국 국채 시장의 변동성 확대 등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면서도 이에 따른 영향이 아직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직면한 데다 또 다른 부동산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 그룹은 미국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차이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에 대한 국내 금융사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4000억원 수준으로 아직까지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나, 향후 사태 전개 등에 따라 국내 영향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국내외 금융·실물 부문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24시간 가동 중인 범정부 경제상황 합동점검반을 통해 주요 리스크 요인 실시간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하고, 상황별 대응계획을 재점검하는 한편, 필요시 관계기관 공조하에 시장안정조치를 신속히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건설 근로자가 지난 11일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 베이징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있다. 비구이위안은 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려 약 3조원에 달하는 채권 거래가 14일부터 중단됐다. 베이징=로이터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정부는 또 기재부 경제정책국 내 ‘중국경제 상황반’을 설치해 ‘차이나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기재부를 컨트롤타워로 한국은행,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제금융센터 등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 체계를 구축한다는 취지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17일부터 이명순 수석부원장이 총괄하는 중국 부동산 리스크 일일 점검반을 가동해 국내 금융사의 익스포저를 일 단위로 모니터링하며 특이 동향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이 같은 중국발 리스크가 우리 정부가 예상하는 ‘상저하고’ 경제기조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중국 내수 위축이 대중 수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 규모는 줄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은 한국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여기에 쪼그라든 중국인들의 소비 심리가 최근 재개된 중국인 단체관광의 경제적 효과를 반감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아울러 중국 경기 침체에 따른 글로벌 경기 위축 가능성도 한국 경제의 중장기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경제 규모가 큰 중국의 경기 침체 영향은 미국·유럽 등으로 퍼져나가는 형국이다.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독일 경제는 지난해 4분기 전 분기 대비 -0.4% 역성장한 데 이어 올해 1분기 0.1% 뒷걸음질쳤다.
제주 찾은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세계일보
이번 부동산 위기를 빌미로 중국 당국의 개입이 본격화하면 시장의 자율성이 훼손되면서 중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의 활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르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소비·고용지표 호조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한국 경제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다만 정부는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악재를 상쇄하는 요인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상저하고 경기 전망은 유지하는 분위기다. 추경호 부총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저하고 기조를 유지하느냐는 질문에 “상반기 경제성장이 0.9%였고, 하반기 전망은 대부분 1.7~2.0% 사이를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폴트 위기 中 비구이위안 9월 항셍지수서 제외
중국의 대형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 파장이 계속 확산하고 있다.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항셍지수회사는 18일 공시를 통해 다음달 4일부터 홍콩증권거래소(HKSE) 상장 우량종목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항셍지수 종목에서 비구이위안의 부동산관리 회사인 컨트리가든서비스홀딩스를 제외한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중국 대형 부동산 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베이징 외곽 공사 현장 근처 차량에 "비구이위안 주택 구매자 권리 보호"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컨트리가든서비스홀딩스의 주가는 올해 72% 폭락했다. 비구이위안은 지난 7일 만기가 돌아온 액면가 10억달러 채권 2종의 이자 2250만달러(약 300억원)를 지불하지 못했고 상반기에 최대 76억달러(10조1000억원)의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부동산신탁 사업 등을 하는 자산운용사 중룽국제신탁 등 중국 금융권으로 디폴트 위기가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자 ‘중국판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그룹 중즈그룹의 계열사인 중룽은 2022년 말 기준 총운용자산액이 1080억달러(145조원)에 달하는 중국 10대 신탁회사다. 최근 수십 개 투자신탁 상품의 이자 지급 및 원금 환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시에 포함된 환매 중단 피해액만 1400만달러(188억원)에 달한다. 올해 만기 예정 상품이 270개, 총 395억위안(7조2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앞으로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사 디폴트가 중국 금융회사 건전성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질 경우 금융시장 전반으로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전반적인 침체 형국인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조짐도 없다. 최근 중국 주요 대도시 집값이 크게 하락한 데 이어 홍콩에서도 미분양 주택 재고가 1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홍콩 부동산 중개업체 JLL은 현재 안 팔린 신규 주택이 8만3000채로 200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라고 밝혔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1일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결정한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8월 이후 동결했던 1년 만기와 5년 만기 LPR을 지난 6월 각각 0.1%포인트씩 인하했고, 지난달에는 동결했다.
2021년 9월21일 미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레바논의 한 집 앞에 매물 표지판이 붙어 있는 모습. AP뉴시스© 제공: 세계일보
미국과 유럽은 고금리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은 소비·고용지표 호조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미국 주택 분야에서는 30년 고정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지난주 2002년 이후 21년 만에 최고치인 7.09%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주택 수요와 공급을 모두 감소시켜 주거 양극화를 촉발하고 장기적으로는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유럽에선 고금리 탓에 파산한 기업이 급증했다. 이날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탯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파산을 신청한 사업체는 전 분기 대비 8.4% 증가했다. 최근 이어진 고금리 기조와 경제 부진의 여파로 부도를 내는 기업 수가 2015년 1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