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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으려고 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은 근데 불교에서는 그 기반이라는 것도 다 우리끼리만 집단적으로 만든 고정관념이잖아요. 지금 나는 전통 문화 풍습 뭐 이 모든 게 우리가 함께 만들어 놓은 기록이잖아요. 그걸 통으로 내려놓는 게 불법이거든요. 우리는 나를 어떻게 저희 인도에 저런 사람하고 비교를 해. 이러지만 언제 현재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라는 것 그게 자기 분별이잖아요. 아프리카에 다주간 애랑 나랑 왜 달라요? 뭐가 달라요? 엉겨 응게 태어났을 때 똑같았잖아요. 법을 똑같단 말이에요. 법은 완전 똑같은 거예요. 왜 달라요? 내가 다르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지. 그러니까 에이 그런 사람하고 비교해야 하잖아요. 100억 번 사람도 마찬가지거든요. 옛날에 1억 있을 땐 2억 있는 사람 부러워했지만 100억 있으면 10억 있는 사람도 나는 그 사람하고 비교 안 해요. 1000억 있는 사람하고 비교하면서 서로 하지. 이제 나라는 정체성이 이미 이제 100억 가진 사람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 정체성을 자기가 만든 거잖아요. 그 틀이 아무데도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불교가 되게 이제 불교에서 상담을 한다든지 법문을 한다든지 할 때는 그래서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예요. 왜 우리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 기본 틀 이거를 깨지 않는단 말이에요. 근데 불교는 이 모든 틀을 왕창 깨는 그 무분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뭐 이런 거죠? 법률 스님께서 예를 들어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어 저는 이게 너무 힘들어서 이혼을 해야 되겠어요. 이러면 꼭 이혼해요. 아, 그래도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럼 하지 말든지 이렇게 되게 쉽게 얘기하기도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싫으면 뭐 하지 말고 뭐 그러고 너무 쉽게 쉽게 얘기를 한단 말이죠? 되게 쉬워서 그렇게 얘기한 게 아니란 말이에요? 본질을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 모두가 아 가족이라는 건 이런 거야 하는 그 고정관념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 가족이면 영원한 가족이고 내가 4550. 60이 돼도 한 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고 거기에 대한 어떤 책임을 져야 되고 하는 어떤 이런 어떤 유교적 관습이라든지 이런 거에 우리는 그걸 기반으로 하고 있잖아요. 근데 불교에서는 그 모든 기반을 무너뜨린단 말이에요. 왜 그럴까요? 나다라는 것도 이건 우리 분별의 기반이거든요. 그런데 내부모라는 건 내 자식이라는 거 내 형제라는 거 내 안에 내 남편이라는 게 있겠어요. 나도 없는데 그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삿댄 것을 삿댐 분배를 싹 쓸어버리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그 기본 관념을 가지고 이야기 풀어간 사람에겐 이해가 안 되죠. 조스님 좀 이상한 사람 같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우리 모두는 다 A라는 얘기를 하는데 저스님만 B라는 얘기를 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부부가 언제부터 부부예요? 이게 부부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습니까? 이혼 도장 서류 딱 찍으면 끝나잖아요. 부모 자식도 마찬가지예요. 역전 그런 분들 많이 봤거든요. 부모 사실이지만와 부모 자식이 저럴 수도 있구나. 저렇게 냉정하고 매장할 수도 있구나. 인연이 그렇게 만들어요. 안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있거든요. 10년 동안 어렵게 먹었는데 근데 그 고정관념이에요. 인연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거예요. 부부도 인연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시작은 이 도창 찍는 거 팀조상 끝나는 것도 되게 이언 소리 도장 찍는 거 그걸로 끝나잖아요. 그런데 하나의 상징이잖아요. 상징 이 도장이라는 상징이잖아요. 실제적으로 뭐가 정해진 게 뭐가 있습니까? 김승곤 기사가 취재했습니다. 내 자식이 저놈한테는 이겨야 되는데 했는데 내 자식이 저한테는 이기고 싶고 이랬는데 이 자식은 이번 생 자식이면 저 자식은 전생의 자식일 수 있거든요. 19명이 다쳤습니다. 이게 이제 아주 유치한 낮은 수준의 방편의 설명에 윤회라는 거는 윤회라는 걸 가져와서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사실은 마음 하나가 나로서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저 사람으로서 저 사람으로서 친척으로서 남남으로서 푸틴으로서 바이든으로서 온 80억 인구로 드러나는 거예요. 마음 하나가 그 차별이 없어요. 아무런 내 자식하고 푸틴하고 아무런 차별이 없다니까요. 마음 하나 가는 일이에요. 마음 하나가 모두 내 자식이에요. 우리 불자르잖아요. 모든 부처의 자식이라 그러잖아요. 그렇다니까요. 진짜 부처 불자라니까요. 하나님의 아들 이루잖아요. 신의 아들이라니까요. 모두가 동등한 신의 아들이라니까요. 완벽하게 그러니까 대평등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엄계의 평등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거든요. 