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나선 갯가
간밤부터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비가 부슬부슬 내린 팔월 넷째 수요일이다. 처서 이후 여름 끝자락 우리 지역은 서쪽에서 다가온 기압골이 통과해 강수가 예보되었는데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반나절 걸음을 나서려니 산행보다 산책이 나을 듯했다. 많은 비가 아니고 바람은 그다지 세차지 않아 우산을 받쳐 쓰고 산책은 갈 수 있을 듯해 택한 곳이 마창대교 아래 삼귀 해안이었다.
날이 덜 밝아온 새벽녘 우산을 챙겨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섰다. 외등이 켜진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으니 천변 풀숲에는 귀뚜라미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간밤 강수량이 미미해서인지 풀잎에 물방울이 가득한 정도가 아닌 듯했다. 귀뚜라미들은 날갯짓으로 몸통을 비벼 소리를 내기에 빗물에 흠뻑 젖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성근 빗방울이 날리는 창이대로 창원수영장 맞은편에서 대방동 기점 첫차로 운행하는 216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충혼탑을 거쳐 창원대로를 건너 창곡삼거리의 공단 배후도로를 따라 달려 양곡에서 봉암다리를 앞두고 해안로로 진입했다. 짙은 구름이 드리워 비가 오는 속에도 날은 희뿌옇게 밝아왔는데 두산중공업에서 제작된 원전 플랜트나 시추선을 선적하는 제4 부두를 지나갔다.
삼귀 해안로를 따라 모롱이를 돌아간 합포만 건너 마산항과 무학산 언저리의 마산 시가지 아파트단지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해안로 갓길에는 캠핑카인지 이동형 포장마차일지 모를 차들이 줄을 지어 세워져 있었다. 버스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는데 종점 석교를 제법 앞둔 용호마을 들머리에서 내렸다. 바닷속 용궁에서 가까운 호수 같은 마을이라는 용호(龍湖)는 물가 어디나 흔했다.
버스에서 내렸더니 합포만에 뜬 돝섬 뒤로 무학산은 안개가 가렸고 바다 바깥은 마창대교의 높다란 교각에는 야간 형광 불빛이 반짝거렸다. 가포 산업부두에는 대형 화물선에서 밤을 새워 새벽까지 하역 작업을 하는지 훤한 불빛이 조명탄을 쏘아 놓는 것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용호마을을 돌아가는 산책로는 아침 이른 시간이라 산책객이나 낚시꾼이 아무도 나오질 않아 호젓했다.
예전은 한적한 용호마을인데 근래 찻집이나 식당이 빼곡해 야간이나 주말이면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듯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인적없는 해안로를 산책하는 묘미는 새로웠다. 용호마을에서 마창대교 교각 밑을 지나 갯마을까지 들어갔다. ‘갯마을’은 갯가 마을이라는 보통명사인데 삼귀 해안 ‘갯마을’은 고유명사로 버스 정류소에도 등록된 지명이었다.
갯마을이 끝나 귀산마을로 오르면 삼귀 주민센터가 나오고 바닷가로 더 나가면 석교 종점이었다. 데크로 설치된 해안선 산책로가 끝난 갯마을에서 발길을 되돌려 마창대교 교각 근처로 나가니 몇몇 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삼귀 해안 산책로 난간은 바다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들은 비가 그치길 기다려도 긋지 않자 비옷을 입고 물에 뜬 찌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창대교 교각 아래를 지나다가 우산을 접고 쉼터 앉아 잠시 묵상에 잠겨 보냈다. 이른 아침 갯가로 나와 휴대폰에 담은 풍경을 몇몇 지기들에게 날려 안부를 나누었다. 가포에서 마창대교가 걸쳐진 합포만은 좁다란 수로가 되어 진해만으로 이어졌다. 해군 통제부를 비켜 몇몇 화물선이 드나드는 사궁두미 앞 갯바위 무인 등대에는 날이 밝아온 즈음인데도 형광 불빛이 반짝거렸다.
쉼터에서 일어나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용호마을 입구를 지나 해안선 산책로 따라 걸었더니 차창으로 바라봤던 합포만과 안개 낀 무학산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산책 데크가 끝난 두산중공업으로 들어서니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한때 위기를 맞았던 공장은 다시 활기가 넘쳤다. 공장 경내 정류소에서 석교 종점을 출발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더니 참았던 빗줄기가 굵어졌다. 22.08.25