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리뷰이벤트 도서 – 레알리아 표지입니다. 사진작가의 섬세한 광원효과가 돋보이는군요.
들어가기에 앞서,
레알리아는 ‘채운국 이야기’로
유명한 유키노 사이 작가의 작품입니다. 제가 본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해 보았기에 리뷰 작성의 원활함을
위해 채운국 이야기에 대한 내용은 검색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사실, 표지를 봤을 때는 느낌이 쎄~했습니다. 얼핏 봤을 때는 ‘650만부?? 예쁜
표지?? 우왕~’ 했는데 사진에 표시해둔 코딱지만한 문구는… ㅡㅡ;; 이 시점에서 적잖이 당황한 채로 첫 장을 넘겼습니다.
대뜸 첫 장부터 잔디밭마냥 수식어가
온 천지에 파라라락 펼쳐진 글을 읽으려니 얼마 안 가 현기증으로 눈이 핑핑 돌았습니다. 저는 역사책으로 대표되는 건조한 책들 위주로 읽었던 터라 A -> B -> C 와 같은, 심심하긴 해도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 글에 익숙한데 이 책에서는
전체적인 스타일을 ★☆A■□ -> ∂≤B≤∮ -> 「C」
의 형태로 잡아서 문장 하나하나가 화려하더군요. 그 탓에 초반에는 새로운 기분으로 아름다운 표현을 가득
들이쉬며 한 장씩 산책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었으나 중반 즈음에는 이전 챕터의 수식어밖에 안 떠올라 내용 연결이 잘 안
되었고, 수식이 많은 만큼 전개가 느려서 책에 몰입이 안 되더군요. ㅠㅠ 그나마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는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수식어를 줄여서 다시 몰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생각하기엔 너무 많았지만 말이죠.
또한 제 아무리 그림이 예뻐도 내용이 부실하면 뛰어난 그림이 아니라는 말이 있고, 이 평가는 글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유감이지만 레알리아도 화려한
필체에 깔린 부실한 주춧돌이라고, 내용에 대해 저평가를 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제 부정적 평가에 영향을
미친 부분은 크게 세 가지인데,
①
서양 판타지 세계관임에도 동양적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②
‘막간’이라는
이름의 과거 이야기 챕터들이 너무 따로 놉니다.
③
대하판타지를 표방함에도 배경이 너무 좁습니다.
① 등장인물, 장소 등의
이름이 모두 서구식을 따르고 있는데도 동양적 역사관에 기반하여 세계관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서부제국’과 ‘동방왕국’이 리더의 명칭만 다른 라이벌 관계인데, 유럽에서 왕국이 어디 감히 제국에...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왕조황자”라는 기묘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역자가 이렇게 옮긴 걸 수도 있지만 저는 처음 저 단어를 보고 굳어서
20초 정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같은
역덕이 아니라면 지나칠 세부적인 디테일들이라 읽으면서 사소하게 넘기셔도 무관합니다. 하지만 전작인 채운국
이야기가 잘 짜여진 중국적 세계관으로 호평을 받았던 걸 고려하면 그걸 기대한 독자들에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② 라이트노벨로 분류되는 가벼운 소설책들은 1권으로 끝내는 완결적인 성격이 강하다더군요. 그러나 레알리아에는 ‘그랑제리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60쪽, 세 개 챕터 분량의 ‘막간’이 등장해서 세계관을 이어나가려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밀레디아'의
성격을 바꿔 놓은 어린 시절 사건을 통해 소설 속 세계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주는 것이지요. 동시에 함께하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로 여러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사건의 주요 배경이 되는 서부제국과 동방왕국의
대립 등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도 돕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 거대한 사건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양 일반 챕터와 막간 모두에서 평면적인 인물상을 지니고 있어서 과거가 맞나 싶은 데다 전후 내용 사이에 들어가는 막간 챕터의 특성상 이야기의 맥이 탁탁 끊어져 버립니다.
③ 제가
리뷰이벤트를 처음 신청할 때 가장 인상깊었던 문구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신 ‘본격 新대하 판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작인 ‘채운국
이야기’가 거대한 스케일로 이름을 날렸던 만큼 저 문구가 거짓이 아닐 거라는 막연한 믿음 또한 있었죠. 물론, 환상이 레알 깨졌습니다. 서두에서는 대륙 하나 정도를 배경으로 제시합니다만 실제로 쓰이는 공간은 성
2채(+지하실), 성당 1채, 저택 1채, 거리 하나, 숲 하나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연극처럼 말로는 크고 눈으론 작은 규모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을 레알리아에서도 받게 되는 겁니다. 배경이 이렇다보니 인물에 대한 설정도 와닿지가 않습니다. 일례로 서부제국 제일의 군사라는 ‘마녀장군 오렌디아’가 실제로 이곳저곳에서
전과를 올려 독자들 스스로 뛰어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솔 달린 부채를 들고', '치맛자락을 흩날리는 여군사', '마음이 없는 마녀’ 따위의 여러가지 서술에 의존해서 "아! 저 여자가 강한 캐릭터구나" 하는 식으로 파악하게 되는 겁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데 볼 수가 없으니 캐릭터성이 안 느껴집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화려한 문체에 의해서 중반부터는 누가 어떤 캐릭터였는지조차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http://cafe.daum.net/Europa/OIFW/4
제 전체적인 평가는 이렇듯 부정적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불쏘시개 마냥 졸작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리뷰를 위해 꼼꼼이 읽다보니 아쉬운 점을 많이 찾았지만 그와 동시에 좋은 점도 충분히 찾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긍정적으로 생각한 부분도 아래와 같이 3가지입니다.
