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깽 - 간악한 일본인들에 의해 멕시코에 노예로 팔려 갔던
조선인들의 이야기
멕시코 선인장(용설란)으로 데낄라 술을 만들고 섬유는 애니깽 실을 만듭니다.
구한말 1905년 멕시코로 사기(?)당해서 이민간 조선인들의 삶을 그린 우리가
잘 몰랐던 몰락하는 조선말기와 일제의 강점하에서 겪을수 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로 요즘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암살" 보다 더 흥미롭게 보았기에
한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b5FcyyUrn0
장미희,임성민,김성수,김청 - 애니깽(1996년)
(유튜브에서 "애니깽" 찾아도 볼 수있습니다.
http://ieave0047.tistory.com/867 한국이민사 박물관-인천
http://blog.naver.com/jcs89225?Redirect=Log&logNo=140153605910 한국이민사 박물관-인천
http://blog.daum.net/munsunby1185/192660 노예무역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노예무역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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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비디오가 보여주는 비극은 지금도 이세상 어느곳에서 상
황만 다르지 비슷하게 일어 나고 있을 이야기이다.
인간들이란 대개가 다 자기들의 사리사욕과 향락을 위해서는 세상 물정모르고
남들이 다 자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순박한지 어리섞은 지 모를) 그런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고
그들위에 군림하여 온갖 죄악을 지으며 사는것이
이 드라마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는 인간 세상사다.
성경을 창조하시고 이시각에도 운영하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자는
인간들이 모두 피해자건 피해를 가하는 자건 다 사악하여
그들 모두를 지옥에 보내야 그의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도 알려 준다.
왜냐면 그가 창세기에 인간들에게 부여해준 자유의지를 인간들은
모두 아담의 몸안에 있을 때 아담과 함께 사탄의 말을 따르는데 써가며
하나님의 엄준한 계명을 거역하였기에 그 원죄의 대가로 다 육체적인 죽음을 면치 못하며
결국엔 태어나자마자 모두들 죄를 계속지으며 살고 있기에 그리 하실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래도 자기의 자비와 은혜로움과 아카페적인 사랑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몇몇을 자기의 뜻에 따라 선택하여 구원의 역사를 벌리고 있으며
그 일이 끝나면 이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어 멸하고 새 세상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알려 주신다.
로마서 9:15.
그의 뜻에 순복하는 이 유샤인은 그저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Thy will be done!" 이라고 그가 하시는 일에 그의 소망을 걸 뿐이다.
오늘은 ‘애니깽’들의 슬픈 사연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1905년 4월 4일, 일본의 인력 송출 회사가 모집한 한인 1033명을 태운 영국 상선 ‘일포드ILFORD’호가 제물포 항을 떠났습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그 당시 조선의 어렵고 험난한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계약된 4년 간 열심히 일을 하고나면 큰돈을 만들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와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42일 만에 멕시코의 ‘메리다’라는 도시에 도착한 그들앞에는 가혹한 현실이 놓여있었습니다. 메리다는 제가 사목하고 있는 깜뻬체의 바로 옆 도시입니다.
‘에네껜Henequen’은 선인장의 한 종류인데 그 잎이 용의 혀를 닮았다고 하여 한자어로는 ‘용설란龍舌蘭’이라고 부릅니다. 에네껜 잎은 선박관련 산업이 최고의 호황을 부리던 당시 선박용 로프를 만드는 중요한 재료였기 때문에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불어났고, 재 멕시코 한인 일 세대 노동자들은 그 에네껜 농장에서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하였습니다. 곧 그들은 ‘애니깽’이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멕시코 감독자들의 채찍질에, 방울뱀들의 공격에 쓰러져 갔습니다. 1905년 황성신문에 실린 중국인 허후이(河惠)의 편지는 당시 멕시코 이민 일 세대들의 처지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곳 원주민들이 지구상 5, 6등급 노예란 소리를 듣는데 한인들은 그 밑의 7등급 노예가 되어 영원히 우마(牛馬)와 같다” 1909년, 4년간의 계약은 끝이 났지만 이듬해 한일합병이 되자 이들은 돌아갈 조국을 잃고 기억에서조차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많은 멕시코 이민 일 세대 ‘애니깽’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혹은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애니깽’의 후손들을 제가 사목하고 있는 본당의 신자들로 만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본당을 맡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제 곁에 수줍게 다가와서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까를로스를 처음 만났을 때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까를로스를 통해서 알게 된 한인 후손들을 모두 본당에 초대하여 그들과 대화도 나누며 함께 저녁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분들 역시 500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싼 프란시스꼬 본당의 주임신부로 한국인 신부가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터이지요.
