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장 12절 – 20절
갈라디아교회는 처음에는 사도바울의 약함을 인해서 사도바울을 업신여기거나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약함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눈이라도 빼어서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신체적인 조건이 좋지 못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의 이해로 하면 주목받기 어려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갈라디아교회는 사도바울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받아드리고 돕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가의 복음에 있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에 새로 들어 온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유대율법주의를 강조하는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복음인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을 부정하고 오직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으로 얻는 율법의 의도 함께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십자가의 복음이 잘못된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말씀이 넓게는 율법이고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각규정들이 좁게는 율법인데 모세오경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에 이 율법들을 잘 지키라고 하지 않았느냐하면서 율법을 잘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러므로 얻는 의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유대인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율법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본심은 갈라디아교회와 사도바울을 이간질 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여리고 신앙의 분별력이 여린 성도들은 이 유대율법주의자들의 말을 듣고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의 십자가의 복음을 들으면 사도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옳은 것 같고 유대율법주의자들이 전하는 그 복음을 들으면 그들의 전하는 말이 옳은 것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갈라디아교회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데서 흔들리자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유대율법주의자들은 겉으로는 그리스도인같고 그들의 전하는 말은 복음과 다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실상은 복음의 원수들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드림으로 되어지는 것인데 그들은 핍박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도 유대교와 같이 율법을 지키는 자라고 하면서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갈라디아교회에게 사도바울을 복음을 왜곡하여 전하는 자이고 또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사도권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갈라디아교회는 그들의 말을 더 신뢰하여 사도바울을 거짓복음을 전한 자라고 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의 위기를 보면서 그는 다시 갈라디아교회에게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세상에서의 핍박을 피하려고 율법을 강조하고 그의 의를 힘입는 자들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킵니다. 우리는 무율법인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율법의 의를 붙잡지 않습니다. 이 율법의 의는 우리의 공로요 우리의 자부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안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일이 있게 된다 할지라도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