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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국지의 세계에 탐닉하다
- 2부 장강의 영웅들 (186)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4장 쓰러지는 부도옹(不倒翁) (6)
독재자 최저(崔杼)의 몰락은 임치성 사람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사람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환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최저에 이어 제나라 재상에 오른 경봉(慶封)의 정치 행태는 최저와 거의 다를 바 없었다.
그랬다.
- 제 1인자.
평생 제 2인자로서 지낼 줄 알았던 경봉(慶封)은 마침내 최저를 제치고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만큼 권력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려 했다.
무엇보다도 정방(政房)정치를 시행했다.
자신의 집에서 모든 국정을 해결한 최저를 답습한 것이다. 조당은 형식적이었고, 경봉의 집이 나라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처음 한때 경봉(慶封)은 유화정책을 펴기도 했다. 제장공의 죽음 이후 타국으로 망명했던 정적들의 귀국을 허용했다.
- 나는 최저(崔杼)와 다르오. 임치로 돌아와 함께 잘 해봅시다.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송(宋)나라로 망명했던 진수무(陳須無)부자였다. 진수무 부자는 제장공의 측근은 아니었다. 그들의 망명은 최저와의 충돌을 피해서였다.
진수무 부자에 이어 공족대부인 난조(欒竈)와 고채(高蠆)도 귀국했다. 난조와 고채는 모두 제혜공의 손자로서 자(字)를 자아(子雅), 자미(子尾)라 했다. 난조의 아버지는 공자 난(欒)이었는데, 그 이름이 그대로 씨(氏)가 되어 난조에까지 이르렀다.
고채(高蠆)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아버지는 공자 고(高). 그것이 씨(氏)가 되었다. 그러므로 고채는 제환공 때부터 명문가로 자리잡은 고씨와는 다른 집안이다.
하지만 임치로 돌아온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제장공의 측근 무사였던 사람은 한 사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봉(慶封)을 믿지 못해서이리라.
경봉이 재상에 오르면서 가장 출세한 사람은 노포별(盧蒲嫳)이었다.
그는 최저 가문의 몰락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일등공신이다. 그 덕분에 하루아침에 평범한 가신에서 최측근 가신이 되었다.
노포별에 대한 경봉(慶封)의 신임과 총애는 대단했다.
모든 일을 노포별과 의논했고, 노포별(盧蒲嫳)을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다.
- 우리 두 사람은 하나나 마찬가지다.
공공연히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노포별(盧蒲嫳)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제장공(齊莊公)의 원수를 갚는 일이었다. 그가 경봉의 분신처럼 행동하는 것은 다 치밀한 계산에서였다. 이런 면에서 그는 형 노포계의 부탁을 철저히 이행한 셈이다.
노포별(盧蒲嫳)이 보기에 경봉의 정치 감각은 최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애초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반면 황음(荒淫)한 기질이 농후했다.
노포별은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경봉을 향락에 빠져들게 했다.
어느 날이었다.
노포별(盧蒲嫳)은 자기 집으로 경봉을 초대했다. 진귀한 음식상을 차려놓은 가운데 자신의 아내를 불러내 술을 따르게 했다. 노포별의 아내는 천하절색이었다. 경봉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노포별은 놓치지 않았다.
"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시지요."
그 날 밤 경봉(慶封)은 노포별의 아내를 품에 안고 잤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경봉은 매일 노포별의 집으로 갔다.
경봉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이름을 경사(慶舍)라고 했다.
경사는 한창 때의 나이였다. 의욕도 충만했고, 야심도 적지 않았다. 그는 날마다 노포별과 어울려 지내는 아버지 경봉(慶封)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당주가 너무 자주 집을 비우시면 집안일도, 나라일도 어지럽게 됩니다."
경봉(慶封)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나라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라."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아버님께서는 어찌하시렵니까?"
"나는 노포별(盧蒲嫳)의 집으로 가겠다."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경봉(慶封)은 자신의 재물과 아내, 첩들을 데리고 노포별의 집으로 이사를 간 것이었다.
그 곳에서의 생활 또한 가관이었다.
이때의 모습을 <춘추좌시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경봉(慶封)은 사냥을 좋아하고 술을 즐겨 마셨다. 정치는 아들 경사(慶舍)에게 맡기고, 그 자신은 재물과 처첩을 노포별의 집에다 옮겨놓았다. 그러고는 여자를 바꾸어 즐기니, 그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포별의 집으로 찾아와야 했다.
아내와 첩들을 서로 바꾸어 잠자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혼음(混淫)인데, 이런 풍조는 유독 제(齊)나라 고위층에서 유행했다.
이 정도 사이가 되어서야 노포별(盧蒲嫳)은 슬그머니 경봉에게 청했다.