인터넷을 뒤져서 애니깽과 그 후손들의 어렵고 고통스러운 처지를 더 깊이 알고 난 뒤부터는 대부분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한인 후손들과 조그만 어떤 일이라도 함께 해보자는 각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인 후손 대표를 맡고 있는 ‘이르빈’과 그런 생각들을 나누고 먼저 한인 후손 아이들의 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구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쯤 깜뻬체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개신교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분들의 조직력과 자금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저는 차츰 한인 후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저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겠다던 각오를 잊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어제 ‘정’씨 성을 간직하고 있는 레오씨가 메리다에서 열린 멕시코 한인 이민 1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다녀왔다며 기념 티셔츠 한 장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한국인 본당신부를 위해 티셔츠를 챙겨 오신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한인 후손 자녀들의 교육을 뒷바라지하는 일을 해보겠다던 생각이 물거품처럼 허무한 것이 되어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 티셔츠를 받아들고 서 있는 제 마음 한 편은 몹시 무거웠습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조국에서 태어난 죄의 값을 평생 치르며 사라져간 ‘애니깽’들과 그 가난과 고통을 대물림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후손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이 깊어지는 오늘입니다.
* 오늘도 잊지 않고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기도와 미사를 봉헌합니다. 진실과 양심까지 침몰시켜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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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ichannela.com/society/3/03/20130819/57111826/1 <= 챈넬 A's 뉴수 보도
http://news.ichannela.com/society/3/03/20150814/73055140/2 <= 챈넬 A's 뉴수 보도2
애니깽 멕시코 에네켄 이민자들..1033명의 여권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로 알려진 작가 주요섭의 작품 중에는 1900년대 초에 시작된
미국 이민 1세대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낸
[구름을 잡으려고]도 있습니다.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장편이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죄로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 낯선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참혹한 실상이 가슴아프게 그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아무리 바닥을 기는 것처럼 온몸을 내던져 살았건만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마치 구름을 잡으려는 듯 손을 내뻗으며 죽어가는 주인공 준식의 모습은
삶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진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사진결혼이란 서로 사진만 보고 결혼상대를 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이 워낙 먼 곳이어서 만날 수는 없으니 남자도 사진만 보고 아내 될 사람을 고르고
여자도 사진만 보고 남편 될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떠납니다.
그나마 사진과 실물이 크게 차이나지 않으면 다행이고, 좀 차이가 난다 해도 분복으로 여기지만,
간혹은 예기치 못한 불상사도 벌어져 쓴웃음을 자아나게 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하와이 이민은 [구름을 잡으려고]를 통해 대략 알고 있었지만,
얼마 전 EBS 지식채널e에서 방영한 멕시코 이민세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습니다.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해서 애니깽으로 불렸다는 것도,
또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바로 그 에네켄 농장에서 죽을 고생을 했던
멕시코 이민자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태어난 나라에서도 대접받고 살기가 어려운데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남의 나라에 간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래도 꼿꼿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던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이민자들..1033명의 여권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애니깽 멕시코 에네켄 이민자들..1033명의 여권
어느 날 신문에서 이민 광고를 본 사람들은 "묵서가(墨西哥)에서 4년만 일하면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면서 고국을 떠날 생각을 합니다.'
4년 계약. 주택 무료 임대. 높은 임금'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
가난에 찌들려 살던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묵서가란 멕시코를 말합니다.
이때 일본의 인력송출회사가 모집한 인원은 남자 802명,
여자 207명 등 모두 1033명이었습니다.
이 1033명은 2년 전인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1905년 4월 4일 나라 도장이 찍힌 여권을 고이 품고 인천 제물포항에 모여
영국 상선(商船) 일포드(IIford)호에 오릅니다.
그리고 1905년 5월 15일, 그들은 40여 일의 험한 뱃길 동안
심한 멀미와 영양실조로 세 명이 죽고 한 명이 태어난 끝에 묵서가, 즉 멕시코에 도착합니다.
섭씨 45도 살을 찌르는 태양 아래 농장주들이 그들을 데려간 곳은
선인장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들이 솟은 에네켄 농장이었습니다.
그들에겐 하루 에네켄잎 2천 장을 따라는 할당량이 주어집니다.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17시간을 일하는 그들의 몸 구석구석은
에네켄 잎의 가시에 찔린 상처로 뒤덮였고
피가 마를 새가 없었으며,
이 와중에도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사람은 농장관리자에게 채찍으로 맞아야 했습니다.
