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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장 쓰러지는 부도옹(不倒翁) (5)
9월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9월 5일이다.
이 날 새벽, 최성(崔成)과 최강(崔彊)은 자신들을 따르는 심복 부하 30여 명에게 갑옷을 입히고 무기를 들려 집 곳곳에 배치했다.
아침이 되자 동곽언(東郭偃)과 당무구(棠無咎)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최저의 집으로 출근했다. 동곽언과 당무구는 나름대로 담력과 지력을 갖추었지만 최성, 최강 형제를 너무 얕보고 있었다. 전혀 음모의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와 최저(崔杼)의 집무실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주변에 숨어 있던 최성, 최강의 심복 부하들이 뛰어나가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을 찔러 죽였다. 그들을 따라온 호위 무사들과의 사이에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집 안은 어지러움에 휩싸였다.
"모반이다!"
집안 식솔들은 우왕좌왕했다. 대부분의 종복들은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 막내인 최명도 재빨리 집 밖으로 달아났다.
최저(崔杼)는 정무를 보는 방에 앉아 있다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놀라서 뛰어나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들 최성(崔成)과 최강(崔彊)이 가병을 동원하여 동곽언과 당무구를 살해했음을 알았다.
노기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놈들이 감히..........!"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미 피를 본 두 아들이었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위험한 장소에서 몸을 빼자는 생각에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수레를 대령시켜라!"
하지만 마부는 물론 집안 종복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말을 사육하는 노복 하나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몸을 떨고 있었다.
"어서 수레에 말을 매어라."
겨우 수레에 올라탄 최저(崔杼)는 노복에게 수레를 몰게하여 저택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최저의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였다.
우물쭈물거리는 종복을 향해 외쳤다.
"좌상의 집으로 달려라."
최저(崔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경봉(慶封)으로서는 배꼽을 움켜잡고 웃을 일이었다.
실제로 최저(崔杼)는 꼴불견의 모습으로 경봉의 눈앞에 나타났다.
의관도 제대로 갖추어입지 못한데다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최저에게서는 최고 권력자의 위엄이라고는 이제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경봉(慶封)으로서는 혀를 찼다.
'이런 자였던가.'
최저(崔杼)는 고개를 떨구고 호소했다.
"아들놈들이 아비를 배신했소. 좌상께서는 나를 도와주어야겠소."
경봉은 시치미를 떼고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씨와 경씨는 비록 성(姓)은 다르지만 지금까지 생사를 함께해온만큼 한집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배반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재상께서는 염려마십시오. 제가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경봉(慶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뜰에는 노포별(盧蒲嫳)이 대기하고 있었다.
최저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쳐댔다.
"재상의 집안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대는 속히 달려가서 최성, 최강 형제를 토벌하고 재상의 저택을 안정시켜라."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노포별의 눈동자가 다른 때보다도 더 깊은 어두움을 띠었다.
동곽언과 당무구를 죽이는 데 성공한 최성(崔成)과 최강(崔彊)은 신속히 후속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먼저 막내동생 최명을 찾았으나 이미 밖으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아버지도 보이지않소."
"어디로 갔을까?"
"경씨 집으로 피신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잘되었다. 노포별(盧蒲嫳)이 잡아다 우리에게 건네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명이라는 놈이다."
"그렇군요. 명이 다른 일족의 도움을 받아 쳐들어오면 일이 곤란해집니다. 속히 그들의 침입에 대비해야겠습니다."
"요사스러운 계집은 어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요사스러운 계집이란 최저의 아내 당강(棠姜)을 말함이었다. 그녀는 뒤늦게 최성, 최강 형제가 난리를 일으킨 것을 알고 도망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최성(崔成)의 심복부하에게 붙잡혀 밀실에 갇혔다.
"죽여버립시다."
"아니, 최명을 잡은 다음에 함께 처리하기로 하자. 우선은 방 안에 그냥 가두어놓자."
의논을 마친 두 형제는 집안 곳곳에 무장한 가병들을 배치하여 최명의 기습에 대비했다.
그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노포별(盧蒲嫳)이오. 좌상의 분부를 받고 그대들을 도와주러 왔소."
최성, 최강 형제는 구원군이 온 것을 알고 기뻐했다.
최강(崔彊)이 대문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는 잡았소?"
그 물음이 채 떨어지기도 전이었다. 노포별(盧蒲嫳)이 칼을 뽑음과 동시에 최강의 목을 후려쳤다.
피가 튀었다.
"앗!"
최성(崔成)은 기절초풍할 듯 놀랐다.