모두가 완전 대평등해지는 거예요. 이 공부는 현실에서는 자식 남편 연극을 그대로 하지만 근본에서는 이게 이게 내 거 같지가 않단 말이에요. 그러나 그 연극은 아주 찰지게 잘하지만 잠동한 잠잠했던 민주당의 하나의 전부가 자기예요. 전부가 자기 그러니까 그런 지혜의 바탕에서는 하는 말을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관념을 가지고 딱 정해놓고 나서 그 관념 위에서 토론을 진행하려고 하잖아요. 근데 불교에서는 그 관념 전체를 쓸어버리는 입장에서 얘기하니까 너무 혼란스럽죠. 이해가 안 되죠. 내년 10월이면 어차피 없어질 정도인데 뭐가 그래서 돌아와서요. 이 사법계의 사참회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유마는 사참회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유마는 아니 지금 오팔이 존재하면 부1010대 제사 중에 하나잖아요. 그 부천 비구가 와가지고 수행자가 와서 묻는데 사참회 같은 거 얘기해 줘. 가지고 잘 잘못을 얘기해서 죄를 더 가중시키면 되겠습니까? 본래 제어스메이츠를 설해야지 이참회의 본래 진짜 참된 진리를 설해야지 공부인에게 방편으로 신도님들에게 그렇게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기도해라. 또 참의 얘기도 해라. 이렇게 임시로 방편으로서 할 수 있겠지만 그분에게도 그분이 이제 어느 정도 안목이 밝아지면 방편을 빼고 이법계를 이참에를 선회해야 된단 말이죠. 그런데 스님들에게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되겠단 말이에요? 그래서 본래 제 없음을 설해야 돼요. 죄라는 건 어디에도 붙을 수가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깨우쳐줘야 된단 말이에요. 그게 진짜 참예예요. 그게 이참이에요. 죄무자 성 중심기 죄라는 건 자성이 없어서 마음대로 안 할 뿐 아니라 내가 죄다 이러면 죄인 거예요. 죄가 아니다. 이러면 죄가 아닌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사실 왜 내가 죄를 저질렀는데 그게 이 나라에서는 죄인데 저에선 죄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내가 바람을 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죄인데 일부 다채제국가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1차 다보재 국가에서는 반대가 능력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럼 그건 실제로는 저입니까? 제가 이 나라에서는 재고 전화해선 제가 아니다. 이런데 그러면 실제로는 이 나라 전화를 할 거 할 거 없이 본질적으로 죄냐 아니냐 이걸 물어보란 말이죠. 어 저라고 할 수 있으니까 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이제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잖아요. 내가 나이가 40 50 60 72 됐어요? 근데 옛날 유교적 풍습에서는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고 이 가족 간의 어떤 이런 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가족 친지간의 끈끈한 이게 너무 중요하단 말이에요. 우리의 어떤 그동안의 어떤 유교적 문화적 풍습에서는 그러니까 한 번가 지금 영원한 가족이고 이 가족 친지들끼리 모이는 자리가 너무 중요하고 이렇단 말이죠. 그런데 이 그런 고민들을 정말 많이 얘기를 하거든요. 나이 4560 60 되셔가지고 나는 지금 그냥 행복하긴 한데 내가 내 남편하고 자식하고 그냥 행복하게 살긴 하는데 이 명절 때 이제 친지들만 모이면 막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아내분도 명절 때만 되면 너무 스트레스 받고 가족들만 모이면 스트레스 너무 받고 너무 막 거기에 막 너무너무 괴롭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막 부모님들도 자꾸 비교하면서 너무 이러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이 가족이 너무 죽을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혼을 해야 되나 하는 생각까지만 할 정도로 괴롭다는 거죠. 그건 이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10년 20년도 아니고 왜 이런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은 그래가지고 내가 그냥 인연 딱 끊고 차라리 안 가고 안 가면 너무너무 내 인생 행복하겠다. 그런데 대부분 이제 그럴 때 어떤 얘기를 하냐면 정말 이러고 살고 이렇게 살면 정말 내가 내 가족하고 아내하고 남편하고 자식하고 참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면 정말 우리끼리 어쨌든 지혜롭게 살고 마음 공부하고 하면서, 내가 주변에 도울 수 있는 삶 돕고 하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려니 마음속에서 근원적인 죄책감 그래도 아무리 부모님이 그렇게 하더라도 부모님은 그래도 찾아가야 되고 부모님이 아무리 나한테 뭐 그 그 용돈을 지금 50만원 드렸는데 이거 100만원 올려달라고 하는데 안에는 절대 안 된다. 50도 살아야 된다 하는데 부모님은 더 올려달라고 한다. 이런 거죠? 그걸 안 해야 된다고 하는데 이걸 여기서 싸우는데 이걸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런 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런 식의 괴로움이 있어요. 또 심지어는 어떤 분들은 가족은 그렇다 치고 심지어는 친척 친지분들 모인 그 모임을 나는 정말 너무너무 가기 싫은데 안 가면 내가 천하에 죽일 놈이 되는 것 같고, 그 사람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욕한다는 거죠. 그게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간다. 너무너무 안 가고 싶다. 