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
이칭 : 고마성(固麻城), 공산산성(公山山城), 공주산성(公州山城), 쌍수산성(雙樹山城), 웅진성(熊津城)
높이 : 3~4m
둘레 : 2,500m
면적 : 218,717㎡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산성동 2번지
웹페이지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400120000
종목 :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지정기관 : 국가유산청
집필 2022년 서정석 (공주대학교) 최종수정 2024년 02월 21일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발굴 경위 및 결과
공산성은 웅진기 백제의 왕성(王城)이자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적이다. 1970년대 말부터 진행된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이 계기로 공산성에 대해 관심을 받게 되었다. 당시 정밀 조사를 통해 성벽의 둘레와 성내 시설물의 현황이 확인되었고, 특히 백제 때에는 토성주4이었던 것을 조선시대에 석성주5으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1985년과 1986년에는 추정 왕궁지에 대한 시 ·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뒤이어 백제 때 축조된 토성벽과 통일신라 때 조성된 28칸 건물지, 그리고 광복루 주변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서서도 12각 건물지를 조사하는 등 대체로 공산성 내 동쪽 산봉(山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서는 2005년에 성안마을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시작으로 성안마을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성안마을에 중군영지(中軍營址)를 포함한 조선시대 유적이 자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1년부터는 조선시대층을 제거하고 그 아래쪽에 자리하는 백제 유적을 본격적으로 조사하였다. 그 결과 2016년까지 다양한 백제 유적과 통일신라 유적이 확인되었다. 그중 2011년에는 작은 연못 안에서 옻칠 갑옷과 철 찰갑주6이 각각 1령씩 출토되었으며, 마갑(馬甲)주1과 각종의 마구도 다양하게 출토되어 공산성의 역사적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건립 경위
공산성은 백제 웅진기의 왕성인 만큼 웅진 천도 이후에 축조되었다. 웅진기 왕궁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문헌 기록과 발굴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공산성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변천
공산성이 웅진기 백제 왕성이지만, 축조 시기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성왕 4년(526)에 공산성을 수리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축조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비기에는 5방성 중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그 때문에 660년에 나당연합군주2이 사비도성을 공격할 때 의자왕이 공산성으로 피난 오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때에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治所城)이었는데, 그 때문에 822년(헌덕왕 14)에 김헌창이 공산성을 기반으로 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충주에 있던 충청 감영(監營)이 공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공산성이 대대적으로 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감영이 공주로 옮겨질 때 처음에는 공산성 안에 감영이 자리하였지만, 출입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공산성 밖으로 옮겨지기도 하였다. 이괄의 난 때에는 인조가 공산성으로 피난 오기도 하였다.
형태와 특징
공산성은 금강 남안(南岸)의 공산(公山)에 자리하고 있다. 성곽이 자리한 공산은 해발 110m의 동쪽 산봉과 해발 85m의 서쪽 산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두 산봉을 에워싸면서 축조되었다. 성벽은 동쪽 일부만이 토성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석성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던 것을 조선시대 때 현재와 같이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발굴 조사 결과 조선시대 이전에 석성으로 축조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이미 석성으로 소개되어 있는 만큼 충청 감영이 오기 이전에 석성으로 개축된 것은 틀림없다. 성내에는 많은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쌍수정 앞 광장은 왕궁지로 추정되고 있고, 북문지 안쪽의 평탄면에도 많은 백제시대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내에는 많은 기와편과 와당주7, 그리고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백제 웅진기의 왕성인 만큼 웅진기 백제 도읍지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아울러 한성기와 사비기의 도읍지 구조 및 백제 도성의 변천 과정을 이해할 때에도 큰 도움을 준다. 통일신라 때와 조선시대에는 공산성을 중심으로 지방 통치가 이루어졌던 만큼 치소성의 구조와 특징을 파악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공주 미르섬
공주에 위치한 미르섬은 금강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이 섬 전체를 화사하게 물들이는 자연 속 힐링 명소이다.
봄이면 양귀비와 장미, 여름이면 보랏빛 물결을 이루는 코끼리 마늘꽃, 가을과 겨울에는 해바라기와 핑크 뮬리 등 사계절 아름다운 꽃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담을 수 있다.
특히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핑크뮬리, 댑싸리, 수크렁 등 다채로운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섬을 따라 조성된 핑크뮬리 길이 인기를 끌며, 연분홍빛 물결이 금강의 풍경과 어우러져 인생샷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꽃밭을 가로지르는 산책로는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이어지며, 강가를 걷는 내내 공주철교와 뒷산의 녹음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을 즐길 수 있다. 길은 잘 포장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산책할 수 있으며, 특히 공주대교 방면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한층 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가족 단위 관광객은 물론,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공산성&미르섬]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