"지금 저의 형님 노포계는 진(晉)나라에 망명중입니다. 돌아오게 하여 최씨 일족의 잔당을 멸절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노포별이 말한 '최씨 일족의 잔당' 이란 경봉을 비롯한 경씨 일족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경봉(慶封)은 그렇게 듣지 않았다.
"노포계(盧蒲癸)라면 용사가 아닌가? 좋은 일이다. 속히 귀국시켜라."
드디어 노포계는 망명 생활을 마치고 제(齊)나라로 귀국했다. 경봉(慶封)은 노포계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 후 한마디했다.
"내 아들을 도와라."
국정은 경사(慶舍)의 몫이다. 최씨 일족의 잔당을 소탕하는 일 따위는 경사에게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노포계(盧蒲癸)는 경사의 집으로 갔다.
완력을 좋아하는 경사(慶舍)는 제장공의 호작 무사 출신인 노포계가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라 첫눈에 매료되었다.
'이 정도면........'
자신의 경호 책임자로도 적임이라고 생각했다.
노포계(盧蒲癸)는 노포계대로 경사를 섬기는 일에 만족했다. 그의 귀국 목적은 어디까지나 제장공의 원수 갚음이다. 최씨는 멸족했다. 이제 남은 것은 경씨 일족뿐이다. 그 경씨 일족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봉(慶封) 부자 가까이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 아우인 노포별(盧蒲嫳)은 아버지 경봉.
- 형인 노포계는 아들 경사.
이런 역할이 무언중에 정해졌다.
노포계(盧蒲癸)가 경사를 모시는 일은 의외로 수월했다. 경사(慶舍)는 제장공을 빼닮았다. 사고도, 행동도 똑같았다. 노포계는 이런 성격의 소유자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어떻게 하면 신임을 얻는지도 알고 있었다.
과연 경사(慶舍)는 노포계를 극진히 신임했다.
자신의 딸을 노포계와 결혼시켰다. 경사와 노포계는 장인 사위 간이 되었다.
어느 날, 노포계(盧蒲癸)는 몰래 동생 노포별을 만나 말했다.
"이 정도면 선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지 않겠는가. 너는 경봉을 죽이고, 나는 경사를 죽이도록 하자."
그러나 노포별(盧蒲嫳)은 머리를 저었다.
"우리가 경봉(慶封) 부자를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는 대신을 죽인 살해범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망명해야 합니다. 정변(政變)이 아니면 경봉 부자의 암살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지낼 수만은 없지 않는가."
"지금 조정에는 여러 일족이 경씨(慶氏) 타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경봉 부자에게 접근할 수 없어 망설이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난조, 고채, 진무수, 포국, 안영 등과 비밀리 접촉할 터이니, 형님께서는 내부 동조자를 더 구하십시오."
"좋은 생각이다. 나는 거나라에 망명해 있는 왕하(王何)를 불러들이겠다."
며칠 후였다.
노포계(盧蒲癸)는 경사와 함께 사냥하다가 슬쩍 말문을 열었다.
"왕하(王何)는 저와 가장 절친한 사이입니다. 용맹도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불러들여 가까이 두심이 어떻겠습니까?"
"왕하는 지금 어디 있는가?"
"거(莒)나라에 있습니다."
"나를 위해 일을 할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좋다. 불러들이도록."
노포계(盧蒲癸)는 사람을 보내어 왕하를 불러들였다.
왕하(王何)는 임치성으로 돌아오자 곧장 경사를 찾아가지 않고 비밀리 노포계를 만났다. 대뜸 눈을 부라렸다.
"그대는 배신자다!"
"그것이 무슨 소린가?"
"경사(慶舍)는 우리의 원수. 그런데도 그대는 원수의 사위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경사를 죽이기 전에 그대부터 먼저 죽이겠다."
"잠깐, 내 말을........."
노포계(盧蒲癸)는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 그대 말대로 경씨는 우리의 원수다. 원수를 치려면 원수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좋다.
그대는 알겠는가, 하고 노포계는 말미에 힘을 주었다.
왕하(王何)는 잔뜩 움켜쥐었던 주먹을 슬그머니 풀었다.
"그런 뜻이라면....... 좋다. 나도 경사(慶舍)를 섬기겠다."
노포계(盧蒲癸)는 왕하를 데리고 경사에게로 가 보였다.
왕하를 면담한 경사(慶舍)는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그 날부터 노포계(盧蒲癸)와 왕하(王何)는 경사의 침과(寢戈)를 잡았다.
침과란 잠자리를 지키는 창이다. 즉 경사가 잠잘 때나, 밥 먹을 때나, 일어설 때나 늘 창을 들고 그 뒤를 따르며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었다.
이제 두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경사의 목을 벨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 다음은 9권에서 계속됩니다.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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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