그것만 안 간다. 안 갈 수 있으면 저는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죠? 운동 만약에 그렇게 죽을 것 같고 그렇게 정말 이혼까지 할 것 같고 어지간하면 가서 어지간한 좀 힘들어도 좀 이렇게 버티고 하는 게 좋죠. 그런데 그걸 난 죽어도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것 때문에 내가 이혼까지 할 것 같다고 한다면 그것 때문에 정말 너무너무 막 시비 분별이 심해지고 그런다면 안 가면 되죠 하고 너무 쉽게 얘기한단 말이에요. 그럼 그분들은 깜짝 놀라요. 아니 스님 그 저기 남의 일이라고 이렇게 쉽게 얘기하지 마시고 내가 그러면 천에 나쁜 놈이 되는데요. 그게 인강보거든요? 안 가는 걸 선택하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꼭 가서 더 나빠질 것 같으면 차라리 안 가는 걸 선택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단 말이죠. 우리 본인 선택했다면 그 대신 인간부는 책 자기가 책임져야 되는 거예요. 어떤 인간보 안 가면 욕먹는 거를 내가 감당해야 돼요. 내가 받겠다. 나 욕 먹겠다. 이래야지? 그거 나 욕도 안 먹고 안 가기도 하겠다. 그건 나쁜 놈이죠 자기 욕심이죠. 나 안 가겠다 했으면 욕은 먹겠다. 내가 나쁜 놈 소리 듣겠다. 그냥 그 사람들이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거고 나는 그걸 꼭 굳이 나쁜 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걸 선택한 것이다. 그럼 남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니까 부모님은 나를 천하의 부료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거 인정한다. 그 인정해야죠. 그거는 끝까지 안 봐달라면 안 돼요. 야 그거 인정하고 그러나 내 내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선택했으면 거기서 행복하게 살면 되지. 그리고 뭔 문제예요? 어차피 어차피 인연이라는 거는 가족이라는 것도 세상 모든 것은 전부 다 인현생 인연별이잖아요. 인연 따라 생기고 사라지고 끝이에요. 가족도 2년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거예요. 영원한 게 아니라니까요. 영원하지 않아요. 벌레가 이 법의 자리에서 본다면 우리가 그냥 약속하는 거죠? 약속 약속하는 거잖아요. 되겠네요. 입양에서 키우면 그 아이가 진짜 내 자식이라니까요. 내 자식이지만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버린 사람이 있다니까요. 부모 자식 버리면 내 자식 아닌 거예요. 그냥 보셨던 이 하늘 인연 따랐다고 인연이 버릴 수밖에 없는 인연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옛날 우리 어릴 때 떼거리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이를테면 이거는 그러니까 2년 동안 모의고사 치는 거예요. 그냥 그거는 우리가 거기에 모이고 터지는 거에 이건 중요한 거 이건 중요한 가치 저건 중요하지 않은 가치 이렇게 우리가 가치를 매겼잖아요. 그 가치가 어디서 나오면 가치예요? 우리 머릿속에서 나온 분별의 가치죠? 옛날에 어떤 원시 시대 때 이랬다는 얘기를 읽은 것 같아요. 이 가족이라는 문화가 인류의 어느 시기에 생겼다는 거죠? 어떤 시기에는 그냥 집단적으로 그냥 그 집단적으로 살았다는 거예요. 누가 부모인지도 자식인지도 모르고 그냥 눈 맞으면 애를 낳는 거고 그럼 이게 누가 누가 엄마인지도 아빠인지도 모르고 그냥 집단적 어른들은 부모 같은 사람들이고 집단적으로 어른들이 집단적으로 자식들을 키우는 이런 어떤 원시 공동체도 있었다고 그래요. 또 몽골 같은 경우는 이렇게 이렇게 초원에서 옮겨다니면서 이렇게 친지들끼리 모여 사니까 그 친지들끼리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막 이상한 그 뭐 유전자적으로 이상하게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부부끼리 관계를 안 하고 외부에서 이제 다른 부족에서 이제 이렇게 손님이 오면 그 손님하고 그냥 애기를 갖는다는 거죠. 근데 그게 자연스러운 거면 풍습이었다는 거예요.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고 또 일본에서는 전쟁 때문에 워낙 남자들이 다 죽어가지고 여성분들 혼자 사는 분들이 워낙 많으니까 아직도 없고 인구가 또 줄어들고 할 테니까 그러니까 뭐 이렇게 그런 문화가 생긴 거 아니에요, 뭐야, 아버지이나 들어가서 했다고 하고, 그러니까 그걸 우리 윤리적 잣대로 볼 수 있냐. 말이죠. 그게 이건 옳고 저건 틀리냐라는 거를 그러니까 지금 지금 우리의 관점으로 봤을 땐 이상한 사람들이고 미* 놈들이 그리 생각하겠지만 그걸 우리가 우리의 요 관점으로 생각했을 때 그런 거잖아요. 고기 옳고 그른 게 있느냐 말이죠? 시대에서 상황에 따라 옳고 그른 게 달라지잖아요. 어느 게 옳으냐? 어느 게 그러냐라는 게 정해져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극극에 괴로운 이유는 그렇게 정해놨기 때문에 그래. 유교적으로 오랜 간습 그거를 되게 중요한 걸로 심각한 걸로 그 잘못 그걸 어기면 죄의식이 있어야 되는 걸로 그렇게 정해놓다 보니까 거기 많이 구속되죠. 사람들이 근데 그런 게 본래부터 있었느냐 말이에요. 그래서 뭔가 이렇게 그렇다고 해서 이 현실적인 생활 풍수 미풍 양수 이런 거 무시하는 얘기가 전혀 아니죠? 본인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이러이러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이렇게 연락을 끊고 살게 됐다면 만약에 어쩔 수 없이 살게 됐다면 왜 두 번째 화살을 맞아가지고 이렇게 살아서 나는 그래도 행복한데 마음속으로 죄의식 때문에 왜 두 번째 화살을 맞으면서 평생을 죄 지은 사람처럼 살아야 되냐 말이에요. 