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9월 15~18일에 한국의 중부와 남부 지방에 많은 피해를 준 사하라 태풍.
사라호태풍 은 1959년 9월 11일에 사이판 섬의 동쪽 해상(북위 13.6°, 동경 146.5°)에서 발생한 제14호 태풍. 중심 최저기압이 905mb, 중심 최대풍속이 85m/s로, 9월 15~18일에 한국의 중부와 남부 지방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일본 오키나와[沖繩] 섬 서쪽 해상을 거쳐 동중국해에 이르면서 한국의 남해안지역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여 거제와 영남지방을 비롯한 전국이 심한 폭풍우에 휩쓸렸으며 곳곳에 홍수가 났다.
사라호 태풍으로 인한 사망 및 실종 849명, 부상 2,533명, 이재민 37만 3,459명으로 한국에서 비교적 정확한 재해 기록이 이루어진 1900년도 이래 3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
🌺오늘의역사(1900년대)9월18일🌺
🌻 09년 콜레라 만연 🌻31년 만주 사변 발생 -일본은 스스로 만철 선로를 폭파하고 중국측의 소행이라고 트집잡아 만주 점령 🌻34년 조선 혁명군 총시령 양세봉이 일본군에게 살해됨(1896∼) : 광복군 총영 참의부 국민부 활동 🌻42년 총독부, 금속 회수에 강제권 발동 🌻47년 서울, 특별시로 승격 🌻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신학교 개교 🌻53년 빨치산 이현상 사살 🌻55년 호헌 동지회의 자유민주파, 민주당 창당(대표 최고위원 신익희) 🌻57년 고 딘 디엠 월남대통령 내한(22일 이한) 🌻69년 남부지방에 폭우 289명 사망, 107명 실종, 241명 부상 🌻72년 남북적십자 제2차본회담 개막(서울), 합의문서 (3차 10월24일 평양, 4차 11월22일 서울) 교환 🌻73년 인도네시아와 정식수교 🌻73년 기독교 오순절 세계대회 동양에서 최초로 서울 효창운동장서 개막 🌻79년 첫 국산 디젤기관차 운행 🌻82년 노산 이은상 세상 떠남 🌻84년 서울 국제무역박람회 개막(∼10월17일) 🌻85년 제4차 남북한 경제회담개막(판문점) 진전없이 끝남 🌻85년 평양 방문할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예술공연단 발단식 거행 🌻87년 여야, 합의 직선제 개헌안 발의, - 정부에 이송 21일 공고 🌻87년 치안본부, 적색 유인물관련 24개 재야단체 수사 🌻87년 민주당 소장의원10명, 대통령후보단일화 촉구 🌻87년 정부, 국산 한국형 탱크 '88전차' 명명식 🌻88년 허 정 전 과도 내각수반 별세 🌻89년 국회, 329개기관에 대한 20일간의 7개 상임위원회 국정감사 🌻89년 국방부, 북한의 남파간첩 호송안내원 서영철이 17일오전 한강하류를 헤엄쳐 귀순해 왔다고 발표 🌻89년 재무부, 7월말 현재 총 외채는 310억달러, 순 외채 규모는 39억달러로 나타남 🌻90년 검찰, 한국 유니텍 사장인 김혁중- 업무상 배임, 부정수표 단속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 🌻90년 김신묵 여사가 95세를 일기로 영면. 아들 문익환목사(복역중) 🌻91년 유엔총회, 남북한 유엔가입안 만장일치로 통과 -남한 161, 북한 160번째 🌻91년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 고르바 프와의 회담(모스크바)에서 한국ㆍ소련 경협방안 논의 🌻91년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 일본방문 중 가이후 총리와의 회담에서 핵사찰 문제등 협의 🌻91년 국회,국정감사실시. 수서비리와 정태수 한보 회장에 대한 특혜융자-한국항씨 피살사건을 집중추궁. 🌻91년 중국, 남·북한 유엔가입 소식을 전하면서 처음으로 남한을 `대한민국'이라고 호칭. 🌻91년 국내 상장기업(687개사) 중 외국인의 주식지분이 이미 10%를 넘고 있는 것으로 집계. 🌻91년 충남 천안군 목천면 응원리 경부고속도로에서 시외버스와 승용차 추돌사고로 6명 사망. 🌻91년 제46차 유엔총회,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승인 🌻91년 한국화학연구소, 무공해섬유유연제 국내첫개발 🌻91년 서울대 김수진교수 경북 봉화군서 새 광물인 다카넬라이트 발견 🌻92년 노태우대통령,중립선거내각을 구성하고 민자당 의 명예 총재직을 사퇴하고 당적을 떠나기로 했다 밝혀 🌻92년 정부, 유엔평화유지활동에 730명의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는 회신서를 유엔사무국에 제출 🌻96년 제11회 서울 국제 계측제어기기전 개막 (∼22일, 서울 한국종합전시장) 🌻96년 강원도 강릉 해안 5km지점 해상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정 1정을 발견 (11명 자폭,1명 생포) 🌻97년 외무부, “대인지뢰의 전면금지를 핵심내용 으로 한 오슬로회의 협약 안에 동조할 수 없다”고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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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임곡1리 청학산 정상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북한 무장간첩 11명의 시체가 처참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다
