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이 꺼지고
백열등 하나가 앉은뱅이책상 위에 켜지면
아버지는 비로소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곤 했던 것이
여름밤 식구들의 좁은 잠자리 때문이었는지
십오촉 백열등 빛이 너무 밝아서였는지
천장을 가득 채우던 아버지의 그림자 때문이었는지
그 모든 것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리방 긁는 소리가 밤새 들리던 밤
목에 둘렀던 수건을 감아 뜨거운 전구알을 갈던 모습이며
쥐가 난 다리를 뻗어서 두드리던 모습이며
전구 위에 씌웠던 종이갓이 검게 타 들어가던 모습이며
자줏빛으로 죽어 가던 손마디와 팔꿈치를 문지르던 모습이며
내가 반쯤 뜬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계셨을까 그 방을 벗어나고 싶어했다는 것을
글을 쓰고 싶어 하셨지만
글자만을 한 자 한 자 철필로 새겨 넣던 아버지,
그러나 고치 속에서 뽑아낸 실로
세상을 향해 긴 글을 쓰고 계셨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 후로도 오랜 뒤였다
오늘 밤,
내 마음의 형광등 모두 꺼지고 식구들도 잠들고
백열등 하나 오롯하게 빛나는 밤
아버지가 뽑아내던 실 끝이 어느새 내 입에 물려 있어
내 속의 아버지가 나 대신 글을 쓰는 밤
나는 아버지라는 생을 옮겨 쓰는 필경사가 되어
뜨거운 고치 속에 돌아와 앉는다
그때의 바람이 이 견디기 어려운 여름 속으로
백열등이 너무 어둡게도 너무 밝게도 생각되는 내 눈 속으로
더 깊이 더 깊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림자 어른거리는 천정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건네지 못할 긴 편지를 나 역시도 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