그 사람은 행복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 사람도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상황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았더라도 그 많은 분들이 그 부모님이 자식이 먼저 이렇게 떠나가게 된 부모님들을 고충을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많이 제가 듣게 되거든요. 그분들께 대부분 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냐면 진짜 진짜 그냥 본인 시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세요? 나에겐 이제 아무런 행복도 없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니고 그냥 이게 시체가 사는 거지. 그냥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죽고 싶은데 다른 자식이 있으니까 죽을 수도 없다. 이런 마음으로 사시거든요. 그것이 자식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죄인으로서 그 자식을 위해서라도 내가 평생 괴롭게 죄인으로 살아야 된다. 그래서 생각하시는 거예요. 자식과 부모란 인연으로 맺어졌잖아요. 인연으로 맺어졌다라는 거는 인연으로 맺어진 존재고 그렇다면 더 이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공명을 해요. 사람이 부모 자식끼리 공명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부모님이 저 지고 반대편에 유학가 있는 자식이 그날따라 갑자기 뭔가 이상하게 떠오르고 해서 전화해 본 그날 뭔가 사고났다든지 이런 것도 나도 모르게 부모 자식 지간에나 이렇게 뭔가 느끼기도 하잖아요. 또 어머니가 그런다 그래요? 이렇게 자식 아기 아기를 낳집에 놔두고 밖에 나와서 막 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막 저지 막 많이 나온다든지 이런다는 거죠? 그럼 어김없이 아이가 막 그냥 배가 고파서 막 울고불고 할 때라고 그러기도 하고 뭔가 이렇게 우리는 텔레파시 같은 어떤 마음 마음이 우리의 본체이기 때문에 마음에서는 하나거든요. 우리 모두가 좀 아무런 다 연결돼 있어요. 우리가 완전히 연결돼 있어요. 온 우주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여기서 선불교 깨어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많아지는데 이게 여기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닌 거예요. 어느 주 전체에서 지금 일어난 사건인 거예요? 왜마음에서는 이 깨달음을 공명하고 있거든요. 똑같단 말이죠? 이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단 말이에요. 공명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자식 떠난 자식과 공명돼 있다면 방편으로 이렇게 설명을 한단 말이죠. 공명돼 있다면 내가 평생을 울고불고 괴로워하고 막 지옥처럼 보내는 걸 자식이 그대로 그 마음을 공명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자식이 예를 들어 윤회를 했다 할지라도 그 우울하고 괴로운 그 마음을 공명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그렇게 사면 되겠어요. 그게 자식을 위한 걸까요? 이미 떠나간 자식을 위해서 지옥처럼 사는 게 그걸 위하는 거냐 말이에요. 내가 더 괴로움 없이 살고 깨어나는 삶을 살고 자비로운 삶을 살고 지혜로운 삶을 살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되는 걸로써 그 아이를 살려내야 되는 거예요. 내가 사실은 결국에는 딱 깨달았다. 그러면 그때 그 자식이 살아나는 거예요? 그 자식의 본체가 본질이 그 아이의 본마음 그 아이의 몸이 그 아이가 아니거든요. 그 아이의 이 한 마음이 그 아이의 본질이거든요. 내가 그 한 마음을 깨닫는 순간 그 아이가 같이 살아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고 얘가 죽지 않았구나. 아, 이렇게 살아 있었구나. 나와 함께 함께 있구나. 늘 함께 있는 거구나. 내가 그 아이와 다르지 않았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니까요. 그죠 울쳐의 이런 고민을 얘기했던 분에게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어차피 지금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맨날 자식 생각만 나니까 괴로워 죽을 것 같은 괴로움인데 자식 생각만 하면 계속 우울할 거 아니냐. 내가 이렇게 해서 그렇게 생각해 봐야 소용없으니까 그냥 행복하게 40시오 해도 괴로울 거 아니냐. 그러면 차라리 그렇게 억지로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못 하겠으니 그러지 말고 차라리 그렇게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식도 공명해가지고 자식도 괴로우니까 그 마음 괴로운 마음을 계속 안고 사는 게 좋은 게 아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마음의 관심사를 돌려서 자식을 진정으로 살릴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근데 내 마음을 깨닫는 일이다. 이거 허망한 말인 것 같지만 이건 진실 때말이다. 자식을 진짜 되살릴 수 있는 건 이 마음을 깨닫는 거다. 그래서 이 마음을 깨닫고자 간절하게 발심을 해서 그렇게 해서 자식을 살려내십시오 간절하게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을 거 아니에요. 이거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어요? 그리고 두 달 있다가 연락이 왔어요. 스님 말이 맞네요. 내가 이 자리를 확인하고 보니까 일단 달라지는 게 그전에는 하루하루가 죽을 것 같은 지역이었다는 거예요. 사실 죽었다라는 그 죄책감 그 지옥이었는데 그 마음이 가벼워지더라. 진짜 이 마음에서 나와 다르지 않았구나. 