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20일.
이날은 우리 입소장애인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첫걸음을 내디딘 날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날이기도 합니다.
젊은 스물여덟 살, 저는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자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근육마비가 찾아왔습니다. 걷는 것은 물론이고 손가락조차 겨우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저는 삶의 끝을 생각할 만큼 절망했고, 왜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 주님을 원망하며 수없이 눈물 흘렸습니다.
그 긴 절망의 시간 끝에서 저는 주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8년간의 수도생활은 여기서 내려놓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아직 생명의 불씨가 남아 있다면, 저와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세상의 어둠 속에서 작은 등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 기도는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기적처럼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저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외면받고 살아온 초중증 지적·발달장애인들의 평생 보금자리를 세우라는 또 하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집이 어느덧 25년의 시간을 품었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저는 시설장이기 전에 한 사람의 가족으로, 한 사람의 벗으로 우리 입소장애인들과 함께 웃고 울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제 마음속 사명감만은 그날의 기도처럼 여전히 뜨겁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시설의 25년은 제 인생의 25년이기도 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눈물을 사랑으로 바꾸어 주신 주님의 은총 속에서 저는 오늘도 우리 입소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이곳이 누구에게도 버려지지 않는 집, 끝까지 함께하는 가족의 보금자리, 그리고 주님의 사랑이 머무는 따뜻한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