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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주는 자유를 향해 (요2-43) 2022년 6월 15일(수)
찬양 : 십자가를 내가 지고
본문 : 요8:31-32절 ☞ https://youtu.be/n4VYAJ9vzQQ
어제도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모여서 수련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멘토인 전웅제 목사와 함께했다. 각자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멘토의 공감과 지도가 있는 참으로 멋진 시간이다. 이런 자리가 라마나욧 스페이스알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주님, 이들을 축복하소서. 이끄시는 전웅제 목사를 사용하소서. 다음세대가 살아나게 하소서.
오늘은 딜레마에 빠진 사단법인 작업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만남을 가진다. 라마나욧의 건강한 세움에 있어 내가 생각한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고 있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둘을 공존시킬 방법은 없는지, 아니면 결국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지 ~ 딜레마다.
방향과 속도를 결정해야 하는 지도자에게 이런 순간은 영광이면서 또 한 편으론 무척 부담된다. 혹시 이상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아닌지 ~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이상은 그림일 뿐이고, 그렇다고 현실이라고 <그래 감옥>에 갇히는 것은 정말 위험한 자리다. 분명한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꿈을 가지고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며 그 현실 위를 당당히 걸어가는 결정이 되어야 한다. 주님, 이 종에게 지혜를 주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믿는다는 이들을 향해 진리의 초대장을 발부하시는 모습이 나온다. 31-32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여기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믿은 유대인들에게>란 부분이다. 이 말씀은 분명 믿은 유대인들에게 주는 말씀이다. 주님은 그 믿은 자들에게 초청장을 주신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자유롭게 되리라.>
믿음이란 주님의 말씀에 거하는 일이고 제자가 되는 과정이며 진리를 알고 진리가 자유롭게 하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말씀에 거한다.>는 것을 메시지 성경은 <내 말을 붙들고 내 말대로 살아가면>이라고 번역한다. 신앙은 생각이 아니라 삶이어야 한다. 신앙은 말씀을 붙들고 삶의 현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거의 날마다 실패의 현장에 선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 처절하게 실패하는 내 모습을 거의 날마다 발견한다. 10의 7은 실패하고 10의 3 정도를 실천하는 수준이 내 수준이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그 현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부끄러워 근심에 쌓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코 나는 이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길을 걷게 하시는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런 삶을 제자라 칭하신다. 그리고 진리를 경험하며 자유를 누릴 것이라 말씀하신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말씀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제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10의 1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리며 진리의 맛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주님이 주시는 마음에 자유롭게 도전하고, 문제앞에서 당당하게 길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진리가 주는 힘 때문이다. 많은 경우 돈이 있고,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고, 경험이 있어도 그들은 진정 자유롭지 못하다. 그저 그 테두리 안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테두리를 넘어서 자유롭게 나아갈 힘이 있음을 안다.
나의 삶은 10의 7 날마다 실패하지만 그래도 진리를 붙들고 살면서 진리가 주는 이 자유로움이 나타나고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과연 내 삶에 10의 7을 말씀에 순종될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기대되고 그래서 오늘도 이 말씀앞에 겸손히 서게 된다.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과연 나는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장담컨대 늘 부족할 것이다. 늘 넘어질 것이다. 완전하지 못한 죄성을 가진 인생의 한계를 경험할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완전하신 주님을 붙들고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가는 것이다. 그때 진리는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의 약함을 나는 자랑할 수 있다. 나의 넘어짐도 나는 시인할 수 있다. 나는 처절한 죄인임을 알고 있다. 오늘도 나는 10의 7을 넘어지는 그런 연약한 목사다. 그러나 이런 나를 아시며 함께하사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올려드린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이 감옥을 만든다. 알면 아는 것이 감옥이 되고, 모르면 몰라서 감옥이 되고, 가지면 가져서 감옥, 없으면 없어서 감옥, 만나면 만서 감옥 헤어지면 헤어져서 감옥 모든 것이 감옥이다.
그러나 진리는 다르다. 진리는 비록 우리의 힘으로 다 알 수 없지만 그 진리를 붙들고 삶에 순종될 때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진리 안에 있는 그 자유는 세상의 모든 감옥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 진리는 가정을 열고, 공통체를 열며, 문제를 열고, 열등감과 상처를 열게 한다. 아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설교로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 정말이지 답답하다. 인간이란 존재의 힘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진리는 다르다. 진리가 선포될 때 그리고 진리를 붙들 때 그곳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 모든 감옥문을 여는 기적이 일어난다. 아멘.
진리는 내 삶의 감옥을 여는 기적의 열쇠다. 아멘. 아멘. 아멘.
다만 인간은 그 진리를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죄인이란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영접할 때 성령안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차원의 역사가 바로 진리로 누리는 자유의 영역이다.
나는 오늘도 이 사실을 믿는다. 그래서 이 아침에도 변함없이 자유를 주시는 유일한 능력인 진리의 말씀을 붙들려고 몸부림을 친다. 오늘도 이렇게 묵상하지만 처절하게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을 삶에서 붙들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나를 자유롭게 하여 오늘도 기적의 문을 열어내어 내 안에 갇힌 것을 풀어낼 것이다. 아멘. 아멘. 아멘.
주님, 이 하루도 이 사실을 다시금 알게 하시고 진리를 붙들고 삶으로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피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래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나는 진리가 열어낼 자유의 기적을 오늘도 만드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 종을 사용하소서. 오늘도 수많은 사단의 역사가 기적이 아니라 상처가 나고 있다고 싸인을 줄 것이지만 그래서 나로 <그래 감옥>에 갇히라고 말할 것이지만 나는 이제 사단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기에 진리안에 거함으로 진리를 아는 날, 진리가 주는 자유의 문을 여는 날로 이 하루를 살겠습니다. 이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절대로 단 0.00001%라도 빼앗기지 않고 이 자유를 누리며 이 자유를 전파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라마나욧 선교회 중보기도>
1. 30억 씨앗자금을 통해 작은교회에 비빌언덕과 플렛폼이 되게 허락하소서.
2. 온라인 플렛폼 스콘(스스로 창조하는 콘텐츠)앱을 통해 작은교회(젊은세대사역자)의 다리가 되게 하소서.
3. 2022년 예수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춘 새로운 라마나욧이 되게 하소서.
4.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5. 라마나욧선교회의 사단법인 작업을 통해 건강한 선교단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