키 2미터에 줄기와 가시가 억센 열대 선인장 에네켄은 잎 모양이 용의 혀(龍舌)와 같다고 해서
용설란(龍舌蘭)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멕시코 이민자들을 가리키는 호칭이 된 <애니깽>은
스페인어 에네켄(Henequén)을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입니다.
지상낙원으로 알고 멕시코에 왔던 그들은 그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며 일했지만
임금도 받지 못했고 임대주택이며 식량도 직접 돈을 주고 사야 했습니다.
결국 일을 할수록 빚만 늘어나는 나락에 빠진 그들은
사기 이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905년 7월 황성신문에 실린 중국인 허훼이의 편지에 따르면,
"이곳 토인을 지구상 5~6등 노예라 칭했는데 한인은 7등 노예가 되어 우마 같다.
제대로 일하지 못하면 구타당해 피가 낭자하여
차마 못 볼 모습에 통탄 통탄이라 하였더라"며
당시의 처참한 생활상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4년 계약 노동이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고국이 사라져 버리고 여권도 쓸모없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에네켄 농장의 가시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미주대한인국민회에서는 "우리가 도웁시다! 농장에서
갖은 고초를 겪던 우리 동포들이
또다시 곤경에 빠졌습니다.
멕시코 동포들을 하와이로 이주시킵시다!"라고 외칩니다.
멕시코 동포 구출 계획에 동참한 그들은 1902년 대한민국 최초의 계약 이민으로
먼저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1903년 5월 제국신문 사설에는 "유민원(이민담당기관)에서는 얼마씩이나 받고 허가하였으며
백성이 하와이 건너가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아는가" 하는 글이 실렸습니다.
소와 말, 짐을 싣는 3등칸에서 22일을 견딘 끝에 자국민을 보호할 영사관도 외교관도 없는
하와이에 상륙한 사람들은 3년간 약 7,2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사탕수수밭에서의 10시간의 중노동 속에서도
멕시코 동포들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던 그들은
일당 60센트를 쪼개고
세탁, 바느질삯을 보태서 모은 멕시코 동포들의 이주 비용을 6000달러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미국 이민국이 노동 입국을 허가하지 않아서 멕시코 이민자들을 구출하려 했던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 후 어느 날 멕시코 에네켄 농장을 찾아온 일본 영사관원이
"조선은 이제 일본에 병합됐으니
일본은 당신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우리는 인구조사차 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멕시코 이민자들은 "우리는 일본 백성이 아니다.
너희는 우리에게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이게 보이지 않느냐"며 그들에게 뭔가를 내보입니다.
그때 그들이 일본인들에게 내보인 것은 제물포를 떠날 때 받은 조국의 여권이었습니다.
그 후 1920년대 인조섬유가 등장하면서 에네켄 농장은 문을 닫고 한인 이민자들은
생존을 위해 다시 멕시코 전역으로 흩어져 가고,
이 중 270여 명은 쿠바의 사탕수수밭으로도 갑니다.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착하여
오늘날 4만 명이 넘는 한인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 애니깽 멕시코 에네켄 이민자들..1033명의 여권이었습니다.
슬픈 사연이 있는 노래
돈데 보이(Donde Voy)
이 노래 돈데 보이(Donde Voy)는...
멕시코계 미국인인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가 1989년 발표한 노래다.
조국인 멕시코 국민들이 가난에 못이겨
미국으로의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
국경에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안타까운
불법 이민자들의 애환을 노래한 곡이다.
노래 제목의 뜻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라 합니다.
노래를 감상해 보도록 하는데
원곡은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가 불렀는데
다른 블로그나 카페 등에 많이 올라와 있기 때문에 다른 버전으로 소개를 합니다.
2000년도 작품인 영화 [Malena]의 장면에
대만 출신 여가수 치유(Chyi Yu)가 부른 Donde Voy 입니다.
치유(Chyi Yu)는 대만의 존 바에즈라 하기도 하고, 중국어권에서는 팝 발라드의 여왕
이라 불릴만큼 유명한 가수 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한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의 모습과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합니다.
지금까지 미국으로의 불법 입국을 시도 하다가
죽은 사람이 1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통해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멕시코로 가는 길은 아주 쉬운 반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상당히 까다롭고
엄격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멕시코 외무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불법 이민자들을 위한 [국경을 무사하게 넘는 방법] 이란
안내문이 있다고 합니다.
