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486장 (구 474장) / 고린도후서 5 : 1 - 1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486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 1절 – 10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아멘!
가끔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정말로 천당과 지옥이 있습니까?”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확실하게 대답합니다. “예,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입니다. “세상은 윤리와 도덕을 말하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힘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은 많이 하지만, 그것들이 사람을 결코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만 가지면, 삶이 변화되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세상의 많은 모순들도 능히 극복하며, 이 험한 세상을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보다 더 확실한 대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의 진정한 고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 때문에 고민하십니까? 아니면 건강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고민하십니까? 그러나 그것들은 근본적인 고민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진짜진짜 고민의 주제는 천당과 지옥이요, 다른 말로 하면 죄와 죽음입니다. 이것이 초점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죄와 죽음이라고 하는 문제 속에 내포되어 있는 아주 별거 아닌 것에 불과합니다.
영국의 수상 ‘처칠’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다음, 그 나라의 도덕이 너무도 문란한 것을 보고 정치가로서 자신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대영제국이 이렇게 도덕적으로 문란해진 것은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천국과 지옥이 선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너무도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사람들은 휘청거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죄에 깊이 빠져 갑니다만, 이상하게도 천당과 지옥에 대한 얘기만 하면 지성인들일수록 염증을 느끼고 무식한 소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중요한 주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천당과 지옥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절에서 말씀인 우리의 육체라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가야 할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천국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루어진 신령한 천국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지어진 신령한 천국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천국에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1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가게 됩니다. 죽으면 간다는 말입니다. 그곳에 가기 전까지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육신을 무너질 장막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 인생이 무엇입니까? 인생이란 나그네가 잠시 머물고 갈 천막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는 다 죽습니다. 오래 살지 못합니다.
인생은 장막 – 곧 잠시 설치하고 곧 걷어내는 천막입니다. 진정한 우리의 집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너무 무서워하면 안 됩니다. 장막에서 생활하다가 진짜 집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 천국을 바라보는 자의 마음 자세에 대하여 오늘 본문 6절 말씀에서 죽음에 대해 담대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절 말씀에서 보면,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4절에서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세상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사는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할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천국이 너무너무 좋아서 덧입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 합니다. 이것이 천국에 대한 우리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왜 좋은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많은 것 중에서 두 가지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6절 말씀에 보면, 육신으로 있을 때에는 주님과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신앙의 감격이 있는 순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일주일에 한 두어 시간 정도 됩니까? 정말 충만할 때는 주님이 함께 계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님과 따로 지냅니다. 그래서 세상 근심, 염려에 잔뜩 묶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는,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는 그런 곳이기에 천국은 사모해야 합니다. 또 4절에 보면, 천국이란 죽음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 곳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똑같이 죽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는 무한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사망이 있습니다.
문제는 믿는다고 하지만 이 천국을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 없이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잘되고 건강하고 축복 받는 것만이 전부인 줄로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축복의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죄인이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이 축복이라고 성경에서 말씀 합니다. 물질적, 육신적인 복은 아주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초점이 잘못되면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복음의 초점이 영생에 있지 아니하고 현실적인 축복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죄인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부귀장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9절에 말씀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거하든지 떠나든지, 살든지 죽든지 간에 생사를 초월해서, 살아도 좋고 죽으면 천당 가니까 더 좋다. 내가 마지막으로 갈 곳은 저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 나라 – 천국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확실하게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본문 10절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우리가 다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당도 확실하고 지옥도 확실합니다. 지옥이 없다고 외치는 것은 세상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천국갑니까? 7절에서 천국 가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믿음으로 갑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내 수양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일 잘해서, 선행 많이 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갑니다. 주님이 내 죄를 사하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갑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자녀에게 하나님이 그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다고 하는 고백, 그 고백적 신앙 하나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의 할 일을 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심판자 주님 앞에 항상 그 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히브리서 11장 6절에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를 찾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신다고 하는 것을 믿는, 이 믿음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우리 모두 다 주님이 예비하시는 천국을 유업으로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