① 주인공이 정말 주인공 같습니다.
② 반전주의적 묘사가 있습니다.
③ 신데렐라를 뒤집었습니다.
① 다른 인물들의 묘사가 애매한 것과 달리, 1인칭 주인공 &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주인공 ‘밀레디아’와 그녀의 주변은 꼼꼼하게 설명해 줍니다. 특히, 독자는 파악하고 있지만 밀레디아는
모르는 부분에서의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서술은 훌륭합니다. 예를 들어 ‘가면 쓴 소년’과 ‘이름
모를 황자’는 동일인물입니다. 가면 쓴 소년은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밀레디아에게 다가오고 이름 모를 황자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13살이라는
것만 알아서 (밀레디아는 17살) 어리게 행동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식입니다. 결국 밀레디아는 끝까지 두 남자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유추하지 못 합니다.
② 작중 세계에서는 서부제국 황가 + 신의 이름으로
제국을 주무르는 교황가(악의 축) + 제국에 정복당한 마녀가(주인공
세력) vs 동방왕국의 대립이 이어지는데 교황가와 동방왕국은 개전을 부르짖고 제국과 마녀가는 휴전을
지키려 애씁니다. 제가 일본 작품들을 많이 보지 않아서 성급한 일반화 같기도 합니다만 주인공 세력이 찬전주의 기득권에 맞서 굴욕적인 조건을 내세워서라도 평화를 지키려 애쓴다는 내용은 다른 일본 작가들의 성향과는 달랐습니다. 과장해서 일본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작가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③ 레알리아는 두 남자+α와 한 여자의 사랑과 우정을 다루는 여성향 소설입니다.
밀레디아의 아쿠아리움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흔한 드라마와는 달리 부잣집 무능한 아가씨가 다양한 출신의 남자들과 교류를 하는 것으로 소설의 굵은 줄기가 이어집니다. 은어로 취집(취직+시집)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그저 반대로 뒤집었을 뿐이지만 신선한 테마가 형성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새로운 시각, 새로운 소재로 도전장을 던졌다는 점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톨킨의 그늘 아래 엘프, 오크, 마법 등에 안주한 다른 작가들과 같은 길을 걸으면 세계관에 대한 부담 없이
무난한 인기를 누릴 수 있을 텐데, 레알리아에는 그 흔한 잘생긴 엘프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대신에 채운국 이야기에 버금가는 서양적 세계관을 확립하고자 애쓴 노력이 보입니다. 그러나 눈에 띄게 부족한 서양사에 대한 연구와 작중 배경의 아담한 규모는 선뜻 이 책을
펼쳐보라고 타인에게 권유하기엔, 저를 망설이게 합니다.
주요한 소개는 끝이 났지만 호불호가 갈릴만한 몇 가지 디테일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목차를 안 보고 바로 본문을 읽기 때문에 인물소개를 마지막에야 펼쳐봤는데, ‘이게 �o미?’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소설 속 묘사와 삽화가 이질적입니다. 대표적으로
아랫줄 3번째의 ‘레나토’는
팔·다리가 각각 하나씩 없는 '누더기 부대원'입니다. 그런데 삽화엔 팔은 하나 없는데 나머지 발은 의족이 티가 안 납니다;; ㅇㅅㅇ.. 그러나 여성향 소설이기에 모든 주변인물들이 깔끔한 미형의 남성인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네요. 남녀 간에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이트노벨이라는 걸 처음 읽어보는 (이벤트 덕에 참신한 독서를 해보았네요 ㄷㄷ;;) 제 개인적인 평가도 하나 보태자면,
읽는 내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글로 적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기보다는 퀘스트 혹은 에피소드가 하나 끝날 때마다 새로운 인물과 사건이 톡톡 터져준다랄까요? 앞뒤 연결에 실패해도 내용파악이 가능은 해서 정말 '가벼운' 소설이었습니다만 전체적인 스토리에 깊이가 부족했습니다.