"무슨 짓인가?"
"나는 그대 아비의 요청을 받고 아비를 배신한 너희들의 목을 베러 왔다."
그제야 최성은 경봉에게 속은 것을 알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노포별(盧蒲嫳)의 칼이 더 빨랐다. 등짝이 두쪽으로 갈라지며 땅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노포별의 행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집 안을 수색하라!"
그때부터 병사들의 약탈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최씨 가병들을 눈에 띄는 대로 죽이는 한편, 집 안으로 쳐들어가 온갖 재물과 가산들을 압수하여 가지고 온 수레에 가득 실었다.
별채 작은 방문을 열었을 때 그림자 하나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당강(棠姜)이었다. 그녀는 최저도, 최명도 보이지 않고 최성, 최강 형제에 의해 집안이 결딴 나는 것을 보고 밧줄로 자기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철수하라."
노포별(盧蒲嫳)은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경봉의 집으로 돌아갔다. 당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최저와 경봉에게 복명했다.
"난을 가라앉혔습니다. 집 안도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노포별(盧蒲嫳)은 '깨끗이' 라는 말을 강조했다.
경봉(慶封)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최저를 돌아다보았다.
"재상께선 역시 부도옹(不倒翁)이십니다."
"폐가 많았소. 이만 돌아가 보아야겠소."
최저(崔杼)는 뜰로 내려왔다.
수레를 타려다 말고 경봉에게 청했다.
"참, 내가 데리고 온 노복은 말을 잘 몰지 못하오. 수레를 잘 모는 어자 한 사람을 빌려주시오."
노포별(盧蒲嫳)이 곁에 서 있다가 대답했다.
"제가 재상을 위해 수레를 몰겠습니다."
떠나가는 최저를 향해 경봉(慶封)이 다시 한 번 의미심장한 인사를 던졌다.
"잘 가십시오."
석양의 잔광이 유난히 환하게 경봉의 얼굴을 비치고 있었다.
"앗!"
최저(崔杼)는 망연자실했다.
대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집 안에 사람의 그림자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온갖 물품들이 땅바닥에 어질러져 있었다. 도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 흡사 폐허 같았다.
'이게 내 집이었던가.'
아들 최성(崔成)과 최강(崔彊)의 시체가 뜰 앞에 처참한 형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가슴 한구석으로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최명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당강은...........?"
내실을 뒤지던 최저(崔杼)는 별채 작은 방에서 허공에 건들거리는 시체 하나를 발견했다.
"아, 아............"
당강의 목은 아직도 밧줄에 그대로 매여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노포별(盧蒲嫳)을 돌아다보았다.
씨익 웃는 노포별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비쳤다.
"너는.................?"
"나는 노포계의 동생이오. 형을 대신하여 제장공(齊莊公)을 시해한 그대를 이제 처단하고자 하오."
최저(崔杼)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경봉(慶封)이 시킨 짓이냐?"
"반은 그렇소."
"그 말의 의미는.........?"
"조만간 경봉도 당신의 처지와 똑같아진다는 뜻이오."
그제야 최저(崔杼)는 이번 일이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경봉........어리석은 놈! 아아,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이제 내가 설 곳은 어딘가?"
"그대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겠소. 그대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곁에 서시오."
최저(崔杼)는 노포별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걸음을 옮겨 아내 당강의 몸이 흔들거리는 곳에 섰다.
허리띠를 풀러 대들보에 매었다. 고리를 만들어 목에 걸었다. 발 받침대를 걷어찼다.
잠시 후 요동치던 몸이 조용해지며 축 늘어졌다.
그 광경을 노포별(盧蒲嫳)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 이로써 최저(崔杼)의 영화는 끝났도다. 그대, 권력의 정점에 올라 있었던 것이 28년이었던가.
그 날 밤이었다.
폐허가 된 최저의 저택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숨어들었다. 최저의 막내아들 최명과 그의 종복이었다.
최명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최씨 일족의 무덤 근처에 숨어 있다가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집 안으로 잠입한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목매달아 죽은 모습을 보고 소리 죽여 흐느꼈다. 종복과 함께 두 사람의 시신을 훔쳐내어 성밖으로 빠져나왔다.
다음날 최명은 수레를 몰아 선산으로 달려가 조상의 무덤 곁에 두 사람을 묻고 평평하게 흙을 덮었다.
"내 어찌 제(齊)나라에서 살 수 있으랴."
그는 노(魯)나라로 망명했다.
이후 최씨 성(姓)은 제나라에서 그 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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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