안내문 서두에는
[물을 준비해 갈 것],
[혼자가 아닌 팀을 이루어 다닐 것]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끝 부분엔 [국경을 넘는 일은 죽음을 맞이 하는 일이다] 라고 경고 한다고 합니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안고
지금 이시각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Tish Hinojosa( 티시 이노호사 )
미국에 사는 멕시코 불법이민자의 애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Donde voy / Tish Hinojosa
Madrugada me ve corriendo
마드루가다 메 베 꼬리엔도
새벽녘, 날이 밝아오자 난 달리고 있죠.
Bajo cielo que empieza color
바호 시엘로 께 엠피에사 꼴로르
태양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아래에서..
No me salgas sol a nombrar me
노 메 살가스 솔라 놈브라르메
태양이여, 내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해주세요.
A la fuerza de "la migracion"
아 라 푸에르사 데 라 미그라시온
이민국에 드러나지 않도록..
Un dolor que siento en el pecho
운 돌로로 께 시엔또 엔 엘 페초
내 마음에 느끼는 이 고통은
Es mi alma que llere de amor
에스 미 알마 께 예레 데 아모르
사랑으로 상처 받은 거에요
Pienso en ti y tus brazos que esperan
삐엔소 엔 띠 이 투스 브라소스 께 에스뻬란
난 당신과 당신의 품안을 생각하고 있어요..
Tus besos y tu passion
뚜스 베소스 이 투 빠시온
당신의 입맞춤과 애정을 기다리면서..
Donde voy, Donde voy
돈데 보이 돈데 보이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건가요?
Esperanza es mi destinacion
에스뻬란자 에스 미 데스띠나시온
희망을 찾는것이 내 바램이에요
Solo estoy, solo estoy
솔로 에스토이 솔로 에스토이
난 혼자가 되어버린거죠.혼자가 되었어요.
Por el monte profugo me voy
뽀르 엘 몬테 프로푸고 메 보이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난 가고 있어요.
Dias semanas y meces
디아스 세마나스 이 메세스
몇일 몇주 몇달이지나
Pasa muy lejos de ti
빠사 무이 레호스 데 띠
당신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어요.
Muy pronto te llega un dinero
무이 프론또 테 예가 운 디네로
곧 당신은 돈을 받으실 거에요.
Yo te quiero tener junto a mi
요 테 끼에로 테네르 훈토 아 미
당신을 내 곁에 가까이 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El trabajo me llena las horas
엘 트라바호 메 예나 라스 호라스
많은 일때문에 시간이 버겁지만
Tu risa no puedo olividar
투 리사 노 푸에도 올리비다르
난 당신의 웃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Vivir sin tu amor no es vida
비비르 신 투 아모르 노 에스 비다
당신 사랑없이 사는 건 의미없는 삶이에요.
Vivir de profugo es igual
비비르 데 프로푸고 에스 이구알
도망자처럼 사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Donde voy, Donde voy
돈데 보이 돈데 보이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건가요?
Esperanza es mi destinacion
에스페란사 에스 미 데스티나시온
희망을 찾는것이 내 바램이요.
Solo estoy, solo estoy
솔로 에스토이 솔로 에스토이
난 혼자가 되어 버린거죠. 혼자가 되었어요.
Por el monte profugo me voy
뽀르 엘 몬테 프로푸고 메 보이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난 가고 있어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불법이민자의 고되고 힘든 심경과
방황하는 이들의 처절한 애환과 정서가 녹아든 멜로디에 잘 맞아떨어지는
그녀의 보이스는 티쉬 이노호사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였으며
Chyi Yu, La Luna 등 다양한 다른 아티스트들이 부를 정도로 세계적인 애창곡이 되기도 했지요.
Madrugada Me Ve Corriendo(Daybreak Finds Me Running)
Bajo Cielo Que Empieza Color(Under A Sky That's Beginning To Color)
(동터오는 새벽이 나를 깨우고 밝은 하루가 시작되어도)
No Me Salgas Sol A Nombrar Me(Sun Please Don't Expose Me)
A La Fuerza De "La Migracion"(To The Force Of The INS)
(나를 이민국에 신고하지 말아주세요.)
Un Dolor Que Siento En El Pecho(The Pain That I Feel In My Chest)
Es Mi Alma Que Llere De Amor(Is My Heart That Hurts With Love)
(내 마음에 느끼는 고통은 사랑으로 인하여 받은 상처랍니다.)
Pienso En Ti Y Tus Brazos Que Esperan(I Think Of You And Your Arms That Wait)
Tus Besos Y Tu Passion(Your Kisses And Your Passion)
(그대를 그리워하며 그대의 입맞춤과 애정을 기다립니다.)
Donde Voy, Donde Voy(Where I Go, Where I Go)
Esperanza Es Mi Destinacion(Hope Is My Destination)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나요? 희망을 찾고 싶어요.)