그렇게 그렇게 괴로면서 했다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법은 마음 공부는 분별의 구조를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모든 분별로 쌓아올렸던 모든 것들을 재료로 만든 그 텅 빈 바탕에서 설명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반인들에게는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그 말 아니에요. 의마가사가 분명히 겉으로 봤을 때 잘못이 맞아요. 잠을 탄 게 맞아요? 근데 유머가 사는 120의 자리에서 이 법의 자리에서 설하고 있단 말이에요. 본래 죄가 없는 반탁에서 본래 문제가 없는 바탕에서 제가 아까 그 보사님께 자식을 살려내야 된다는 얘기도 본래 죽고 사는 일이 없는 바탕에서 설명한 거란 말이에요. 죽고 산다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괴로운 거지 본래 죽고 산다라는 게 없다라는 바탕에서 너무 분명한 얘기거든요. 요런 것들을 반영하셔야 돼요? 그래서 이 법이라는 바탕을 이 자리에서 보면 죄가 없어요. 죄인이 없습니다. 세상에 여러분은 이 본성에서 보면 완전 무죄예요. 무죄예요. 2년이 그러할 뿐이지 내가 죄인이 아니에요. 인연이 그렇게 죄를 짓게 만들었을 뿐이지 내가 죄인이 아니에요. 그게 어 보는 있으나 작자가 없다는 소리예요.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어요. 업과 번호는 있어요. 내가 나쁜 짓 하면 나쁜 거에 대한 과보는 받아요. 그런데 업을 짓는 자도 없고 업을 받는 자도 없어요. 인과가 있을 뿐이에요. 인과의 흐름이 있을 뿐이에요. 원인과 결과 연기법이라는 이 법칙의 흐름이 있을 뿐이지 거기 자아라는 건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이 일을 했고 저 일을 했어가 아니라 그 인연과 조건이 그걸 하도록 시킨 거예요. 인연이 그런 거 인연이 이게 근원에선 우리가 무죄인 거예요. 본래 죄가 없어요. 이게 이참에요. 이 사실을 깨닫는 거 본래 죄가 없거나 죄라고 할 만한 게 하나 붙을 게 없어요. 너무 텅 벼서 한 티끌도 붙을 게 없는데 거기 죄와 복이 붙을 자리가 있어요. 손해를 보죠? 선거학위 붙을 자리가 있습니까? 선거학이라는 건 분별이 만든 거지 실제 선도 없고 악도 없어요. 선과 악이 있다라고 분별로 만들어 놓을 때 거기서 죄와 벌이 생겨나는 거거든요. 그 정신력을 조금 가지지 않으니까 이 자리를 깨달으면 이리 씨에 참여가 돼 버리는 거예요. 참여할 게 없구나라는 걸 깨달아서 완전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참여할 게 없습니다. 그게 진짜 참여라는 거예요. 그리고 죄무자 성심기 심양멸 CJ 욕망 죄는 마음 따라해라 뿐이다. 마음에서 그 죄의식이라는 게 변하면 죄 또한 변한 다르잖아요. 심양멸씨 죄욕망 팜이 그 조회식이라는 마음이 변할 때 죄 또한 면한다. 재무자 성종 신기 심양메시 지역망 죄망심멸 양구공 시증명이 진참해 죄와 죄의 의식이라는 그 마음 그게 같이 같이 멸해버리면 이게 진정한 참회다. 이게 이 참회 개성이란 말이에요. 저기 마음을 깨닫는 게 진짜 참회예요. 그럼 참여할 게 없어요? 참여할 게 없다라는 걸 깨닫는 게 진짜 참애예요. 유마고사가 말한 건 그거예요? 오파리 존재요. 당신께서 저들에게 이건 죄고 죄가 아니다라고 얘기를 해서 이거는 참여해야 되고 저건 어떻게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다면 그거는 세간에 참여밖에 되지 못한 진짜 참여가 되지 못해서 그들을 오히려 죄의식을 증장시켜서 그들의 죄를 더 무겁게 할 뿐이다. 그게 어떻게 바른 서법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선법을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꾸짖었단 말이죠? 그래서 이 오파리 전자가 꼬리를 내리고 유마고사의 말을 법을 들었단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유마경에서는 10대 제자들이 전부 다 자기 특화된 자기 장점들이 있잖아요. 오파리 존재는 지게제 일이고 가섭존자는 지혜제일이고 이런 자기가 잘하는 게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
하고 딱 얘기를 하는데 유마 고사한테 한 방씩 딱 맞아요. 9시 이후 자기가 이걸 잘한다는 뭐 그 한 생각이 있어 버리.
니까 이 법의 자리에서 딱 있는 사람에게는 그냥.
여기 출제가 없어요. 대성불과 그걸 설명하는 거예요 뭔 추
제가 있냐 이거예요. 성속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법이 있냐 법이 없느냐가 중
요하잖아요. 지금 그런 시대잖아요. 법이 있느냐 법이 없느냐가 중요하지, 이게.
불교냐 기독교냐 천주교냐. 이게 성직자가 한 얘기냐 스님이 한 말이냐 스님 아닌 사람이 한 말이냐.
남자가 한 말이냐 여자가 한 말이냐 아무 의미 없다. 그러니까요 이 법회사.
에서 한 말이냐 아니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놀라운 시대.
죠 그러니까 옛날에는 진짜 급격하게 10년 사이에 확팍됐다니까 세계가 확 바뀌었.
다니까요? 여러분 10년 전에만 해도 이 적이 없으면 안 됐다니까요. 명함.
공식적인 명함 메이커 이런 게 중요했다니까요. 유명한 학교의.
유명한 교수 사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그 사람 말은 권위를 지니는 거예요.
근데 아무리 그 분야에 뛰어난 사람도 그 학위나 무슨 자격증이나 이런 게 없으면.
그 말을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신문사에서 주목을 안 했어요? 전혀?
근데 벌써 옛날에 이런 말들이 있었거든요. 앞으로의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달음도 이제는 스승이 인가해주는 게 깨달음이 아니다. 자기가 깨달았다고 한다고.
진짜 깨달음이 아니다. 이제는 대중이 인가해주는 게 진짜 깨달음이다. 이런 말들을 옛날부터 했었.
거든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면 이제는 그런 권위.
이런 게 깨지는 시대예요.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예요.
타고난 학벌이 없어도 그 분야의 전문가인 사람이 갑자기 유튜.
