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성남FC에 후원금을 내기 위한 중간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지목을 받고 있는 비영리단체 ‘희망살림’의 이사진들이 사실상 친이재명계(친명계)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희망살림’은 네이버로부터 40억원을 받아 이 중 39억원을 성남FC에 2년간 집중적으로 홍보비로 집행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비영리단체가 굳이 거액의 홍보비를 집행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이 돈이 사실상 네이버 신축사업 인허가를 위한 뒷돈의 성격이 짙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언론사 취재 결과 네이버로부터 이 돈이 들어오고 집행되던 시기에 이 시민단체 이사진이 대부분 친명계 정치인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영리단체든 비영리단체든 회사 주요 결정 사항이나 대규모 자금 집행은 이사회 의결을 거치는 것이 법적 절차다.
‘희망살림’ 역시 이례적 홍보비 집행 등에 대해 이사회 의결과 같은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당시 이사회 면면을 보면 단체 설립을 주도했던 이재명이 후원금 집행에 있어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인적구성이었다.
만약 이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거수기 이사였다면 과연 당시 홍보비 집행을 누가 주도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는 검찰 수사가 밝혀내야 하는 부분이다. 현재까지 당시 이사회 회의록이 존재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2014년 ‘희망살림’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단체는 취약계층의 금융복지를 위해 설립된 공익 사단법인으로, 당시 이재명의 약속으로 설립됐다.
2012년 11월 7일 이재명 당시 시장은 서민부채 상담을 위한 ‘성남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운영할 계획을 밝히고 성남시청에 센터를 설립했다. 이어 2014년 이재명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성남시는 희망살림과 이 단체가 주도하는 ‘롤링주빌리’란 이름의 ‘빚 탕감 프로젝트’ 출범식을 열고 협업을 본격화했다.
이어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사무실을 차린 희망살림과, 성남시청에 설치된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는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했다.
모금 활동, 후원 등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장기 연체 부실채권을 싸게 사들인 뒤 부실채권을 소각해 채무자들의 빚을 없애주는 사업이나, 채무자에게 채무 상환 관련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알려주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은 2014년 희망살림이 운영한 관련 프로젝트 명칭인 ‘주빌리은행’에서 2015년 ‘공동 은행장’을 맡았다.
2015년 3월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가 정식으로 설치된 지 2개월 만에 성남시와 희망살림, 성남FC, 네이버 등 4곳은 ‘빚 탕감 프로젝트 참여와 확대를 위한 협약서’에 서명했다. 네이버는 이후 2년간 4번에 걸쳐 희망살림에 40억원의 후원금을 냈고 이후 이 단체는 이 중 39억원을 성남FC에 2015년부터 2년간 광고료로 지급했다.
성남FC 경기 때 ‘롤링주빌리(Rolling Jubilee·부실채권을 사서 없애는 시민운동)’ 로고를 선수들 유니폼 등 메인스폰서 광고로 표출한다는 게 협약의 골자였다.
주빌리은행의 들쭉날쭉한 기부금 수입 내역 역시 의혹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단체는 2015년과 2016년에만 각각 21억5100여만원, 26억8100여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2017년에는 5200여만원, 2018년 1050여만원, 2019년 840여만원, 2020년 6140만원, 2021년 1890여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이후 해당 단체는 2019년 ‘롤링주빌리’로 법적 명칭을 바꿨다.
성남시 안팎에서는 비영리단체가 성남FC에 거액의 홍보비를 지출할 이유가 없다는 말들이 나왔다. 2019년 해당 시민단체 관계자는 한 인터뷰에서 “단체가 후원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홍보비가 따로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사가 ‘희망살림’과 ‘주빌리은행’에 대한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2014년 설립 당시 12명의 이사진 대부분이 현재도 친명계로 불리는 인사들이었다.
2015년까지 희망살림 공동대표를 맡았던 이헌욱의 경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성남FC 감사를 지냈고, 이재명이 경기도지사로 있었던 2019년 2월 경기도시공사(GH) 사장으로 부임했다.
출범 당시 이사직을 맡았던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도 2019년 5월 GH 이사로 선임됐다. 제윤경 전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원조 친이계’로 분류되는데, 제 의원은 친문이 당내 주류 세력이었던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무상급식 대모’로 불리는 배옥병 전 더불어민주당 먹거리특별위원회 공동대표도 공동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배 전 대표는 최근 구속된 김용의 추천을 받아 지난 2020년 민주당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경기도중앙협력본부장을 지내고 향후 2019년까지 롤링주빌리 이사를 지낸 조영민 이사도 이재명이 신뢰하는 인물로 거론돼왔다. 이외에도 다수의 민주당 내지 진보진영 인사가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이 단체가 주목을 받은 것은 김어준의 처남이 단체 운영에 많은 역할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김어준의 처남은 인태연 전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인데 그는 등본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지만 희망살림 설립에 실질적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다만 주빌리은행 관계자는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등본에 등록되지 않은 내용이라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중 제윤경 의원은 네이버와 협약을 맺은 4개월 뒤인 2015년 7월 사임했고, 이후 2019년 단체가 ‘롤링주빌리’로 명칭을 바꾸면서 선대인 전 GH 이사, 박원석 정의당 사무국장, 이헌욱 전 GH 대표 등 초창기 임원들도 대거 사임했다. 현재 대표이사는 설은주 회생전문 변호사가 3년째 맡고 있다.
이재명과 관련해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은 지난 9월 26일 주빌리은행의 서울 성동구 본점, 경기 성남시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네이버가 성남FC에 직접 후원금을 주지 않고 주빌리은행(당시 희망살림)을 통해 39억원을 전달했고, 성남시가 그 대가로 네이버에 제2사옥 신축 허가를 받았다는 의혹을 확인하고 있다.
이런 의혹은 지난 10월 12일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제기됐다. 이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서울시 소재 시민단체인 주빌리은행을 거론하며 “이 정도 되면 희망살림은 그냥 ‘뇌물 퀵배송업체’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 압수수색 이후 주빌리은행은 사업 규모를 상당 부분 축소하고 성남시 분점 사무실을 폐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26일 주빌리은행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이제 채무를 직접 갚아주는 그런 활동은 하지 않는다”며 “다만 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 이런 내용을 잘 알려주고 채무자 상황에 따라 어떤 조정을 해야 할지 상담만 해준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운영하던 분사무소도 폐쇄할 예정이다.
해당 분사무소는 성남시 한 빌딩의 공유오피스 내 주소를 두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사무실을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0월 24일 공유오피스 관계자는 “비상주로 걸어놓은 단체인데 다음달에 폐업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