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후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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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김도향이 부른 ‘시간’을 연습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10일) 오전, 서울로 올라오는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를 통해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약 이 주일 동안 내가 이 노래를 100번 이상 들으리라는 것과, 그 뒤에는 이 노래를 내가 그런대로 흉내를 낼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곡조도 좋고 가사도 좋다.
지난 토요일 상경한 것은, 그 날 점심에, 신년 인사 모임에 해당하는 성경재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주변에 앉은 젊은 사람들에게 ‘시간’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내가 라디오에서 무슨 노래를 들었는데 말이야.” 사실은 그 때까지 나는 그 노래의 제목을 모르고 있었다. “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 이렇게 스마트폰에 한 번 쳐 봐.” 나는 그 노래가 팝송을 번안한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째즈나 블루스의 냄새를 약간 풍기는, 그 느낌으로 보아, 30, 40년대의 노래 같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알고 봤더니, 그 노래는 윤종신이 만든 것이다. 작곡도, 작사도 그 사람이 했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이틀이 지난 현재(월요일) 20번쯤 듣고 악보도 보았는데, 존경의 마음이 더 커졌다.
점심 식사 후 오랜만에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이번 학기는 선생님 없이 우리들끼리 공부를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우리들끼리는 해소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의문에 부딪쳤다. 선생님의 강의는 그 의문에 대답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의 말미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덕분에 (즉 인간이 된 덕분에), 하나의 동경, 하나의 불안, 하나의 후회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동경은 “나는 지극히 좋은 것에 이르기를 (즉 에덴동산으로 복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고, 그 불안은 “나는 지극히 좋은 것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낙원추방의 ‘탓에’라고 말하곤 하지만, 선생님은 ‘덕분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덕분에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다. 즉 동경, 불안 등을 가지는 것이 인간에게 가능하게 되었다고 하여, 모든 인간이 실지로 그것들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우리나라의 학자들 — 내 분야인 교육학을 하는 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학자들 — 대부분에게 존경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제 보니, 그것은, 그들의 글에서 위의 동경, 불안 등등이 읽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은 마지막의 후회에 대해서는 (항상 그렇게 하듯이) 퀴즈를 내셨다. “후회를 말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동경, 불안과 비슷한 형식으로 말이야.”
2
윤종신의 ‘시간’은 후회에 관한 노래라고 말할 수 없을까? 그 노래는 짧은 인트로에 이어 “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하고 시작한다. 뒷 부분에는 ‘후회’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한다. “가슴 한 켠 숨어있는 후회도 내가 흘러갈 세월이 가려주겠지.” 물론 전적으로 후회에 관한 노래라고 볼 수는 없다. 첫 부분의 가사는 이렇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난 어디로 돌아갈까. 그대를 처음 만난 날? 아님 모두 나를 축하하던 날?”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노래가 후회에 관한 노래이기도 하다는 점은 분명하니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후회의 내용이나 후회의 종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시간’은 ‘불량주부’라는 드라마에 삽입된 노래라고 한다. 나는 예전에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손창민, 신애라가 부부로 나온다. 손창민이 실직하여 주부의 역할을 하고 신애라가 가장인 듯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 그 때만 해도, 이런 일은 그야말로 ‘텔레비전 드라마에나 나올’ 희귀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형편이 그렇게 되었으니 그 부부에게는 후회할 만한 일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후회가 많다는 것은 물론 동경도 많고 불안도 많다는 뜻이다. 예컨대 손창민은 “그 때 내가, 김상무가 시키는 대로만 했으면 이 꼴은 안 되는 건데”하고 후회하면서, 생계에 관하여 불안해할지 모르며, “세무사 시험에 한, 두 번은 더 도전을 했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면서, 잘 나가는 세무사 동창을 동경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후회만으로 ‘불량주부’가 채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손창민이 잠든 아이를 들쳐 업고 놀이방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배경에는 저녁노을과 더불어 “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하는 김도향의 멋진 목소리가 무심코 흘러 나올텐데, 그리고 그 때 시청자는 자기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음의 파문이 피어나는 것을 느끼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알싸한 공감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텐데, 그 장면과 그 소리, 그 느낌 등을 오로지 위와 같은 세속적인 후회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종류의 후회만으로 인생이 채워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만약 손창민이 김상무가 시키는 대로 부정의한 일에 가담했다면 그는 또 다른 종류의 후회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인생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으며, 그 또 다른 차원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종류의 후회,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동경, 불안이 있다. 도덕이나 종교라고 불리는 것이 그 차원과 관련되어 있지만, 나로 말하자면, 내 선생을 볼 때, 그런 또 다른 종류의 동경, 불안, 후회를 희미하게나마 느낀다.
우리 선생님은, 당신이 낸 퀴즈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머쓱한 느낌이 드시는지, 정답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곤 하신다. 지난 토요일 날도 그런 일이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 때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서는 것은 나다. 나는 정답을 알려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정답은, 듣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나는 지극히 좋은 것에 이르지 못하였다.”였다. 이 말이 후회를 나타낸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나는 지극히 좋은 것에 이르려고 충분히 애쓰지 않았다.”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읽었겠지만, 이러한 지극히 좋은 것과 관련된 후회가, 위에서 또 다른 차원의 후회라고 말한 그것과 같은 것이다.
첫댓글 시간..돈으로 무엇이든 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예전보다 지금이 더 깊어졌음을 우리는 잘 안다.그래서 더욱 돈에 연연하며 살고 있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돈으로 살 수 없는게 시간 아니겠나."나는 지극히 좋은 것에 이르려고 애쓰지 않았다"가 후회라 풀어 말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이제라도 지극히 좋은 것을 하기 위해 시간을 아껴야껬다는 생각을 하며 문득 김도향의 시간이란 노래를 영태교수를 통해 들어보고 싶어지네~ㅎ
스마트폰 구입하셨나? 한번 쳐서 듣고 난후에 다시 음미해봐야겠다.
열심히 연습 중이나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노래인 것 같아. ㅎㅎ 스마트폰은 구입하지 않았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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