황제 사후, 선거가 개최되면 마녀가&황제가의 후보’들’이
경쟁을 하는데 신성로마제국이 탁 떠오르시지 않습니까? 교황가는 뒤에서 지지하는 후보를 밀어주는데, 이것도 완전 신성로마제국 아닙니까? 한 편, 황제는 지금의 교황가를 만든 장본인이면서도 국교를 믿지
않아 금지구역에서 금작나무를 들고 혼자 기도한다는데 이건 콘스탄티누스 대제 아닙니까!? 줄기는 아쉬운데 잔가지
디테일은 상당하더군요. 그래서 단점 ①을 넣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여성향 작가가 유명한 역사를 버리고 무명의 역사를 채용한 건 굉장한 것 같습니다 ㄷㄷ;;)
결론적으로, 여성향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와 주류를
벗어난 작가의 정치관이라는 새로운 경험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부족한 사전준비와 난해한 서술법으로 인해서 그러한 좋은 소재들이 한데 어우러지지 못 했고 결국에는 용두사미로 끝나버렸습니다. 마치 특등급 한우를 너무 오래 구워 고기가 질겨져 버린 맛이랄까요?
내용에 관해서는 알리고 싶지만 읽기를 권하기엔 머뭇거리게 되는 소설, 레알리아였습니다.
여담. 아마 다들 굵은 글씨만 읽으시겠지…….
삭제된 댓글 입니다.
1번 타자라 혼란스러웠어요!
평범한 라노벨 리뷰와는 질적으로 달라서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읽기는 다 읽었지만, 왠지 느낌이 이 리뷰가 책보다 더 어려울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ㄷㄷㄷㄷ
아니에유. 굵은 글씨만 읽으면 쉽고 짧습니다 ?! 이게 아니지
책이 450쪽 정도라 더 어렵습니다!
가벼운 리뷰를 예상하고 들어왔는데 굉장히 성의 있게 쓰신 리뷰가 나와서 깜짝 놀랐네요 ㅋㅋ
혹시 평소에는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다른 분이랑 누가 먼저 올리나 치킨 게임 중이었는데 ㅠㅠ 제가 졌네요. 어떻게 하나 싶어서 그냥 적던 데로 적었어요.
최근 읽고 있는 책은 Empires in World History가 있고 최근에 읽은 책은 징비록, 난중일기, 1984, Starship Troopers 정도일려나요. (사실 뒤에 둘은 시간이 꽤 되긴 했는데 역덕으로 몰릴 수야 없죠) (앞에 둘은 작년 중순 즈음에 역알못들이랑 말싸움할 일이 있어서 임진왜란 분석하려고 벼르다 샀던 것 같네요)
질문했던 이유는 평소 라이트노벨을 보지 않은 사람이 쓴 리뷰 같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근데 오히려 역덕인걸 다시 한 번 확인했네요 ㅋㅋ
아..앙돼... 역사리우스님께 역덕으로 찍혔어 ㅜ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넵! 자리선정 죄송합니다 ㅜ
근데 왕국과 제국이 대립하는건 중세때있던거 아닌가요? 당장에 프랑스랑 신롬만 봐도....
'신성'로마제국, '비잔티움'제국의 이름들이 왜 생겼는가가 중요합죠.
그런데 역으로 디테일부분에서 언급했듯이 프랑스랑 신롬의 분쟁을 참고한 것도 같고.. 사실 여러모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생각난 건 다 쓰자 싶었습니다. ㅎㅎ;;
@WorldEnder 뭐ㅋ 헝가리나 시칠리아도 왕국이었지 않습니까ㅋ
@모리야 전제국 죄송합니다. ㅜ 헝가리, 시칠리아가 왕국인건 알지만 왜 언급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WorldEnder 둘다 비잔티움이랑 신롬이랑 대립도 하고 협력도 했잖아요ㅋ 그런 경우죠ㅋ
@모리야 전제국 아아 ㅋㅋ 그렇네요. 그런데 유럽에서 왜 로마를 비잔티움이라 부르고, 교황이 로마제국 앞에 신성을 붙였는지 파다 보면 흥미롭지요 ㄷㄷ.. 근대까지 제국은 유럽에서 금기어였습니다.
@모리야 전제국 조금 짧았던 것 같네요. 첨언하면 우리가 고구려의 후예라고 하지만 중국도 자기네 영토에 있었으니 자기들도 고구려의 후예라고 하죠. (우린 민족, 개네는 영토로 개념이 약간 다르지만요) 같은 상황을 유럽에 한 번 대어보면, ☆로-마★의 후예가... 한둘이 아니죠 ㄷㄷ;; 중세의 거의 1~2천개에 달하는 나라들이 옆에 있는데 "내가 제국이다!!!" 한 마디 외치면 누가 들어도 '형씨, 쟤 지금 지가 로마라는데?' 겠죠. (크킹을 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로마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유럽에서는 De Jure라고 각국별로 합법적 점령이 가능한 영토가 있는데 로마는 ㄷㄷ 합법의 문제가 아니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