브에서 그 분야를 막 설명을 하고 나왔는데 일반 대중들은 그 교수님이 하는 말보다 이 사람 말이 더 쉽
고 더 깊이 있고 더 이해가 간다. 이러면 그 사람 말을 더듬 듣고 이러는.
시대 단적인 예가 그런 것이고 그런 것처럼 이제는 그런.
어떤 권위 이런 것들이 깨지고 그냥 평등해지는 거예요. 벽이 무너지는 시대에요.
그래서 성경을 불경을 해설.
하는데 꼭 이게 성식자만 해설해야지만 그게 진짜냐 아니다라는 걸
이제 알게 된다니까요. 이재명 대통령 잘 안먹을 가지고 안목을 밝힌 사람이 진짜 하나.
님이 누군지를 아는 사람이 설명하면 그게 진짜지 그 타이틀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2월 19일부터 그거를 벌써 2000년 전에.
그걸 깬 불규정 깼다니까 2000년 전에 벌써 대승불교 태동할 때가 유마경이 1세
기 전후 ADBC 1세기 사이에 나왔단 말이에요. 2000년 전에 나온 거 이 가르침이.
그때 벌써 승속이 어떻게 따로 있을 수 있느냐? 이 말을 한 거예요? 유마경에서.
이 둘이 아니다는 불의법을 사라하기 위해서 이런 어떤 드라마틱한 이런 설정을 한 거거든요.
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이라는 게 이렇게 이렇게.
자유로운 사상의 가르침이 게을의 자성은 허공 같아서.
안팎의 사바세계 어디에도 죄는 있지 않네 게을의 자성은 허공 같다.
안팎의 어디에도 죄는 있지 않다? 이 세상 이 사바세계 어디에도 죄는 없어요. 죄가 없
습니다 그 게을이 자성이 없어요. 따로 이건 절대적인 게을이다. 이건 반드시 지켜야.
된다 이런 게 없습니다. 불교 열고 닫을 줄 알아야 된다고 하잖아요. 개차법 계율을 지킬 줄도 알아야 되지만.
범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불교계예요. 계율이 정해진 게 없다는 얘기잖아요. 얼마나 자유로운 소리예요?
안팎의 사바세계 어디에도 죄에는 있지 않다 죄가 없습니다. 여러분 죄의식까지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죄 지은 사람이 없어요. 그런 자아가 없습니다. 인연이 죄를 짓
게 만든 거지 죄를 짓게 만든 인연이 있을 뿐이지 죄 지은 자는 없어요. 저희 지역에 국적으로 책임을 물는 것은 착한 일을 하게 만든.
자는 없어요. 착한 일을 하는 인연이 있을 뿐이지 그런 인연 속에 살다 보니까 그렇게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인 거지. 이렇게 얘기하면은 좀 착한 사람들은 억울해요.
최고 2년에 내가 이렇게 착하게 살았는데, 내 일은 내가 없다고 그것도 나쁜 놈일수록 이런 얘기가 좋아해. 듣기 좋아요 어
내가 잘못했는데 난 잘못 없구나. 그래가지고 이런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나쁜 놈들이 지 정당화시키는 말로 이런 걸 돌릴까?
봐, 착한 사람들이 충격받을까 봐 근데 이거는 그런 거 너머에 진리를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원래는 본래의 자리에는 선도가 앞도 없어요, 나쁜 놈도 없고 착한 놈도 없어요. 그렇다고 인간 홍보가 없는 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나쁜 짓 하는 놈들은 그 과부를 필시 받아요. 왜 사법계 현실 세계의 법계에서는 그걸 반드시 받아요. 100% 받아요 걱정 안 해도 돼요 부처님도 봤잖아요. 오늘 맞아 전국 사립일구 먹고 있는 두 봤잖아요 먹는 존재가 외도에게 칼 맞아 죽었잖아요. 깨달은 아라하니 부처님이 그것도 못 막아줬단 말이에요. 근데 부처님이 인연을 보니까 먹는 존재가 그 전에 수행자였을 때 공부 공부한 공부한 근데 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공부한 어떤 공부인들을 공부하는 수행자들을 질투 때문인가 뭐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그런 죽이거나 이런 업보를 지은 게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냥 그 생애 그냥 인과는 분명하기 때문에 그 과보를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인과는 깨달음과 상관없이 그대로 간다니까요. 부처님도 인간은 깨달았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었어요. 공연 전자가 죽을 인가였음 깨달아도 죽는 거예요. 인도에 뭐 깨달았다라는 성자가 담배를 파도 맞혀서 패한 걸레 죽었잖아요. 깨달은 성자도 담배 피우면 폐암걸레 죽는 거예요. 당연한 거예요. 그건 그게 진리예요. 그 사람은 그럼 못 깨달은 거 아닙니까 깨달은 거예요. 깨달은 사람이 법을 펴다가 교통사고는 죽었다.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인연이 그렇게 되면 술 먹다가 사고가 나서 죽었다. 이럴 수도 있다니까요. 아니 제가 잘하면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다고 해서 그게 법을 법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느냐 그렇지 않아요. 인광보는 그래서 불교 경전에 법학이나 이런 말이 있어요. 이법계 현실 세계의 법계는 사법계라는 현실 세계 법계는 현실세계 법계대로 나름의 법이 있고 또 진리의 법계는 진리의 법계들의 나름의 법이 있다. 현실 세계의 법계의 이치는 인과 이치대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억울해할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나쁜 놈은 인간도 다 받을 거니까 윤회해서 다음 생에 태어나서라도 나쁜 짓 한 거 과부 다 받을 거 있죠. 자기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우리는 이 마음을 깨닫는 여기에 이제 집중하면 돼요. 