1996년좌초된 북한 잠수정, 강릉해안 5km 지점 해상에서 발견 1996년 9월 18일 새벽 1시반 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변에 좌초된 정체불명의 잠수함이 택시운전사에 의해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군과 경찰은 좌초된 잠수함이 북한이 비정규전에 활용하는 대남공작선임을 확인, 군·경·예비군 합동으로 강릉해안과 산악지대를 3중으로 봉쇄, 무장간첩 수색작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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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사고가 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 현장 1999년 9월 18일..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서 폭발사고, 대학원생 세 명 사망 1999년 9월 18일 오전 11시40분쯤 서울대학교 공학관 31-1동 원자핵공학과 실험실인 조립식 가건물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폭발음이 들리자 논술고사를 보던 수험생들과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서울대생들이 학교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여졌다. 사고가 난 실험실과 연결된 31동 건물 1층에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저장돼 있었으나 방사능 누출사고는 없었다. ~~~~~~~~~~~~~~~
1982년 9월18일 현대시조의 선구자 노산 이은상 별세 이은상 1903-1982. 시조작가. 사학자. 가곡 '고향생각', '가고파', '성불사의 밤' 등의 작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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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가짜 이강석`의 범인 강성병씨
1957년9월18일..가짜 이강석 구속 “나 이강석인데...” 1957년 8월30일 밤8시쯤, 한 청년이 자신이 이강석이라며 대뜸 경주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회의장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였던 이강석의 갑작스런 출현에 화들짝 놀란 서장은 청년이 있다는 다방으로 달려갔다.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 황송해하는 서장의 인사에 청년은 “아버지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다”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자유당 정권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고 있을 때, 이강석은 거리의 무법자였고 또 하나의 작은 권력이었다. 때문에 이 청년 앞에 ‘꿈같은 3일’이 펼쳐졌다. 경주는 물론 영천ㆍ안동ㆍ 봉화 등지를 돌며 경찰서장과 군수로부터 향응과 칙사대접을 받았고 46만환이나 되는 거액도 챙겼다.
9월1일 밤, 청년은 경북 도지사의 아들이 이강석과 고교 동기동창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도지사 관저에 여장을 풀었다. 결국 이강석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청년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용돈이 궁해서 꾸민 연극인데 그렇게 굽실거리고 쩔쩔맬 줄 몰랐다”고 둘러댔지만 9월18일 구속돼 징역 10개월을 살아야 했다. 진짜 이강석이 자살한 3년뒤, 가짜도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죽음까지도 진짜를 따라하는 기이한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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