Solo Estoy, Solo Estoy(I'm Alone, I'm Alone)
Por El Monte Profugo Me Voy(Through The Desert, A Fugitive, I Go)
(나는 사막을 헤매는 도망자처럼 혼자가 되어버렸답니다.)
Dias Semanas Y Meces(Days, Weeks, And Months)
Pasa Muy Lejos De Ti(Pass Far Away From You)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그대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답니다.)
Muy Pronto Te Llega Un Dinero(Siib You'll Receive Some Money)
Yo Te Quiero Tener Junto A Mi(I Want To Have You Near Me)
(하지만 그대에게 보내 드리는 돈으로 그대가 내 곁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l Trabajo Me Llena Las Horas(Work Fills My Hours)
Tu Risa No Puedo Olividar(Your Laughter I Can't Forget)
(시간에 쫒기면서도 그대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Vivir Sin Tu Amor No Es Vida(To Live Without Your Love Isn't Living)
Vivir De Profugo Es Igual(To Live As A Fugitave Is The Same)
(그대 없이 사는 삶은 무의미합니다. 도망자처럼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Donde Voy, Donde Voy(Where I Go, Where I Go)
Esperanza Es Mi Destinacion(Hope Is My Destination)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나요? 희망을 찾고 싶어요.)
Solo Estoy, Solo Estoy(I'm Alone, I'm Alone)
Por El Monte Profugo Me Voy(Through The Desert, A Fugitive, I Go)
(나는 사막을 헤매는 도망자처럼 혼자가 되어 버렸답니다.)
Donde Voy, Donde Voy(Where I Go, Where I Go)
Esperanza Es Mi Destinacion(Hope Is My Destination)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나요? 희망을 찾고 싶어요.)
Solo Estoy, Solo Estoy(I'm Alone, I'm Alone)
Por El Monte Profugo Me Voy(Through The Desert, A Fugitive, I Go)
(나는 사막을 헤매는 도망자처럼 혼자가 되어 버렸답니다.)
'멕시코' 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건 뜨거운 태양과 선인장
그리고 챙이 큰 모자를 쓰고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악단 정도일까요?
낭만적인 모습으로만 알려진 멕시코, 그러나 이와는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American Dream 을 꿈꾸며 너도나도
미국으로 국경을 넘는 수많은 불법 이민자들의 모습입니다.
미국에 가기만 하면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비교적 경비가 뜸한 사막지역을 통해서 국경을 넘으려고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서 가다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국경 수비대에 잡혀도 돌려보내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제재가 없기 때문에
몇 차례고 성공할 때까지 다시 밀입국 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설령 밀입국이 성공했다고 해도 불법 이민자라는 신분때문에
저임금 및 고되고 힘든 일 밖에 할 수 없어
웬만해서는 어려운 생활을 면하기 어렵다지요.
이렇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불법이민자의 고된 심경이 담겨있는 노래가
바로 이 'Donde Voy' 라는 노래입니다.
노갈레스 국경검문소 부근의 국경 담장.
왼쪽이 멕시코, 오른쪽이 미국... 외견상으로는 서로가
비슷해 보이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밀입국자들과
순찰대간의 숨박꼭질과 같은 전쟁이 끝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첫댓글 이 슬픈 사연을 몇년전 맥시코 여행중에 가이드로부터 듣고 처음 알었습니다.
그때 들은 이노래 돈데보이가 가슴 저린 감동을 주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극의 역사와 유래는 끝없이 이어져 왔다 하겠습니다.
특히 노래로 전달되는 역사의 흔적은 우리들의 가슴을 메이게 합니다.
맥시코 개척에 우리 조상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라니 슬프기만 합니다.
막대한 자료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맨밑에 사진이 미국과 맥시코 국경 사진이라는데
여행을 하며 여러나라 국경을 통과했는데 EU연합 처럼 아무런 통제 없이
지나칠수 있는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 삼엄하게 조사하고 가방을 열어보여주고
미국처럼 엑스레이랑 지문 까지 찍는 나라들도 있어요.
국경의 모습도 다양한데
사진을 절대로 찍지 못한다고 해서 촬영을 해보지는 못했어요.
기억에 남는 국경은 지금은 통일이 되었지만
동독과 서독의 국경을 아직도 조금 남겨두었어요.
통일 되기전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려다 희생된 사람들 사진 보도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올때
밀입국 하려고 어린 소년들이 내가 탓던 버스밑에 숨어 매달렸다가
적발되는것을 보기도 했구요.
러시아 입국 출국도 경비가 삼엄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