사바색이 어디에도 죄가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죠 참 자유롭죠. 우리가 본래 이렇다라는 게 생멸심을 제거하여 어떤 것도 긍정하지 말 것을 권고하니 문득 깨달으면 진실로 석가모니와 같다. 이 생멸심 분별심 생겨나고 죽는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 분별분별의 관점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 라고 열심히 열심히 해라. 이렇게 이런 차원에서 방편으로 그래 그래. 그 쪽 인정해 줄 수 있겠지만 주로는 인정해 주지 않아요. 컵 막 꾸준히 열심히 해 봐라. 이렇게 하든지. 그래도 뭔가 자기가 그래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막 그런 게 너무 커서 막 그러면 그나마 크게 인정해 주는 게 전부 다 조금 낫다. 쬐끔 봐줄 만하니까 영 못 받을 만한 건 아니니까 꾸준히 계속해라. 이 정도로 얘기하면 상당히 긍정한 거예요. 응, 아 보통은 스승들끼리 내친단 말이죠. 이 스승과 저 스승이 서로를 막 내치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에요. 겉으로는 근데 그게 긍정하지 않는 거예요. 긍정하면 안 되거든요. 스승마다 두고 쓰는 방편이 있거든요. 그 방편들은 긍정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내치는 게 그 스승의 법을 내치는 게 아니에요. 법을 긍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스승이 쓰는 두구 쓰는 방편 그거를 깨뜨려 줘야 거기도 머물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무리 옳은 것도 옳은 거다. 그건 맞다 하고 딱 긍정해 주면 그 삿댄스승이에요. 그러니까 아 선생님 이렇게 하면 되는 거 맞죠? 어, 맞아 맞아 이렇게 얘기 안 해요. 뭐 그렇게 해 보려면 그렇게 해 보든지 뭐 마음 가운데를 해 봐 근데 뭐 방법이 알아서 왜냐하면 이 방법 아닌 방법을 일러주고 나서는 자기가 그냥 이렇게 되고 저렇게도 해 보는 거예요. 뭔가 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이게 길하는 길이니까 딱히 정해진 방법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막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게 왜 그러겠어요. 뭔가 자기 답답해 죽겠으니까 근데 그 사람이 그러면 스님 그래서 이렇게 하라는 거야? 저렇게 하라는 거예요? 아 이렇게 하라는 거지? 이렇게 정해 주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거라는 거 아니야? 그때 저거라는 것도 아니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고 얘기하지. 긍정적인 주지 않는단 말이에요. 긍정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잖아요. 긍정해 주면은 거기에 머물게 돼요. 무주법이잖아요. 이거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야지 머무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꽉 막힌단 말이에요. 분별이가 닿을 데가 없다. 분별이 안 좋을 때가 없단 말이에요. 분별이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아, 이제부터 이렇게만 하면 되겠네.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세상 공부는 그렇게 해야 되는 거지만 이 공부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에 가서 나중에 이렇게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확실해지겠죠. 나중에 가서 뭐가 확실해지냐면 알고 싶어. 죽겠다가 알고 싶어. 죽겠다가 나중에 가서 명확히 알았다. 이러고 끝나는 공부가 아니고, 어떻게 끝나는 공부냐 알고 싶어 죽겠다. 죽겠다 죽겠다가 결국에 끝나는 거예요. 공부가 끝나고 어떻게 끝나느냐? 아 도저히 알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이걸 확실하게 깨닫는 거예요. 알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걸 확실하게 깨닫는 게 깨달음이에요. 그게 그 유명한 그 진우 스님의 수신길에 나오는 뭐예요? 뭐죠 제 갑자기 까먹었네. 단지 불의 시습 현상이에요. 그게 단지불의 시스템 현상 단지 알지 못하는 줄 알면 그것이 현상이다 하는 게 아니에요. 이거는 알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아는 건 둘이잖아요. 내가 무엇을 안다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눈이 눈을 볼 수 없듯이 자기가 어떻게 자기를 알 수 있어요. 눈은 다른 걸 보는 걸 통해서 아니 여기 눈이 있으니까 보는구나 하고 그냥 그렇게 확인하는 거지. 눈을 봐서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눈을 뭔가 알아서 확인하는 것도 아니야. 이건 이 공부는 여러분이 이제 이게 어려운 점이에요. 이거를 이 자리를 확인한 사람들이 나는 못했어. 이런 사람이 은근히 많아요. 힌트를 하나 알려 드리는 거예요. 이 자리를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사람들이 나는 못 깨달았어.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그 사람들한테 대놓고 그렇게 얘기를 안 해요. 그런데 자기가 이걸 못 넘어요. 왜 못 넘는지 아세요? 세간의 방식으로 이걸 알고 싶거든요. 