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에서
팔월이 하순에 접어든 셋째 일요일이다. 어느덧 여름 끝자락이라 열대야가 수그러들어 간밤은 기온이 서늘해 창문을 닫고 자야 할 정도였다. 한밤중 일어나 신창호가 엮은 ‘정약용의 고해’를 펼쳐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정약용이 남긴 ‘자찬묘지명’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서문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생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화해한다.’해 눈길을 끌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식후 배낭을 둘러메고 스틱을 챙겨 길을 나섰다. 올여름 무더운 날씨와 간간이 장맛비에도 불구하고 산행은 수시로 다녔다. 주로 근교 숲으로 들어 삼림욕을 겸해 영지버섯 채집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나절 이전 하산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는 옷을 훌훌 벗고 잠시 자연인이 되기도 했다. 이제 영지버섯도 웬만큼 채집해 놓아 거의 끝물이다.
영지버섯은 장마철에 갓을 펼쳐 자라다가 가을이 오면 딱딱하게 굳어 벌레가 꾀어 파먹고 사그라졌다. 올여름 영지 채집 마지막 행선지로 며칠 전 장유로 가면서 넘었던 창원터널이 지나는 상점령을 한 번 더 택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대방동 성당 부근에서 내렸다. 대암산 등산로를 비켜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 용제봉으로 가는 길로 들었다.
용제봉으로 드는 산자락은 바깥에서 보기보다 계곡이 깊숙하고 산등선이 겹겹이 겹쳐 그윽했다. 산 아래는 도시 계획에 의해 원주민을 이주시켜 시내버스 공영차고지가 되었지만 예전엔 불모산동이 있었더랬다. 그곳에서 누대에 걸쳐 살던 후손들의 산소가 밀집된 용제봉인지라 여름 끝자락 이맘때 선산 벌초를 위해 다녀가는 자손들이 있어 일요일 이른 아침 예초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름이면 용제봉 기슭으로 영지버섯을 찾느라고 여러 차례 드나들어 어느 산자락에 어느 성씨 무덤이 있는지 훤하다. 불모산동에서 대성으로 살았던 김해 김 씨 선산은 묘역이 넓을뿐더러 석물도 웅장했다. 그 밖에 수원 백 씨나 곡부 공 씨를 비롯해 예전 토박이들의 선대 산소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용제봉 산자락의 산소 현황은 등산로 들머리 농바위에 자세히 새겨 놓았다.
성주동 아파트단지에서 용제봉으로 드는 숲길은 아주 깊숙해 시간이 꽤 걸려 상점령으로 나뉘는 갈림길 이정표에 닿았다. 불모산 숲속 나들이 길과 겹친 구간을 지난 계곡의 사방댐을 건너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쉼터에서 얼음 생수를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불모산 숲속 길이 아닌 상점령 임도를 따라 올랐더니 비탈길에서 선산 벌초를 위해 예초기를 싣고 오는 트럭을 만났다.
계곡의 정자 쉼터에서 상점령으로 가는 임도는 평소 인적이 드문데 맞은편에 한 사내가 내려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아마도 아까 지나온 갈림길에서 용제봉 기슭으로 들어 숲길을 한참 에둘러 임도를 따라 내려온 듯했다. 임도를 계속 가면 상점령 고갯마루에서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용제봉 가는 길로 나뉘는데 나는 둘 다 택하지 않고 장유 대청계곡으로 내려갈 참이다.
상점령 고갯마루에 이르니 조상 산소 벌초를 하려고 차를 몰아온 이들이 더러 보였다. 바야흐로 추석을 스무날 남짓 앞둔 때라 자손들을 연례행사로 선산을 다녀가지 않을 수 없지 싶다. 나는 상점령에서 용제봉으로 가는 길로 들어 며칠 전 지났던 장유사로 가는 길로 내려섰다. 그날은 장유 계곡에서 텃밭을 가꾸는 지인을 뵙느라고 정한 약속 시간에 쫓겼는데 이제는 느긋했다.
비스듬히 내려서는 산자락은 어느 산악회가 매단 깃이 보이긴 해도 묵혀진 등산로였다. 도중에 밀양 만어산의 종석과 유사한 돌너덜을 지나면서 바윗돌에 붙어 파란 꽃을 피운 닭의장풀도 만났다. 등산로를 벗어난 숲에서 몇 조각 영지버섯을 찾아냈는데 아마도 올여름 마지막 채집일 듯했다. 숲을 빠져나가니 건너편은 화산 공군부대 레이더 기지와 불모산 송신소가 아스라했다. 2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