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고려양봉원"을 운영하시고 "한국봉료보건연구회"회장이신 "고상인"님을 벌써 10여 차례나 만나 뵙지만 항상 건강하게 지내시고 많은것을 도움을 받기에 개인적으로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선친이신 "고용호"선생님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만나 뵙고 왔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양봉의 선구자 역활을 하신 고 "고용호" 선생님께서 일본 오사까농림학교를 졸업하시고 일본 기후시 "와타나베양봉장"에서 1년간 "와타나베히로시"선생으로 부터 양봉실습과 공부를 마치고 이곳에서 서양종벌인 이타리안종 벌 15군을 한국에 갖고 와서 1920년도에 양봉을 시작하시면서 전국적으로 이동양봉을 하시면서 한국 최초로 1935년 대구시 대봉동에 "高宮養蜂園"을 개설하여 전국의 양봉업자들에게 각종 양봉기구를 보급하셨다 양봉에 전념하시다가 1948년한국초대 양봉과장을 역임하시고 양봉 보급과 발전에 힘쓰시다가 1952년 6.25시변 피난시 의원사직하시고 대구시 범어동(현 범어로타리) 과수원 6000여평을 매입하여 봉군 50군을 구입하여 "고려양봉원"으로 개칭하여 양봉을 재시작하셨다. 1954년 한국 최초로 봉아부폐병 발생으로 그 당시 구제약품이 없어 갖고 있던 봉군 150군을 비롯한 기구 전부를 소각하는 아품도 격으면서 양봉에 전념하시면서 대구 근교의 달성군 소재 월배. 옥포 화원유원지,다사...지역에서 이동 양봉도 하시면서 특히 1958년 화원유원지 일대 재래종 밤나무 밀원지에서 홍수로 인하여 봉군 100군이 유실된적도 있었지만 1959년 봉군수를 250으로 확장시키고 1군2왕법 관리에 성공도 하시고 1960년 그동안의 전문가적 실무 기반을 토대로 "양봉종전"이라는 양봉서적도 발간하여 보급하여 우리나라 양봉산업에 크게 기여하시고 명실공히 대구시 소재 고려양봉원을 통하여 양봉기구 개발과 기술 보급에 현재에 이르기 까지의 우리나라 양봉산업의 양봉역사의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구시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양봉 공부를 하는 한사람으로써 많은것을 느끼게 합니다... 돌이켜 보건데 우리나라 근대 양봉산업의 뿌리가 대구 고려양봉원과 소정 이근영 선생님이 귀향하셔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서 "양봉신편"을 저술하시고 대구에서 인쇄,발간한 역사적인 양봉자료들이 남아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곳 대구시와 달성군에서 양봉에 관한 자료관이나 박물관 하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
출처: 벌침과봉료법으로 무병장수하는 법~~~ 원문보기 글쓴이: 왕벌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