세관에서 뭔가 이렇게 딱 알았다 하는 게 있어야만 이게 속이 시원하거든요. 이게 뭔가 끝난 것 같거든요. 보고 싶을 때는 봐야지만 그걸 끝나잖아요. 뭔가 너무 보고 싶어 보고 나서 끝나잖아요. 시원해지잖아요. 더 이상 이제 봤으니까 됐잖아요. 나는 죽을 때까지 뭐 어디 나는 죽기 전에 어디는 뭔 보고 싶어. 뭐 히말라야 한번 가고 싶어. 뭐 광안리 앞바다 한번 보고 싶어. 뭐 그럼 보고 나면 끝나잖아요. 시원하잖아요. 봤으니까 뭐 수학 문제 풀고 싶다면 나 이 정도 문제 풀고 싶으면 풀고 나야 끝나잖아요. 이렇게 뭔가 봐야지 들어야지. 맛봐야지 만져봐야지 알아야지 끝난단 말이에요. 우리가 분별심은 알아야 해결되잖아요. 분별심은 그걸 끝끝내 못 넣는 거예요. 이 법을 그렇게 잡으려면 이거는 그렇게 잡는 게 아니에요. 전혀 낯선 방식이에요. 1번 더 해보지 않은 방식이에요. 왜 그러냐.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은 나와 세계가 있어서 내가 세계에 있는 저것을 보는 방식으로 바꾸고 내가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방식으로 저 모르는 걸 아는 방식으로 알았고 다 둘로 쪼개져 있었어요. 나와 세계가 둘로 나뉘어져 있으니까 내가 세계를 알고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고 알고 이런 방식으로 세상과 접촉해서 그런 방식으로 확인했단 말이죠. 지금까지는 근데 이거 이 공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이에요. 자기가 자기를 확인하는 거니까 눈이 눈을 보는 공부니까 그러면 너는 분별의 방식으로 눈이 눈 밖에 있는 대상을 둘로 나눠 놓으면 바깥에 있는 건 다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봤다. 오케이 이건 나왔으니까 끝 이거 봤다. 이거 봤으니까 끝 이럴 수 있어요. 본 것과 안 본 거를 명확히 나눌 수 있어요. 근데 눈이 다른 걸 봤어. 안 봤어? 물어보면 아 그거 봤어? 그건 못 봤어. 이럴 수 있죠 그죠? 근데 눈이 눈을 보는 건 어때요? 누지 눈을 보는 거는 그렇게 볼 수 있습니까? 눈은 딴 걸 다 볼 수 있지만 자기 눈은 볼 수 없어요. 눈이 눈은 볼 수 없어요. 딴 건 다 봐도 근데 눈이 눈은 어떻게 보는 거예요? 이걸 봐도 눈이 확인되고 이걸 봐도 눈이 확인되고 이걸 봐도 눈이 뭘 봐도 눈이 확인되고 심지어 눈을 감아도 눈이 확인되죠. 눈을 감아도 난 안 보이는데 하는 게 확인되잖아요. 그러니까 알고 모르고가 아니라고 한 게 알았다 하는 게 답이 아니고 알았다 하는게 이 마음이고 몰랐다 하는 게 이 마음이에요. 몰랐다 해서 확인되는 게 마음이에요. 알았다에서 확인되는 게 아니라 알았다에서 몰랐다에서 평등하게 확인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았다는 아니죠. 알았다는 알았다라는 내용을 안 거잖아요. 그러니까 알았다라는 그건 이건 공부랑 상관없는 거죠. 알았다에서 확인되는 또 몰랐다에서도 똑같이 평등하게 확인되는 게 이거니까 깔았다오는 상관이 없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둘로 나누는 거는 이 공부랑 상관이 없어요. 근데 우리는 둘로 나누는 것만 알려고 해요. 그 이 세상이 온통 온 우주 전체가 완전히 빨간색밖에 없어요. 완전히 빨간색밖에 없으면 빨간색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요? 본래가 다 빨간색이면 어 나 빨간색인데 너도 빨간색인데 이럴까요? 자기네들이 빨간색이라고 알까요. 어 빨간색 빨간색밖에 없는데 뭐 빨간색을 알아요? 색이라는 개념도 없겠죠. 빨간색이라는 개념이 없겠죠. 원래 거 다 이런 줄 알지? 왜 하나니까 하나로 그냥 그냥 그냥 이런 거지. 이게 뭐 빨간색이나 생각이 없어요. 근데 둘로 나뉘는 순간 빨간색이라는 게 알아져요. 둘로 나뉘어지면 알아져요. 갑자기 빨간 세상에 노란색이 하나 딱 나타나면 갑자기 얘네가 어 뭐지? 저건 노란색이네 하고 이름을 붙이고 나서 그럼 우리는 빨간색으로 이름 붙이자 그래서 둘로 나누면 그때 빨간색을 대상화해서 알게 된단 말이에요. 근데 이 법은 온통 빨간색인 것처럼 온통이 법뿐이니까 둘로 나누어서 알아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죽어도 둘로 나눠서 알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우리의 분별의식은 그러니까 끝끝내 그걸 못 넘는 거예요. 분별을 못 넘는 거예요. 분별의 벽을 그렇게는 알 수 없다. 그냥 알 수 없음을 알면 법이 악인되는 거예요. 소리 아니에요. 소리에서 확인된 이거지 보이는 모양 아니에요. 이 컵 뚜껑 아니에요. 여기서 확인되는 이거지 동등한 게 여기서는 여기서 동등한 게 같은 게 확인된단 말이에요. 여기서 법을 확인하는 거예요. 법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이 모양 모양을 보면서 모양에서 모양 아닌 법을 확인한단 말이에요. 모양을 찍혀 있는 색칙 시공하듯이 색에 직해 있는 공을 보는 거란 말이에요. 따로 공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 보는 거지. 이걸 없애고 나서 공을 보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보는 거 듣는 거 느끼는 거 아는 거 그 모든 모든 속에서 법을 확인하는 것이지. 따로 어디서 그걸 빼고 이 세상을 빼고 따로 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지 않다는 것이죠. 응, 다음 시간 그다음 시간까지 해서 이제 마치도록 하고 1월 둘째 주 9일부터는 새롭게 부처님 말씀과 마음 공부라는 책을 가지고 어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성불하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